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초원의 투망질
드디어 초원에서 전마 戰馬를 타고 마주친 이중부와 한준.
같은 지역, 아래 윗동네에서 둘도 없이 친한 죽마고우 竹馬故友로 함께 자란 친구 사이가 이제는 각자, 상대편의 적장 신분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묘한 운명의 부딪침이다.
그래도 중부는 한준에게 친구로서 말을 걸어본다.
“한준, 우리가 왜? 이렇게 이런 장소에서 서로가 창을 겨누게 되었지?”
“이런걸, 운명이라고 치부 置簿하자”
“지금이라도 괜찮으니 우리 화해하자”
“이미 늦었다.”
“단윤, 단철 형제, 두 명도 같이 있는 거야?”
“그런데도 신경을 쓰냐?”
“그럼, 우린 친한 동무들이잖아”
순간, 한준의 눈빛이 희번덕거리더니 창날을 앞으로 힘껏 내지른다.
중부도 내심 대비를 하고 있었다.
얼른 창을 옆으로 돌리며 한준의 창을 막았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한준의 창자루가 위로 치솟더니, 중부의 머리를 내리치는 것이었다.
며칠 전, 설태누차와 대결할 때 멀리서 지켜보았지만 너무나 변화무쌍 變化無雙한 공격적인 창술이다.
왼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피하자니 곧바로 창날이 어깨를 찔러온다.
한준의 창 다루는 기법이 일반적인 수법이 아니라, 일장 一丈이 넘는 장창을 마치 나무젓가락 다루듯이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중부는 창으로 막고 대항하기보다는 몸을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유연하게 피한다.
찔러오는 창날은 들고 있던 창으로 막고, 때리는 창 자루는 몸을 돌려가며 피하는 수법이다.
이는 창술과 봉술로 구분하여 대항한다는 작전이었다.
찌르는 창날은 창술로 막고, 후려치는 창 자루는 봉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봉술로 상대한다는 이론이다.
우문 청아와 연구하고 박지형과 검토 논의한 전술로써, 과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대결의 양상은 한준이 주도권을 쥐고 공격하고 있지만, 봉술의 고수 이중부도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었다.
한준도 칠, 팔 합을 겨루어 보고는 이중부의 작전을 눈치챈다.
지금까지는 창의 중간 부분을 쥐고 창술을 구사하였는데, 중부가 제대로 대응하자 한준도 창술의 수법을 바꾸어 버린다.
이제는 창의 중심 부분을 잡은 손을 창 자루 끝 쪽으로 옮기더니, 정상적인 창술을 구사한다.
창날로만 공격하는데 창 다루는 술법이 동서남북으로 찔러대며 그 변화가 현란 絢爛스럽기 짝이 없다.
오른쪽을 찌르는 것 같았는데 그쪽을 방비하면 창날은 벌써 왼쪽을 베고 있다.
한준의 변화무쌍한 창술에 당황한 중부는 정신이 혼미해진다. 따라서 동작도 매끄럽지 못하고 어둔해진다.
그 사이 한준의 창날은 위에서 아래쪽으로 중부의 가슴을 날카롭게 베고 있었다.
중부도 창 자루를 양손으로 거머쥐고 어깨 위로 쳐들어 올려 상단 上段 방어 자세를 취해보지만, 자세가 굼떠 보였다.
중부의 위기를 본 우문청아가 준비하고 있던 화살을 날린다.
한준은 얼른 몸을 뒤틀어 창날을 돌려 화살을 쳐낸다.
그때 이중부의 뒷전에 있던 담비와 최장한이 한준에게 달려 들었다.
담비가 "내 창을 받아 보아라"라며 고함을 치며 마상에서 한준을 향하여 창날을 길게 내뻗었다.
한준은 이번에는 마상에서 몸을 돌려 담비를 향해 창 자루를 세워 방어 자세를 취하였다.
순간, 최장한의 손에서 투망 投網이 하늘로 넓게 펼쳐지더니 한준을 덮어씌운다.
순식간에 의뭉스럽게 투망을 덮어 씐 한준 꼼짝할 수가 없다.
한준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신이 산동성 바닷가 출신이지만,
물고기라고는 눈을 씻고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드넓은 초원에서 투망질이라니...
전혀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난 느낌이다.
그물망도 보통 망이 아니다.
오래 묵은 닥나무 껍질을 벗겨 끓는 가마솥에 쪄서 말린, 질긴 섬유질 줄과 추운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야생 야크의 굵은 뒷다리 힘줄을 새끼줄처럼 서로 꼬아 엮어 만든 특수 그물망이라 보통 칼로는 잘 베어지지도 않는다.
특히, 창은 그물코에 걸려 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 無用之物에 불과하다.
뒤따라가던 배중서가 얼른 준비한 밧줄로 한준을 그물째로 포박해 의기양양하게 본진으로 돌아간다.
남 흉노 측 병사들이 동요한다.
하늘같이 믿었던 천하무적인 선봉대장이 적들에게 사로잡히니 우왕좌왕한다.
물실호기 勿失好機다.
좌장 우문청아가 기병대 騎兵隊를 이끌고, 장창을 휘두르며 적진을 짓밟는다.
