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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설교본문 : 디모데전서 3:14~4:16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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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 교회의 기둥과 터
1. 진리를 세우는 교회의 기둥과 터인 집사들
1)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진리의 일꾼인 집사들(딤전 3:14~15)
14.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너에게 가기를 바라면서도
이렇게 네게 편지를 써 보내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만일 내가 늦어지더라도)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 지를 알게 하려는 것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바울은 집사들이 바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이고,
집사들이 바로 진리의 기둥과 터를 이루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과 공동체를 뜻합니다.
그런데 집사들이 그 교회의 핵심 역할을 하는 자들이고,
그들을 통해서 진리이신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이 세상에 확산되고 전파되니
이들이 바로 교회이며, 이들이 진리의 기둥이고 터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전파되어 교회가 자라고 성장해가는 터와 기둥이
바로 집사들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최전선에 있는 집사들
그러나 단순히 집사를 세우기만 한다고 해서
그들이 저절로 교회에서 진리의 기둥과 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사를 세우기만 하고 더 이상 그들의 영적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기는커녕,
도리어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탄의 일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집사들을 통해 진리의 말씀이 세상에 전해지도록
훈련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또 집사들 스스로도 자신이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자부심을 갖고,
그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말씀 훈련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 묵상 :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간에 교회의 직분을 가진 여러분,
여러분이 바로 예수님의 진리 말씀을 전파하는
교회의 기둥이요 터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항상 그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말씀 묵상과 기도, 말씀 훈련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일을 게을리하면 진리의 기둥과 터가 아니라,
교회를 마귀의 기둥과 터가 되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2. 놀라운 경건의 비밀(16절)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예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이 그를 믿었으며,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느니라.
바울은 집사들이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말을 한 후에
이어서 경건의 비밀인 예수님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1) 육신으로 나타나시고(성육신)
예수님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그 이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함께하셨고,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때에도 함께하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사람이 되셔야만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실 수 있으므로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2) 성령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믿어야만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그 부활의 몸을 제자들에게 보이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하지 못한 후대의 사람들 역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해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고,
또 주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천사들과 함께 하심을 보이셔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이셨습니다.
3) 세상 모든 나라들 가운데 전파되었으며, 세상이 그를 믿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 세상 모든 나라들 가운데 전파 되었고,
그 말씀을 들은 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4) 영광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신 분
이렇게 우리를 구원할 복음의 기초를 다 마련하신 후
예수님은 500여 명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가셨습니다.
승천하여 올라가신 것은 그분이 본래 계셨던 자리인
하나님의 자리로 복귀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조만간 주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3. 교회는 평신도와 목회자를 따로 구분할 때부터 타락했다.
1) 본래는 평신도와 목회자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디모데전서 3:1~13에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이 있습니다.
감독(오늘날의 목사)은 오늘날에는
신학교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은 후에 안수하여 임명하지만,
당시에는 교인 중에서 택하여 임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제 본 감독의 자격이나 오늘 본 집사의 자격이
그들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교인들 전체가 다 지켜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초대교회는 목회자와 평신도와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2) ‘평신도’가 따로 구분되면서부터 교회는 타락했습니다.
그런데 점차 교회가 복잡해지고, 이단을 대처해야 하는 일도 어려워지니
목사를 위한 특별한 교육이 필요해졌고,
이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목회자와 평신도와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목사를 위한 특별 교육을 시킨 것인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목사를 위한 특별한 교육을 하여
목회자와 평신도간에 구별이 생기기 시작한 때부터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신도라는 말 때문에 자기들은 보통으로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영적 훈련을 게을리하게 된 것입니다.
3) 모두 다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교회와 사회가 복잡해져서 부득이하게 구분한 것일 뿐
성경에는 그렇게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목사와 평신도를 따로 구분하여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목사가 하지 않아야 한다면 평신도도 하지 말아야 하고,
목사가 해야 한다면 평신도도 해야 합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나는 평신도이니 천천히 해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이런 생각을 넣어 준 자는 악한 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자는 누구든지 주께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간에 우리가 모두 바로 진리의 기둥이여 터이기 때문입니다.
제 2 부 :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1. 범사의 유익한 경건의 연습
1) 육체의 연습도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딤전 4:8)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육신의 연습도 약간의 유익은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일에 분주한 일들, 공부, 운동, 취미활동 들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믿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약간의 유익이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만 필요할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디모데전서 3:14~4:5 큐티의 묵상포인트 5번에서 언급한 여러 수행의 길들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에는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위장된 거짓 경건들도 약간의 유익은 있습니다.
