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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마음의 길목☆]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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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길목]
이돈주 시집 / 좋은땅(2012.11.15)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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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길목
이돈주
삶은 꿈일까.
아니, 꿈이 삶일까.
구름과 풍우 그리고 눈서리
흘러가고 몰아쳐 내려도
하늘은 저리
있는 그대로 파랗고 높은데
온 몸짓으로
안간힘 다 세워 흔들어 댄
분망한 길 걸음이었나.
동행한 환력이
먼 한 바퀴 훌쩍 돌아드는 이즈음
마음의 길목
꽃바람 둘레
이돈주
산수유, 진달래, 살구꽃, 목련뿐이랴.
분란한 사월 철 맞춰 만발한 봄꽃
길을 나서면 눈이 호사롭다.
산천에 어우러진 메꽃 들꽃 봄 얼굴
철 돌이에 몰려온 바람 따라
연둣빛 풀리는 땅은 기지개 켜는 때
호드기 소시 아련히 들릴 것 같은
동심의 개울 길, 한 소년의 봄나들이
이제 없는 옛길은 넓고 반듯하다.
둥치 큰 몇 그루 버들만 물오르는
해밝은 오후를 걸어보는 한나절
산하에 퍼지는 눈부셔 새로운 봄빛
신록
이돈주
풀 나무가
이슬비 맞아
큰 푸름으로 번지네.
삶 따라 제 일을
붐비게 펼쳐 놓으니
신록은 꿈 좇아
제 각각 퍼져 오르네.
끼치밥
이돈주
좀 늦게 남는 게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가을을 흘려버린 채
의연히 나무꼭대기 남아
이웃이 다 떨어지는 걸
지켜보면서
참고 견딘답니다.
늦은 계절의 끝머리
차갑게 무표정한 얼굴로
기다립니다.
빨갛게 익어 얼어 버린
날 찾아올 새
톡 쪼아 씨로 떨어뜨릴
까치나 새를
올 때까지 기다려 봅니다.
엄마의 잔 소리
이돈주
비 안 올 때도
꼭 우비나 우산을 준지해
젖지 않도록 해라.
너 가는 길에
흙탕물 튀어 젖거나
비 맞아 초라해선 안 되고
남에게 신세를 져서도 안 돼.
또박또박
조심스레 바른길로
올바르게 앞을 보며 가거라.
겨울모퉁이
이돈주
험난한 세상 살다보면
겪지 말아야 할 일도 많지만
겪고서 절망하는 일도 흔하다.
누가 행복을 꿈꾸지 않으리.
편안하게 단란한 생활
은애하며 사는 오붓함을 원하지만
상처를 덧내며 또 찌르는 가시는
절망의 늪이 되어
아픈 체념과 실의로 주저앉힌다.
해도 해도 안 되고 나만 쓰러진다고
넘어지지 말자.
크게 심호흡하며 자신을 쓰다듬으면
새롭게 보이고 잡히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다.
희망의 끈을
다시 불끈 쥐어 잡자.
올 것 같지 않은 겨울이어서
춥고 떨리는 지금 언 몸이라 해도
참고 견뎌
새롭게 마음을 추스르면
꽝꽝 언 얼음장 밑에서부터
해밝은 봄은 더디지만 분명히 온다.
사람 한평생
이돈주
산을 넘으면 물
물을 건너면 산, 고개
살아가는 게 뭔지
힘든 일 하나 지우면
버겁고 겨운 일 또 닥치니
사람 한 평생
주저앉다 걷다가
숨차게 뛰다 지치는 되풀이
산을 넘으면 또 물
물을 건너면 또 산 고개
스마트 폰
이돈주
웬만한 사람은
다 가졌다.
궁금하다면
뭐든지 찾아봐.
톡톡 치면 금방
환하게 알 수 있지.
하지만 손에 펴들면
남을 새까맣게 잊어 모르는
집중 몰입의 끌림
아, 세상은 모두
내 손 안에 있네요.
