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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제직 헌신 주일 우리 제직들이 함께 부른 찬양 “당신의 그 섬김이” 아름다운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주향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의 그 섬김이.... 당신의 그 순종이... 그 겸손이..... 그 사랑이...그 믿음이..... 그 찬송이.... 그 충성이.... 당신의 그 헌신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반드시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지난 주일 교회에서 식사 중에 김민자 권사님 41년 교사 퇴직을 마치면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제가 목포 동부교회에서 20년 주향교회에서 21년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교회를 섬기고 헌신했던 일들이 사람들은 기억속에 희미하게 잊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반드시 해같이 빛날 것입니다.
아프리카『카르』라는 지방에 은혜를 보답하는 좋은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아 고마움을 느끼면, 그날 밤 그 집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조용히 머리 숙여 밤새 앉아 있습니다. 비가 오더라도 은혜 입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꼬박 비를 맞으며 은혜 베푼 사람의 고마움을 가슴에 새긴다고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매를 맞거나 쫓겨난다는 그런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매일 매일 살아있는 그 자체가 은혜이기에 은혜 입은 자로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은 받은 은혜가 너무 커 항상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시편 116:12...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에 다윗 같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도 은혜 입은 한 여인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누구의 은혜를 입었습니까? 예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여인이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냥 한 여인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요12:마리아로 나옵니다. 성경학자들은 일곱 귀신이 들려 고침 받은 막달라 마리아라고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됐든 이 여인은 주님은혜를 입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께 보여드린 헌신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여인은 자기 집에서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베다니동네에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병환자였던 시몬도 예수님을 만나고 어떻게 하면 은혜를 도답할까 하여 예수님을 모신 것입니다. 이 여인도 그렇습니다. 시몬 집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여인이 찾아온 것입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에 무엇으로 예수님을 보답할까? 그런 마음이지요
성도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를 안 입은 사람이 없습니다..... 자연을 볼 때 하나님의 솜씨를 느끼고 계십니까?..... 그냥 보고 좋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손가락 하나 하나로 피조물을 만드시는 신앙고백으로 보고 느끼며 세상을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누구에게나 만물을 다 주셨고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은혜를 모른 체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주님은혜를 입은 여인을 보십시오 주님을 향한 헌신이 너무 감동적입니다.
먼저 3절...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은혜 입은 여인이 예수님을 뵙고자 시몬의 집에 갈 때 그냥 간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예수님께 보답할까? 그런 마음으로 옥합 안에 값진 향유를 담아 가지고 왔습니다. 나드 향유는 히말라야 고원초지에서 자란 향기로운 풀인데 나드로 기름을 짜는데 이것을 황유라고 합니다.
여인이 가지고 온 향유가 어느 정도 값이 나갈까요? 예수님과 함께 동행 했던 한 사람이 계산했는데 300데나리온 이상 값이 나간 기름이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금액이기에 노동자가 일년 내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액수입니다........ 그만큼 귀하고 값진 것을 여인이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받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돈 같은 것 계산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비교하면 비교조차 되지 않기에 계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값비싼 향유를 여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옥합용기 안에 담아진 향유를 깨트려 예수님 지금 식사 중에 있는데 예수님 머리에 몽땅 부은 것입니다. 이런 실례가 어디 있습니까? 당시 이스라엘 풍습에는 손님이 오면 먼저 발 씻을 물을 주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는 것이 풍습이 있었습니다. 여인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문제는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 머리에 쏟아 붓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여인을 향해 향유를 허비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4b)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여인이 그냥 옥합의 뚜껑을 열고 부어도 될 것을 왜 굳이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부었을까요? 여인이 취했던 헌신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첫 번째....옥합의 뚜껑을 열고 향유를 조금 부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손님이 오면 먼저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고 방안으로 모신 다음에 향유를 몇 방울 떨어뜨려서 머리에 발라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그렇게 해 드렸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옥합을 열어 향유를 몽땅 부어 드리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커 조금 부어드리는 것으로는 부족해 몽땅 부어 주님으로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님께 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이 여인이 향유를 몽땅 쏟아 붓는 것으로도 모자라 옥합을 깨뜨리는 것은 한마디로 완전히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여인이 예수님 머리에 향유를 붓기 위해 구지 옥합을 깨뜨려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향유만 부어드리고 옥합은 나중에 재활용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옥합을 깨뜨리므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어요
