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수양대군보단 쬐~끔(...) 더 명분이 있는 고려조의 계림공이라지만
단종과 수양대군의 애화랑 헌종과 계림공의 애화가 비슷한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전에 어떤분이 주장하신 글을 보고난 이후로 더욱더
계림공의 패악과 수양대군의 패악이 비슷하다는 걸 알았죠..
그런데 오늘 더 찾아봤는데 그분의 말씀이 99%가 맞았으나(다른 역사카페에서 높은 지위에
있으시는 분입니다..그러니까 아무래도..) 딱 한가지 틀린것이 있었으니 바로 숙종의 이복동생 부여후가
숙종 4년 유배를 가서 사사당했다는 겁니다..
물론 부여후의 생몰년은 미상입니다면 예종 7년 즈음에 유배지가 옮겨졌고 그 이후에
유배지에서 병사했다는 것을 보면 숙종이 죽인 것은 아니죠...
단, 역시 죽은 사유가 나오지 않으니 숙종 사후, 예종 초반에 건재하게 남아있던
숙종의 공신들의 농간에 예종이 현혹되어 죽였거나 아니면 예종의 의지일 수도 있고
진짜 병사했을 수도 있고....알 수는 없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공식을 적용하면 당연히 숙종의 공신들(고의화나 최사추 등)의 농간!
오히려 계림공과 함께 세력을 키웠던 다른 왕숙들인... 숙종의 동복동생인 상안공이
을해정난(1095. 이자의의 난이라는 명칭이 사실 맞지 않다고들 하니까 제가 붙인거임..;;) 때
죽었다고 나오고 이복동생인 조선공, 진한후가, 부여후가 유배가고 숙종의 둘째아들 상당후가 급사하고
명의왕후가 공식적으로 왕후로 인정받은 때인 숙종 4년에 둘 다 급사했다고 나오는 것을 보면
오히려 이 세 사람이 숙종에 의해 죽었을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겠습니다..
뭐, 상안공은 이자의 편들다가 죽고 조선공과 진한후는 부여후의 동생들인데 형 편 들다가 형 대신
죽었다고 하면 말이 어느정도 들어맞죠...
도데체 뭐가 숨길게 있는건지 숙종 일파는 이 왕자들의 급사에 대해서도 전혀 어떠한 언급없이
갑자기 졸했다고만 하니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이러니 사학자들한테 의심 사지요..
그리고 어리고 병약하여 왕비가 없다는 고려 헌종에게도 기록은 거의 없지만 왕비가
있었습니다.. 바로 진산부원군 소계령의 딸인 회순왕후 소씨입니다..
비록 왕후와 후궁 합쳐서 부인이 1명이고 자식은 없지만 아무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됬네요... 헌종도 부인이 있었다는거...
(단종도 흔히 부인이 송현수의 딸 정순왕후 송씨 1명만 있다고 생각하던데 사실
권씨과 김씨라는 후궁도 두었으므로 부인이 3명)
그러나 회순왕후와 소계령도 숙종에 의해 죽임을 당해 역사 속에서 지워졌는지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아무튼 더 찾아보았더니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고 숙종이 부여후가 역모를 꾀했음에도 살려주는...
세조에 비하면 많이(?) 자비로운 왕이라는 것도 약간을 알게 되었네요..ㅋ(물론 유배지에서 영영 안풀어줬지만)
그러나 고려 숙종은 세조에 비해서 정당성이 어느 정도 있는 찬탈이고 세조보단 좀 더 바른 치세가 이루
워졌다고는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몸이니 그렇게 깨끗한 임금은 아니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하다못해 가장 정당성 있는 쿠데타의 임금이라는 태종 이방원도 사학자들에게 욕 먹을 건
독하게 먹는 판인데 말이죠^^
첫댓글 충분히 고려 숙종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요. 그러하되 역사를 볼 때는 결과와 과정을 통전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타당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려 숙종과 조선 세조를 동일선상에서만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그렇죠..^^ 결과나 과정, 내막을 보면 고려 숙종이 조선 세조보단 높은 선상에 있는건 사실이죠..
아, 물론 세세히 따져보면 세조가 숙종보다 나은 점도 있구요^^..ㅎㅎ
원래 시대가 다른 두 인물을 평가하는게 워낙 힘든 일이니까 둘중 누가 확실히 100퍼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글쎄요...제가 생각하기론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고 계림공과 수양대군의 쿠테타 명분의 문제겠죠..계림공은 비정상적인 왕위계승를 명분으로 삼았지만..수양대군은 궁극적으로 왕권강화를 명분으로 삼았다는 거죠...세조의 말년은 왕권강화라는 쿠테타의 명분을 찾아볼 수 없으니...더 욕을 먹죠....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