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4.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삼상 22:1~2
*제목; 다윗처럼 살기(20) 살리는 사람과 죽이는 사람
프롤로그. 당신은 청춘인가? 노인인가?
멕아더 장군이 날마다 암송하던 시가 하나 있다. 바로 ‘새무엘 울만’이 지은 “청춘”이라는 시이다. 읽다가 너무 감동스러워서 여기에 소개하겠다.
-청춘- 새뮤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한 때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렬이다. 청춘은 인생이라는 깊은 샘의 신선함이다.
청춘이란 안일한 삶 너머의 모험을 향해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가 지배함을 말한다. 때로는 스무 살의 젊음보다 예순의 나이가 더 청춘일 때가 있다. 어느 누구도 나이 때문에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과 꿈의 단절이 우리를 늙게 만든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이 없다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 근심, 공포, 자기불신은 마음을 굴복시키고 정신을 티끌 만하게 퇴보시킨다.
예순이든 열여섯 살이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누구나 경이로움의 유혹과 어린아이처럼 변함없는 미지에 대한 욕구, 인생을 살아가는 기쁨이 있다. 그리고 너와 나의 가슴속엔 보이지 앉는 우편함 하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응원, 용기와 힘의 메시지를 받는 한 당신은 청춘으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안테나를 끊어 영혼에 냉소적인 눈들이 쌓이고 비관을 일삼는 얼음에 갇힌다면 스무 살의 젊음일지라도 당신은 늙고야 만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기쁨과 희망의 물결을 잡고 있는 한 당신은 여든의 청춘으로 남을 희망이 있다.
-YOUTH- Samuel Ullman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s; it is the freshness of the deep springs of life.
Youth means a temperamental predominance of courage over timidity of the appetite, for adventure over the love of ease. This often exists in a man of sixty more than a body of twenty. Nobody grows old merely by a number of years. We grow old by deserting our ideals.
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 Worry, fear, self-distrust bows the heart and turns the spirit back to dust.
Whether sixty or sixteen, there is in every human being's heart the lure of wonder, the unfailing child-like appetite of what's next, and the joy of the game of living. In the center of your heart and my heart there is a wireless station; so long as it receives messages of beauty, hope, cheer, courage and power from men and from the Infinite, so long are you young.
When the aerials are down, and your spirit is covered with snows of cynicism and the ice of pessimism, then you are grown old, even at twenty, but as long as your aerials are up, to catch the waves of optimism, there is hope you may die young at eighty.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이다. 마음속에 어리석은 마음의 품겨져 있으면 노인이고, 열정, 꿈, 아름다움이 품겨져 있으면 청춘이라는 것이다.
여든이라도 청춘이 있고, 스물이라도 노인이 있다. 아멘이다. 이제 청춘으로 살자!
당신은 청춘인가? 노인인가?
1. 살리는 사람, 다윗
사울에게 도망 다니는 다윗, 불쌍하고 억울한 신세... 그러나 놀랍게도 그를 좇아온 사람들이 400명이나 된다.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 22:1~2)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도망자 다윗을 좇은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먼저 그들의 성분을 알아보자.
첫째는 가족들이다.그의 형제와 아버지가 그를 찾아와서 함께했다. 그들이 누구인가? 다윗이 기름부음 받을 때, 그를 가장 무시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다윗을 가장 먼저 인정한다.
좋은 사람, 진짜로 좋은 사람들은 가족들로부터 먼저 인정을 받는다. 가족들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즉, 가족들이 그의 속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둘째는 환란 당한 자, 빚진 자(수탈 당한 자), 원통한 자들이다.이들은 민중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즉, 그만큼 민심은 가장 정확하게 보고 하늘의 마음을 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시선과 관점을 통한 자기평가에서는 “I”가 있고, “Me”가 있다. “I”는 내가 바라보는 “나”이고, “Me”는 타인이 바라보는 “나”이다. 무엇이 더 정확하게 나를 표현하는 것인가? 바로 “Me”이다. 이를 “메타적 시선”이라고 부른다.
주변으로부터 당신은, 특별히 어려워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평가를 받는가? 그것이 바로 가장 정확한 자신이다.
결국 다윗은 속으로부터 된 사람이고, 하늘로부터 인정받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을 살린다. 그리고 나라를 살린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정답은 이미 배웠다. 늘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면 된다. 그러면 지혜와 믿음, 평안과 삶의 은혜가 함께 한다.
2. 죽이는 사람 도엑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으면 죽이는 사람이 있다. 오늘 에돔 사람 도엑이다.
“9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삼상 22:9~10)
그를 고발을 통해, 85명의 제사장이 죽임을 당하였다.(18절) 더욱이 이스라엘 군인들이 제사장의 피를 흘리기를 싫어하자 스스로 제사장들을 죽이는 참혹한 짓을 자행하였다.
왜 이런 만행을 한 것인가?
성경에는 도엑에 대한 두 가지 정보가 있는데 여기서 유추를 해보자.
첫째, 도엑은 에돔사람이었다.(삼상 21:7)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이다. 이스라엘과 형제지간이지만 늘 이스라엘과 긴장관계에 있는 족속이었다. 그런 도엑이 이스라엘에서 취업해서 산다. 한 마디로 외국인 노동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성공의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
그러나 잘못된 방법을 택한다. 주의 제사장을 고발함으로 인정받아 출세하려 했던 것이다. 이는 한치 앞을 모르고 현재만 바라보고 사는 결과이다. 잠시만 생각해보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금방 구별할 수 있다.
‘3초’만 생각해보라. 이 일이 해야 할 일인지 말아야 할 일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은 해라. 이것을 바꾸니 인생이 꼬이고 결국 힘들어지는 것이다.
둘째, 도엑이라는 이름의 의미에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의 이름의 의미는 ‘걱정’이었다. 상황이 그렇다고 다 도엑처럼 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 이름처럼 염려와 걱정 속에서 살았기에 해야 할 일을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던 것이다.
제발 걱정하지 마라.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 차라리 기도하라.
해야 할 일을 하고 살면,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가족이 인정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살리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걱정으로 인해 어리석은 삶의 방향을 택하면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죽이는 사람이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죽이는 사람이 될 것인가? 살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
첫댓글 이 설교는 사무엘상 22장을 바탕으로 사람을 살리는 자와 죽이는 자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설교자는 다윗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회복시키는 살리는 사람의 표본으로 제시하며, 성도들에게 나이와 상관없이 열정적인 마음을 가진 청년으로 살 것을 권면합니다. 반면, 탐욕에 사로잡혀 제사장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도액을 죽이는 사람의 사례로 언급하며 경계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특히 이름의 뜻처럼 걱정과 염려에 매몰되는 것이 영적으로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믿음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통해 내면의 평안을 회복하고, 타인에게 생명을 전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