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으로 앞서있는 후반 추간 시간, 우리 팀은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팀의 추격이 거세다. 나는 상대팀 선수의 태클을 당한 뒤 쓰러졌다.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지연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벌떡 일어나야 한다. 이런 빌어먹을, 시즌 개막 전 ‘5분 더’ 캠페인 선언문을 낭독했기 때문이다.” <사진1: 2010 K-리그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울산현대 김호곤(앞줄 왼쪽부터) 감독, 경남FC 김병지, 원창호 심판이 '5분 더' 캠페인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K-리그, “5분 더”를 외치다 이번 시즌부터 프로축구연맹이 ‘5분 더(5Minutes More)’ 캠페인을 시행한다. 프로연맹은 지난 18일 오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2010 K-리그 미디어데이’에서 '5분 더' 캠페인 선언문을 낭독했다. 경기 중 쓸 데 없이 소비되는 5분을 줄이는 대신 팬들과 만나는 5분을 늘리자는 ‘5분 더’ 캠페인은 환영할 만하다. 올해 경기당 평균 실제 경기시간은 지난해 실제 경기시간인 57분 24초보다 3분 늘어난 60분 이상을 목표로 정했다. 또한 평균 파울은 36개에서 30개 이하로 줄이고 관중 역시 평균 10,983명에서 12,500명 정도로 늘린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경기장에 팬 믹스트존(Fan mixed zone)을 설치하는 등 경기 후 팬들이 선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이기로 했단다. 또한 지난해 전체 경기의 30%에 그쳤던 생중계 비율도 50%로 끌어 올린다는 각오다. 의욕 넘치는 프로축구연맹의 자세가 훌륭하지만 나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솔직히 위 목표 중 하나라도 제대로 성공한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나는 프로축구연맹이 발표한 ‘5분 더’ 캠페인 중에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이 꾀병을 부리지 않고 플레잉 타임을 늘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평균 관중이 늘고 당연히 언론에 K-리그가 노출되는 빈도도 많아질 것이다. 심판 판정은 경기 내용을 떠나 주심이 휘슬을 아끼면 될지 모르지만 플레잉 타임을 늘리는 건 단순히 심판이나 선수 몇몇의 의지로 되는 건 아니다. 지키면 뭐 있나? ‘5분 더’ 캠페인 아주 좋다. 취지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이 캠페인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 간다. 단순히 캠페인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는 약속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 선수에게 아픈 척하지 말고 벌떡 그라운드에서 일어나라고 요구하기에는 당근도 없고 채찍도 없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위해 경기 시간을 늘이자’는 말은 가장 숭고하지만 설득력 면에서는 빵점짜리 이유다. 맨 위에 쓴 것 같은 상황에서 당신이 선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솔직히 나 같아도 한번 욕먹을 각오하고 그라운드에서 꾀병을 부릴 것이다. 몇 분만 버티면 우리 팀이 연패 사슬을 끊거나,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거나, 엄청난 승리 수당을 받거나,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지연하지 않을 선수는 없다. 재미있는 축구? 그런 건 위닝 일레븐에서나 따져라. 당장 내 밥줄이 걸린 5분인데 재미 좀 없으면 어떤가. ‘5분 더’ 캠페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이 확실해야 한다. 강제 조항을 두면 좋겠지만 이 팀이 일부러 경기를 지루하게 만드는 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경기가 늘어지는지 판단할 기준이 없다.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5분 더’ 캠페인을 가장 잘 지킨 팀에 혜택을 부여하는 일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선언문 한 번 낭독한 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는 할 수 없다. <사진2: 이번 시즌에는 부디 매끄러운 경기 진행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연합뉴스> ‘스틸러스 웨이’를 참고하자 그런 면에서 ‘5분 더’ 캠페인은 지난 시즌 좋은 반응을 일으킨 포항의 ‘스틸러스 웨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포항은 지난해 3월 플레잉타임 5분 이상 향상, 깨끗한 경기매너 준수, 심판 판정 및 권위 존중 등을 내용으로 하는 스틸러스 웨이 선언문에 서명했다. 여기까지는 ‘5분 더’ 캠페인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이후다. 포항은 코치와 스카우트, 경기지원팀장으로 구성된 평가 위원단이 매 경기 ‘스틸러스 웨이’ 정량·정성 평가를 실시했다. 