건들장마
이돈주
오다 개이고
개다가 오고
끊임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 지루한 비
가을로 가는
청산 도처에
내리고 쏟아져
흩어 뿌리듯
마를 날 없는
비, 초가을 장맛비
단풍
이돈주
가을 늦가을 산
둘레 없이 예쁘게
꽃단장에 고운 옷 입었네
하늘빛 착 가라앉는데
성숙을 매만져 다짐한 얼굴
울긋불긋한 다색
골짜기 마루 천지만홍으로
햇살 이울어 설핏한
된내기 몇 차례 내린
가을 늦가을 산
체경
이돈주
누구냐, 너는
허름한 옷 위에 몰골로
이 아침 서두르는 너는 누구냐.
못난 허우대에
머리털 성근
찌들어 주름진 얼굴
늘어진 어깨
그러면서도
눈 훑어 옷깃 바로잡고
출발 채비
또 가려니, 빨리 가려니.
잠시 선 너는 누구냐.
이리 굽혀 살펴
쳐다보는 누구냐. 너는
무인도
이돈주
외따로 선 채
온 힘으로 부르다 지치는
솔바람 목 쉰 숨소리
힘겨움조차
버거운 바위 너머
바다안개로 슬려 가지만
늘 참을 수 없이
밀려오는 너울 파도가
너무 싫어서
앵돌아진 채
말없는 표정으로
그냥 오도카니 있습니다.
몽당연필
이돈주
한가운데에
늘 흑심을 지녀 삽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고맙게 쥐어졌을 때
나는 본심을 다해
닳아지는 자신을 잊고
필생을 다해
욕심껏 일에 열중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연약하거나 보통,
아니면 진하게 잘 쓰이게
깎여져 길이 짧아진
흑심을 속에 늘 품고 삽니다.
시골 이야기
이돈주
오래된 느티나무 옆집
넓은 텃밭 한 구석
모이 쪼는 닭 여덟 마리
장닭 두 마리에 암탉 여섯
주인 말로는 닭들이
온통 채마밭 다 헤집어 놔
성가시고 속상해서
울 밖 어리 있는 근처에
수탉 두 마리를 한 다리씩
따로따로 묶어 놓으니
암탉들이 멀리 가지 않고
한사코 그 둘레에서만
알 낳고 뱅뱅 돌고 있다네.
동박새
이돈주
섬에 살아도 기뻐요
해조음만 들릴지라도
사람들 없어도 괜찮아요
아늑한 둥지 정들어 사니
한적해서 좋아요.
동백꽃 사랑하는 텃새로
동백꿀 콕 찍어 맛보며
묻혀 살아도 정겨운
겨울 검 노나들이 동박새
옹기
이돈주
하찮은 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별것도 아니고, 눈에 익어
흔히 어딘가 있을 듯한
그런 것들이
흙이야
이 땅에 지천인 거고
그것을 빚고 구워
알맞추 놓아두고
크고 작게 쓸모 많던
우리네 살림살이 그릇들
귀하다고
중요한 것만은 아니다.
투박하더라도
제자리 지켜 오래 묵어
하찮은 것이 더 정겨울 때가 잇다.
큰 장독대 줄지어 놓은
어느 장 담는 시골 집 풍경
바다를 보며
이돈주
사람이 살고 겪으며
하고 싶은 말 어찌 다하랴.
바다가 파도와 수평선만 보이듯
하고 싶은 말 숱하게 많지만
속에 꾹꾹 눌려 넣어두고
말 못하는 말 말 말
겉만 보는 건 쉽지만
속에 감춘 건 참 많은 거다.
삶이란 답 없이 어려운 것
쉽다면 참 쉬운 건데
사는 건 참 어려운 거다.
호롱불
이돈주
희미한 사랑방 안
그을음에 가물거리는 호롱불
꼬투리에 불붙여 밝혀 놓고
윗목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물려받은 책을 애써 읽으면
총총하니 잠 아오지 않아
시간만 흘러 새벽닭 울고
콧구멍 까매져 눈만 침침했다.
오래된 대추나무 등잔대는
시커멓게 땟물이 절었는데
방마다 집집마다 마을마다
등불이 켜지던 그 시절의 밤
한 골동품점에서 눈에 띄는
석유 백사기 등잔 정겨워
가마득한 시절 되짚어 보네.
