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에 있는 전통사찰은 청평사와 상원사, 두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 청평사만 들렀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예전에는 관광이 목적이었다.
상원사는 왕복 한 시간 넘게 산행을 하여야 하기에 방문을 포기하였다.
뚜렷한 기억엔 없지만 오래전에 삼악산 산행을 하면서 지나쳤을 것이다.
오봉산 청평사(五峰山淸平寺) /전통사찰
-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973년(고려 광종 24) 영현선사(永賢禪師)가 처음 절을 짓고 백암선원(白岩禪院)이라 하였다.
한때 폐사, 1068년(문종 22) 이의(李顗)가 다시 짓고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다.
1089년(선종 6) 이자현(李資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자 도적이 없어지고 호랑이와 이리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산을 청평(淸平)이라 하고 절을 문수원(文殊院)이라 하였다. 청평산 내에 8암자를 지었다.
1367년(공민왕 16)에 나옹(懶翁)이 2년 동안 머물렀다.
1555년(조선 명종 10) 보우(普雨)가 머물면서 청평사로 바꾸었다.
(인터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을 참조하여 정리)
예전엔 배로 들어왔지만 이번엔 차로 들어왔다. 절까지 청평계곡을 따라 제법 걸어야 한다.
길은 평탄하고 폭포와 물소리가 청명하여 걷기가 즐겁다. 전날 많은 비로 물소리는 더 힘찼다.
공주설화
당나라 태종의 딸 평양공주, 이 공주를 사랑한 청년을 태종이 죽였다.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 몸에 붙어 살았다.
상사뱀을 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허사였고, 공주는 궁궐을 나와 방황을 하였다.
방랑을 하다가 청평계곡으로 들어와 굴에서 하루를 묵고, 계곡에서 목욕을 한 뒤에 가사를 지어 승려에게 바쳤다.
이 공덕으로 상사뱀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공주가 묵은 굴을 공주굴, 목욕한 곳을 공주탕, 공주가 세웠다는 탑은 공주탑이다.
상사뱀이 공주와 인연을 끊고 해탈한 곳이 지금의 회전문이라 한다.
(안내문 내용)
당(618년~906년) 태종 이세민(598년~649년)에게 평양공주가 있었는지는 난 모른다.
방랑, 중국 시안(서안)에서 그렇게 먼 곳인 이곳까지 왔을까? 절은 고려 때 973년 건립되었다.
전설은 전설이다. 전설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의미가 중요할 뿐이다.
계곡 건너편에 작은 굴이 있다. 그곳이 공주굴이다.
거북바위
거북이가 물을 향하면 절이 융성한다는전설이 있다고 한다. 이 바위 밑에 '申圭善(신규선)'이란 이름이 있다고 한다.
신규선은 1915년에 청평사를 정비하고 청평사지(淸平寺誌)를 지었다고 한다.
청평사 고려선원(禪院), 구송(九松)폭포
고려 때는 이자현/원진국사 승형/문하시중 이암/나옹선사 등, 조선 때 김시습/보우/환적당/환성당 등이 머물렀다고 한다.
청평사 삼층석탑 /강원도 문화유산자료
높이 3m, 일명 공주탑이며, 고려 초기에 만든 탑이다.
승려가 머무는 곳인지, 신도가 숙박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매점이 같이 있다. 나오는 길에 여기서 차를 한 잔하였다.
각산당석진대화상(覺山堂石眞大和尙, 1946년~1990년), 1980년대 청평사 주지로 있으면서 지금 청평사 모습을 갖추도록 한 인물이다.
각산당석진대화상비
이자현(1061년~1125년), 벼슬을 마다하고 이곳에 와서 수행하면 살았다고 한다. 역모를 일으킨 이자겸과는 사촌간. 시호는 진락.
안내문에는 진락공이자현부도, 부도의 양식은 고려 때가 아닌 1970년 때인 조선시대라고 나온다.
영지, 이자현이 만든 것이라 한다.
청평사 회전문(廻轉門) /보물
1550년(명종 5) 보우대사가 청평사를 고쳐 지을 때 세웠다고 한다. 윤장대의 의미를 가진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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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普雨)대사, 호는 허응(虛應)/나암(懶庵)이다. 1548년(명종 3년)에 봉은사 주지.
1550년에는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선교양종을 부활시킴. 봉은사를 선종의 본사로, 봉선사를 교종의 본사로 지정했다.
1551년에 선종의 최고지위인 선종판사(禪宗判事)에 임명, 1552년에는 연산군 때 폐지되었던 승과제도를 부활시킴.
문정왕후는 중종의 비이며 명종의 어머니로 불교 부흥에 애를 썼다. 보우대사는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주장하였다.
명종 20년(15656) 문정왕후가 죽자, 유생들이 들고 일어나 다시 불교를 탄압, 보우는 제주도로 귀양, 제주목사가 그를 죽였다.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년~1383년), 시호는 원증(圓證)이며 고려 말 국사인 이 인물과 한글이 같아 헷갈린다.
나한전
관음전
대웅전
극락보전과 삼성각
극락보전 옆에 보호수(주목) 두 그루, 높이 8m는 500여 년/높이 10m는 800여 년.
공주탕, 절에서 환적당 부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있다.
기우단 터
환적당(우편)과 설화당(좌편) 부도
모양은 비슷해 보인다. 설명문엔 설화당 부도는 조선 중기, 환적당(1603녀~1690년) 부도는 조선 후기라고 한다.
문경 봉암사에 '환적당지경지탑'이란 탑명을 가진 부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