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자연을 품은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가계리 가계마을, 이장의 주도로 노인들이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고 있다. 6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김만호씨는 불리는 이름이 많다. 그중 가장 큰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 소리. 경로당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문예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평균 나이 80대 초반의 만학도들 사이에는 김만호 이장의 어머니, 박옥영 어르신도 있다. 올해로 87세인 어머니는 어릴 때 6.25가 일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관둬야 했다. 하지만 아들이자 선생님인 김만호 이장의 지도 아래 늦깎이 시인이 됐다. 2018년부터 산청군의 지원을 받아 문예 수업이 열리던 가계마을에도 어김없이 위기는 닥쳤다.
코로나로 인해 경로당 폐쇄 조치가 내려지고, 집합 제한으로 수업을 운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고심 끝 김만호 이장은 돌파구를 마련했다. 직접 학습지를 제작해 문예 교실 수강생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교재들을 참고해 수강생들의 실력에 맞게 예문과 문제를 만들어 전달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어른들은 학습지를 통해 '숙제'라는 명목으로나마 외부와 소통하고 배움의 끈을 놓지 않게 됐다.
어른들이 혼자서 숙제를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면 수업을 진행할 때보다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같은 동네에서 마주치거나 이장 일로 방문할 일이 있으면 '숙제 꼭 하세요'라고 독촉 겸 독려를 한다. 이장이라서 물품 배부 등의 일이 있을 때 집에 방문해 상태를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로소 배움의 기쁨을 알게 된 어른들은 집에서 시도 쓰고 책도 읽기 시작했다. 글을 직접 쓰기 어려운 어른들도 생활의 질이 대폭 개선됐다. 문예 교실에서 배운 한글로 은행에 가서 ATM기를 사용하거나 혼자서도 간단한 용무 해결은 가능한 정도이다.
김 이장은 "코로나로 마을이 위축된 건 사실이지만 문예 교실이나 평생교육처럼 노인들의 참여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하면 노인층의 코로나 블루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마을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사각사각 기분 좋은 글 쓰는 소리와 글 읽는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