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雪國)의 땅, 남원 바래峰 눈꽃산행.
(전북 남원시 운봉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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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2015년 을미년 양띠의 해이다.
을미(乙未)년에서 “乙”은 을목(乙木)을 뜻한다.
갑오년의(甲午年)의 갑목(甲木)이 대들보를 만드는 큰 나무를 뜻하는 데 비해
을목(乙木)은 연하고 부드럽고 작은 나무를 뜻한다.
즉 화초, 농작물, 유실수를 포함하여 사람들에게 먹을 양식과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초목(草木)을 나타낸다.
“미(未)”는 12간지의 띠로는 양띠를 뜻하며 땅(地)을 의미하기도 한다.
양(羊)은 우리나라 보다는 서양에서 더욱 중요시하는 동물로 온순하며 동서고금에
걸쳐 인류에게 고기와 젖과 털을 제공해 온 고마운 동물이다.
양은 체구가 작고 생김새가 귀여워 어린 양을 보면 안아 주거나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양은 발톱이 있으나 다른 짐승들과 같이 남을 할퀴지 않고
이빨이 있어도 범이나 사자와 같이 물어뜯지 않으며
뿔이 있어도 소와 같이 남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의 날인 미일(未日)은 좋은 날로 보는데 올해는 양(羊)의 해이다.
야생 양은 매우 민감한 동물로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있으며 경사진 곳을 잘
오르내리고 수영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놀라면 민첩하고 빠르게 도망가는데 야생 양은 고원지대에서 주로 발견된다.
경사가 있는 산지(山地)나 울퉁불퉁한 언덕,
바위언덕 등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더운 날씨에는 낮엔 주로 휴식을
취하고 온도가 내려가는 밤에 주로 먹이 활동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이 계절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데 여름에는 넓은 고지대로 올라가고,
겨울에는 좁은 계곡으로 이동한다.
월동방법은 절벽이나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계곡으로 이동하는 것이 특색이다.
소한(小寒)이 가까워지자 강추위가 몰아치고 눈이 많이 내린다.
며칠째 내리던 눈은 오늘도 계속 내리고 날씨는 매몰차게도 춥기만 하다.
기상청 일기예보는 전국이 영하권으로 많은 눈이 내리겠다는 말 뿐이다.
오늘은 남원 바래峰 눈꽃 산행하는 날,
처음으로 내복을 입었으며 오리털점퍼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는 새벽은 적막과 고독을 풍기며 천지는 새하얀 눈으로 단장을 했다.
하늘에서는 하늘하늘 눈꽃이 소리 없이 내리며 내 몸을 어루만진다.
아파트단지 가로등은 보름달 / 밝은 달이 걸려있는 정원수에는 /
하얀 눈꽃이 만발하였네.
길거리 가로등은 샛별이어라 / 반짝이는 별빛으로 가로수에도 /
하얀 눈꽃이 만발 하였다
시간이 멈춰버린 세상 / 정적이 고독을 불러오는데 / 갈 길 잊은 나그네여!
바람도 불지 않는 날 / 눈꽃은 소리 없이 떨어져 /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다
새벽하늘 쳐다보니 / 하얀 눈꽃이 하늘하늘 / 나무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네,
하늘에는 정원이 아주 넓어 / 크고 작은 나무마다 / 저절로 꽃잎이 떨어지나 보다.
인적 없는 이른 새벽 / 눈 내리는 하늘 바라보며 /
나는, 먼 날의 봄을 꿈꾸고 있다. (자작 詩, “설화(雪花)” 전문)
오늘은 33명의 회원들이 바래峰 눈꽃산행에 참여했다.
한 회원이 교통사고로 도로가 정체되어 움직일 수 없다는 전화 때문에 그 회원을
기다리느라 산행버스는 30분 늦게 출발을 했으며,
새로 온 회원이 도로에서 정차를 요구했지만 산행기사가 보지를 못하고 지나치는
바람에 택시를 타고 홈플러스까지 뒤 쫒아 오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눈 오는 날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눈 오는 날 포근함처럼 인정어린 일이 두 건이나 있었다.
남원휴게소에서 이 강순회원이 자비로 마련한 따끈한 깨죽과 집에서 손수 삶은
김이 뭉게뭉게 나는 삶은 돼지머리고기에다 막걸리를 한 잔씩 대접했다.
한 달여 해외여행을 마치고 처음 나온 방랑자부부는 맛있는 감귤 한 상자를 기증해
주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두가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오늘 산행 할 바래봉은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높이 1,167m 산으로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 중
하나이다.
백두대간상의 고리봉(1,304m)에서 북동쪽으로 갈라진 지능선상에서 남원시
운봉읍과 산내면을 경계로 솟아있다.
세석평전과 함께 전국 제일의 철쭉군락지로 유명한 곳으로 산의 모습이 바리때
(스님들의 밥그릇)을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발악(鉢岳),
또는 바래峰이라 부른다.
정상 주변은 나무가 없는 초지(草地)이며 산세가 둥그스름하고 가파르지 않다.
팔랑치, 부운치, 세동치, 세걸산, 정령치로 능선이 연결된다.
정상에 서면 지리산의 노고단, 반야봉, 촛대봉, 맑은 날엔 멀리 지리산 주봉인
천황봉까지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부근에는 실상寺, 화엄寺, 천은寺 등의 고찰과 뱀사골, 백무동계곡 등의 지리산
자락도 즐길 수 있는 곳이란다.
