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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만해도 달라이라마의 활동이나 근황 등이 다큐멘터리로 자주 방영됐다.
내용 중에는 티베트에서 인도로 온 이들이 라마를 친견하는 장면이 있다.
죽음과 맞바꿀 만큼 고통을 인내하고 히말라야를 넘어온 이들의 목적 중의 하나는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고, 라마가 상주하는 지역(다람살라)에 머무는 일이다.
라마와 망명객이 만나는 날, 라마는 남녀노소 심지어 승려에게도 마정수기를 하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손을 잡는 것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고달픈 중생에게 백 마디 말보다 따스한 정서가 온누리에 퍼지는 듯하다.
달라이라마도 비구승인데, 여기에 계율이라는 잣대로 ‘어찌 비구가 여자의 손을 만지고,
마정수기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국을 등지고, 타향 땅에서 만나는 동족에게 연민을 쏟는 라마의 모습은 자비의 화신이다.
라마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할 때가 있다.
소납도 ‘라마처럼 자비로운 모습으로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맹세도 하면서….
그런데 과연 이 한국 사회에서 비구니가 달라이라마처럼 행동한다면 사회 관념상 통용이 될까?
마치 토종닭이 우아하게 헤엄치는 백조의 모습을 보고,
똑같이 해보겠다고 호수에 들어갔다가 익사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곧 누가 하느냐에 따라 자비의 화신도 될 수도 있지만, 해프닝이 될 수도 있다.
해프닝인 경우 ‘사회에 통용되는 부작용이라는 칼을 들이대는 모양새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진실이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보는 자의 견해에 따라 현상에 대한 평가가 다른 것은 아닐까?
유식에 ‘일수사견(一水四見)’이 있다. 천인(天人)은 물(水)을 보석으로 치장된 연못으로 보고,
인간은 단지 물로 보며, 아귀는 피로 보고, 물고기는 자신이 사는 공간(住處)으로 여긴다.
이렇게 한 현상도 견해에 따라 천차만별로 해석된다.
어리석은 중생세계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진실만을 믿으라.
누군가 그대의 행동방식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상대방의 인격 문제이지,
그대의 업(karma)이 아니지 않는가?
[불교신문3232호/2016년9월10일자]
첫댓글 자기의 눈으로 보고
남을 평가하는건 참 무서운일입니다.
견해차이~~남의말을 좋게 합시다.
그러면 나에게 맑은 향기가
나오겠지요.
젊은 시절 제 관점에서만 강하게 부르짖었던 주장들이
이제 참회가 됩니다.... 항상 배려하는 마음으로 ~~(판단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