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서울 소라광장에서 광우병대책회의가 주최한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를 비롯하여 서울 각지에서 또 전국 각지에서 여러 단체의 주최와 시민들이 참여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고 한다. 각 언론에 의하면 서울에서 3만여명이 참여했고, 부산에서는 1000여명, 대전에서는 300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고등학생들의 중간고사가 끝나는 시점이라 학생들의 대거 참여를 우려한 교육 당국은 서울을 비롯 전국 각지의 학생들에게 '참여자제 문자'를 전송하였고, 서울에서만 900여명을 비롯한 교사들을 학생지도 명목으로 현장에 배치했다고 한다.
지방의 소도시, 강릉에서도 열린 촛불문화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그 문화제가 대규모라는 자체만으로 각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5월 17일에 인구 20만의 소도시인 강원도 강릉에서도 50여 명이 참여한 작은 규모였지만 의미있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촛불문화제 참가 시민들이 밝히는 빛나는 촛불들 ⓒ타리페>
강릉에서의 촛불문화제는 시내 중심에 위치한 한 은행 건물 앞에서 열렸다. 보통의 촛불문화제가 오후 7시부터 시작하는 반면, 강릉에서의 촛불문화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아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30분 늦은 7시 30분경부터 정식으로 시작됐다.
촛불문화제의 시작과 그 면면들
사회자가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문화제'의 시작을 알리고, 시작 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켜놓았던 촛불은 잠시 꺼뜨렸다. 그리고 맨 앞에 네 살 가량 된 남자 아이의 초에 가장 먼저 불이 켜졌다.
<촛불을 가장 먼저 밝힌 어린이의 모습 ⓒ타리페> ※ 사진 속 인물들에게 불상사가 생길까 염려하여 사진을 살짝 흐리게 처리 하였음.
그리고 남자 아이는 그 촛불을 옆에 있는 엄마에게 초와 조금 더 큰 어린이 초에 전해주었다. 남녀노소할 것 없는 그런 순수하고 진정성을 지닌 마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기원하면서 불은 금세 그곳의 모든 사람들의 초를 밝혔다.
<어린이의 촛불을 시작으로 불이 서로에게 전달되고 있는 모습 ⓒ타리페>
잠시 후,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현수막을 집에 걸어놓았다는(강릉에서는 처음이었을) 한 부부가 처음 순서로 발언하였다. 현수막을 들고나온 부부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부당성을 알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했다. 부부의 발언 가운데 사람들 중 한 명이 질문했다. "그 현수막은 얼마에요?" 그러자 남편이 대답했다. "만원이요. 디자인은 인터넷에 있구요. (누구네집이라는)이름만 바꾸시면 될 것 같아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첫 번째 발언, 두 번째 발언, 세 번째 발언 그리고 청중들 ⓒ타리페>
이어서 한 현직 교사가 발언을 하게 되었다. 꽤 긴 시간 발언하는 동안, 미국산 쇠고기의 해악과 그에 따른 학교와 학생들의 피해를 걱정했다. 그 선생님은 발언을 하는 동안, 문화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물론 주말이라 시내에 나온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마이크에 대고 크게 더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이어서 사회자는 학생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한 번씩 듣고자 했지만 실패하였고, 수소문 끝에 또 한 명의 현직 교사가 나와서 발언하게 되었다. 그 교사는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를 허용하게 된 이번 협상의 문제점과 원산지 표시 미비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을 든 시민들 ⓒ타리페>
그렇게 자유발언 시간이 끝나고, 얼마간 촛불을 들고 있는 시간을 가지다 문화제가 시작된지 한 시간여가 지난 8시 30분경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문화제'는 끝이 났다.
사회자와 잠깐의 대화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사회자와 잠깐 대화를 가졌다.
타리페 : "안녕하세요. 저는 다음에서 블로깅하는 사람입니다." 총 회원 가족들 그리고 전교조 선생님들과 그 가족들 몇이 여기서 모이기로 했는데, 시민 분들이 같이 참여해주신거죠." 회의)' 같은 것이 강릉에는 없나요?" 참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그냥 지나가다 보셨나요? 아니면..." 서 한다고도 했지만, 또 다른 곳에서도(안티이명박카페가 주최하는) 촛불문화제를 하기로 되어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그렇게 잠깐의 대화를 나눴다. 이후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는 또 다른 곳에도 가봤는데, 10명 안팎의 인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촛불문화제의 밖, 지나가는 시민들과 멀리서 지켜보는 교사들
강릉에서의 촛불문화제는 시내 중심가의 사거리에 있는 한 은행 앞에서 진행되었다. 은행의 모양이 귀퉁이에 정문이 있게 되어있어, 그 은행 정문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꺾이는 길을 따라 ㄱ자 형태로 모였고, (그래서 사진에는 인원의 절반 정도만 나왔다) 사회자는 길이 꺾이는 모퉁이에서 사회를 보았다.
