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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안충기 님의 글쓰기...관련 기사입니다. 콕콕 찍어 써라, 글이 빛난다
나는 2015년 첫날 김훈 때문에 울었다. 1월1일자 중앙일보 26면에 실린 그의 글 때문이다.세월호 이야기였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832265&cloc=olink|article|default 단원고 2학년 여학생 김유민, 물에 젖은 1만 원짜리 지폐 6장, 아버지 엄마 동생에게 사다 주려 했던 선물, 2014년 4월 16일.... 김유민 양은 김영오 씨의 큰딸이다. 한없이 슬펐다. 주체할 수 없이 눈앞이 흐려져서 몇 번을 끊어가며 읽었다. 비수처럼 심장을 파고드는 빼도 박도 못할 저 시퍼런 단어들 때문이었다.
아무거나 동료들과 밥 먹으러 나갈 때 뭐 먹을까 물으면 열이면 여덟아홉은 이리 답한다. - 좋을 대로 개중에 한둘이 이리 말하는데, 아무거나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인지 회사 근처에 있던 어느 술집 차림판에는 ‘아무거나’ 안주가 있었다. 한치, 땅콩, 튀긴 생강 따위를 섞어내는데 이 아무거나에 아무도 아무런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되도록 이렇게 묻는다. - 세 가지 옵션이 있거든. 잼배옥, 을지면옥, 정원순두부 어디들 갈텨? 찍어서 물으면 망설임이 적어진다. 표가 많은 쪽으로 가면 불만이 없다. 한잔 꺾으러 갈 때도 콕 찍어서 물으면 상대는 즐겁다. - 1차는 서교동 진진에 가서 오향냉채 멘보샤에 금문고량주 또는 연희동 목란에 가서 동파육에 금문고량주, 2차는 로칸다 몽로에서 안초비 튀김과 명란 파스타에 맥주를 마시거나 로바다야 카덴에서 금태구이와 한라산 소주 어뗘?
사람은 호기심 넘치는 동물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통했거나 사는데 흥미를 잃었을 테다. 특히 사람이나 물건이나 동네 이름, 숫자 같은 구체적인 단어에 반응이 빠르다.
- 기다렸다, 손흥민 이런 모습 1월 23일자 중앙일보 24면 스포츠면에 실린 제목이다. 아시안컵 축구대회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손흥민이 두 골을 넣어 4강에 진출한 내용을 다룬 기사다. 이 날자 지면에 실린 기사 중 1면 머리기사를 제치고 열독률 1위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목 속의 이름 석 자가 주는 유인효과가 컸다.
- 아메리카노 하루 4잔 심장 간 힘들어진다 2월 5일자 중앙일보 기사 중 열독률 1위다. 기사는 20면에 실렸다. 건강기사이기도 하려니와 아메리카노, 4잔, 심장, 간처럼 숫자와 고유명사가 독자를 흡입하는 장치가 됐다.
- 롯데와 현대 차(差), 16m 이는 2월 2일자 경제섹션 2면 기사의 제목이다. 제2롯데월드보다 현대차가 강남에 지을 빌딩이 16m 높다는 내용이다. 車와 差가 소리가 같다는 데 착안한 제목이다. 이 기사는 전체 열독률 5위에 올랐다.
예로 든 세 가지 기사에는 열독률이 높다는 점 외에 공통점이 있다. 모두 1면 머리기사가 아니다. 24면과 20면이면 한참을 넘겨야 나온다. 게다가 경제섹션은 본지에 비해 주목도가 한참 떨어진다. 그럼에도 관심을 끈 이유는 구체적인 단어로 구성된 제목 덕이 크다. 지명도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 등장해도 주목한다. 얘는 왜 나온 거야,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보일 듯 잡힐 듯한 단어들이 곳곳에 포진하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스스로를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고 말하는 류근의 페이스북 글을 보자.
- 지난 새벽엔 별안간 '발 시린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에 딱! 소주 한 병만 마시고 싶어져서, 그 새벽에 달려와 소주 각 1병씩만 분음한 후 사뿐히 작별할 만한 애인을 궁리하였다.요즘은 내가 나라 꼬라지 걱정하느라 애인들 관리에 좀 소홀했더니 순 소문만 무성하고 이거뜰이 죄다 외국으로 이민을 갔거나, 섬에 들어가 굴껍질을 까거나, 숫제 딴 살림을 차렸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일찌감치 꽐라가 돼서 사망을 해버렸거나 하는 통에 날마다 조낸 쓰라리게 외롭고 처절하게 고독하다. 아무튼 그 새벽에 '발 시린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에 딱! 소주 한 병만 마시고 싶어진 나는 대뜸 한 애인에게 뻐꾸기를 날려서 무조건 달려와 달라고 애걸하고 복걸하였는데, 애인은"나 이미 마이 마셨는데, 마이 마셨는데...."하면서도 서른 두 살 청년을 팽겨쳐 두고 새벽 두 시 십오 분의 발 시린 포장마차로 차두리처럼 달려와 준 거시었다. 나는 몹시도 감읍하고 감동하여서 무려 일만 이천원 짜리 노르웨이산 고갈비와 삼천원 짜리 잔치국수를 아낌없이 주문하였다. 소주를 각 1병씩 마시면서 우리는 무슨 말을 했던고.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 거....에 대해서 말을 했던고. 무욕의 자유와 모욕의 자유와 무의지의 자유와 무의자의 자유에 대해서 말을 했던고. 끝내는 노예로 살다가 노예로 죽어가는 삶에 대해서 말을 했던고. 아니다. 애인은 별안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뱀 밟은 소녀처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 으헉! 당신 맨 정신이잖아! 이렇게 멀쩡한 얼굴 처음 봐요! 나는 이제 닷새만 술을 안 마셔도 파충류 취급을 당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바.
