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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이 된 찬송가
꽤 오래 전부터 찬송가를 잘 부르기 위해 연습을 하였다. 찬송가 전 곡 중에서 몇몇 애창곡만 부르다보니 찬송가 전반에 대한 이해와 소화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장례 찬송조차 열심히 배우고, 가르친 이유다. 그러다 보니 찬송가를 찬송가답게 불러야 한다는 소신도 생겨났다. 수요기도회에서 찬송가를 1장부터 마지막 645장까지 부르며 익힌 것이 여러 차례이다.
찬송가를 함께 배우면서 기억에 남은 대로 배경을 소개하고, 관련된 에피소드를 주워섬긴다. 아무래도 생소했던 찬송가가 내게 처음 다가온 그 순간은 오래 인상에 남았다. 그중에서 어린이 주일에 부를 만한 고전 찬송가를 몇 곡 손꼽아 본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570장)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름성경학교 발표회에서 독창으로 불렀던 찬송이다. 그때는 ‘개편’ 찬송가 67장이었다. 난생 처음 홀로 서서 부르니 얼마나 떨렸던지, 찬송가의 소절마다 진땀이 배어있다. 흥미롭게도 고등학교에서 작곡자 장수철 선생의 아들을 만났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음악교사 장우형선생님이다. 나중에 독일에서 유학 중인 장 선생님을 다시 뵌 적이 있는데, 마침 어머니가 한국에서 방문하셨다. 놀랍게도 ‘주는 나를...’의 작곡자와 작사자는 부부 사이였다. 연로하신 최봉춘 선생님과 나란히 뮌스터 대학 호수를 산책하면서 찬송가 탄생 배경을 세세히 들었다. 이런저런 사연이 버무려져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는 최애 찬송이 되었다.
‘다정하신 목자 예수’(567장)는 첫 목회지 문수산성교회 시절 배웠다. 한 거지 아이에게서다.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열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교회로 찾아와 사택 문을 두드렸다. 하룻밤 재워 달라고 했다. 아내의 출산이 임박해 불안하게 하루 이틀 기다리던 처지였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고 전방 가까운 성동리로 속회 드리러 가려던 참이었다. 아이는 내게 사정하며 고아원 원장님의 말씀을 둘러댔다. “우리 원장님이 잠잘 데가 없으면 교회에 가서 부탁드리라고 했다”면서 나를 설득하였다.
아이는 내 앞에서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다정하신 목자 예수 어린 양을 돌보사 캄캄한 밤 지나도록 나를 지켜 주소서.” 처음에는 찬송가인 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이를 집에 들이지 못하였다. 대신 3천 원을 쥐어 주며 강화도로 건너가면 잘 만한 곳이 있을 것이라고 돌려세웠다. 단 한 번 들은 가사임에도 귀 벌레처럼 계속 나를 맴돌고 있다.
꼭 10년 전, 미국에서 열린 평화컨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위스콘신에 들러 한국에서부터 가까이 지내던 동역자들을 만났다. 다섯 명이 어울려 시스터 베이라는 곳에 놀러 갔다. 오며 가며 흥을 돋우며 노래를 불렀다. 그중 세 명은 미국인교회 목회자인데, 그들에게 영어 찬송을 하나 배웠다. ‘Jesus loves me’이다. 듣기로 우리 찬송가 ‘예수 사랑하심을’(563장)은 미국에서 아이들이 맨 처음 배우는 찬송이고, 노인이 죽는 순간 듣기 원하는 찬송이라고 한다.
찬송가의 버전도 다양하여 아이들 버전은 물론, 노인들 버전도 있다. 아이들은 후렴구 “Yes Jesus loves me”를 부를 때에 흥에 겨워 깡총깡총 뛴다. 노인들은 아예 가사를 바꾸어 “주님은 지팡이를 의지하는 등이 꼬부라진 나를 사랑하신다”라며 개사곡을 즐긴다. ‘예수 사랑하심은’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와 ‘저 장미꽃 위의 이슬’과 함께 미국교회 장례식 3대 레파토리라는 말도 하였다. 우리는 장례식에서 구성진 찬송을 부르는데 익숙한반면, 그들은 가장 기쁜 찬송을 부른다.
한 번은 숭실대학교 초청으로 평화통일 대화모임에 참석하였다. 여러 교단에서 두루 참석했는데 내 곁에 앉은 김형석 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독립교단을 대표해 나왔다. 십여 년 전에 북한을 방문했는데, 그때 만난 민화협 관계자가 이렇게 묻더란다. “아직도 교회에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이런 노래를 부르나요?” 그는 어려서 할머니와 교회 다닌 기억이 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평생 그 곡조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찬송가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헤아릴 수없이 많다. 이미 믿음의 고전이 된 찬송가들을 자녀에게 가르치고, 교회학교에서 반복해서 부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찬송가는 세대와 국적을 초월하여 가락이 있는 유전자가 되어 그리스도인의 피에 여전히 흐른다. 어머니들이 즐겨 부르던 그 찬송가들은 가장 위대한 애창곡으로 우리 가슴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