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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세옷가게 사이에서 당당하게 영업중인 새로본 의상실 | | |
[편집자]세상은 바뀌고, 새것이 옛것을 밀어냅니다. 테레비나 인터넷을 통해 세계로 열린 눈은 휘황해졌으나, '정읍'의 추억은 자꾸만 눈 앞에서 사라져 갑니다. 정읍통문은 그 사라져가는 것들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최소한 한번쯤 돌이켜 보고자 합니다. 골목길, 구멍가게, 헌책방, 마을 당산과 놀이터의 어린이들... 의상실과 양복점도 그것들 중 하나입니다. 매주 1회씩 '오래된 미래'가 될지도 모를 '사라져가는 것들'에 집착(執着)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제보도 주시고 의견도 주시고, 글을 보내주시면 더욱 좋구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은 갖가지 디자인의, 그리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분홍색 패션으로 휘감고 화면을 활보한다. 기네스 펠트로도 "엠마"에서 하이웨이스트 원피스가 얼마나 다채로운 천과 무늬와 디테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영화에서처럼 의상실은 여성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의상실은 단순히 옷 구입처만은 아니다. 현대 여성들이 신데렐라가 될 수 있는 곳은 백마 탄 왕자의 궁전이 아니라 동네에도 있는 의상실이다. 이 세상에 나만을 위한 하나밖에 없는 옷이 만들어지는 곳, 의상실에서 신데렐라의 꿈은 이루어진다.
정읍 멋쟁이들의 꿈의 궁전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의상실과 양복점은 찾기도 힘든 시대의 유물로 전락한 듯 하다. 정읍의 명동거리를 뒤져봐도 고작 2-3개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의상실과 양복점의 사양화는 시대적, 문화적 변화의 반영이지만 아울러 자신들의 문화양식을 고집할 수 있는 정읍 멋쟁이들의 사회 경제적 몰락 내지는 부재를 반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화려했던 날은 가고"
정읍시내의 명동, 흔히 일본식으로 본정통이라 불렸던 전북은행과 제일은행사이의 거리에서 의상실이나 양복점을 찾으려면 눈에 힘을 주어야한다. 실눈을 뜨고 한참 찾아봐도 기성복 브랜드 일색인 "메이커 골목"에서 의상실과 양복점은 구경하기 힘들다.
중심 상권에서 약간 벗어나 보세양품점 사이에 "새로본 의상실"이라는 당당한(?) 간판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새로본 의상실은 현재 주인인 김상귀 씨(52)가 1974년에 송옥 의상실을 인수한 뒤 이 장소에서만 30년이 된 전통 있는 의상실이다.
김씨는 점포의 호황기로 1974-1995년까지 약 20년 간을 잡았다. 1995년을 기점으로 하강국면에 들어서다가 IMF 구제금융 사태로 급속한 매출감소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흔히들 전성기로 꼽는 80년대 중반보다 10년 이상 호황을 누린 점이 이채롭다. 아마도 김 씨의 점포는 그만큼 단골 층이 두꺼워서 그러지 않았나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양복점 위치로는 적합하지 않을 듯한 2층에 자리한 신영 양복점은 1968년도에 문을 연 후 두 번 쯤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급기야는 1년 전 국민은행 옆에서 지금의 우체국 옆 2층 건물로 옮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주인 장한선 씨(68)에 따르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였다 그 후에는 현상유지 정도였다고 한다. 역시나 IMF이후부터는 유지도 불가능한 정도라고 전한다. 할 수 없이 가게 세 때문에 2층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요즘 같은 여름철은 한 달에 한 벌도 어려운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양복점은 정장류 중심이어서 대체로 가을에서 초봄까지가 손님이 밀리는 시기라고 한다. 이것은 결혼시즌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전 같으면 결혼시즌에 신랑은 반드시 정장을 맞추었으나 요즘의 신랑들은 백화점에 간다고 한다. 대신 신랑이나 신부의 아버지들인 50대 중반 이상이 옷 맞추러 온다. 그나마 이들 덕분에 결혼시즌인 가을부터 봄까지 양복점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한 여름인 요즘은 개점 휴업 상태라고.
변화의 직격탄을 맞다
업자들 스스로는 업종 사양화의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주장한다. 정읍지역에 대형 마트들이 생기면서 자영업자들인 소상인의 소점포가 몰락한 점과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실업율을 지적하는 경제적 진단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다른 한 축에는 '레디 메이드'의 기성복 시대, 브랜드 시대의 개막 때문이라는 문화적 진단이 자리한다.
