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미국의 대통령은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하며 이란과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에서 유래된 ‘힘을 통한 평화’의 논리로, 상대방을 힘으로 제압해야만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란 역시 세력을 과시하며 맞서고 있고, 이 전쟁으로 수많은 국가와 국민이 직접 또는 간접의 불편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논리와 전혀 다르게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강한 힘을 내세우지 않고, 가장 약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친히 체휼하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강압적인 강함만을 드러내며 우리를 구원하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보다 힘의 논리로 어쩔 수 없는 두려움으로 경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강압적인 힘으로 굴복시키지 않으시고, 자신을 십자가에서 내어주는 사랑으로 함께 하십니다.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사람들은 자신의 강함을 뽐내고 싶은 과시욕이 있습니다. 자신의 약함이 수치라는 생각에, 자신의 힘을 드러냄으로 낮아진 자존감을 보상받으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힘과 능력을 자랑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권능을 십자가 위에서 기꺼이 내려놓으셨습니다. 세상의 능력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랑을 택하신 이유입니다.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약하심’ ajsqevneia (769 아스데네이아 NGFS ajsqeneiva")
연약. 질병. 나약함.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께 세 가지 시험을 하였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정체를 만천하에 알리라”, “천하만국을 소유하여 자신이 최고임을 과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화려함과 권세 대신, 이 모든 것을 말씀으로 물리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가졌느냐’에 초점을 맞추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존재의 정체성에 집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이 소유한 힘과 권능을 조금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약함은 결코 수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시작되는 복된 시점입니다. 이를 위해 세상의 화려함을 쫓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사람은 타인의 칭찬과 인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인정욕구와, 자신의 우월성을 자랑하고 싶은 과시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욕망을 뒤로하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는 힘이 없어 당하신 나약함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자 하신 이유 때문입니다.
고후 13:4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능력’ duvnami" (1411 뒤나미스 NGFS dunavmew") 힘. 권능. 권세
* duvnamai (1410 뒤나마이) 할 수 있다. 능히 하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하는 ‘할 수 있다’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한 자가 됨’을 말하기보다,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권능으로 하늘의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가전제품이 콘센트에 연결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하듯, 우리도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할 때 ‘능히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약하나, 하나님의 권세로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평안과 화평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이루게 됩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믿음은 삶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며 사람의 동정과 인정을 구하는 것은 또 하나의 교만입니다. 참된 겸손은 내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능히 할 수 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이 삶의 진정한 승리이자 행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기 고집과 생각에 매여 사는 것은 세상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음과 같습니다. 사람은 본래 연약하기에 사탄의 유혹에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여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크신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날마다 새롭게 하십니다.
고전 13:4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살리라’ zavw (2198 자오 VIFDXP zhvsomen) 살다. 살리다. 살아나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함이 아닙니다. 누가, 어떻게, 어떤 상태로 살게 될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조종하여 억지로 움직이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능력만 툭 던져주시고 ‘너희 알아서 하라’ 말하며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할 때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고, 나의 기쁨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지치고 피곤한 일상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새로운 힘과 은혜로 살게 하십니다. 우리는 약함으로 쓰러지고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능력으로 함께하십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에게 다가와 치료를 베푸셨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으로 함께하시어 새로운 인생이 되게 하십니다.
히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사랑과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 우리를 구원하여 날마다 새롭게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새로운 능력과 힘을 공급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그분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