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만사 제폐하고 서울을 간다. 저녁 7시 30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되는 천주교 ‘전국사제시국기도회―거리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다. 태안에서 서울까지 가서 미사에 참례하는 일은 사실 버겁다. 당일 오후와 다음날 오전, 좀 과장하자면 이틀을 소모하는 셈이다.
지난해 11월 29일부터 계속 참례하다 보니 거지반 관성이 붙은 듯싶다. 일종의 사명감과 의무감으로 승화된 상태다. 일단은 슬프다. 매번 무거운 슬픔을 안고 서울을 간다. 슬픔과 원통함 때문에 서울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처참하게 파괴되고 망가지는 우리의 4대강을 생각하면 너무도 원통하고 기가 막히고 막막하기만 하다. 편히 앉아서 글이나 쓰고, 밥 먹고 잠자고 하는 그 모든 일들이 죄스럽기까지 하다.
4대강을 죽이고 없애는 물신의 광란, 갖가지 천박하고 치졸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야만적인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다만 무력한 소시민의 일개 분자일 뿐이다. 그런 내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국회 앞 거리미사는 그야말로 ‘구원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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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현진 기자 | 일단은 슬픔과 원통함을 달래기 위해 서울을 가서 국회 앞 거리미사에 참례한다. 슬픔과 원통함 가운데서도 뜨겁게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내게 있음을 확인하곤 한다. 내가 뭔가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도 내게는 위안이 된다. 전국사제시국기도회에 참례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오늘 하느님의 이름으로 뜻 있는 일을 하고 있음을 확신하곤 한다.
거리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다. 만일 미사가 아닌 보통의 집회라면 내가 그렇게 기를 쓰고 매주 서울을 가지는 못할 것이다. 단순한 집회가 아닌 미사이기에, 다시 말해 ‘교회공동체’를 이루어 하느님께 기도하는 자리,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일이기에 나 또한 그렇게 지속적으로 거리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것이리라.
거리 미사를 열리는 새로운 교회공동체
한국천주교회는 근래 들어 특이한 형태의 ‘교회공동체’들을 만들었다. 교회당 밖의 교회, 건물을 갖지 않은 성당이다. 그 교회는 지난 2009년 내내 서울 용산구 남일동의 한 골목 안에서 유지되었다. 그 교회에서는 거의 매일 전국의 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참례한 가운데 미사가 봉헌되었다.
각 교구와 수도회를 초월하여, 또는 망라하여 한데 묶는 참으로 특이한 교회공동체였다. 그런 교회공동체는 2010년 여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다시 세워졌다. 처음에는 매일 미사가 봉헌되었으나 11월 29일부터는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미사가 거행된다.
비록 교회당 건물은 없을망정, 거리미사가 거행되는 국회 앞의 그 현장은 엄연한 교회의 실체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한 모습이다. 세상 속의 교회, 하느님의 교회임이 너무도 분명하다.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 그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신자들이 함께 모여 하느님께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한다는 사실! 그것은 참으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것 자체로 하느님이 관계되고, 또 관계하시는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사실을 교회의 장상들은 바로보아야 한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예식이다. 하느님과 지상의 하느님 백성들이 함께하고 일치를 이루는 기적의 잔치이다. 그런 미사가 매번 수십 명(때로는 100명도 넘는) 사제들에 의해 거행되는 사실을 교회 장상들부터 외면하거나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여의도 거리미사 공동체에 추기경은 없다
거리미사가 거행되는 곳은 서울 여의도다. 서울대교구에 속한 곳이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식 추기경은 당연히 국회 앞 거리미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서울대교구장과 추기경이라는 직위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비록 자신의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수십 명의 사제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미사가 매주 지속된다면, 거기에 임하여 계시는 하느님을 뵈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최고 사목자다운 모습이다.
별 고민 없이 쉽게 말씀을 하시기보다는 추위 속에서 시린 손으로 거리미사를 지내는 사제들과도 만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세속의 통치자와 똑같이 불통의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소통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4대강 파괴사업과 관련해서도 정말 고민 없이 무책임한 말씀을 하시기 전에, 연세에 비해 몸 건강은 좋으신 편이니, 이미 오래 전에 초청을 받아놓고 있는 ‘두물머리’에도 한 번 걸음을 해보시고, 4대강 공사현장들을 직접 둘러보시면서 조물주의 창조질서가 어떻게 무시되고 훼손되고 있는지도 두 눈으로 확인해 보셔야 한다. 다른 주교님들과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만큼은 아니어도 4대강 사업의 전모를 파악해보려는 진심 어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천박하고 치졸한 일들은 모두 4대강 사업과 관련되어 있다. 4대강사업은 대통령 이명박이 자기최면에 걸려 있음을 천문학적 비용으로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 4대강 사업은 오늘의 대통령 이명박을 ‘역사의 죄인’으로 만들 것임이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나는 한 시절의 대통령 이명박뿐만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의 정진석 추기경도 하느님과 국민 앞에, 또 민족 앞에 큰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한다. 슬프고도 안타깝다. 정진석 추기경이 훗날의 오명을 모면하는 길은 왜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교회당 없는 교회공동체가 성립하는지, 그 길거리 교회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메시지가 어떻게 발현하고 작용하는지, 그것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고민과 성찰을 하는 일뿐이다.
유난히도 추운 올 겨울, 오늘도 겨울 저녁의 강추위 속에서 거리미사를 지내는 사제들의 ‘뜨거운’ 가슴과 그 거리미사에서 ‘구원의 빛’을 느끼고 뜨겁게 갈구하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하는 수많은 신자들의 심정을 정진석 추기경께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헤아리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지요하 / 막시모, 소설가, 대전교구 태안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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