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 구속사 강해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보여주는 성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한 나라를 건설하기 전에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을 앞에 두고, 먼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신 것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출 19:4-6)임을 선포하시고 그 증표로 주신 것이 율법과 성막이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말씀으로 통치하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율법의 내용을 근본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친히 언약 체결식을 마치신 후 성막 건설에 대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따라서 성막은 시내 산 언약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성막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심과 통치자임을 표현해 주고 있다.
1.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은 먼저 성소 안에 들어갈 언약궤와 속죄소, 진설병 상, 등대를 만들도록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성막의 모양은 마치 하늘의 보좌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성막은 하나님의 궁정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사들이 둘러서 옹위하고 있는 성소에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언약궤(또는 증거궤)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 백성을 통치하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성막은 하나님이 왕으로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즉 성막은 하나님의 보좌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증표로 세우게 하신 것이다. 그 증거로 항상 성막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표인 쉐키나(구름기둥과 불기둥)가 성막 위에 있었다. 이 쉐키나가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일상의 일을 중지하고 자기의 짐을 꾸린 후 쉐키나를 따라 나섰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곳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려고 길을 떠나시기 때문이다.
쉐키나가 길을 떠나면 제일 먼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그 뒤를 따르고, 이스라엘은 행군의 전열을 가다듬고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쉐키나는 항상 사흘 길을 앞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였다. 그러다가 쉐키나가 어느 곳에 자리를 잡으면 그곳에 성막을 세우고, 성막 주위 사방에 각 지파별로 진을 쳤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대와 같이 성막을 호위하며 그곳에서 쉐키나가 떠오를 때가지 진을 치고 거주하였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을 다스려 나가셨다.
특히 언약궤는 시내 산에서 친히 강림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의 증거판이 보관되었다는 점에서 여호와의 임재를 지시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또한 언약궤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구속하는 법전을 그 안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암시하기도 한다.
2. 하나님과의 만남
성막을 회막(metting tent)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만나시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막에서 교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서 서로 교통을 나누는 것은 제사 제도 안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속죄소는 언약궤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2절)는 말씀은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막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는 먼저 제물을 제사장 앞에 가져다가 사람이 지은 죄를 대신해서 죽인 후 절차에 따라 하나님께 속죄제로 드리게 되어 있다. 속죄제는 번제로 드리는데 제물을 모두 태워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이다. 마땅히 범죄한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임을 당해야 하는데 대신 제물이 죽음으로서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죽음을 상징한다. 그 후 속건제를 드리는데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 속죄제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의당히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고백하여 드리는 것이고, 속건제는 죄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죄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상징으로 드리는 것이다. 또한 죄인 된 자가 죄로부터 깨끗해짐으로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것을 상징하는 제사인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 모든 삶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운데서 살겠다는 결심을 담아 헌신하겠다는 정신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런 후 화목제를 드리게 되는데 화목제는 죄인으로서가 아니라 이미 죄와 죄책으로부터 깨끗함을 입은 자유인으로서, 하나님과 서로 교통을 나누고 화목을 누리는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화목제는 번제로 드리지 않고 거제나 요제로 드리는데, 제사 의식이 끝나면 제사장과 함께 그 제물을 여호와 앞에서 나누어 먹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음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화목 되었음을 표시하고 거룩한 교통을 나눈다는 의미로서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신약에서의 '코이노니아'는 성도들의 교통을 의미하는데 그 말은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뜻으로서 구약의 화목제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속죄소가 언약궤 위에 하나의 몸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과 만나시고 말씀하시며 교제하신다는 사실을 별개로 구별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속죄소에 있는 그룹들은 여호와께서 언약궤 위에 임재하신다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 하나님의 치유(care)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지으면 의당히 죽음으로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인생의 존재의 의미도 드러내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그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의 존재 가치를 충분하게 드러내기 전에 죽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제도가 바로 성막을 중심으로 하는 성결한 삶이었고, 혹 죄로 인해 더럽혀질 경우에는 제사를 통해 성결을 유지하도록 하셨다. 누구나 죄로 인해 죽음 앞에 서게 될 때 제사를 드림으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치유하시어 성결하게 하셨는데, 그 일을 위해 성막을 지으셨고 그의 백성들이 죄로부터 깨끗해 질 수 있게 해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이 항시 성결을 유지하여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다. 그러한 보호 가운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삶의 가치를 다 발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가장 자기의 삶을 온전하게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이처럼 속죄소를 마련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 백성이 늘 화목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진설병을 놓아두는 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상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빵과 포도주를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에게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진설병 상에 음식을 진열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종교적 관점과 다른 점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위해 음식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신 앞에 음식을 진열해 놓는 것이다. 그러나 진설병 상에 음식을 진열해 놓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등대가 발하는 빛과 불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빛과 불은 여호와의 현현과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빛과 불은 하나님의 현현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떨기나무에 타오르고 있는 불을 보고 하나님을 만난 사건을 연상케 한다(출 3:3-4). 따라서 등대의 불이 꺼지지 않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늘 함께 하신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반면에 등대의 불이 꺼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떠나셨다는 진노의 표시가 되기도 한다.
출처: 기독신학공동체 글쓴이: 송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