산행버스는 용산마을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30분. 회원들은 스틱을 들고, 발목에 스펫츠를 끼고,
등산화에 아이젠을 걸고 눈길산행을 시작했다.
주차장을 벗어나자 차량들이 다니지 않은 산길도로는 하얀 눈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오늘 산행코스는 용산마을 주차장에서 출발,
“운지암” 임도 만나 는 곳 -바래峰갈림길 -바래峰 -갈림길 -팔랑치 -산덕里마을
-용산마을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코스였다.
봄에 철쭉축제 때 철쭉군락지를 따라 부운치, 팔랑치, 바래峰을 서너 차례 다녀온
추억이 있었다.
이때 산행은 정령치에서 시작해 고리봉, 세동치, 부운치를 거쳐 팔랑치에서
정상에 오르고 국립종축 원으로 하산 했었다.
오늘 눈길산행은 넓게 난 산행 로를 따라 곧장 바래峰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산행객들의 발에 밟혀 굳어있는 하얀 눈길은 걸을 때 마다 아이젠에 밟히는
소리가 사각사각 정겹게 들린다.
올라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도 많았다.
젊은이 두 사람이 평상복으로 구두를 신고 올라가고 있어 미끄럽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운지庵(암)까지만 간다며 웃는다.
“무하”부회장과 “무등산”, “산으로”는 주변 설경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내가 말없이 포즈를 취하자 재빨리 사진기 셔터를 눌러준다.
바래峰 설경은 무아지경에서 바라보는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 그 자체였다.
나뭇가지에 아름답게 핀 하얀 상고대, 침엽수나 사철나무 잎에 핀 설화(雪花),
보이는 것은 하얀 눈과 형형(形形)으로 핀 눈꽃과 나무들뿐이다.
내리는 눈과 눈구름으로 바래峰정상부는 보이지가 않는다.
오르막길은 계속되었고 몸에서는 땀이 난다.
내려오던 산행객이 흐트러진 내 복장을 보고 친절하게 지적을 해준다.
“바래봉정상은 아주 춥습니다. 바람도 새 차서 마스크와 안경을 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듭니다. 목도 감싸줘야 합니다.”
바래峰삼거리를 지나자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다.
“바래峰 200m지점” 이정표가 있는 꺾어지는 길목에 도착하자 정상을 다녀오는
산행1팀 일부회원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내려온다.
얼굴은 굳어있고 추위에 바짝 긴장되어 있었다.
정상의 기온은 영하 10도가 넘는 것 같았다.
세찬바람은 몸을 가누기 힘들었고 바람 끝은 면도날로 살을 긋는 느낌이었다.
잠시도 서 있기가 힘들었다.
서둘러 바래峰 삼거리로 다시 내려오니 산행1팀이 “팔랑치”로 간다며 좌측으로
돌아나가고 나는 몇 회원과 어울려 용산마을 주차장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거나, 혹은 연인들끼리, 아니면 개인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려가는 길은 미끄러워도 아이젠을 해서 괜찮았고 쉽고 힘이 덜 들었다.
오후 1시가 넘었어도 점심을 먹을 장소가 없었다.
눈밭에 쭈그리고 앉아서 간단하게 요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이 온통 눈밭인
이곳은 편하게 밥을 먹도록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운지庵(암)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오후 2시도 넘었다.
암자입구에 도착하니 “산울림”이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라고 알려준다.
암자에서 사용하는 임시창고 같았는데 안에는 “파란하늘”, “태왕비”,가 앉아있다.
“문형님”과 다섯이 때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조금 있으니 산행 1팀인“조 교장”님과 “민들레”총무, “해뜰날”이 우리 말소리를
듣고 하우스 안으로 들어왔다.
알고 보니 바래峰삼거리에서 눈길을 개척해가며 팔랑치로 가려던 계획이 위험하고
길이 막혀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어 중간에 그냥 되돌아오는 바람에 산행시간이
1시간 정도 단축되어 오후 3시에 산행이 끝이 났다.
모두들 때늦은 점심을 먹고, 산행에 지친 회원들은 아침에 남은 돼지머리고기에다
소주와 막걸리를 곁들여 하산 주를 대신했다.
주차장부근에 “눈꽃축제” 현수막이 세워져있었고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눈썰매,
스케이팅, 미끄럼, 그네를 타면서 즐기고 있었다.
이 숲이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겠다. /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
그는 내가 여기 서서 눈이 가득 쌓이는 / 자기 숲을 보고 있음을 보지 못하리라 /
내 작은 말은 이상하게 여기리라 /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 가까이 농가도 없는 곳에 멈추는 것을 /
내 작은 말은 방울을 흔들어 / 무슨 잘못이라도 있느냐고 묻는다. /
그 밖에 들리는 소리라곤 다만 / 솜털 같은 눈송이가 스쳐가는 소리뿐 /
아름답고 어둡고 아늑한 숲속 / 그러나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
(프로스트의 詩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전문)
지난해(2014년) 우리 국민들의 가슴은 시퍼렇게 멍들고 검게 타들어갔다.
각종 사건사고에 눈물은 마를 새가 없었으니 2월 경주 리조트 체육관 붕괴로
새내기 대학생이 희생되고,
4월엔 세월號 침몰로 수학여행 가던 청소년들이 참변을 당했다.
나라를 지키라고 보낸 씩씩한 아들은 멍투성이 주검으로 돌아왔고,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가 된 아들도 있었다.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우리 국민들은 지난 한해 눈물 마를
새가 없었다.
올해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2015년 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