그것들을 육체를 위한 연습으로만 한다면 그리 나쁠 것은 없습니다.
➠ 그런데 그런 일로 거룩에 이른다고 하니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가령, 산에 오르는 것은 분명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일로 거룩한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점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가를 통해 마음에 평정을 얻는 데 도움을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가의 자세를 통해 신에게 가까이 간다고 하니 문제가 됩니다
● 묵상 : 내 마음의 자리를 오염시키는 것들을 조심하십시오.
마음이 굳건하면 외부에서 어떤 위험이나 핍박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연약하고 오염되어 있으면 아주 작은 시련에도 넘어집니다.
마귀가 이런 거짓 거룩, 가짜 경건을 통해
우리 마음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수행의 방식을 통해서는 결단코 거룩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예수님뿐임을 기억하십시오.
2)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 우선권의 문제(8절)
(8절 성경구절 위에)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미래에 그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고,
또 엄마가 용돈을 올려주니 당장에도 유익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주려 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복을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면,
장차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으니 본인의 미래에 좋은 일이고,
또 좋은 것을 구한 그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의 복도 주시니 지금 당장에도 좋은 일입니다.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겠다고 땅의 일만 찾으면
땅의 일도 잃고 영생도 잃어버리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 경건한 자가 되기에 힘쓴다면
내생의 복도 얻고 이 땅에서의 복도 얻습니다.
이것은 우선권의 문제입니다.
먼저 무엇을 구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3) 그러므로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15절)
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가(네가 발전하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경건을 이르기 위해 전심전력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일을 위해 수고하고 힘쓰되
피곤하여 지칠 정도로 힘쓰라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경주에 참여할 때
한 걸음도 더 나길 힘이 없을 정도로 온 힘을 다 쓰는 것처럼,
그렇게 내가 참된 경건에 이르기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기의 일에는 이렇게 전심전력합니다.
고3 학생들이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도 이만큼 힘들게 도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도 이렇게 열심히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내 마음에 죄의 때가 끼고,
그러면 숨어 있던 욕망이 다시 나를 사로잡게 됩니다.
그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 만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 묵상 :
말씀을 읽고 느끼는 갈등이나 마음의 아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아픔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또, 주께서 하루를 모두 다 주님을 위해 사용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물질도 십분의 일만 바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의 시간 중에서 그저 조금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할애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경건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그 짧은 시간을 통해서
주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힘을 주십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
1)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근심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근심(고린도후서 7:8~10)
8. 그러므로 내가 그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혹독한 편지를 보낸 후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잠시나마 근심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후회하기는 했으나,
곧 그 일로 기뻐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편지를 받고 회개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할 마음을 일으켜 구원에 이르는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은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일에 대한 근심(10절)
(10절 성경구절 위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근심을 말하고,
세상 근심은 세상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근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근심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을 불러일으켜서 회개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은 세상일에 집착하게 하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 묵상 :
하나님의 말씀에 더 순종하지 못하는 일 때문에 하는 근심은
나의 영을 살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니 구원에 이르게 하고,
세상일에 대한 근심은 믿음을 떠나게 하니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일에 대한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세상일이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공연히 염려하여 믿음 없다는 소리만 듣습니다.
염려를 주께 맡기고 우리는 주님을 섬기기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3. 회개에 이르는 과정(11절)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론하게 하며, 얼마나 분노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바울은 근심이 회개에 이르는 과정을 일곱 개의 단어로 설명합니다.
1)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 회복에 대한 열망
자신이 범죄 한 것을 깨달은 후 첫 번째 갖게 되는 근심은
타락하고 부패하여 온통 망가져 버린 자신의 영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에 대한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제일 먼저 자신의 영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2) 얼마나 변론하게 하며 : 간절한 죄의 고백
그 다음에는 자기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고백하게 됩니다.
이미 저질러진 죄를 돌이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로 하나님을 속상하게 해드렸으니
그 죄에 대하여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고백하는 것입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자신의 영에 대한 슬픔의 탄식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가 해야 할 첫 관문입니다.
