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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성삼재-여원재))(251019. 일)(낙동산악회 20기 - 01구간)
□ 때 : 2025. 10. 19(일)
□ 곳 : 성삼재~작은고리봉~묘봉치~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리 노치마을~노치샘~(덕운봉)~수정봉~입망치~여원재(약 17km-낙동 자료, )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8명
□ 날씨 : 흐림
□ 길 : 흙길+널빤지 길+푸석돌 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5. 10. 19(일) 10:03~18:02(8시간, 쉰 시간 포함)
□ 푯말에 터 잡아 셈한 거리
○ 성삼재—1.0km—작은 고리봉—2.0km—묘봉치—2.3km—만복대—2.0km—정령치—0.8km—큰 고리봉—2.9km고기 삼거리—2.1km—노치마을—1.9km—수정봉—1.2km—입망치—3.1km—여원재(=총 19.3km)
※ 이 거리는 실제와 다를 수 있음.
□ 간추린 발자취(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10:03 성삼재에서 길 나섬.
○ 10:06 헬기장
○ 10:31 (작은) 고리봉(1248m-‘푯돌’)
○ 11:05 묘봉치(1089m-‘푯말’)
○ 11:53~12:03 만복대(1438m-‘푯돌’), 머묾.
○ 12:47 정령치(1172m-‘푯말’)
○ 12:55~13:12 점심밥
○ 13:14 |/ 「마애불상군 · 개령암지」 갈림길
○ 13:19 「정령치 차단성」
○ 13:30 (큰) 고리봉(1305m-‘푯말’)
○ 14:43 아스팔트 찻길, 버스 정류장
○ 15:00 |/ 「노치 마을」 갈림길
○ 15:08 「덕치 보건 진료소」
○ 15:10 「노치 경로당」
○ 15:12 「노치샘」(해발 550m)
○ 16:10~16:17 수정봉(804.7m-‘푯돌’)
○ 16:44 입망치
○ 18:02 여원재[영재](470m-‘푯말’), 산행 끝.
구절초
용담
용담과 과남풀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른다
정령치 생태 통로
정령치 쉼터[휴게소] 주차장
산국
'산국화', '들극' , '들국화' , '야국' 등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대원들이 바래봉 쪽 지리산 서북능선으로 길을 잘못 들까 걱정하면서 큰 고리봉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생강나무
'새앙나무', '아구사리' 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노치마을 오른쪽 뒤로 수정산이 보인다
※ 다른 사진과 글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 또는 네이버(naver) 블로그에서 한메 푸른솔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부푼 꿈을 안고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20기를 출발하는 날이다.
2025. 10. 19(일) 07:00쯤 000 역을 떠난 버스는 2시간 47분쯤 달려 성삼재에 닿았다.(09:47)
성삼재 100m쯤 아래부터 성삼재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길에는 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댄 승용차들이 길을 막고 있어 오르고 내리는 차들이 한꺼번에 굴러갈 수 없는 지경이었다.
성삼재 일대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 둘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맑았으면 저 아래 구례군과 하동군, 섬진강 줄기 일부가 내려다 보였을 것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길 나설 채비하고 무리 지어 사진을 찍고 성삼재 고개 조금 아래, 만복대 들머리를 나섰다.(10:03)
이곳 들머리에서 만복대까지는 5.3km다.
들머리에서 3분쯤 뒤 작은 헬기장에 닿았다.(10:06)
안개 낀 날씨 탓에 길은 빗물에 젖어 질퍽거렸고, 미끄러웠다.
물기 많은 나무뿌리는 되도록 밟지 않는 것이 좋고, 물기 머금은 돌이나 바위는 조심스럽게 걷는 것이 좋다.
헬기장에서 25분쯤 뒤 고리봉(1248m-‘푯돌’)에 닿았다.(10::31)
‘고리봉’ 이라 써놓은 푯돌이 있지만, 실제는 ‘작은 고리봉’이다.
작은 고리봉에서 34분쯤 뒤 묘봉치(1089m-‘푯돌’)에 닿았다.
한자를 좋아하는 풍습이 고개 이름에 굳이 ‘치(峙)’를 써서 어감도 좋지 않고, 쉽게 알아듣기도 어렵다.