아, 예로부터 근대에까지
놓고 와 잊었던 생필품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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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서
10년만의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에도 번잡한 생활은 본래 과작인 내게 늦춘 시간은 더 오래 기다림을 갖도록 했다. 그런데 이쯤에서 그동안 미발표로 남겨두었던 것들을 묶어 내야 한다는 어떤 불안이랄까 문학적 강박감이 문득 엄습해 옴을 느껴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시는 맑은 정신이 바람직하게 인간의 진솔한 감정을 굴절시켜 녹아 흐르며 제 나라와 겨레의 넋을 잘 괴어야 하는데 어쭙잖게 겉만 보고 속을 살피지 못한 채 행간을 어지럽게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또 문화 변혁이 급격한 이때 구태의연한 생각을 펼친 흔한 출판물로서 부담스러운 답습에 보태어지는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한 권의 책이 아닌지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이 드러나 빠르게 정보화되어 순간순간 유통되는 개별적이고 감각적이며 즉시적인 다양한 선택의 권리가 있는 시대적 현실에서 말이다.
이런 와중에도 시집을 출간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내 안 의 것, 순전히 내 자신 우리말, 글을 사랑하고 두드려 살아옴의 한 작은 정리하고 말하고 싶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오래 지켜 오면서 스치고 짚어 보고 싶어서이다. 내 마음의 길목에서 말이다. 이 시집 속의 시를 음미해 보는 분들이 늘 기쁨과 함께 행복하기를 기원해 본다.
2012년 11월 15일
저자 이돈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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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주 詩集 [※마음의 길목※※]
[ 서평 ] -
한국시적 대상의 형용화와 함축미
― 이돈주의 시세계
김용재(시인, UPLI한국회장)
1.
대학에서 영문학 강의를 하면서 주로 영미시와 비평쪽을 담당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강의를 해도 열심히 경청하고 메모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강의를 잘 못하는구나, 생각하면서 활로를 찾으려고 고심을 많이 해 보았다. 전면적인 발표수업으로 유도해 보기도 하고, 심지어 어려운 것은 빼놓고 쉬운 것만 골라서 강의도 해 보고, 작품을 쓰도록 해서 학점과 교환도 해 보고, 들을 사람만 들으라고 해서 필수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바꾸어 보기도 하고……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았다.
만족스럽게 효험을 보지 못했고, 그런 가운데 어떤 경우에도 나에게 변함없이 따라다니는 것은 시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주석, 평가 등, 참으로 따분한 일이었다. 그 따분한 일이 시를 올바로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한 기초단계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선행연구의 도움 없이는 어깨를 펴기가 늘 난처하곤 했다. 더구나 현대시는 대체로 난해해서 주석이 없이는 읽기가 힘들고 그래서 독자층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 속에서 이돈주 시인의 새 시집 마음의 길목에 수록될 112편의 서정적이고 주옥같은 시를 먼저 읽게 되는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계절 감각과 더불어 자연적인 서정, 교육현장의 경험들, 현실생활에 바탕을 둔 주변의 일상, 일부 시사적인 것들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일반적 소재나 주제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실험적 시도나 난해한 요소들의 뿌리가 근절되어 있어 비교적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시들이 꾸준히 독자층을 형성하고 시인의 성실한 시 쓰기 작업을 격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서론적 생각을 전제하면서 일부의 시편들을 중심으로 이돈주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는 거다
참고 견디며 줄기차게
나름대로 꿈 만들어
팔 벌려 허공 안고
나대로 살아가는 거다
아파서 모질지라도
나이테 둥글게 만들며
내 뜻 쉼 없이 피워
힘 다해 살아가는 거다
-「나무」전문
나무를 노래한 시인은 참으로 많다. 아마도 시인이면 누구나 다 나무에 대해 노래하였을 것이다. “여름에 무성하지만/가을이 되면/더 맑은 금빛”을 자랑하는 A,테니슨의「참나무」나 “나무 중 가장 수줍고 귀부인다운/자작나무”를 노래한 A.R로웰의「인디안의 여름꿈」이나 “나무가 내 젖가슴 속에 자람다”고 한 E.파운드의「소녀」등, 나무는 모두가 우리 인간 또는 인간의 삶으로 비유되고 상징된다. H,헤세의 말을 빌리면 “나무는 신성한 것이다. 나무와 이야기하고 나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아는 자는 진리를 안다. 나무는 교의(敎義)도 처방(處方)도 듣지 않는다. 나무는 개개의 일에 집착되지 않고 삶의 근본 법칙을 말해 준다(「방랑」에서)”고 했다.