여기에 깊은 영적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옥합을 깨트리는 헌신은 향유만 아니라 옥합까지 드리겠다는 것입니다........오직 예수님을 위해서만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직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헌신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와 나의 것을 깨트려야 합니다.....그런 것들을 깨트렸다면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영역 울타리를 치고 내 시간 내 물질과 내 지식과 내 즐거움을 깨트리지 못하였기에 주님께 온전히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본문을 가지고 “전적으로 헌신” 하라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배가 마친 후 어떤 여성도가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굳이 전적인 헌신을 해야 합니까? 8,90%만 헌신해도 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성도님! 당신의 남편이 당신에게 80-90%만 헌신하고 나머지 20-10%는 다른 남자에게 헌신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자 부인은 아무소리도 못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제직여러분! 아내나 남편이 여러분에게 80-90%만 헌신하고 나머지는 다른 이성에게 헌신해도 괜찮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깨트려야합니다. 주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깨트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위해 100%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인의 헌신을 보신 우리 예수님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우리가 주님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드렸는데 우리의 모습이 주님의 뜻과 상관없는 것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 주님이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
여인이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모두 부어드린 것을 예수님은 보시고 좋은 일했다고 인정해 주신 겁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메시야입니다. 메시야의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기름 부음을 받았을까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며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는 음성이 들리며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 삼년동안 제사장이나 왕이나 어느 누구도 예수님에게 실제로 기름을 부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감히 예수님 머리에 향유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님이 마리아의 행위를 인정하셨습니다. 왜요? 놀랍게도 기름부음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인의 행위가 너무나 아름답기에 예수님은 여인을 향하여 네게 좋은 일을 했다며 칭찬하시고 여인의 행한 일이 복음이 전파되는 어디에서든지 기억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주님께 부어 드려야 할 귀중한 것을 온전히 주님께 부어 드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헌신해야 할 대상은 우리의 왕이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예배가 그렇습니다. 순서 하나 하나 인도자나 청중이나 마치 향유를 예수님께 붓는 심정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다음 7절....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 여인의 행동을 보시고 헌신도 때를 있음을 지적 하셨습니다. 여기서 대조가 되는 것은 ‘항상 함께 있는 것’과 ‘항상 함께 있지는 않는 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주변에 늘 있지만 예수님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암시하십니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예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여인의 헌신이 가치 있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헌신이란 언제 하겠다고 계약서 쓰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그렇습니다. 헌신하는 것도 지금이요 은혜 받는 것도 지금이요 봉사 하는 것도 지금입니다.
예수님은..... “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기에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도울 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요 세상에 있을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여인은 지금 때의 타이밍을 맞춰 우리 주님께 헌신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내일 일을 예측 할 수 없기에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것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9절.....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그를 기억하리라”........ 세상일들은 언젠가는 시간 속에 다 묻혀 버립니다. 우리의 선행도 악행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여인이 깨트린 옥합이 기억되는 까닭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억해주셨기 때문입니다.......주님 십자가에 고난당하고 죽으실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예수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여인이 예수께 부어드린 향유는 시몬의 집을 온통 향기로 채워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향기는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헌신은 오고 오는 믿음의 세대에 계속 소개 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제직헌신예배를 통해 여인의 헌신을 배우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직여러분 그리고 주향성도여러분!!........ 구원 받은 값진 은혜는 어떤 금 은 보화를 준다하여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받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헌신 하는 것입니다. 2023년에도 주님이 베풀어주신 그 은혜 무엇으로 보답 할까? 그런 심정으로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여인처럼 은밀하게 묵묵히 옥합을 깨트린 심정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시는 제직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