이렇게 한 시간여의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인도에는 촛불을 든 사람들외에 여러 사람들이 나타났고 또 사라졌다. 황금같은 주말시간에 약속이 바빠서인지 눈길조차 주지않고 지나가는 대학생들, 그리고 아직 교복을 입은 채 옹기종기 모여다니는 고등학생들,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아주머니들, 계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인도 위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50여명의 앞에 나타나고 또 사라졌다.
그런데 여느 사람들이 촛불문화제에 별로 개의치 않듯 지나가는 것과는 달리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곳의 길 건너 곳곳에는 촛불문화제를 유심히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바로 곳곳에 배치된 중고등학교 교사들이었다.
<촛불문화제를 지켜보는 주변의 교사들 중 두 명 ⓒ타리페> ※ 왼편에 길을 건너는 시민들과 오른편 문화제 참가 시민들 사이에 보이는 뒷짐을 진 채로 문화제를 지켜보는 두 사람은 학생지도를 이유로 배치된 교사로 파악되었다.
촛불문화제 취재 이전에 문화제 장소 주변을 둘러보고 파악한 바로는 10여명의 교사들이 촛불문화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강릉의 촛불문화제에서는 중고교 학생은 별로 없었다. 하교 전에 학생들에게 별도의 주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문화제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교사들의 모습이 문화제에 나와 발언한 교사들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이 작은 촛불문화제의 소중함과 그 속에서 찾는 희망
이 지역은 나름대로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학생들의 참가에 대해 살펴보자면, 서울에서는 엄포로 인한 학생들의 참여가 대거 늘었다고 하지만 여기의 사정은 서울과 달랐다. 우선 학제가 비평준화로써 진학의 근간이 되는 내신을 비롯한 성적은 당연히 교사가 평가, 관리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쉽사리 문화제에 참가하지 못하였다. 5월 17일 이전에 있었던 강릉 지역의 비슷한 규모의 촛불문화제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의 참여가 꽤 활발했었던 것으로 비춰보아 교육 당국의 엄포가 먹혀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강원도 지역은 한나라당이 야당인 시절에는 이른바 야도(野道)로, 그 전신이 여당인 시절에는 여도(與道)로 불릴만큼 우파 성향이 큰 지역이다. 일례로 이번 총선의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 후보가 35.37%를 득표했고 '시민이 원한다면 한나라당에 들어가겠다'고 공언한 무소속 후보가 48.39%를 득표했다. 우파 성향 후보의 득표가 83.76%나 되는 것이다. 게다가 시장도 한나라당에서 나왔고, 시의원은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한나라당 당원이다.
이러한 지역에서 열린 이 작은 촛불문화제는 큰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이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자면 연령대로는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있었고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성비는 비슷했다. 이는 이 첨예한 정치 이슈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서울과 대도시를 벗어난 지방에서도 적극적으로 변모되어 가고 또한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인물과 지역색에 상관없는 정치 이슈에 대한 토론의 장을 열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실제, 이 곳을 제외하고도 우파 일변도인 지역에서 속속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의 촛불들이 일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인물 지지와 지역색에 상관없이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변화는 천천히,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가온다.
이제 시작이다. 5월 2일, 서울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문화제에 수 만명이 모였고, 이후 몇 차례 수 만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밝혔을 때였다. 촛불을 들고 또 지지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5월 초의 기세와는 달리 목적이 쉬이 달성되지 않자 '반응이 빨리 오지 않는다'며 '좀 더 세게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화는 인터넷이나 또는 게임과 같이 그렇게 클릭 한 번 누르는 것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열망은 이제야 전국 각지로 그리고 전 세대층으로 확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4.19혁명은 3월 15일 모두가 다 아는 부정선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달 동안 반복적이고 대대적인 시위를 통해 '부패한 독재정부 퇴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민주화를 이룩한 6.10혁명은 길게는 정통성이 결여된 전두환이 그 임기를 다 채울 동안, 짧게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있었던 87년 1월로부터 5개월 동안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같이 행동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변화를 원한다면, 바른 뜻을 세우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몸소 행동해라. 그렇게 한다면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바람직한 변화는 천천히,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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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후회하지 않도록 원문보기 글쓴이: 타리페
첫댓글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 참가자 블로그에서 기사를 퍼왔습니다 직접 이렇게 글을 써 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