자영업자들의 소점포가 타격을 입은 것은 정읍시내의 활발한 소비주체가 타격을 입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즉 고가의 명품과 값싼 기성복의 중간 정도인 맞춤 옷을 해 입을 수 있는 중산층의 몰락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 또는 새로운 쇼핑문화인 인터넷 쇼핑이나, TV 홈쇼핑, 인터넷 경매 등이 유행하면서 지역 상권에 타격을 입혔다는 견해도 있다. 정읍의 장기적인 경기침체, 지속적인 인구유출, 실업율의 증가 등도 원인으로 추가된다.
경제적 진단과 함께 문화적 진단도 유효하다. 미모사 의상실 주인은 80년대 후반까지도 호시절을 구가하던 의상실이 기성복시대를 맞이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기성복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느림"과 "기다림"에 대한 여유를 잃었다는 것이다. 옷을 맞추려면 먼저 치수를 재고 가봉을 한 다음 날짜에 맞춰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기성복 세대는 이런 절차를 기다릴 만큼 여유가 없다.
자가용을 가게 앞에다 대고 바로 옷을 사는 풍조에 익숙하고 즉석에서 완제품을 확인할 수 있는 신속함 때문에 기성복을 찾는다고 미모사 의상실 주인은 말한다.
옷 시장의 양극화 또한 맞춤옷의 입지를 축소시켰다. 가격대가 기성복과 브랜드 옷의 중간정도인 맞춤옷은 기성복과 명품으로 양극화된 의류시장에서 생존전략을 찾지 못했다.
의상실이나 양복점의 이용에서 오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려면 맞춤옷의 "맛"을 알아야 한다고 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50대 중반 이상이라야 맞춤 옷의 "맛"을 아는 문화를 접해보았다. 자연스럽게 50대 이상이 의상실과 양장점의 주 고객층을 이루게 된다.
단골손님들은 존속의 이유
호시절에 약 60 여 개가 성업 중이었다는 정읍시내 의상실이 이젠 10 여 개 정도로 그나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의상실과 양복점의 전업은 운영주체가 남자와 여자라는 점에서 방향이 달라진다.
양복점을 운영하던 사람들은 수선을 겸할 수 있는 세탁소로 전업한다. 반면 대다수가 여자들인 의상실 운영자들은 수선업으로 전업한다. 수선집보다는 수선과 세탁이 가능한 세탁소가 생존 경쟁률이 높아 양복점 주인들의 변신이 의상실 주인들에 비해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랑곳없이 자리를 고수하거나 자리를 옮기면서 혹은 집으로 들어가 방 하나로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계속 옷을 만들게 하는 저력은 어디서 올까? 그것은 단골손님들과 장인으로서의 프라이드였다.
새로본 의상실 주인 김상귀 씨는 한달 간의 전표를 보여주며 단골 고객의 40%가 서울, 광주, 목포, 전주 등지에 사는 외지인임을 강조했다. 정읍에 살면서 드나들었다가 이사한 후에도 꾸준히 찾아온다고 전했다. 멀리서 이용하기 때문에 한번 주문하면 많은 분량과 품목을 주문한다. 이들에게는 완제품을 택배로 부쳐주고 있었다.
시내 명동거리에 있다가 집으로 들어가서도 의상실 간판을 걸고 있는 미모사도 단골손님 때문에 계속하게 된다고 말한다. 10년에서 30년까지 오래된 단골 손님이 미모사 간판을 못잊어 하는 점이 문을 닫지 못하게 한다. 안오다가도 70대가 되면 사입을 수 있는 폭이 적어서 다시 고객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고.
미모사의 주인은 문을 닫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은 모두 재단과 미싱을 다 할 수 있는 사람들임을 지적했다. 재단 만하고 인력을 고용해 미싱을 맡기는 사람들보다 버틸 수 있는 경쟁력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모든 공정을 혼자 소화해내는 이들은 분명 장인들이었다.
장인들에게는 장인정신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옷이 예쁘게 나오면 성취감을 느낀다. 손님에게 반드시 옷을 입혀본 다음 보낸다. 밤 세워 만들어서 입혔을 때 예쁘면 힘들었던 것을 잊게된다"는 미모사 주인의 말은 장인정신의 표출이다.
이러한 장인 정신으로 이들은 업종이 궤멸할 수 있는 도도한 시대적 흐름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라디오시대가 갔을 때, 영화의 시대 후에 TV시대가 왔을 때 라디오나 영화의 운명은 정해진 듯 했다.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라디오나 영화는 비록 뒷전으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제 몫을 다하는 매체로 살아 남았다.
이를 본보기로 살아 남으려면 의상실과 양복점에게 틈새공략 못지 않게 세대 교체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육성이 필요하다. 정읍의 의상실과 양복점에서 일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없는 것은 그래서 비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