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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호산나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우리보배
23년02월12일 호산나교회, 삼하17;15-23, 보혈과 말씀으로 덮어라,
오늘 말씀의 내용은 바후림성에 사는 어느 여인이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라는 두 사람을 우물 속에 감추고 숨겨주어 살리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의 세 번째 아들 압살롬은 자신의 잘남 때문에 추종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왕이라고 선포하면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겠다고 왕궁을 향해 군사들을 이끌고 다윗이 있는 왕궁을 향해 쳐들어옵니다. 다윗왕은 위급한 나머지 궁을 비우고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두 장수가 나옵니다. 아히도벨이라는 장수는 압살롬의 최측근으로서 비상한 머리를 가진 사악한 장수이고요, 후새라는 장수는 다윗의 친구이자 다윗에게 충성을 다했던 장수입니다. 후새는 압살롬에게 충성하는 척하지만 사실 다윗의 심복입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군사 일만 이천 명만 주면 특수부대를 만들어서 다윗의 정면을 쳐서 다윗왕의 목을 가져오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그때를 맞추어서, 다윗 왕은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이 책사로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삼하15장31절,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히도벨이 세운 계략을 실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아히도벨은 계략의 실패로 화를 못 이겨 자살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압살롬의 마음에 또 다른 누군가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마음을 넣어줍니다. 번뜩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압살롬은 장수들에게 (삼하17:4-5), 아히도벨의 계략은 아주 좋은 전략이구려. 그러면 후새를 불러서 그의 의견도 한 번 들어봅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압살롬은 입궁한 후새에게 아히도벨의 계략을 이야기하면서 ‘후새장군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의견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하나님 방법대로 안하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혼란이옵니다.
후새는 아히도벨이 세운전략이 너무나 좋은 계략인 줄 압니다. 하지만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이요, 아버지는 이스라엘의 영웅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입니다.라고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삼하17: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이 사실을 안 후새는 왕궁에서 나와서 급히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찾아가서 왕궁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전해주면서 다윗왕과 일행들에게 지체하지 말고 빨리 요단강을 건너 도망가라고 알려줍니다.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은 각각 아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를 불러서 빨리 다윗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합니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다윗왕이 머물고 있는 진영으로 빨리 달려가서 소식을 전하려고 하는데, 이런 움직임을 압살롬의 군사들이 눈치를 채고 압살롬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군사들을 풀어서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를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다윗왕을 살리기 위해서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압살롬의 군사들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몰래 바후림성의 어느 여인의 집으로 들어가서 숨게 되는데요. 마치 여인의 집에는 우물이 있는 것이 예요.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급하게 우물 속으로 들어가서 숨습니다. 그리고 찧은 곡식을 널어둡니다.
우리 인생 앞에 고난이 위기가 온다해도 주님의 보혈로 말씀으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성도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1, 주님의 보혈로 덮어야 위기를 극복하고 이깁니다.
삼하17:18 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삼하17:19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긴급한 상황입니다.
잡히는 날엔 자신도 죽을 뿐 아니라 다위왕의 목숨도 위태로운 것입니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닙니다. 위기 속에서도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 여러분의 위기 속에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물 속에 숨었다는 것은 세례 즉 죄 씻음을 의미하는 것이고요, 우물 덮개로 덮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덮는 은혜가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야 위기도 극복하고 고난도 이기게 됩니다.
후새는 다윗왕에게 아히도벨의 계략과 자신의 계략을 어떻게 다윗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 사독 제사장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 제사장의 아들 요나단으로 하여금 전령의 사명을 주십니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피난길에 있는 다윗에게 전령이 되기 위해서 움직이는 행동이 압살롬의 군사들에게 수상한 스파이로 지목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압살롬은 급히 군사들을 보내서 이들을 체포하라는 체포령이 떨어지게 됩니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급히 바후림성의 어느 여인의 집으로 들어가서 여인의 도움으로 우물 속으로 들어가서 몸을 피하게 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여인에게 지혜를 주셔서 우물 속으로 숨도록 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물이란 존재는 단순하게 우기에 내리는 빗물을 담아두는 것과 갈증을 해소하는 정도로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우물이란 때로는 고난과 고통의 시련을 역경과 위기를 맞이한 인생들을 물속에 집어넣어 세례 즉 죄를 씻어야만 고통도 시련도 위기도 넘어가고, 축복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경 요소요소에 우물과 함께 등장하는 성경 인물들은 대부분 평탄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인생, 역경의 인생, 고통의 인생, 시련 속에서 위기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물이란 환경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요셉에게도(창37:24), 모세에게도,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도 그들의 삶이 고난과 위기의 인생인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물이란 환경을 항상 등장시킵니다. 신약에서도 고난과 슬픈 인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수가성의 여인이 대표적인 우물가의 여인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물로 세례를 받고 죄 씻음도 받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동네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나단과 아히마아스 전령이 당한 위기는 고난의 위기잖아요. 고난의 위기였지만,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두 사람을 우물에 넣어 죄를 씻기어서 고난도 위기도 넘어가도록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위기를 만났을 때 우물은 목마름을 해소해 주기도 합니다. 우물을 덮는다는 것은 주님의 보혈로 고난을 덮는 것을 의미하지요. 오늘날에도 택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고난이 찾아오고 인생 앞에 위기가 올지라도 고난을 이기도록 위기를 극복하도록, 고난과 위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살포시 덮어 주시는 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닥칠 위기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대신 지게 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오늘 우리들의 인생의 생사고락을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덮어 주시듯 우리들의 인생에도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와 주님의 보혈로 덮는 축복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살이에서 수없이 찾아오는 고난, 고통, 역경, 시련이 마치 성경에 등장하는 우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연속되는 고난과 위기의 순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질 때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승리의 축복으로 뒤바뀌게 되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고난과 위기의 우물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덮어야 할까요? 우리는 앞으로 작은 동산 뒤에 계속 크고 작은 산들로 겹겹이 둘러 쌓여 있는 것처럼 온통 고난과 역경과 시련들로 둘러쌓여서 동서남북이 캄캄하게 보인다 해도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질 때, 우물의 아귀가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들로 쌓여 커다란 복의 우물로 뒤바꿔지게 되는 것입니다.
