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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경영림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고의 금강송 군락지
500년을 살아온 할아버지송에서 풍기는 세월의 무게
전망대에 서면 금강송숲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임도에서 다시 계곡으로 들면 지름 120cm 금강송이 기다려
♣산행요약<울진 금강송 숲길> '나무 공자' 벗삼아 걷다보니… 어느새 원시의 세계 '나들목'
모든 길은 소통의 방편이다. 마을과 마을이, 사람과 사람이 길을 통해 소통한다. 문화와 역사가 길을 따라 흐르고, 명태와 참깨가 길을 따라 바꿔지고, ‘있니껴’와 ‘맞시더’가 길을 따라 혼인한다. 이처럼 길은 문명이 소통한 흔적이다. 세상의 길들이 소통을 명분으로 문명과 맞닿아 있지만 울진군 서면 소광리 금강송 숲길은 문명이 소통하는 길이 아니다. 금강송 숲길은 차라리 자연과 잇닿아 있어 원시에로 회귀하는 길이다. 세상을 잇는 문명의 길들이 인간과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 원시를 잇는 금강송 숲길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금강송 숲은 유유자적 걷는 길 울진 소광리 금강송 숲 순례길은 봉화~울진을 잇는 36번 국도, 광천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야 옳다. 금강송 숲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원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나들목으로서 각별하다. 자수정이 박힌 기암괴석을 타고 내리는 물은 맑아서 시리고, 산기슭과 나무와 숲들은 어느 각도에서 앵글을 맞춰도 진경이다. 길가 군데군데 우뚝한 소나무들은 하나 같이 명품이다. 사람들은 이런 소나무를 두고 ‘나무의 공자’라고 한다. 소나무 ‘송’(松)자를 파자(破字)했을 때 ‘나무’(木)와 ‘공자’(公)라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을 지나는 사람에게는 소나무가 왜 나무의 공자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하다. 광천교에서 시멘트 길과 비포장 길을 차로 50여분 달리면 막다른 산길에 당도한다. 한눈에도 물길이 시작되는 곳임을 직감할 수 있다. 금강송 숲길은 산기슭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임도는 산굽이를 따라 완만하고 넓게 닦여 있으며 시멘트와 마사토 바닥이 번갈아 이어진다. 숲길은 산을 타넘는 산꾼들의 길이 될 수 없고, 유유자적 산책하는 사람들에게나 맞춤한 길이다. 금강송 숲길을 들어서면 사람들은 자연 고개를 치켜든다. 그리고는 탄성을 내지른다. 하늘높이 곧게 뻗었다가 그 끝쯤에서 줄기와 잎을 퍼트린 소나무들. 나무들은 밑둥치 절반쯤에서부터는 붉은 빛을 띠는데 이들의 높이는 대략 20~25m 정도이다. 이 걸출한 목재들은 예로부터 궁궐을 짓는데 쓰이거나 왕실 장례 때 관을 짜는 목재로 쓰였다는 말에 쉬이 수긍 간다. 숲길 양 옆에는 비슷비슷한 굵기의 나무들이 고르게 줄지어 서있다. 숲에는 잡목들이 드물고 키 작은 어린 나무도 드물다. 금강송은 줄잡아 300년에서 500년 가량 된 것 뿐인데 그것들은 새끼 나무를 키우지 못한다. 낙락장송 숲은 서로 저들끼리만 의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울진 금강송은 솔씨가 떨어져 싹을 틔워도 뿌리를 박지 못한다고 한다. 숲이 지나치게 우거져 햇빛을 받지 못하는 탓이다. 때문에 금강송 숲은 세대(世代)별 층간을 이루지 못한다. 잡목을 베어내 민둥산처럼 정리된 산에는 이제 막 인공으로 싹을 틔운 나무들이 심어지기 시작했다. 후계목을 기르는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150년 정도가 지나면 그런대로 울창한 숲을 이루리란 기대를 갖고 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난 150년 뒤, 이 나무들은 겨우 아름드리가 될 터이다.
◆할아버지 소나무, 못난이 소나무도 만나 숲길을 5분쯤 걸으면 520살을 먹었다는 ‘할아버지 소나무’를 만난다. 조선 성종 때 싹을 틔웠다는 최고(最古)의 이 금강송은 팔뚝 근육을 자랑하는 보디빌더 마냥 우람하다. 대략 어른 아름으로 두 아름쯤 되는 할아버지 소나무는 밑동이나 둥치 중간이나 굵기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그만큼 금강송은 더디게 자라고 치밀하게 몸피를 불린다. 최고 금강송에서 몇 발짝 더 옮기면 일명 ‘못난이 소나무’를 만난다. 대부분 금강송들이 한 줄기로 곧게 뻗어 올라가는데 비해 ‘못난이’는 원줄기에 비슷한 굵기의 곁가지를 달고 있다. 그것도 두 가지가 꼬이듯 엉켜 있어 목재로는 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많은 금강송을 베어냈다고 마을에 사는 노인이 증언했는데, ‘못난이’는 그 때도 못난 덕에 참화를 피했나 보다. 과연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있다. 다시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힌 채 낙락장송을 감상하며 넓은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계곡 쪽 길가의 안내판을 볼 수 있다. 금강송과 참나무가 한 둥치로 이어진 공생목이란다. 곧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금강송과, 강하기라면 뒤질 수 없는 참나무, 두 나무가 어깨를 맞대고 버팅기다가 결국 한 몸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이 나무는 공생목이라기보다 연리목이라고 해야 옳다. 강한 것은 강한 것끼리 저렇게 타협하는 법도 있다. 길가 나무는 길을 걷는 사람에게 그렇게 몸소 보여주고 있다. 숲길 반환점쯤에 다다르면 금강송 진면목을 보여주는 ‘미인송’을 만날 수 있다. 하늘을 향해 찌르 듯 솟은 기상이며, 대패로 깎아낸 듯 곧은 줄기며, 팔을 벌린 듯 늘어진 가지는 하늘의 기운을 땅으로 거두어 내리는 ‘신목’(神木) 바로 그것이다. 미인송에 다가가 가만히 보듬으면 푸른 하늘의 신령스런 기운이 붉은 기둥을 타고 내려와 ‘찌르르’ 몸속으로 감전되는 듯 하다. 이즈음에서 하잘 것 없는 인간은, 결코 비굴하지 않은 나무의 생애에 대하여 마땅히 존경을 표해야 할 것 같다.
