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
노병철
여름에 남자들이 주머니를 가볍게 하기 위해 작은 가방을 든다. 처음엔 가방에 뭘 담을 것도 없고 사내가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게 어색해서 들지 않았다. 나중엔 일수놀이 하는 사람들이 돈 거두러 다니면서 작은 가방을 들고 다녀 그런 가방을 일수놀이 가방이라 놀렸기에 더욱 그런 가방에 대한 인식이 마뜩잖았다. 하지만 애들이 생일날 선물해준 작은 가방에 휴대폰이랑 지갑 그리고 기타 소소하게 필요한 개인용품을 넣고 다니니 그렇게 편할 수 없다. 나중에 일수놀이 하는 사람이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 줄 알고는 이 가방 안에 돈이 잔뜩 들었으면 하는 헛꿈도 꾸어본다.
학교 다닐 때 전당포(典當鋪)를 이용한 적이 참 많았다. 참 돈이 없었던 시기라 시계와 책은 졸업할 때까지 전당포에 맡겨 놓다시피 했었다. 당시 전당포는 일반 서민들이 급전 빌릴 땐 아주 용이한 장소였기에 많이들 이용하고 했다. 드라마에 보면 가난한 부부가 돈이 없어 결혼반지를 전당포에 가져가는 것으로 그리곤 하는데 웃기는 이야기다. 작가가 전당포 근처도 안 가본 사람이리라. 금반지 같은 것은 굳이 전당포에 맡기지 않아도 누구나 돈을 잘 빌려준다. 전당포엔 여차하면 버릴 마음으로 맡기는 것이 태반이다. 라디오, 재봉틀, 밍크코트나 비디오, 컴퓨터 등이 주요 품목이었다. 돈이 생기면 찾을 마음은 맡길 당시뿐이다. 돈이 생기면 돈 쓸 일이 분명히 생겼다.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전당포 갈 일도 없지만, 그전처럼 찾기도 힘들다. 강원랜드 근처에 가보면 아직 전당포가 눈에 띈다. 노름꾼들의 생리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고리대금업자들이리라.
흔히 종편이라고 부르는 JTBC, MBN, 채널A, TV조선 같은 종합편성채널이 생겨났고 이런 방송이 생기고 나서야 우리가 여태 봤던 방송이 지상파 방송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크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단지 안테나라는 것이 없어져 지붕에 올라가서 방향 트는 짓은 더는 안 해도 된다는 정도이다. 이 종편에 여태 듣지도 보지도 못 했던 이상한 광고가 나온다. ‘러시앤캐시’ ‘산와머니’라는 광고다. 사채업자들이 대놓고 광고하는 것이 참 신기했다. 지금은 OK저축은행으로 합법적 제도권 대부업을 하는 것 같다. 한때 카드사들이 카드를 엄청나게 남발했다. 그래서 사람들 지갑엔 열댓 장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난 이게 고리대금업자들의 전형적인 상술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돈이 급해 카드로 돈을 대출하면 변제능력이 부족하여 바로 갚지 못하고 이런바 카드 돌려막기를 하게 된다. 그러면 모든 카드에서 이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완전히 파산할 때까지 카드사는 돈을 벌게 되는 구조이다. 고리대금업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군데 고리대금업을 같이해서 여기저기 대출을 알선하고 고리를 뜯는다. 철저하게 당해봐서 안다.
‘무대리’
이젠 진급해서 무 과장이라고 부르는데 ‘무’가 ‘無’를 연상하게 만드는 기획이란다. 무이자(또는 중도 상환 시 수수료 없음)를 강조하고 '대출 신청 조건이 거의 없음'을 무 과장을 등장시켜 사람들 머리에 입력시키고 있다. 고리(高利)라는 말은 없고 단지 빨리 갚으라는 말만 한다. 마치 남의 주머니 걱정해주듯 계획 있는 대출을 하라고도 한다. 빨리 갚을 능력 되고 계획 있는 대출 생각을 할 정도면 사채업자를 찾아가지도 않는다. 막바지에 가기에 일단 돈을 빌려 급한 불을 꺼보자는 생각뿐이다. 이건 내가 사채업자를 찾아가서 돈 빌려달라고 애원까지 해봐서 정말 잘 안다. 워낙 없는 놈이 찾아가 무대뽀로 돈을 빌려달라니깐 되려 나를 설득해서 내보냈다. 밥이나 한 그릇 사 먹으라면서 만원까지 손에 쥐여주면서 말이다.
전당포란 간판을 보면서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있구나 싶다. 젊은 날 은행 돈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라기에 무작정 빌려 사업을 확장하다 IMF 직격탄을 맞고 완전 알거지가 되고 나서야 돈 무서운 줄 알게 되었다. 돈 안 빌려주면 못 나가겠다고 사채업자 사무실에서 되레 행패 부리던 그 기질도 이젠 없다. 배 나온 중년이 작은 일수 가방 옆에 차고 물끄러미 건물 밑에서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며 높은 곳에 매달려있는 ‘전당포’라는 간판을 보고 있다.
첫댓글 대학 다닐 때 책을 많이 맡기고 돈을 빌렸다니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저는 워낙 범생이라 알바한 덕분에 그런일은 절대 없었어요. ㅎ
아~ 전당포라... 살아가며 그곳에 갈 일은 없는 줄 알았는데 무능한 나는 그곳에 가서
맡긴 반지를 아직도 못 찾은 우를 범했다. 꼬라박아를 아무리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어리석음.
하지만 그 일로 인생을 많이 알게 되었다. 국장님의 글이 옛날 일을 소환했네요.
전당포에 맡길 물건이 없어서 못간 사람은 어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