2, 위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이름만이 이기게 합니다.
삼하17:19,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전혀 알지 못하더라, 곡식은 말씀대로 사는 인생에게 열매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물 아귀를 덮는다는 것은 주님의 보혈로 덮으시고 걱정되시어서 곡식 즉 말씀으로 한 번 더 덮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해코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보혈로 덮고 말씀으로 덮은 것도 부족해서 찧은 곡식을 널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찧는다는 것은 수확한 곡식을 빠는 과정에서 그 곡식의 고통 그 곡식을 빠는 과정에서 그 곡식이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고운 가루를 내듯이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을 잡아 그 유월절과 함께 곡식을 찧어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을 즉 빵을 만들어 쓴 나물과 함께 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모든 재앙과 죽음이 널 넘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12:7-8, 13) 그 유월절을 지키고 나면 바로 연이어서 7일 동안 곡식을 찧어 고운 가루를 내어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을 먹고 무교절을 지키면 그 무교절이 하나님과 화목제물이 되는 것입니다.(출12:15)
쫓기고 쫓기는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급히 바후림 성의 어느 여인의 집으로 들어가서 우물 속으로 들어가서 몸을 피하게 되는데요. 이때 하나님은 바후림성의 여주인에게 빨리 서둘러서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널라는 감동을 주시는 것이 예요. 만약에 우물에 들어가서 숨어 있는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압살롬의 군사들에게 발각이 되는 날에는 이들의 생명은 물론이거니와 다윗 왕의 생명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압살롬의 군사들에게 발각이 되면 자신과 가족들에게, 더 나아가서는 두 전령과 다윗 왕까지도 큰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차분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우물 덮개를 덮고 그 위에 찧은 곡식을 너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막달라마리아처럼 바후림성의 이 여인도 장자 오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생각한 것입니다.
때를 맞추어 압살롬의 군사들이 여인의 집에까지 수색하기 위해서 찾아왔고. 압살롬의 군사들이 여인에게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라는 두 청년이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면서 묻는 순간 여인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여인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데도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으로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20),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라고 말합니다. 군사들은 여인의 말을 듣고 하나도 의심해보지도 않고 요단강 쪽으로 급하게 뛰어나갔습니다. 군사들이 떠났을 때, 비로소 여인은 ‘이제 살았구나.’하면서 긴 안도의 한숨을 내 쉬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여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다윗 진영으로 달려가서 “21절,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나이다.”라고 전합니다. 이에 따라서 다윗 왕과 일행들 모두가 요단강을 무사히 건너가 목숨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위험과 위기가 닥친다 해도 예수님 십자가의 정신을 가지기만 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덮고 이기는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바로 죄 씻음과 동시에 말씀이 임하는 것이고요,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기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당당하고 겸손했습니다. 두려움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고.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위기 앞에서도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압살롬의 군사들을 대면할 수 있는 안정감을 성령 하나님은 주신 평안 그 차제입니다.
만약에 여인이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너무 두려워서 안절부절하면서 버벅거리고 횡설수설했다면 압살롬의 군사들이 여인이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인을 하나님은 안정된 마음으로 붙잡아주시고, 자연스럽게, 태연하게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주시는 지혜로 압살롬의 군사들을 대면했기 때문에 두려움을 이기고 모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바후림 성의 여인은 우물 덮개로 우물을 덮고 그 위에 찧은 곡식을 널라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위기 속에서도 두려움을 떨쳐내었기에, 하나님은 여인의 가족들의 생명도 지켜주시고 건져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고난도 위기도 어려움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고난을 이기는 것도,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두려움을 이기는 것도, 십자가와 예수 이름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보혈로 말씀으로 덮는 은혜가 임하시길 바랍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