3) 얼마나 분노하게 하며 : 자신을 향한 분개
죄를 고백하는 중에도 언뜻언뜻 자신이 왜 그런 죄를 저질렀을까를 생각하며
범죄한 자신에 대하여 분개하고 분노합니다.
자신을 향한 이런 분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애통한 마음을 갖게 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고백하게 합니다.
4) 얼마나 두렵게 하며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잃을까봐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 일로 하나님의 백성에서 내가 제외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갖습니다.
5)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그 두려움이 클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원하는 그 사모함도 큽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도 될 수 없고,
그러면 영원히 멸망을 받는 자가 되고 말기에
그 두려움이 클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부어 주실 것을
구하고 또 구하는 것입니다.
6)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죄에 대한 분개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하나님을 향한 열심도 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분개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시편 51편의 다윗과 같은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7)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면
죄를 저지른 자기 자신을 얼마나 벌하고 또 벌하는 자가 됩니다.
“아, 내가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
● 묵상 :
➀ 후회할 것이 없게 하는 회개
위의 7가지는 순서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서로 혼합되어 일어납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분개하였다가, 자기를 스스로 벌하였다가,
애통하며 간절히 고백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간절히 구하기도 하며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회개는 주께로부터 그 죄를 모두 용서받고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게 합니다.
그 죄에 대한 형벌이 있을 때 후회가 있는데,
주께서 죄를 용서하셨으므로 그 죄에 대한 심판이 없으니
후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의 7개의 과정을 통해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했을 때의 일입니다.
적당히 회개를 흉내만 내고 후회도 하지 않는 것은,
자칫 죄를 짓고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뻔뻔한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➁ 거룩함에 이르는 두 길 : 버리는 일과 채우는 일
거룩함에 이르는 두 길은
죄로 오염된 더러운 것을 버리는 일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채우는 이 두 가지 일로 이루어집니다.
더러운 것은 회개의 기도를 통해 버리고,
거룩한 것은 주님의 신령한 말씀을 채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이 두 가지 일은
우리가 항상 밥을 먹고 숨 쉬는 것처럼 항상 해야 할 일입니다.
결 론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1) 우리를 강력히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확신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서양의 사랑의 이야기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춘향전이 있습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죽음으로도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누가 시킨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 누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고 해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상대를 향한 간절함과 열정이
훈련에 의해서 억지로 생긴 것이 아니라
그냥 생겨서 끝없이 상대를 향하여 마음이 계속 나아가는 것,
이것이 사랑이고 또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 믿음이 바로 예수님을 향한 이런 사랑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이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들을 사랑합니까?
바울이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 후에
혹시 그 편지를 받고 마음 상하지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는 바울의 사랑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전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이런 반응에
바울 자신도 충격을 받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끝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것을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하는 말로 설명합니다.
그들이 믿음을 잃어가는 모습을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하게 역사하여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이 일어나게 하시니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의 정신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은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신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3) 지금 잠시 당하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춘향이가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고생을 하면서도
변학도의 수청들기를 끝내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도령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 그 유혹도 이기게 하고 그 고난도 극복하게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날마다 사형선고를 받은 자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극심한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자신의 고통을 “지금 잠시 당하는 환난의 경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그가 당하는 고통을 ‘환난의 경한 것’이라고 표현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그 엄청난 고통이 잠시 당하는 환난의 가벼운 것이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이 크고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평생 고난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영원이라는 시간이 비하면 아주 작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환난의 경한 것’과 ‘영광의 중한 것’이라고 말하여
환난은 가벼운 것이라고 했고, 영광은 무거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당한 환난보다 우리가 장차 받게 되는 영광이
훨씬 더 크고 놀라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믿기에 그 극심한 고통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 묵상 : 성령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부모와 스승의 사랑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자녀가 말썽을 부려 속이 상해도
절대로 자녀를 떠날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을 바울이 가졌습니다.
그 사랑의 마음을 주께서 그에게 주셨습니다.
이 사랑이 그의 마음을 강하게 역사하여
자신을 향하여 욕하는 못된 사람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려 애쓰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성령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구하고 또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
위장된 거짓 경건에 속지 않도록
바른 분별력을 갖게 하옵소서.
착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깨닫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나는 평신도이니
천천히 믿어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에
힘쓰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신 직분에
충성된 종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과 기도에 전심전력하여
참된 경건에 이르게 하옵소서.
성령 안에서 건강한 신앙의 인격을
가진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