◆깊이 숨 들이 쉬면 무딘 세포도 아우성 되돌아 내려오는 숲길은 오솔길로 이어진다. 숲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좁은 길은 금강송 노란 잎들이 두툼하게 깔려있어 밟히는 촉감이 부드럽다. 도도록한 산등성이 빼곡히 들어찬 금강송 숲 속에서 길게 심호흡 하면 무딘 살갗의 세포들도 모조리 들떠서 아우성지른다. 이 신선한 공기로 인하여 자연의 향기가 어떤 것인지 이제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솔향기 가득한 오솔길 양 옆 사면으로 빼곡한 금강송들이 열병식을 한다. 숲은 고요하여 산새소리만 들리고 이따금 깃털 같은 솔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내리막길이 아쉬워 느릿느릿 걷는데 일순 이질적인 광경이 나타난다. 숲 속에는 불타다 반쪽 남은 검은 금강송 둥치가 서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1950년대 산불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이라 한다. 마음 한 구석, 남 일 같잖게 우려스러웠던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아름드리로 키우려 해도 200년은 족히 걸릴 판인데 그 긴긴 세월 지각없는 인간들의 ‘불’은 어떻게 막을까 걱정스러웠는데…. 불 탄 금강송은 인간의 만행을 군더더기 없이 설명해주고 있다. 이런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숲은 여름철 동안(7~10월) 습기가 많을 때만 전면 개방한다. 오솔길을 따라 숲의 끄트머리를 내려서는 찰나, 소나무가 우리에게 베푼 것들이 적지 않음을 실감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솔가지로 금줄 치고, 아이는 자라면서 솔방울을 가지고 놀았고, 허기질 땐 소나무 속피로 양식을 삼았으며, 죽어서는 소나무 관에 담겨 묻혔다. 소나무는 이렇듯 우리 민족과 가까이 ‘관계’ 해왔다. 이런 소나무가 어찌 존귀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소나무 외의 것들을 잡목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오늘에야 이해하겠다. 이제부터 소나무는 ‘나무의 공자’로 부르기보다 필연, ‘나무의 신’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인간이 낸 숲길을 걷는 1시간 남짓, 그 길에서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 알았다. 또 인간은 원시와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울진 금강송 숲길이 그것을 가르쳐줬다. 글·사진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길 위에서 배우는 것들
→금강송 특징은 금강송은 나무둥치가 수직으로 곧게 자라며 둥치의 아랫부분 껍질은 육각의 거북이 등 모양으로 터지고 중·상단부는 얇고 붉은 색을 띤다. 속은 노랗고 일반 소나무에 비해 나이테가 3배 촘촘하여 목재의 뒤틀림이 적고 단단하여 잘 썩지 않는다. 또 다른 소나무에 비해 수피 부분이 얇고 목질부분이 두터운 특징을 갖고 있다. 목질 중간에 박히는 옹이가 적어 판재로 켜면 나뭇결이 고르고 매끈하다.
→금강송이란 이름은 울진 금강송은 조선시대에는 속이 누르다고 해서 황장목(黃腸木), 껍질이 붉다고 해서 적송(赤松)이라 했고, 목질이 강하다고 해서 금강송, 이를 줄여서 강송(剛松)으로 불렸다. 한때는 금강송이 봉화군 춘양면의 기차역을 통해 전국에 실려 나감으로써 춘양목으로 불리기도 했다.
→‘황장봉계표석’ 울진군 서면 소광리 찻길 옆에 있으며 경상북도에서는 처음 발견된 표석. ‘황장봉계표석’은 조선 숙종 때 바위에 새긴 표석으로 황장목 보호를 위한 ‘봉계(封界)지역’ 네 지점을 기록하고 ‘명길(命吉)’이란 산지기로 하여금 관리하도록 한다고 적고 있다. 조선 성종 때는 소나무 벌채를 규제하여 이를 어기면 곤장 100대의 중형으로 다스린 바 있다.
→삼림욕은 삼림욕은 숲 속 맑은 공기와 음이온과 식물이 병원균, 해충, 곰팡이 따위에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피톤치드를 마시거나 피부에 접촉함으로써 심신에 활력을 주는 천연건강요법. 식물의 잎에서 나오는 방향물질인 피톤치드에는 테르펜, 칸텐, 탄닌 등이 들어있어 이를 흡입하면 장기와 심폐기능이 강화되고 살균작용을 하며,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금강소나무 숲은 삼림욕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