데드타임(30%) 경기매너(30%) 경기력(40%)으로 점수를 매겼다. 데드타임이 17분 이하로 줄면 60점 만점을 받고 21분대로 늘면 최저 20점이 주어진다. 평균 파울수 17개를 11개로 줄여야 ‘경기 매너’ 항목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다. 단체 평가가 원칙이지만 경기 매너는 개인 평가가 병행된다. 또한 경기 중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으로 항의하거나 고의적인 반칙을 하면 해당 선수의 수당은 줄어든다. 매 경기에서 나오는 평가는 곧바로 선수들의 출전 수당을 지급하는 근거자료로 사용됐다. 승리 수당을 폐지하고 비기거나 진 경기에서도 ‘스틸러스 웨이’ 평가 기준에 맞으면 수당을 줬다. 이 평가서는 선수단 연봉 협상의 근거로도 활용됐다. 또한 당시 파리아스 감독은 성적을 떠나 ‘스틸러스 웨이’ 평가 기준에 부합해 재계약에 성공하기도 했다.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 그런데 프로축구연맹이 이번 시즌 시작한 ‘5분 더’ 캠페인을 지키면 어떤 보상이 있나. 그냥 칭찬 한 번 듣고 끝나는 건가. 나 같으면 칭찬 한 번 안 듣고 그냥 원래 하던 대로 축구하겠다. 성적 지상주의를 비판할 일이 아니다. 아무런 혜택도 없는데 우리 팀만 바보처럼 5분 더 뛸 이유가 없다. 프로축구연맹은 ‘5분 더’ 캠페인을 잘 지킨 구단이나 선수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 눈앞의 승리를 포기하고라도 이 캠페인을 지킨 이들에게 승리만큼이나 값진 걸 해주는 게 어떨까. 평가 위원단을 구성해 매 경기 구단과 선수 개개인의 캠페인 이행 여부를 점수화하고 시즌이 끝나면 금전적인 대가를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또한 다음 시즌 일정을 유지하게 짜 준다던가, 아니면 중계 배정에 혜택을 주는 등의 당근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하다못해 소녀시대 섭외해 놓고 캠페인 가장 잘 지킨 팀 경기에 공연이라도 하게 해줘라. 정말 프로축구연맹이 이 캠페인에 돈을 쓰기 싫거나, 쓸 돈의 여유가 없다면 반대로 벌금이라도 물리자. 한 시즌 동안 가장 ‘5분 더’ 캠페인을 지키지 않은 이들에게 벌금이라도 매기면 그나마 이 캠페인을 지키기 위해 많은 팀들이 노력할 것이다. 또한 팬 믹스트존(Fan mixed zone)에서 사인이나 사진 요청을 거부하는 등 팬들에 성의 없이 대하는 선수들에게도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어떨까. <사진3: ‘5분 더’ 캠페인은 잘 지켜질 수 있을까. ⓒ연합뉴스> 혜택 하나 없는 베스트팀 프로축구연맹은 지난 2007년부터 공격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유도하기 위해 주관적인 평가를 배제한 가산점 제도로 매 라운드 별 K-리그 베스트 팀을 선정해왔다. 승리(+2) 홈경기 승리(+0.5) 역전승(+1) 무승부(+1/0-0 무승부는 가산점 없음) 득점(x1) 경기 시작 15분 이내와 종료 15분 이내(x0.2) 슈팅(x0.1) 및 유효슈팅(x0.1) 기록 등에 가산점을 부여해 선정하게 된다. 반대로 파울(×-0.1/15개 초과부터), 경고(×-0.5), 퇴장(×-1) 등에는 감점을 부여, 페어플레이와 빠른 경기진행을 강조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이 베스트팀에 선정된 구단을 연말 시상식에서 ‘올해의 베스트팀’으로 뽑는다. 어찌 보면 리그 우승만큼이나 의미 있는 상이다. 하지만 한 시즌 동안 가장 박진감 넘치고 공격적인 축구를 한 팀이 받는 혜택은 아주 초라하기 그지없다. 상금 같은 건 없다. 그냥 상패 하나 딸랑 준다. 베스트팀 더럽고 치사해서 안 하고 만다. 가장 이상적인 건 아무런 당근이나 채찍 없이도 이 캠페인이 잘 지켜지는 것이다. 일선 감독들은 정정당당히 경기에 나서도록 선수들에게 지도하고 선수들 역시 경기에 임하기 전에 팬들에게 보다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주기 위한 각오를 다진다. 하지만 돈이 걸려있고 명예가 걸려있는 프로 세계에서 경기를 하다보면 이런 각오가 흔들리는 건 당연하다. 승리와 맞바꿀 정도로 철저하게 이런 조항을 지킬 수 있는 ‘대인배’ 선수는 몇 없다.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벌이자 ‘5분 더’ 캠페인은 선수와 구단, 팬들을 위한 것이다. 물론 잘 지키면 그만큼 팬들의 호응도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팬들의 자발적인 반응이 있기 전까지 선수와 구단 측에서는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자발적인 팬들의 반응이 빠르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몇 경기 해보고 반응이 별로 없으면 선수와 구단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캠페인에 혜택을 주거나 불이익을 주는 등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5분 더’ 캠페인이 선수들에게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것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주문을 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보자. 맹점을 잘 보완해 진심으로 이 캠페인이 K-리그에 훌륭하게 뿌리 내리길 기원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K-리그에서 정말 기막힌 마지막 감동과 반전의 5분을 잃었다. 이제 그 잃어버린 5분을 찾을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