그렇고 보면 나무는 역시 우리 인간과 동일시되고 순리와 자연의 대명사로서 삶의 근본 법칙을 내포하고 있다. 시인이 이 법칙을 따르고 지키는 것은 삶의 질서에 순응하는 시심의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원리는 앞에서 인용한 대로 어떤 교의나 처방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순리에 기반을 둔 시심의 방향을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독자의 동의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돈주 시인의「나무」는 처음부터 고뇌의 역정을 내포한다. ‘사는 거다’, ‘살아가는 거다’로 대표되는 이 시의 서술적 구조는 의미상으로 유사한 하나의 언어체계이며 그 어감이 환영도 기쁨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기도 저주도 아니다. 그러나 그 구조를 헤쳐 보면 역경 속에서도 참신하게 의욕을 불태우는 강인한 자연스러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나무는 참고 견디고 줄기차게 꿈을 만들고 팔을 벌려 허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며 아울러 나잇값을 하며 뜻을 피워 힘껏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내 뜻 쉼 없이 피운다는 의미 속에는 의지나 재능이나 재주나 수단도 들어 있어 이들을 내보이고 나타내 보이겠다는 시인의 인생론적 철학이 나무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 나무는 시인의 나무이며 시인의 삶이며 더불어 우리의 나무로, 우리의 삶으로 환치될 수 있는 것이다. 시는 간접 표현 또는 간접 서술이라는 기본원리를 철저하게 준수했다는 의지 하나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록」,「쥐똥나무」,「단풍」,「산」등의 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3.
다 떠난 시골의 빈 집
장독대
몇 개 남은
깨지고 금 간 옹기 그릇
그 앞 한가운데
자락 흙속에
반쯤 파묻힌 석영
할머니
정화수 붓던
가내평안 바라던 돌이
아직도 반짝반짝
햇살에 빛나고 있네
올 거라고
애들 다시 돌아올 거라고
이미 비워진 묵은 집에서
-「고석」전문
이 시는 고요하고 외로운 시골 빈 집의 정경에 시심의 안테나가 꽂혀 있다. 장독대며 옹기며 흙속에 반쯤은 묻혀 있는 석영이며 할머니가 정화수 떠놓던 돌이 옛 고향의 서정을 듬뿍 안고 있다. 그런데 그 돌에 초점이 맞추어져 더욱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정화수 붓던 그 돌은 시의 제목처럼 고석(古石)이 되어 이끼가 끼고 바라보는 이 아무도 없는 버려진 탕자처럼 존재가치가 없어졌다. 그러나 그 돌에는 햇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순리 또는 천심이 새겨지듯 환한 약속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비워진 묵은 집이지만 집 떠난 애들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밝히는 돌이 된 것이다.
시골, 농어촌, 한국적 고향 의식, 우리 스스로의 아름다운 정서 보존 등, 그러한 감각적 메시지를 불러낼 수 있다면 독자는 충분히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시가 처음이 아니면서도 가슴에 쉽게 와 닿는다면 우리 고향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을 것이고 다시 살아나는 삶의 꿈으로 다가설 것이 분명하다.
여기엔 별 게 다 있네
태어나 생애를 이뤄
어디선가 살아갔던 것들이
만들어지고 쓰이기를
거듭거듭 되풀이하면서
때론 귀염도 많이 받았겠다
그래, 이름 없는 건 없네
파지, 고철, 유리, 플라스틱
비닐, 신문, 헌 옷가지……
골라 갈리는구나
특별한 걸 빼고는
여기가 헤어지는 곳
천태만상 갖가지로 나눠져
사라지기 전 마지막 모이는
생활의 다양한 흔적들
-「고물상에서」전문
고물은 옛적 물건이다. 그러나 옛적이라 할 만큼 오래되지 않았어도 헐거나 낡은 물건은 고물이 된다. 때로는 새 것 못지않게 쓰임새가 있다 해도 한 번 사용했거나 사용하지 않았어도 반환하지 않았거나 그 기간이 넘은 물건은 역시 고물이 된다.
