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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생명, 그리고 인간을 생각한다 |
서 지 문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
근자에 KBS-1TV에서 주말 황금시간대에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서, ‘아, KBS가 고상해지려나보다’ 하고 좋아했다. 토, 일요일 9시 뉴스 다음에 사극을 방영했었는데 역사왜곡도 심할 뿐 아니라 내용이 비열하고 살벌한 배신과 살육의 연속이어서 잠깐 보기에도 심난하고 부담스러웠는데, 다큐멘터리는 생명의 존엄과 처절함을 동시에 일깨워 주어서 고맙고 소중했다. 최근에 방영된 ‘프로즌 플래닛(Frozen Planet: 얼어붙은 지구)’은 아름답고 신기한 극지의 장관을 배경으로 그 극단적인 환경에서 생존하면서 종족을 보존하는 여러 생물들의 필사적인 투쟁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
극지의 장관, 극단적 환경 속 생명의 처절함과 존엄 |
극지의 봄은 매우 짧다. 바위처럼 단단한 얼음이 잠시 녹고 식물이 돋아나는 짧은 봄에 모든 극지 동물들은 번식을 하고 새끼들의 생존훈련을 끝내야 종족을 보존할 수 있다. 남극의 아델리펭귄은 수컷들이 먼저 수만 마리 떼 지어 바닷가에 나타나서 돌멩이를 물어다가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북극의 태풍이 불면 수만 마리가 모두 한꺼번에 죽을 수도 있다. 기후가 자비를 베풀면 암컷 펭귄 수만 마리가 떼 지어 와서 정다운 짝짓기를 하고 산란을 한다. 낳은 알은 수컷이 품고, 암컷은 새끼들의 먹이를 잡으러 간다. 겨울 잠 중에 새끼를 낳은 북극곰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먹이를 먹어야하는데 새끼를 데리고 다니면 먹이인 얼음 밑의 물범이 곰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도망치기 때문에 물범을 잡을 수가 없다. 새끼를 노리는 동물들이 있고 배가 고픈 숫곰도 새끼 곰을 잡아먹기 때문에 새끼들을 놔두고 다닐 수도 없다. 얼음이 녹으면 얼음 밑에 사는 먹이를 잡기는 불가능하다. 넉 달을 굶고도 어미 곰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인다. 그러다 젖이 마르면 새끼들은 굶어 죽게 된다. 남극의 울리베어 애벌레는 봄에 살아나서 잎을 열심히 갉아 먹다가 봄이 가면 바위 밑에서 내장과 피가 얼어 냉동 상태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기를 열네 해 반복한다. 열네 해에 걸쳐 축적한 영양분으로 열네 살 운명의 봄에 고치를 틀고 나방으로 자라서 고치를 뚫고 나와 며칠 안에 짝짓기를 하고 날아오른다. 이처럼 혹독한 극지이지만 봄에는 녹는 바다 얼음이 바다에 플랑크톤과 크릴새우를 거의 무한대로 번식하게 해 바다와 해변을 생명들로 넘쳐나게 만든다. 수천만 마리의 펭귄, 1,800만 마리의 쇠부리슴새, 5억 마리의 대구떼 … 모든 북극 동물의 무게를 합하면 지구상의 어느 단위면적당 합계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한다. 북극에 여름이 오면 남극에서부터 번식을 위해 북극까지 18,000km를 날아온 제비갈매기가 나타난다. 킹펭귄도 여름동안 얼른 새끼를 키워서 가을이 오기 전에 떠나야 하는데, 먹이를 사냥해 온 펭귄 어미는 40만 마리의 무리 속에서 자기 새끼를 울음소리로 식별해 내야 한다. 북극의 부엉이는 새끼가 날 수 있기까지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한 봄에 1,000마리의 레밍을 사냥해야 한다. 남극대륙의 여름에는 수백만 마리의 물범이 남조지아(South Georgia)섬에 모여든다. 보통 50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수컷들이 물어뜯으며 영역싸움을 하면 새끼들은 짓눌려 죽거나 폭력과 혼돈의 틈바구니에서 어미를 잃기도 한다. 범고래가 무리를 지어 한 마리 밍크고래를 추격하면 밍크고래는 30km를 헤엄쳐 달아나도 범고래 떼를 따돌리지 못하고 마침내 범고래 떼의 먹이가 되고, 피 냄새가 나면 새들도 달려들어 쪼아 먹는다. 개체 수 50만 마리의 남극 아델리펭귄은 새끼 한마리가 자라기까지 30kg의 먹이를 먹어야 해서 부모는 쉴 새 없이 사냥을 한다. 그러나 부모가 사냥 나간 사이에 도둑갈매기가 새끼를 채어가서 새끼의 절반만이 성체로 자란다. |
풍요에 감사하고 탐욕을 반성해야 |
북극에 겨울이 오면 맹추위가 엄습해서 매일 5만 평방미터 이상의 바다가 언다. 여름 내내 먹이를 먹지 못한 수컷 곰들은 스트레스가 폭발해서 충돌하기도 하기 때문에 주변에 덩치 큰 수컷들이 많으면 암컷은 새끼들을 데리고 멀찌감치 피한다. 극지에 겨울이 오면 4개월간 해가 뜨지 않는다. 보통 식물은 다 죽고 침엽수들만이, 많게는 3톤씩의 눈을 이고 겨울을 난다. 큰부리오리 10만 마리 등 수백만 마리의 새들이 겨울이 오기 전에 북극을 출발해서 남쪽으로 날아간다. 번식기가 끝나면 북극은 황량해 진다. 북극에서 겨울을 나는 동물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다. 북극곰 암컷은 눈을 파고 누울자리를 마련해서 동면에 들어간다. 그것은 새끼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잠이다. 참으로 많은 생물이 이토록 가혹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매일매일 몸으로 죽음과 대결하면서 살고 있고, 동물만큼 고되고 위태롭고 척박한 삶을 사는 사람도 많은데, 다른 생물들 덕에 편하게, 문명사회에서 풍요를 누리며 사는 인간들이 왜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지 않는 것일까? 치사하고 악랄하고 탐욕스런 인간의 지구에 존재할 자격을 새삼 묻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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