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 당신은 제대로 숨 쉬고 사십니까?
"공황발작도 물리치는 심호흡
입담 좋고 당찬 이경규와 김구라가 오락프로에서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했을 때 남의 이야기로만 알았다.
공황장애란 갑자기 극도의 불안・공포감으로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고 숨이 막히며 경련 등 발작증상이 나타나는 신경질환이다. 그러나 내게도 딱 한번 찾아왔다.
10여년전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였다. 처음에는 밤에 자주 깼다. 잠자리에 들어도 비몽사몽간에 간신히 선잠을 들었으나 갑자기 소스라치며 놀라 잠을 깬다. 이때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 숨을 아주 얕게, 할딱거리며 쉰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호흡곤란 증상이다.
이는 불면증으로 이어졌다. 24시간 머리와 몸이 쉬지 못하는 일이 누적되면서 자율신경계는 헝클어지고 건강은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갑자기 절벽에서 뛰어내리듯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뒤이어 심장이 맹렬히 뛰기 시작했다.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반사적으로 손목의 맥을 짚어보니 100m 달리기를 할 때처럼 빨랐다.
이 증상을 오한이라고 해야 하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가 딱딱 부딪히고 이불이 들썩거릴 정도로 흔들렸다. 전신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내리는 느낌. 이러다가 미쳐버리거나 죽을 것 같았다. 극도의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떨리는 몸을 진정하고 억지로 숨을 쉬면서 시계를 보니 불과 5분도 채 안걸린 시간이었다.
병원에선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발작이라고 진단했다. 일반적으로 불안・분노의 감정이 커질수록 호흡(숨)은 짧고 거칠어진다. 이에 따라 뇌로 들어가는 산소량도 줄어든다.
산소량의 절대치가 부족하게 되면 신체의 자율신경계는 발작 등 비상사태를 거치면서 호흡을 정상화시킨다. 내가 겪은 공황발작의 전과정에 호흡곤란이 있었다.
바로 여기서 호흡의 절대적 중요성이 대두된다. 알다시피 인체의 에너지원은 두 가지다. 음식물과 호흡을 통해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음식물 섭취에는 큰 신경을 써도, 산소를 공급받는 호흡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허지만 물이나 음식은 2~3일을 섭취하지 않아도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숨은 3분만 쉬지 않아도 목숨이 위태롭다.
요즘 24시간 신경을 쉬지 못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중에 숨을 잘 못 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호흡이 원활치 않으면 만병의 근원이 된다.
반대로 호흡이 원활하면 충분한 산소 공급을 통해 ▲신체 기능 활성화 ▲긴장 및 스트레스 완화 ▲기쁨・행복감 증진이 따라오게 된다.
희노애락을 비롯 사람의 마음 상태는 호흡을 통해서 그대로 나타난다. 화가 나면 호흡(숨)은 빨라지고 거칠어진다. 불안하면 얕아지고 할딱거리게 된다. 극도의 경탄, 환희, 공포, 비통의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숨이 멎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만큼 호흡은 인체의 신체적·감정적·생리적 상황을 제일 먼저 전해주는 첨병이자 레이더다. 따라서 호흡의 움직임을 잘 알아차리고 선제관리할수록 더욱 건강하고 현명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가장 건강한 호흡법은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깊고 느린 ‘심호흡’이다. 어린 시절 체육 선생님이 운동 끝나고 가르쳐 준 ①가슴을 쭉 펴고 ②코로 천천히 깊이 숨을 들어 마시고 ③다시 길게 숨을 내쉬는 동작이다.
이를 반복하다보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된다. 신경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심호흡이 일종의 ‘(심리적) 브레이크’이자 ‘완충’ 구실을 하는 것이다
공황발작을 겪은 이후로 나는 마음이 불편할 때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5초 동안 천천히 숨을 마신다. 다음 5초 동안 천천히 숨을 내쉰다. 시계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세면서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 3분만 따라 해도 가슴이 후련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심신의 이완을 느낄 수 있다.
5초 동안이 잘되면 ▲6초, 7초로 늘이거나 ▲들숨과 날숨 사이에 같은 간격만큼 숨을 멈추거나(5초 들숨, 5초 멈춤, 5초 날숨) ▲들숨보다 날숨을 보다 길게 하는(들숨 5초, 날숨 10초) 식으로 변형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이든 자신에게 편하게 느껴지면 된다.
지금은 아예 습관이 돼 평소 시간 있을 때나 누구를 기다릴 때, 또는 지하철·버스 속에서 혼자 조용히 이런 심호흡을 한다. 마치 좋은 음식이나 영양제를 먹는 느낌을 가지며...
공기를 들이마시며 나의 육체를 안정시키고, 숨을 내쉬며,
미소 짓고, 현재의 순간을 살며, 지금 이 순간의 초자연적인 경이에 감사한다.
- <틱낫한(1926~2022)·스님·평화인권운동가>
글 |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