그래서 고물은 천차만별의 물건이 소속감을 유지하며 천차만별의 양태가 스스로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앞의 시「고석」에서 나타난 장독대, 옹기 그릇, 정화수 붓던 돌, 빈 집 등, 이들도 어찌 보면 고물이고 빈 집은 그 자체를 포함해서 고물폐기장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 투사한 시심에 대해서는 이미 알아보았지만 여기「고물상에서」는 「고석」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서 시심을 투사한 것이다.
고물상은 고물을 취급해서 사고파는 상점이다. 그 고물상이 하는 일은 시골이 아닌 도시기능의 입장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엔 별 게 다 있다. 태어나 생애를 이뤄 어디선가 살아갔던 것들이다. 때론 귀염도 많이 받은 것들이다. 파지, 고철, 유리, 플라스틱, 비닐, 신문, 헌 옷가지…… 등, 이름 없는 것들은 없다. 그런데 고물상은 이들이 헤어지는 곳이다. 사라지기 전 마지막 모이는 곳이다. 사고파는 행위를 통해서 생활의 다양한 흔적들이 묻어나고 사라지는 곳이다.
시인이 시골의 빈 집에서 고석을 보고 도시의 고물상에서 수많은 고물을 보면서 남의 눈 밖에 있을, 보잘것없는 사물과 일들에 시심을 돌려 삶의 다양한 흔적을 캐고 이를 형상화하여 가치체계를 부여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시적 기능이 예민하고 역량이 돋아났기에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고석」이나「고물상에서」못지않게 남의 눈 밖에 있을 대상에 크게 관심을 부여한 것으로서「몽당연필」을 빼놓을 수 없다.
한가운데에
늘 흑심을 지녀 삽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고맙게 쥐어졌을 때
나는 본심을 다해
닳아지는 자신을 잊고
필생을 다해
욕심껏 일에 열중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연약하거나 보통
아니면 진하게 잘 쓰이게
깎여져 길이 짧아진
흑심을 속에 늘 품고 삽니다
- 「몽당연필」전문
요즘 학생들은 연필은 잘 쓰지도 않지만, 더구나 몽당연필이라면 도대체 무슨 연필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전을 찾으려면 ‘몽당이’부터 찾아야 한다. 몽당이는 뾰족한 끝이 닳아서 거의 못 쓸 정도가 된 물건이다. 이 의미를 알고 그래도 부족하면 ‘몽당붓’이나 ‘몽당비’, ‘몽당솔’ 등을 차례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면 모진 붓, 모지라지고 자루만 남은 비, 몽톡한 소니무 등의 의미를 접하게 된다.
대입해 보면 몽당 연필은 ‘점점 닳아서 길이가 짧고 끊은 듯이 무딘 모양의 연필 도막’ 이다. 손으로 잡기가 힘들어 알맞은 형태의 뚜껑을 만들어 끼워 사용했으며 그 연필을 칼로 깎을 수 없을 때까지 쓰곤 했다.
그 몽당연필이 한 사람에게 고맙게 쥐어졌을 때 본심을 다하고 필생을 다해 제 할 일에 열중하는 흑심의 미력적 기능을 의인화로 풀어낸 것이 이 작품이다. 흑심은 연필의 알이고 속심이며 등(燈)이나 초[燭]의 심지와 같은 것이어서 잘 쓰일 수 있는, 어둠 속 불빛의 의지와 바람을 대신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보잘것없는 몽당연필, 흑심의 의지는 수백, 수천 명의 교사나 가르침을 주는 이들을 대신 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교육의 심지에 밝은 불을 붙일 수 있는 희망인 것이다.
이렇듯 작은 것,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애정은 이동주 시인의 특성을 밝히는 참 좋은 시심으로 배어 크게 돋아나는 것이다.
4.
밝은 연보랏빛
동그란 꽃테로 둘러
알 수 없는 속 졸임 화사한
나는, 귀화의 딸
못 견디게 외로워
살포시 오는 이 바라보면
흔들리는 마음 갈피
소심하게 움츠러든다.
그렇다 해도
무너가 새로움 가득한 이곳은
한 목숨 다하도록
좋이 정들며 사랑해야 할 땅
불편한 자리라도 어쩌리
새로 돋은 부끄러움에
아열대 민감한 가시를 단
두 뺨의 작은 볼우물이여.