‘묘봉 고개’나 ‘묘봉고개’로 쉽게 썼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쉽고,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쓰고자 하는 내 미련스러운 고집이 지나친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묘봉치에서 48분쯤 뒤 만복대(1438m-‘푯돌’)에 닿았다.(11:53)
성삼재에서 3.1km를 걸어왔다.
만복대에 오르기 전 하늘이 잠깐 열렸다.
구름이 살짝 비켜 간 산 아래 풍경은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구름이 걷혔다...”고 소리를 질렀다.
‘만복대’와 같이 봉우리 이름에 ‘대’(臺)가 붙은 곳은 백두대간 길에도 ‘문장대’, ‘문복대’ 따위가 있다.
만복대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사진 찍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많은 사람이 우리 일행인 줄 알았으나, 실은 정령치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었다.
만복대 푯돌을 끼고 사진 찍는 사람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몇 가지 자태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쉽기도 했다.
내 뒤에 서 있던 사람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찍었다.
10분쯤 머문 뒤 만복대를 나서(12:03) 44분쯤 뒤 정령치(1172m-‘푯말’)에 닿았다.(12:47)
만복대에서 정령치에 이르는 길에는 정령치 쪽에서 무리 지어 올라오는 사람들이 300명도 넘는 것 같았다.
산에서 걸을 때 반대편에서 무리 지어 걷는 사람들과 맞닥뜨릴 때 난감한 일이 많다.
산에서도 ‘오른쪽 걷기’[우측통행]를 지키면 서로 편리한데, 실제는 내 희망 사항일 뿐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오른쪽 걷기’만 실천해도 서로 편리하고,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시내에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오른쪽 걷기’를 산에서까지 바라는 내가 너무 욕심꾸러기요 세상 물정 모르는 원칙주의자(?)인가 싶다.
내가 일본 북알프스에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이 산에서 ‘왼쪽 걷기’[좌측통행]을 실천하고, 고집하는 것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잠깐 내 ‘오른쪽 걷기’와 일본 사람들 ‘왼쪽 걷기’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때 나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내가 일본에 갔으니 그들이 실천하는 ‘왼쪽 걷기’를 따랐다.
영국처럼 왕이 있는 나라는 사람이나 차량이 모두 ‘왼쪽 통행’[좌측통행]을 시행한다.
정령치를 ‘정령재’라고 불렸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정령치는 “서산대사(西山大師)의 황령암기(黃領岩記)에 따르면 기원 전 84년에 마한(馬韓)의 왕이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鄭) 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城)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신라시대 화랑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라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정령치는 성삼재에서 7.3km 거리다.
전에는 만복대 쪽에서 737호 지방도에 내려서 쉼터[휴게소]를 거쳐 다시 산뜽성(이)에 올라섰으나 몇 년 전 만복대와 큰 고리봉 쪽 산등성을 이어주는 ‘생태 통로’ 공사를 하여 쉼터[휴게소]에 내려서지 않고 바로 산등성을 계속 걸을 수 있다.
대간 길을 걷는 사람들이 편리하기도 하지만, 산등성을 오가는 동물들이 안전하게 정령치를 건널 수 있는 편리한(?) 길이기도 하다.
지리산에 풀어준[방사한] 반달가슴곰 가운데 몇 마리가 덕유산 쪽까지 이동하여 발견된 것이 몇 년 전 일이다.
사람만 백두대간을 걷는 것이 아니고 동물도 백두대간, 한반도 등줄기를 오가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옛날에는 백두산 호랑이가 지리산까지 내려왔는지 모를 일이다.
일제가 한반도를 지배할 때 일본 포수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불법으로 백두산 호랑이를 잡았다고 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망가뜨린 부분이 광범위하고 치밀했다.
정령치에서 8분쯤 걷다가 길옆에 자리를 잡고 승승장구 님 누님, 왕서방 님과 한자리에서 점심밥을 먹었다.(12:55)
점심밥을 치르고 길을 나서(13:12) 1분쯤 뒤 「마애불상군 · 개령암지」 갈림길에 닿았다.(13:14)
이 길을 몇 번을 걸었으나 늘 시간에 쫓기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각각 300m와 200m 거리인 「마애불상군」과 「개령암지」 들르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발 느린 내 처지를 생각하고 그곳으로 가지 않아 서운하다.
