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군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집에 있으면 날씨가 춥다는 걸 잘 실감하지 못하니 잘못하다가는 패션에 심각한 오류가 생깁니다. 사실 패션이 아니라 겨울대비 옷차림을 말합니다. 일전에 날씨파악 실패로 아이들, 특히 태균이가 많이 추웠을 겁니다. 바닷바람은 막상 나와서 부딪쳐보면 안으로 파고드는 속성과 예상치 못한 센 강도로 인해 꽤 춥게 만듭니다.
오늘의 코스는 제주바당길 중에서 성산에서 표선방향으로 잡고, 신천올레 해수풀장에서 표선항 대략 9천보 거리였습니다. 올레 해수풀장은 제 계절에서 한참 지난 후라 썰렁함을 넘어 버려진 곳같은 퇴색된 모양새입니다. 제 계절에도 제대로 운영이 되었었는지 궁금해지긴 합니다.
동굴같은 입구를 지나가는데 완이가 잠깐 망설이더니 그래도 서슴치않고 들어오니 다행입니다. 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장소가 바로 이런 터널형 입구인데 이제는 많이 극복된 듯 합니다.
신천리, 이 동네는 두 가지에서 좀 특색이 있었는데 하나는 집담장 벽화가 꽤 많이 있었고 또 하나는 신천항을 중심으로 2미터 가까운 높이의 담장길이 길게 나있는 것입니다. 제주도 뿐 아니라 여기저기 담장 벽화는 좀 많이 있고 제가 살고있는 영흥도 선재도에도 꽤 있습니다. 사실 이 벽화들 그림수준이 좀 조악한 경우가 많아서 형식적인 측면이 강한데 여기는 벽화마을이라는 타이틀을 걸어서 그런지 수준이 제법 괜찮습니다. 국내에서 제가 본 것 중에 실력이 가장 나아보입니다.
작은 포구를 싸고있는 방파제 담장길도 다른 곳과 달리 바닷길 입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카페나 공동작업장까지도 이어져 있는데 너무 우습게도 내려오는 계단이 없어서 내려오는 것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합니다. 오늘 오르락 내리락 연습 꽤 많이 했네요.
한라산에서 흘러내려온 물들이 모인 지천이 바다와 만나게 되는 접점에 '배고픈 다리'가 있습니다. 고픈 배처럼 밑으로 쑥 꺼져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이쪽길도 바다전경은 근사하지만 수산회사들이 줄지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걷기하는 사람도 적고 차량도 드물게 다닙니다. 해안 자전거와 걷기도로에 가로수까지 심어놓은 곳은 여기가 유일할 듯 싶을 정도로 걷는 길은 넓습니다.
섬인만큼 용왕신 모시는 제를 올리는 풍속은 꽤 빈번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할미당이라고 해서 해신을 모시는 무당집들이 서너채 남아있기도 합니다. 배고픈 다리를 건너면 바로 몇 채가 보입니다. 천대받는 직업이었기도 하지만, 섬의 무사안일 기원쇼를 이끄는 광대이기도 해서 카리스마와 배짱을 갖춘 무당은 마을의 숨은 조종자이기도 했을텐데요, 저는 샤마니즘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샤머니즘의 과학적 핵심에는 도파민과 220도 각도의 주변눈칫발이 있습니다. 도파민이 빠져서는 광기어린 쇼는 이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옆길로 잠시 샜습니다.
긴 방파제 끝에서 우리는 가방을 내리고 간식도 먹고, 웃음도 교환하고, 사진도 찍고하면서 유턴지점을 돌아봅니다. 서울과 경기도는 눈발이 날린다고 음악방송에서는 난리를 쳐댑니다. 여기도 눈이 내리려는지 먹구름이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걷기 다 마칠 즈음에 눈발이 날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섭지코지 뒷편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대기해 보았지만 전혀 눈발은 날리지 않았고 겨울로 가는 해는 더욱 짧아져서 5시 넘으니 벌써 어둑합니다. 왜 엄마가 집에도 안가고 저러고 있을까 궁금한 모양입니다.
해가 너무 짧아져서 하루 시간이 더 빨리 가버리는 듯한 체감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루 만보걷고 끝나기에는 아쉬움의 아쉬움입니다. 이제는 걸음수도 더 늘려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는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맑은 공기마시고 몸을 많이 움직이자 준이가 두통증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
걷기 시작하자 한쪽 다리를 저는 듯 했는데 걸음수가 많아지니 그것도 사라집니다. 제주도에서의 운동의 힘! 준이가 안정적인 성장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아직은 운동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그것도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말이죠... 어서 편마비 증세에서 자유로와졌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아, 준이가 태균형님과 사는 것에 장애물이 없기를 바랍니다.
완이도 석달 정도 더 야외감통 세례를 받으면 많이 안정될것 같은 느낌입니다.
태균형님 건강도 제주도가 책임져 줄것 같고요.
대표님 앞길에 순풍이 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