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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금정선원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일본 다도는 고려시대에 고려인에 의해 만들어져 고려에서 행해지던 것이 조선조에 일본으로 귀화한 조선인 의해 전해진 것
조성래 추천 0 조회 147 16.07.26 23:4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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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6.07.28 11:01

    첫댓글 위의 메일은 저의 오랜 친구, 미국인 다도 연구가 댄율이 저에게 보내온 것인데, 주 내용은 위 글의 제목과 같습니다. 일본다도는 리큐 거사에 의해 <남방록>과 <리큐전서>가 저술되면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리큐 거사는 경남 고성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한 천(千)씨 성을 가진 조선인이었고, 그는 조선에서 행해지던 차례법을 <남방록>에 그림으로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 작성자 16.07.28 13:07

    한국의 천(千)씨 성은 모두 영양 천씨이고, 그들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명나라에서 파병한 군인인 천만리(千萬里)의 후손들이다. 천만리는 명의 국운이 다 됐음을 알고 명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주저 앉은 것이 영양 천씨. 그 이전엔 한국에 천(千)씨 성은 없었으며, 고성에는 최만리의 장남이 살았다고 한다. 고성 출신의 내 친구 천종석의 말인데, 뭔가 년대가 약간 맞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천종석이가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거나, 아니면 일본에서 센 리큐의 생애에 대한 연대를 조작했을 수도 있다. 왜냐면 리큐를 일본에서 태어난 확실한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작이 필요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작성자 16.07.28 12:15

    아니면 임란 이전부터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군인이었는지도 모른다.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 작성자 16.07.28 11:25

    확인 결과, 영양천씨 9세조 천만리(千萬里)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중국 명나라 황제의 명으로 조병영양사(調兵領糧使) 겸 총독장(總督將)으로 두 아들 천상(千祥), 천희(千禧)와 조선에 건너와 평양(平壤), 곽산(郭山), 동래(東萊)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고,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마귀(麻貴) 제독을 따라 중사마(中司馬)로서 울산(蔚山) 등지에서 왜군을 섬멸했고, 전란이 평정된 후 두 아들과 조선에 귀화하여 한국 천씨의 중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 작성자 16.07.28 12:50

    영양 천씨에서 작성한 공식 문서인 위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일본에서 리큐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의 일부를 조작했음이 분명해진다. 확인해야 할 사항은 리큐의 생몰 연대와 일본에 센 리큐 이전에 천(千)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다. 만약 리큐 이전에 천씨 성을 가지 사람이 없었다면, 일본에서 조작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센노 리큐(千利休, 1522년 ~ 1591년 4월 21일)는 일본에서 일본다도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 의하면 천씨 성을 가진 명나라 군인이 조선에 들어 오기 1년 전에 센노 리큐는 할복자살해 죽었는 것이 된다. 그런데 센노 리큐의 후손들은 그들은 1603년

  • 작성자 16.07.28 12:33

    경남 고성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센노 리큐의 조선 이름은 천종역(千宗易)이었다고 한다. 천씨 족보에서 한 번 찾아 봐야겠다. 이 일본 다도사를 소재로 소설을 쓰면 멋진 거리가 될 것 같다.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그런 소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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