이 갈림길에서 5분쯤 뒤 「정령치 차단성」 푯말이 있는 곳에 닿았다.(13:19)
성을 이룬 돌이 제법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정령치 차단성」은 서산대사가 쓴 “「황령암기」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난리를 피해서 이곳에 도성을 쌓았는데 그 때 황 장군과 정 장군에게 그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고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옛날 수많은 백성들이 동원되어 이 성을 쌓았을 것이다.
노역에 동원되었을 백성들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정령치 차단성」에서 11분쯤 뒤 고리봉(1305m-‘푯말’)에 닿았다.
네오 대장 님이 대원들이 바래봉 쪽으로 길을 잘못 들까 걱정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실제는 ‘큰 고리봉’으로 앞으로 죽 뻗은 산등성(이)을 따라 계속 가면 세걸산~세동치~부운치~팔랑치~바라봉~덕두산을 거쳐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로 갈 수 있다.
지리산 태극 이어걷기[종주]를 할 때 걷는 인월~덕두산~바래봉~세걸산~큰 고리봉~정
령치~만복대~성삼재를 잇는 지리산 서북능선 길이다.
큰 고리봉에서 1시간 13분쯤 뒤 「고기리 삼거리」 2차선 아스팔트 길에 내려섰다.
(14:43)
이 갈림길에서 찻길을 따라 걷다가 17분쯤 뒤 「노치마을 갈림길」에 닿아(15:00) 오른
쪽 「노치마을」 쪽으로 들어섰다.
앞쪽으로 노치마을과 수정봉이 보인다.
노치마을 갈림길에서 12분쯤 뒤 노치샘(해발 550m-‘푯말’)에 닿았다.(15:12)
노침샘은 “원래 고려시대 절터로 고승이 도술로 판 샘이라고 한다. 바위에서 나오는
생수는 물맛이 뛰어나 염병(장티푸스) 같은 돌림병이 심하게 돌던 때도 이 물을 마
신 사람은 신기하게 병에 걸리지 않고 병을 이겨냈다고 전해오고 있다.”
《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노치샘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셨으니 건강에 도움이 되겠다.
돌림병 따위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노치샘에 가서 신비한 물을 마시도록 권한다.
몇 년 전 일이지만, ‘메르스’, ‘사스’,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때[창궐하던 때]
이곳 노치마을 사람들은 돌림병을 잘 이겨냈을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 따위로 공포에 휩싸였을 때 김치, 마늘, 고추 따위를 먹으면 돌
림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속설이 퍼지기도 했다.
어려움이 닥치면 갖가지 극복 방안을 궁리하고 찾아내고, 그럴싸한 말로 과학적인 근
거가 있는 듯이 주장하기도 한다.
노치마을은 “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속하는 마을로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회덕리와 노치리를 병합하면서 회덕과 노치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덕치리가 되었다.
덕음산, 지리산, 만복대 등의 산줄기의 높은 곳에 갈대가 많아 갈재라고 하다가 ‘갈대 노(蘆)’ 자를 사용하여 한자식 표기인 노치리가 되었다.”고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노치마을 푯말은 마을 뒤 500년 되었다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있는 「당산제전(堂山祭典)」 푯돌이 있는 곳에 세워놓았다.
마을에 푯말 하나 세울 공간이 없어서였을까?
마을에 세워 두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노치샘에서 55분쯤 뒤 수정봉(804.7m-‘푯돌’)에 닿았다.(16:10)
수정봉은 노치마을에서 1.7km 거리다.
노치샘에서 수정봉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가파른 길로, 잘 자라지 않는 소나무가 많이 있었고 솔가리도 길에 알맞게(?) 깔려 있어 마치 융단[카펫] 위를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수정봉에 닿기 전에 ‘덕운봉’ 이라는 푯말이 있었으나, 지도에는 없는 이름이다.
수정봉은 옛날 “산 중턱에 수정이 캐던 바위가 있어” 그 이름을 얻었다고 했으나 지금은 그 자취를 볼 수 없다.
푯말에 따르면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여러 번 걸었어도 한 번도 제대로 기암절벽을 보지 못했다. 내 눈썰미가 무딘 탓인지...
