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문화기획 - 잊혀져가는 우리 사찰음식을 찾아서>는 자연 식물들로 빚어내는 사찰음식을 통해 우리 전통 음식문화의 원형을 되짚어 보고자 마련됐다. 이를 위해 깊은 산골 암자 등을 찾아 아직도 오롯하게 지켜지고 있는 절집의 숨은 맛을 발굴하고, 사찰음식 전문가스님들의 자문을 받아 복원, 소개함으로써 우리 사찰 공양의 전통문화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 기획은 격월로 소개된다. _편집자
맵싸하고 들큰한 절집 반찬
‘무왁자지’를 아시는지. 이름도 정겨운 이 토종반찬은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스님들 밥상에 자주 오르던 겨울철 절집의 대표반찬이었다.
조선무를 생긴 대로 3~4등분 굵직하게 잘라 들기름 듬뿍 두른 가마솥에 그득히 채워 넣고, 다시마 몇 조각 곁들여 왁자지글 볶으면서 고춧물을 발갛게 들인 다음, 조선간장 짭짤하게 푼 양념물을 낙낙하게 둘러 곰을 하듯 두어 시간 은근하게 졸여 먹는 반찬인데, 그 맛이 사뭇 깊고 알싸하니 부드럽다.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수행자의 밥상에 하필 고춧물 발갛게 들인 왁자지만 예외였던 까닭은 고추와 무가 궁합이 잘 맞고, 또 겨울철에 필요한 영양소가 이 둘이 섞였을 때 훨씬 더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담을 삭히고 몸을 따뜻하게 해 주어 고뿔이 예방될 뿐만 아니라, 식구 많은 선방에서는 만들기 편하고 나누기 편해서 좋고, 더하여 무왁자지 한 조각이면 너끈히 밥 한 그릇을 비울 수 있음이니 가난한 절집 살림에 이보다 더 맞춤한 겨울반찬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무왁자지가 세월따라 추세따라 점점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절집 공양주들 사이에서조차 그 이름이 생소한 먹거리가 돼 가고 있다.
전라남도 영암 신북면에 있는 조그마한 절 망월사에서 종종 무왁자지를 얻어먹는다는 한 사진작가의 말을 귀에 담고 무작정 절집을 찾아갔다. 망월사는 남도의 스님들 사이에서 손맛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정관 스님이 20년 넘게 그 손맛으로 동사섭을 실천하고 있는 특별한 절이다.
추억과 함께 익어 가는 정성
오후 늦어서야 겨우 신도들과의 면담이 모두 끝나고, 드디어 정관 스님의 무왁자지 만들기가 시작됐다. 당연히 오늘 저녁 대중공양에 차릴 주반찬으로 만드는 것이다.
저장고의 무 한 소쿠리를 꺼내오고, 고명으로 쓸 홍당무와 표고, 다시마도 깨끗하게 씻고 털어 다듬어 놓는다. 조선간장과 생강, 고춧가루, 들기름까지 익숙하게 챙겨졌다. 법복 소매를 걷어붙인 스님은 이 모든 과정을 즐기듯이, 그러나 진중하게 돌아보고 일일이 단속한다. 그러면서 저 추억 속의 무왁자지까지 꺼내 보여 준다.
옛날 절집에서는 무 농사만 잘 지어도 겨울 공양간 반살림이 해결됐다. 땀 흘려 키운 무들을 후원 양지녘 구덩이에 꼭꼭 묻어 주고, 바람 안 들게 흙과 이엉으로 두 겹 세 겹 동여매어 갈무리하는 울력이 스님들에겐 매우 중요한 월동준비였다.
그렇게 갈무리한 무 구덩이에 행여 바람이라도 들세라, 이엉 자락 조심히 들추어 무를 꺼내오는 일에서부터 무 한 가지로 온갖 찬을 만들어 대중들의 공양을 차리는 것까지 채공의 소임이었고, 그 시절 수행자들은 누구도 그 험한 소임을 비켜갈 수 없었다. 어른 스님의 어른 스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가풍과 손맛은 그러한 수행의 과정에서 절로 익혀지는 소중한 공부였다.
동화사 양진암으로 출가한 정관 스님 역시 사찰음식의 대가들인 성연, 일홍, 두 은사 스님 문하에서 살림 솜씨를 익혔다. 고달픈 울력과 엄한 가르침이 있은 날이면 으레 어른 스님들은 손수 자신만의 특별식을 만들어 후학들을 다독거려 주었고, 그렇게 맛본 음식들은 하나같이 약이 되고 살이 되어 수행자의 정신을 고양시켜 주었다.
그렇게 익혀둔 솜씨 중에 정관 스님이 기억하는 무 요리만도 스무 가지가 넘는다. 무밥, 무국, 무죽, 무전, 무생채, 무나물, 무짠지, 동치미, 깍두기, 나박김치, 무채김치, 무장아찌, 무찜, 무왁자지, 무시루떡에, 무말랭이로 해 먹는 반찬만도 너댓 가지가 더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자주 해 먹은 것이 바로 무왁자지인데, 특히 대중이 많은 선방에서는 이 왁자지 한 토막이 반찬의 전부였던 시절도 많았다며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런 날엔 채공들은 보통 아침 9시 정도부터 왁자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커다란 가마솥으로 두세 솥씩 졸여 내려면 두 시간은 족히 손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들기름 몇 방울과 고춧가루 물색이 그 많은 무 조각에 골고루 스며들게 덖어 주어야 하고, 양념물을 두른 뒤부터는 휘젓지도 말고 솥바닥에서부터 뚜껑 쪽의 무조각까지 고르게 익혀 내야 한다. 그래서 왁자지를 졸일 때는 장작불을 시종일관 은근하게 지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모든 과정이 기다림의 시간이고,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과 번거로운 품을 감내하는 것이 바로 정성이고, 그 정성을 몸에 익히는 것이 공양간 소임자의 첫번째 공부였음을 스님은 기억한다.
정관 스님의 의미심장한 추억담을 듣는 중에 오늘의 무왁자지도 얼추 익었다. 시간도 입맛도 현대인들에 맞춰 조각은 잘게 썰고 간은 슴슴하게 맞췄다. 그런데도 40분은 더 걸렸다. 바로 이렇게 들여야 하는 시간과 손품 때문에 승속 모두 우리 토종음식 만들기를 기피하는 것을 스님은 안타까워 한다.
그런데 어쩌랴. 무왁자지 익어 가는 맵싸하고 달큰한 냄새를 맡고 중생들은 우루루 공양간으로 몰려온다. 바른 음식이 바른 몸을 만든다는 진리는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음이니, 스님 동사섭의 갈길이 또한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