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배
낙타는 자신이 짊어진 생의 무게를 탓하지 않는다. 예부터 사막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를 ‘사막의 배’ 라고 불렀다. 낙타는 그 넓은 초원을 멀리하고 왜 하필 사막으로 가서 살게 되었을까? 살아가는데 그 어떤 생명들에게도 가장 살기 힘든 곳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결론부터부터 말하자면 낙타는 경쟁이 없는 곳을 찾아 스스로 사막으로 간 것으로 생각된다. 웬만한 동물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곳, 경쟁도 없고 천적도 없는 곳에 정착하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외모를 변화시키면서 내성을 키워 생리적으로 적응하여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사막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유목민들에게 생존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였다.
목마른 호수 하나 짊어진 낙타는
나침판도 길을 잃는
사막을 다독이며 길을 간다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그 등에 얹혀 나도 떠나간다. (사막에서- 필자의 졸시)
나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밀림에서 촬영한 동물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TV를 통해 자주 본다. 명화라 일컫는 외국영화나 연속극보다는 동물의 세계를 다룬 작품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인간의 세계보다도 더 질서 있고, 합리적이고, 진리가 깃든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서 많은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동물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너무 많다. 특히 혼잡하고 건조한 21세기를 살아가야할 우리들에게 낙타의 예지를 터득하여 가속도가 붙은 디지털문명에 함몰되어가는 현실에서 탈출을 권유하고 싶어서이다.
낙타는 위기에서 정공법으로 승부를 거는 동물이다. 야구 투수로 치자면 화려한 변화구를 던지는 기교파 투수가 아니라 묵직한 직구로 승부하는 정통파 투수인 것 같다. 사막에서 가장 힘든 건 작열하는 태양이다. 다른 동물들이 그늘이나 땅 속에 들어가 더위를 피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얼굴을 햇볕을 향해 마주본다. 햇볕을 피하려고 등을 돌리면 몸통의 넓은 부위에 열을 받아 화끈거리지만 마주보면 얼굴은 뜨겁더라도 몸통이 그늘져 그만큼 더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낙타는 살아가면서 사막에 적합한 구조로 변해 우선 다리가 길어졌다. 한여름 기온이 60~70도까지 오르는 사막에선 몸이 지면과 떨어져 있어야 유리한데, 낙타는 긴 다리로 이런 어려운 점을 극복해 왔다. 실제로 낙타의 몸통 온도는 긴 다리 덕에 발바닥이 있는 모래바닥보다 온도가 무려 10도 이상 낮다. 거기다 두꺼운 털은 햇빛을 반사하고, 모래에서 올라오는 열을 차단하는 단열재 역할을 해 강한 햇볕과 무더위를 견뎌왔다. 이뿐만이 아니라 낙타의 머리는 햇빛가리개 모자처럼 생겼다.
눈부신 햇빛이 직접 눈에 닿지 않도록 넓적한 뼈가 눈 주위를 덮어 햇빛가리래 역할을 한다. 이는 마치 뜨거운 햇볕과 거센 모래 바람이 부는 지역에서 이슬람 여성이 차도르를 쓰고, 남성이 머리에 터번을 두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얇은 눈꺼풀은 모래바람이 눈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주고 눈물샘에서 나오는 눈물은 눈이 마르지 않게 적셔 주고, 모래를 씻어내기도 한다. 이 눈물은 다시 코와 연결된 관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고, 코 밑에 있는 구멍은 숨을 쉴 때 나가는 수분을 다시 빨아 들여 수분 낭비를 막는다.
몇 년 전 이집트를 여행할 때 피라미드를 보고 난 후 낙타를 타보며 그 세계를 체험해보았다. 그 동안 사진이나 TV 에서는 자주 봤으나 직접 등에 타보기는 처음이었다. 낙타는 다른 동물과 달리 관절이 반대로 되어있어 일어설 때 뒷다리부터 일어서기 때문에 몸이 앞으로 갑자기 쏠려 까닥하면 떨어질 뻔 했다. 불안하게 타고 보니 안장에 있는 자그마한 봉 같은 걸 부여잡고 균형을 잡는데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이 의연하고 멋스러워 나도 모르게 허리를 곧추 세우고 먼 허공에 시선을 던졌다.
모래 언덕을 넘어 한 바퀴 돌아왔지만 끝없이 펼쳐진 사막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고의 전쟁영화 중의 하나인 ‘아라비안의 로렌스’에서 말 대신 낙타부대가 빠른 속력으로 적진을 향해 달리던 용감한 모습은 또 다른 변신을 보여주었다. 때에 따라 시속 65Km 이상 질주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낙타가 평상시에는 더위를 적응하는데 체온조절뿐만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지혜를 발휘한다. 목마름과 더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도 빨리 달리거나 서두르지를 않는다.
느긋하고 여유 있게 걸어 스스로 열을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에 사막을 횡단할 수 있는 힘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날 사람들은 조금만 불편해도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심지어 바쁘다는 핑계로 에스컬러이트에서 조차 걷거나 뛰는 현대인들에게 느리고 여유 있게 게 사는 이치의 실례를 보여주는 것이 낙타의 삶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외에도 많은 동물이나 미물微物에게서조차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표현대로 나 자신부터 짐승들보다도 더 도덕적으로 진솔하게 살아왔는지 반성을 해본다.
절대 그렇지 않았음에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우리는 때때로 낙타가 되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엄습해오는 외로움과 싸워야 하고, 땅 속 깊이 숨겨진 물소리를 찾아내듯 잠자는 영혼을 불러내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 오늘도 낙타는 뜨겁고 목마른 모래 언덕을 다독이며 바람에 지워진 이정표 없는 먼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밤하늘 멀리서 별똥별 하나가 긴 획을 그으면 낙타의 하루의 항해도 저물어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