수정봉 푯말이 낡아, 사진은 빛이 바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글자도 판독하기 어려웠다. 새로 산뜻한 푯말을 만들어 세웠으면 좋겠다.
시설물을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순찰하여 빛과 색이 바래고, 깨어지는 따위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설물을 새것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승승장구 님 제안으로 등 가방[배낭]에 있던 과일을 꺼내 같이 먹었다.
7분쯤 머물다 수정봉을 나서(16:17) 27분쯤 뒤 입망치에 닿았다.(16:44)
입망치는 노치마을, 여원재, 운봉읍 엄계리, 이백면 과림리 등 네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작은 고개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이 고개를 많이 이용하지 않았나 싶다.
입망치는 노치마을에서 3.0km, 여원재까지는 3.1km 거리다.
입망치에서 여원재 사이에는 시멘트 산길[임도]과 수풀 사이로 난 산길을 넘나든다.
입망치에서 1시간 19분쯤 뒤 여원재[영재](해발 470m-‘푯말’)에 닿아(18:02), 산행을 마쳤다.
여원재[영재]는 “전북 남원시 이백면과 운봉읍 사이에 있는 고개로 산경표와 대동여지도 상에는 여원치로 표기되어 있으나 주민들은 영재라고 부른다.
백두대간 지리산 주 능선으로 이어지기 직전의 고개로, 지리산 고리봉으로 이어진다.
기원 전 삼한시대 마한의 별궁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 궁터가 남아 있는 계곡, 정상부의 주지봉 산신단에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들어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간절한 소원이 있는 사람은 주지봉 산신단에 가서 소원을 빌어 볼 일이다.
20기 백두대간 발걸음 기획하고 집행한 김정호 회장, 권재구 · 네오 · 심민철 대장 님, 운전기사 님 수고하셨고, 대원들도 수고 많이 했다.
아침에 홍시를 제공한 승승장구 · 배미정 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모든 대원들 활기차고 열심히 걷는 모습 보기 좋았다.
진부령까지 즐거운 백두대간 길 이어 가기 바란다.
(고침 : 홍시를 제공한 배미정 님, 홍시를 운반한 승승장구 님으로 고칩니다.-10/23(목))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함)
○ 노린재나뭇과 갈래 : 노린재나무(?)
○ 녹나뭇과 갈래 : 비목나무,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때죽나뭇과 갈래 : 때죽나무(?)
○ 마편초과 갈래 : 작살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 범의귓과 갈래 : 산수국
○ 소나뭇과 갈래 : 리기다소나무[미국삼엽송, 아메리카소나무], 소나무, 일본잎갈나무, 잣나무, 전나무[젓나무, 종목(樅木)](?)
○ 옻나뭇과 갈래 : 개옻나무
○ 운향과 갈래 : 초피나무[제피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서어나무, 오리나무
○ 장미과 갈래 : 국수나무, 마가목[남등(南藤), 석남등, 정공등], 산딸기나무[산딸기],팥배나무[감당 01(甘棠), 왕잎팥배, 왕팥배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산앵두[산앵두나무, 꽹나무, 당채, 산이스랏나무, 이스랏나무, 천금동], 산철쭉, 진달래[진달래꽃, 진달래나무, 두견, 두견화, 산척촉], 철쭉[철쭉나무, 척촉(躑躅), 산객(山客)]
○ 차나뭇과 갈래 : 노각나무
○ 참나뭇과 갈래 : 밤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 측백나뭇과 갈래 : 노간주나무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나무
○ 으름덩굴과 갈래 : 으름덩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떨기나무
○ 백합과 갈래 : 청미래덩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식물
○ 노박덩굴과 갈래 : 미역줄나무[미역순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식물
○ 볏과 갈래 : 조릿대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국화과 갈래 : 구절초, 미역취, 산국[들국, 들국화, 산국화, 야국], 산비장이, 쑥부쟁이참취(?)
