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면체 그 단단한 삼차원의 공간 사이
바람 불어가듯 가벼운 진통 속에
시간의 모든 담벼락 허물어 질때
홀연, 그대가 쓰러지리라
이승의 무거운 구두 하나
냄새나는 양말 한 짝 남기지 않고
떠도는 노래 한 자락으로
남아 애원성의 넋 부르겠지만
그대 돌아오지 못하리라
그대 그렇게 떠난 뒤
나는 太白으로 떠나겠다
거기 묵은 산허리 베고 누워
석탄층 사이에 묻혀 있는
화석들의 숨가쁜 얘기 들으며
그 때 비로서 나는 알리라
그대가 하나의 화석이었음을
아,그대가 그렇게 오래 기다려
부활한 암모나이트나
삼엽충이었음을
홀연 그대 어둔 굴 속을 걸어
다시 시간의 문 열어 제끼는 날
그때 비로서
나 쓰러지리라 오래 숨 끊어져
910821
그렇게 가을이 오고
가을이 오고
뜨거웠던 소리들 가라앉고
발정난 짐승들과
역마살 뻗힌 구름 한 떼
시베리아를 횡단
소나기가 되어 퍼붓고
대지는 식으리라
가을이 오리라
고독한 영혼들 백기 들고
강변에 나가
익사한 물고기를 건지리니
불볕 타던 신촌 네거리 널브러진
오대양의 익사체
죽은 여인들의 자궁 속에 살아 꿈틀대는 꿈
잠들어도 좋으리 이젠,
쉴 곳 없는 의지도
가을이 오리라
이웃들은
결혼하고 취직하고 늙고 병들어
무더기로 넘어지고
새로운 계절을 꿈꾸리니
취하고 싶은 자 취하고
살고 싶은 자 죽고
죽고 싶은 자 살아
아름다운 세상을 자나깨나
가을이 오리라
폭풍이 함께 올지 모르거니와
죽음 없이 삶도 없어
살아본적 없는 목숨은 잠깨지 않아
노여움에 실려 여름이 익어 떨어지고
짧은 연극처럼 여인들의 스커트 하강
기억만 키득거리다
종말처럼 가을이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