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망한 사람 앞에 두고 망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는 감독에게
배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 대사를 적어본다.
“인간은요. 평생을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면서 살아요.
전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엔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좋았는데,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더 좋았어요.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이 됐어요….
전혀 불행해 보이지가 않아요. 절대로.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줘서.”
사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는 나만 힘든 게 아니다.
다 같이 힘든 사람들이 소주를 나눠 마시며
고통을 n분의 1로 나누다 보면,
우리는 그 세월을 견딘다.
망한 사람을 만나면,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고 안심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위로 받을 때는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볼 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타인의 고통과 비교하며
자신의 '다행'을 인식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자 울면 외롭지만 함께 울면 견뎌지는 게 삶이다.
대승불교의 대보살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고충을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같이 슬퍼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해 내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