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한국 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가족주의’를 꼽습니다. ‘가족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한국 사회는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고 우선시하는 풍토가 매우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족주의에 부조리와 병폐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권위적 가족주의’와 ‘배타적 가족주의’입니다.
권위적 가족주의는 가족 공동체를 구성원 개개인보다 우선시하는 것으로, 개인에게 가족을 우선시하며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의무, 헌신을 높은 강도로 요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개인을 가족을 부양해야 할 수단이나 가족의 명예나 위신을 드높여야 할 도구로 바라보고 대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서 대하기보다는 말이지요.
배타적 가족주의는 자기가족 중심주의가 너무 강해 자기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대표적인 예가 자기 아파트 주위나 같은 단지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의 집값과 주위 환경을 중요시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배척하는 것이지요. 자기와 가족에게 해가 된다면서 말이지요.
이 둘의 공통점은 상대방을 존재 자체로서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가족 안의 사람이든 외부 사람이든 수단이나 도구로 여겨 조건을 걸고, 그 조건을 달성하거나 갖추어야 일원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1세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도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외국인이 야웨 하나님을 믿고 따르려면 유대인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것은 곧 할례도 행하고 음식 규정과 같은 정결 규례를 지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지키라고 주신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요구는 이방인이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에게,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할례와 음식법 같은 율법을 지켜 유대인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건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였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연거푸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3:26, 4:6)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3:29), 그러므로 약속대로 상속자들입니다.(3:29, 4:7)”
이처럼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상속자로 존중합니다. 그들을 존재 자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하나님에게서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도록 하심으로써,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4:6)
이것이 복음이 말하는 진정한 ‘가족주의’입니다. 곧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은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존중하는 것이지요. 나와 같은 그룹에 있는 사람이든, 다른 그룹에 있는 사람이든요. 내부인이든 외부인이든 존엄한 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말하는 가족주의를 위해 기도하며 애쓰는 우리와 평화목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사람들입니다.
2024년 5월 5일 김소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