-「미모사」전문
「미모사」 는 참 맛깔스럼 작품이다. 그 맛은 미모사의 속성을 알아야 값진 것이 될 것이다. 미모사(mimosa)는 콩과 속에 속하는 일년초로 부끄러움을 머금고 있다 하여 함수초(含羞草) 라고도 한다.
아울러 밤이 되거나, 무엇이든 그 잎을 건드리면 오므라드는 예민한 감각의 식물이라 해서 영어로는 Sensitive plant 라고 한다. 줄기에는 가시가 조금 나있고 담홍색이나 연보라색 꽃이 밀집하여 피어나고 관상용으로 재배하며 남미가 원산지로 되어 있다.
영국 낭만파의 대표적 시인 셸리(P.B shelley : 1792-1822) 는 자신과 함께 익사한 절친했던 친구의 부인을「함수초」(The Sensitive Plant) 라 비유하며 “가장 기쁨을 주는 인물(여인)의 원형” 이라 묘사하였고, 이 함수초는 시인이 추구한 매력적이며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나타나 있기도 하다.
이돈주 시인의 「미모사」는 1연 4행씩 4연 16행으로 구조를 이룬다. 1연에서의 미모사는 대체적으로 속 졸임 화사한 귀화의 딸이다. 속을 태우듯 조바심 많은 내면의 뜻과 화사한 외면, 그리고 귀화의 딸이란 메타포를 유효하게 활용하여 그 자태를 잘 그려내고 있다.
제2연에서는 살포시 오는 이 바라보면 소심하게 움츠러든다고 하여 미모사의 행위 또는 속성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제3연에서는 귀화의 땅, 이주의 땅에서의 의지와 적응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이 좋게 정들며 사람으로 삶을 영위하는 뜻흥로 나타나 더욱 훈훈하다 할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불편한 자리, 민감한 가시가 나타나지만 운명을 의식하는 부끄러움일수 있다. 그러나 볼우물의 아름다움, 마침내 그 주인공으로서의 여인을 보는 영상 이미지에 시의 맛과 멋을 함께 담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실제의 꽃보다 작품의 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구절초」,「철갈이」,「도토리」등도 대상의 함축미, 그 형용화에 안정감을 더해 주고 있는 수작으로 파악이 된다.
5.
생명과 나무의 철학, 작은 것 또는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애정, 한국시적 서정의 대상 형용화와 함축미에 대한 안정감 등, 이돈주 시인의 시세계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자기 모습의 전체를 비추어 보는「체경」이나, 웃고 싶지만 울고 살고, 울고 싶지만 웃고 사는「바위를 보며」, 다정한 벗들과의 놀이나 잔치 같은 모임으로 발전한 「모꼬지」등에서 시인의 자화상을 음미해 보는 것도 이돈주 시인의 시세계를 밝히는 좋은 단서가 될 것이다.
자연의 순진무구한 세계에 대입해 보는 현실생활이나 현대문명의 모순적 요소, 과거의 산물이나 전통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현대적 가치의 부활, 일부 소외의 삶으로 투사되고 있는 시련과 역경의 현실적 근거 등, 주목할 요소들이 아직 많이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범위가 좁아지면서 깊이가 더해지는 미래지향적 희망, 변화의 세계도 기대해 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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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한국지적 대상의 형용화와 함축미
이돈주의 시세계를 만나다!
현대시는 대체로 난해해서 주석이 없이는 읽기가 힘들고, 그래서 독자층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 속에서 이돈주 시인의 새 시집『마음의 길목』에 수록될 112편의 서정적이고 주옥같은 시를 먼저 읽게 되는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범위가 좁아지면서 깊이가 더해지는 미래지향적인 희망, 변화의 세계도 기대해 볼 것이다
-김용재(시인, UPLI한국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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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주李燉周 시인∥
∙ 충남 공주 출생
∙ <시와 의식> 신인상 당선, 등단
∙ 통일문예상, 한글유공상, 대전문학상 수상
∙ 시집 :『고개를 넘으며』『숲길에서』
∙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협대전지회 감사
∙ 현 대전용전중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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