○ 넉줄고사릿과 갈래 : 넉줄고사리[골쇄보, 석모장, 인초, 해주골쇄보, 호손강, 후강]
○ 백합과 갈래 : 둥굴레, 비비추(?), 산부추
○ 양치식물 고사릿과 갈래 : 고사리
○ 앵초과 갈래 : 까치수염
○ 용담과 갈래 : 과남풀[용담, 네귀쓴풀, 용담초, 초용담]
○ 장미과 갈래 : 산오이풀, 짚신나물
○ 제비꽃과 갈래 : 알록제비꽃
○ 질경잇과 갈래 : 질경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풀
○ 새모래덩굴과 갈래 : 댕댕이덩굴(?)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노고단로 성삼재 일원에 차가 너무 많다
사람은 편안한 것에 맛을 들이면 계속 편안한 것만 찾게 된다.
노고단로를 넓히면서 산을 많이 깎아냈다.
처음에 환경 단체들이 문제 제기했다.
길을 넓힘으로써 오가는 차량이 늘어나고, 내뿜는 배기가스가 성삼재 일원이나 노고단, 나아가 지리산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 걱정했다.
성삼재 탐방지원 센터 앞에 주차장이 있으나 그것으로 모자라 성삼재 일원 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가는 느낌이다.
지리산이나 노고단, 반야봉, 뱀사골, 피아골 따위를 오가는 사람들이 늘면서 차량도 계속 늘고 있다.
이를 해소할 방법은 없을까?
전기 버스만 운행하는 방법은 어떨까?
강원도 백담사와 용대리를 운행하는 셔틀버스 사례는 참고할 만하지 않을까?
물론 등산객이나 이용객은 당장 불편할 것이고, 불만이 많을 것이다.
중지를 모아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어렵고 지난하고 오랜 시일이 걸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귀중한 자연 환경을 우리 후손에게까지 온전히, 제대로 물려주기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닐까?
2. 게으르지 않게 스스로 가하는 채찍
사람은 어떤 일이나 과업에 손대고, 시작할 때 처음 발을 떼기가 어렵다.
누구나 처음에는 일에 나설지 말지를 두고 망설임과 까닭 모를 불안이 밀려온다.
앞으로 일을 진행하는데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이나 공포를 뚫지 못하면 우유부단 망설이기만 하고 아무 일도 못한다.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과단성 있고, 결심이 굳건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에 팔을 걷고 나서게 된다.
백두대간 길을 거의 2년에 걸쳐 걷는 일은 결심이 더욱 어렵다.
정해진 날짜에 갈 수 있을까?
집안일이 생기면 어쩌나? 등등 핑곗거리는 얼마든지 많고, 만들 수 있다.
망설임이나 괜한 불안 따위 발길을 붙드는 온갖 제약 요인을 과감히 뿌리치고 일단 나서는 것이다.
나서고 나면 온갖 불안과 걱정거리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걷는 요령은 천천히 자기 방식으로 터득하고 익히면 될 것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산을 많이 걷고 나면 다음 날이나 그 다음 주 내내 몸이 가볍고, 기분은 더없이 상쾌하게 된다.
나는 이를 일러 ‘몸의 역설’(逆說)이라고 이름 붙인다.
몸은 자꾸 움직여야 가볍게 된다.
움츠리고 활동량을 줄이면 이내 아무 일이나 하기 싫고, 몸은 무겁고, 자꾸만 편안한 것, 쉬는 일만 찾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 일을 놓지 않는다.
발은 느리지만 꾸준히 산을 걸으려 한다.
게으르지 않으려 자신을 자극하고, 어쩌면 스스로 어렵고 힘든 일을 일부러 하려 한다.
백두대간 길은 스스로 단련하고 게으르지 않게 하려는 작은 노력 가운데 하나다.
또 하나 있다.
성실하고, 활기찬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어디에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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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기 출발일의 날씨는 흐리고 조망은 없었지만 많은 땀 흘리지 않아 걷기는 나았던 것 같습니다. 맑은 날이었으면 지리산 서북능선길의 풍경을 알차게 감상할 수 있었겠지요. 아쉬움이 남습니다.
'몸의 역설' 처음 듣는 말이지만 공감합니다.
긴거리 수고했습니다.
사진 감사합니다.
참고로 대봉감은 배미정님께서 준비했고 저는 차에 올렸을 뿐입니다.😄
미정.,! 언니.,
달달 홍시.,!
맛있게 잘 먹었어요., 당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지요.
날씨는 사람을 상관하지 않고 때때로 바뀌므로 사람이 날씨에 맞춰야 하지요.
