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鳥類)의 노래
시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시황제의 황릉(皇陵/墓)이 있는데 황릉을 발굴하면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시안(長安)의 진시황릉(秦始皇陵) 입구조각상 / 병마용갱 내부 엄청난 토용(土俑)<1·2·3>
나도 중국 관광중 이곳을 둘러보았는데 너무나 거대하고 흙으로 만든 토용(土俑)이 너무나 많아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봉분(墓)은 높이 55m, 남북 515m, 동서 485m의 크기로 여의도 공원의 거의 10배인데 내부를 조사하다 흙으로 빚은 병사와 신하, 말들의 인형(土俑)이 쏟아져 나왔는데 병사와 신하들의 키는 184cm~197cm 정도의 크기였고, 현재 병용(병사와 신하들) 8천여 점, 전차 130기, 말 520점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광범위하여 현재 약 절반 정도가 발굴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중국(中國)의 사학자(史學者)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기록된 진시황릉(秦始皇陵) 관련 서술(書述)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9월(1961년 기록), 시황제(始皇帝)를 여산(酈山)에 매장했는데 시황제가 처음 즉위했을 때 여산(驪山)을 공사했고, 천하를 통일하자 전국의 죄수 70만여 명에게 지하수가 3번 빙글빙글 돌 정도로 구덩이를 깊게 파게 하고 구리(銅)를 부어 외곽을 만들었으며, 궁궐과 여러 관리, 진기한 보물들을 가득 매장했다.
그리고 장인(匠人)에게 기계 쇠뇌를 만들게 하여 묘(墓)에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그들을 쏘게 했다.
▶쇠뇌: 화살을 여러 개 잇달아 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활(矢)
수은(水銀)으로 여러 개울, 강과 바다를 만들고, 기계로 수은을 주입했는데 위로는 하늘의 모습을, 아래로는 땅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리고 인어(人魚)의 기름으로 초를 만들어, 영구히 꺼지지 않게 했다.
황제(二世皇帝/秦의 2대 황제)가 말하기를 ‘자식이 없는, 선제의 후궁을 내쫓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명령을 내려 그들을 모두 죽게 하여 죽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매장(埋葬)을 끝내자 누군가 말하기를,
‘장인(匠人)이 기계를 만들었고, 모든 노예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노예가 많아 사실이 누설될 것입니다.’ 하였다.
장례가 끝나고 보물 등을 이미 다 감추어 놓은 다음 묘의 가운데 통로를 폐쇄하고 바깥문도 폐쇄하여 장인과 노예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니 다시는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없어 모두 사망하게 되었고, 능(陵)에 풀과 나무를 심으니 그 모습이 마치 산(山)과 같았다.
▶그런데 이 기록은 새(鳥類) 이야기가 아니네... Sorry...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