선두에서 날카롭고도 화려한 창술을 펼친다.
이번에도 청하 문도와 사로국 출신들의 활약이 눈부실 정도로 뛰어났다.
적의 선봉대 태반이 죽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
포획한 전마도 이천 필이 넘었다.
포노 선우와 을지 소왕,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진다.
상대의 적군에서 가장 위협적이던 선봉장을 포로로 잡아 왔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
청하 문도 이십 명과 사로국 출신 일곱 명을 모두 삼백 부장으로 임명하였다.
적진을 화려한 무용을 뽐내며 청하문도들을 이끌고 마구 짓밟은 우문청하에게는 ‘천강선녀장’ 天降仙女將이란 별호가 붙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은 장군이란 의미다.
전장터를 누비는 모습이 거침없이 하늘을 비행하는 두루미와 같았다.
미모와 무력을 다 갖춘 여장수 女將帥란 뜻이다.
푸른 초원의 홍일점 紅一點.
얼마 후에는 약칭 略稱하여 ‘천강선’ 天降仙으로 통칭 通稱되었다.
모두 축하하며 잔을 들어 “땡잔”으로 합배 合杯하였으나, 이를 뒤에서 지켜보던 동방향기는 얼굴을 돌리더니 땅에 침을 뱉는다.
동방향기의 커다란 맑은 봉목 鳳目이 어느 순간부터 자꾸 작아지고, 옆으로 길게 자리 잡아간다.
하여간 최장한과 배중서는 생업 生業이 그물로 고기 잡는 어부 출신이라 아주 적절한 활용 活用이었다. 흉노인들 대부분이 그물이나 투망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
흉노인들은 물을 귀하게 여기지만 깊은 물은 두려워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물고기를 잡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따라서 평생 목욕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산 높은 고원에 거주하는 흉노인도 다수 존재하였다.
하여튼,
최장한과 배중서도 적장을 사로잡은 공로를 인정받아 삼백 부장이 되었다.
두 명은 기마술과 기초적인 창술 정도만 겨우 배운 비천 卑賤한 무예 실력에 비하면 벼락출세한 것이었다.
이틀 후.
사기가 오른 선우진영에서는 설태누차 천 부장이 일축왕 측에 도전장을 내민다.
일축왕 측은 묵묵부답이다.
병사 수는 다섯 배나 많은데, 이를 이끌 마땅한 장수가 없다.
금성부가 산동성과 조선하, 대릉하, 요하 등 이곳저곳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힘들고 어렵게 도피 생활을 하는 와중 渦中에도 젊은 지휘관들을 양성 養成한 효과가 이제 빛을 발한다.
다음날은 천강선 우문청아 천부장이 적진 앞에 나아가 도발한다.
초원의 홍일점.
여장수 女將帥가 결투를 신청해도 적군은 조용하다.
일각이 지나니 일축왕 진영에서 젊은 낯선 천부장이 나온다.
우문청아 천강선을 마중 나온 천부장은 보육고 步六孤란 장수다.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마지못하여 나온 것 같았다.
우문청아와 결투를 벌여 이십여 합을 겨루어도 막상막하 莫上莫下다.
결투가 지구전 持久戰이 되자 아무래도 남자의 힘을 여자가 견디기에는 그 한계 限界가 있다.
삼십여 합이 넘어가자, 이윽고 우문청아의 몸놀림이 둔해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선우 진영에서는 징을 쳐서 우문청아를 불러들인다. 그와 동시에 고발후가 검붉은 말을 타고 나아가, 우문청아를 대신하여 적장을 상대하였다.
고발후는 어릴 적, 잠시나마 우문청아의 봉술 사범 師範이기도 하였다.
비록, 산동성 북해에서 어쭙잖게 여겼던, 소년 이중부에게 패하여 체면 體面을 구겼지만, 근본적으로 상당한 무술 실력자다.
탄탄한 기본적인 실력에 십이지살과 혈창루 사부 문하에서 고난도의 무예를 3년 동안 익혔으니, 그 실력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조선하의 수련생 2기와 대릉하에서 육성한 3기생들은 무예가 1기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해 보였다.
주 이유는, 1기생들은 첫 수련생이다 보니, 실력이 이미 어느 정도 갖추어진 유망한 젊은이들을 천 부장들의 추천을 받아 육성한 것이었으나(그러니 입교시 나이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제2, 3기생은 서둘러 모집한 성향이 강했고 또, 궁술 및 각종 무기류에 정통한 십이지살의 유고 有故로 인하여 수련의 완성도가 뒤떨어지는 느낌이다.
고발후의 묵직한 창술에 적장 보육고는 부담을 느끼며 칠, 팔 합을 상대하고는 말머리를 돌려 본진으로 도망을 간다.
가벼우면서 날렵한 창술을 구사하는 여장수 女將帥의 창술을 상대하다, 갑자기 바뀌어 버린, 묵직한 장정의 창법을 상대하기가 적응이 아니 되고 버겁다.
추격하는 고발후를 향해 적진에서는 화살을 쏘아댄다.
고발후는 추격을 포기하고 본진으로 되돌아왔다.
그 후,
칠 주야를 별다른 전투 없이 소강상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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