구름과 안개 낀 날씨에 짧은 순간이나마 구름과 안개가 열리기도 해서
그 순간을 잘 잡으면 멋진 풍경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비가 내리지 않은 것 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고기리 삼거리에서 노치마을로 가는 길에 있던 가로수는 '대왕참나무'라고 합니다.
남원시청에 문의하여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대왕참나무'는 "북미 동부가 원산지"라고 합니다.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은, 외래종 나무입니다.
나는 국어사전에 오르지 않은 식물 이름은 거론 자체를 안 하는 편으로,
우리나라 식물만 중히 여기는 어쩌면 '국수주의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기는 해도 조경업자들이 외국산 나무를 들여와 가로수로 권장하는 모양입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한길(박종래) 대왕참나무
- 외래종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나라에는 안맞는 것 같아요. 제가 본 그 나무는
벌레의 보금자리인 것 같았습니다.
(벌레 먹은 잎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오란 '금계국'
여름철이면 대한민국 빈 토지가 이 꽃으로 뒤덮히죠.
앞으로 이 꽃이 생태계를
엉망으로...
아쉾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길선배님 산행기에는 미처 생각지 못햇던 역사적인 내용이 많습니다.늘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수고하셨습니다ㅎ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던 것 같습니다.
걸으면서 쓸데없는 잡생각을 많이 합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역시. 한길, 행님. 기록은,, 나의 행적과 똑
같아서, 내가
산행기를 적을
필요가 없어요.
더하기 풍경, 풀꽃, 인물 사진까지 있으니,, 굳이
나까지.-나중에
역사로.-보존!
이긍~~핑계입니당~~~
알맹이 없는 말만 잔뜩 늘어놓아 미안합니다.
식물 이름은 계속 배워가고 있는 중으로 걸음마 단계입니다.
배울수록 어려운 것은 예를 들어 '며느리밥풀' 하면 될 것을,
그 종류가 아주 많아 그 작은 갈래까지는 잘 알지도 못한 상태로 제대로 익히려니 머리가 지끈지끈거립니다.
허우적거리고 있지요.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청보리조경순 방금.
산행기 올렸어요.
"나는 이를 일러 ‘몸의 역설’(逆說)이라고 이름 붙인다.
몸은 자꾸 움직여야 가볍게 된다.
(중략~~)
성실하고, 활기찬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어디에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안빈낙도 사상의 뿌리를 둔 의미들은 다양하겠지만, '몸의 역설과 산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은 현대사회에서 안빈낙도와 견주어도 결코 낮은 사유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자연 속에서의 누림이 있겠습니까 이 즐거움이 한길님 낯빛에서 비추니까 저도 따라 배워야 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걸으면서 온갖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갈래를 제대로 추리기도 어려운 잡탕 생각 뿐이지요.
영화 필름처럼 머리를 스쳐가는 숱한 이야깃거리.
내 머리 속에 남아있지 못하고, 미꾸라지나 뱀장어처럼 빠져나가기 일쑤입니다.
아마 95% 이상은 흘러가고, 떠내려가고.맙니다.
될 수 있으면 적바림[메모] 해 두려고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을 만나면서 그 사람이 가진 장점을 유심히 보고 닮아가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내 스승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수십년을 한결같이 국토사랑, 대간 사랑으로 걷고, 또 기록으로 남기시고ᆢ
참으로 대단하시다는 표현을 넘어, 감동을 받게 됩니다.
대간을 몇번을 타시고, 때론 지루한 코스도, 때론 흥미가 들한 코스도 있을법한데, 한결 같으신 그 마음이, 대간 초보자에겐 많은 귀감이 됩니다.
큰형님께선 진정한 대간꾼이신 듯 합니다. 낙동 대간팀에 함께 하시는 것 자체로써, 너무 든든하고, 영광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당일 긴거리 산행,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누구보다 산을 사랑하는 제이 님이 낙동산악회 백두대간에 참여하여 낙동산악회를 빛내고,
대원들에게 용기와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늘 밝고 빠른 걸음이 돋보입니다.
이번에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거뜬히 날아가는 건각을 과시했습니다.
내 느리고 굼뜬 발걸음이 대원들에게 폐를 끼침을 알기에 미안한 마음입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