포장마차, 잔치국수, 소주 한 병, 굴 껍질, 새벽 두 시 십오 분, 이천 원짜리 노르웨이산 고갈비, 뱀 밟은 소녀... 문장 곳곳에 깔린 쉽고 구체적인 단어들이 글의 흡입력을 높인다. 꽐라, 조낸, 시바 같은 시바스런 장바닥 언어까지 양념으로 뿌려대니 팬들은 그저 아햏햏 하며 박수를 쳐댈 밖에.
이외수는 추천사를 이렇게 썼는데, - 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아 있었다니. 나 언제든 그를 만나 무박 삼일 술을 마시며 먹을 치고 시를 읊고, 세상을 향해 우람한 뻑큐를 날리고 싶네. 류근이나 이외수나 막상막하다.
명지대 교수를 때려치우고 그림 배우겠다고 일본에 간 김정운은 어떤가. <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는 책을 읽고 나는 단박에 이 양반의 광팬이 됐다. 이 능글능글한 아저씨에게는 교수스럽지 않게, 거침없이, 때로는 도발적으로 글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하는 기술이 있다. 다음을 보자. 최근에 나온 그의 책 <에디톨로지>의 일부다.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쥐 때문이다’ 항목에 나오는 내용인데, 쥐는 컴퓨터 마우스를 말한다. 제목 참 감각적으로 잘 뽑는다.
- 터치다. 만지는 거다! 애플 아이팟의 성공은 만지는 데 있었다. 아이팟 1세대는 기계식‘스크롤 휠’을 달고 나왔다. 예쁘기는 했지만 그리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2002년에 ‘터치 휠’을 달고 나온 아이팟 2세대로부터 열풍이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세상의 모든 디지털 기기는 버튼을 눌러야만 했다. 그런데 만지고 문지르는 디지털 기기가 나온 것이다. 손가락으로 살짝 문지르기만 해도 아이팟은 바로 반응했다. 드디어 ‘인간의 얼굴을 한 디지털 기기’가 탄생한 거다. 사람들은 아이팟에 환장했다. ‘누르기’와 ‘만지기’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자판을 두드리거나 버튼을 누르는 것은 지극히 공격적인 행위다. 어느 회사에나 자판을 ‘개 패듯’때리는 사람이 꼭 있다. 특히 엔터키나 스페이스바를 칠 때 그런다. 아이팟은 그럴 필요가 없다.부드럽게 만지면 된다. (중략)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그래서 아무도 만져주는 사람 없고,만질 사람도 없는 이 땅의 중년 사내들이 요즘 시간만 나면 스마트폰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그렇게들 사랑스럽게 문지르고 있는 거다.
코미디 뺨친다. 아이팟 성공의 이유를 이보다 재미나게 묘사한 글을 나는 보지 못했다. 누르고, 만지고, 문지르고, 개패듯 자판을 때리고... 배 나오고 느끼한 아저씨들이 술잔 돌리며 실없이 쏟아내는 말들인데, 나는 이런 글을 만나면 대책 없이 푸근하다. 류근의 언어가 장바닥이라면, 김정운의 언어는 길바닥이다. 이 아저씨 문장을 하나 더 보자. 같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 좌우간 오래 살면 천재고 영웅이고 다 포기해야 한다. 후세의 사람들은 아주 오래 산 그들을 차마 천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런 호칭은 순전히 일본인들의 농간이다. 독일에서 그런 호칭은 들어본 적 없다. 그런 식으로 호칭을 붙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럼 ‘음악의 고모’는 누구고, ‘음악의 외삼촌’은 누구인가.
뭐, 하여튼 김정운 만세다. 유홍준이 뿌린 쉽고 소탈한 글쓰기가 곳곳에서 꽃피고 있다. 12가지색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과 48가지색을 쓴 그림은 많이 다르다. 학위논문이건, 기사이건 총천연색 글들이 판치는 꼴 좀 보자. [출처] 중앙일보 안충기 님...글쓰는 방법론(100% 공감)|작성자 바람개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