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낮에 밖에 나가면 덥다는 표현보다는 뜨겁다는 느낌을 실감하고 있다, 이를 피하고자 아침 일찍 길을 잡았다, 도착한 명옥헌에서는 무리 지어 불타오르는 배롱나무 꽃 만큼이나 전국의 사진작가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는 주민 외의 탐방객은 차량 진입을 금지하라는 안내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넓은 주차장을 외면하고 차를 가지고 비좁은 도로까지 차를 세워 둔 모습은 카메라를 모두 버려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흐드러진 빨간 꽃의 정원이련만 지난밤 소나기를 맞은 꽃은 절반이 떨어진 상태지만 그래로 보기 좋다. 연못주위로 배롱나무가 밀집해 있는 꽃 무리 사이로 명옥헌이 부분적으로 운치 있게 드러내 보이고 연못의 섬에 나보란 듯이 서서 꽃 무리를 머리에 이고 뽐내는 배롱나무의 자태가 운치의 맛을 더해주고 있다,
꽃이 세 번 피어야 쌀밥을 먹는다는 옛말을 기억하며 돌아보니 나뭇가지 저마다 붉은 꽃을 매달고 너울거리고 떨어진 꽃잎은 붉은 융단을 만들어 아름다운 자미(紫薇, 배롱나무)의 붉은 정원을 한껏 뽐내며 탐방객을 맞이하고 있다.
담양은 가히 정자의 고장이라 할 수 있다. 그 옛날 임금의 폭정에 무언의 항거를 하고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심산유곡에 은거하면서 시를 읊으며 때로는 후학의 종아리에 회초리로 울분을 토했을 정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남긴 명옥헌, 소쇄원, 식영정, 면앙정, 송강정, 환벽당, 독수정 등은 현세에 이르러 가사 문학의 산실이 되고 있다,
명옥헌 원림은 조선 중엽에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가 산천경개를 벗하며 지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거하면서 만든 정원이다. 오이정은 자연경관이 좋은 이곳에 정자를 짓고 연못을 만들어 주변에 배롱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명옥헌(鳴玉軒)이란 계곡물이 흘러 못을 채우고 흘러넘치는 과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 소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정자다. 정자의 한가운데에 방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 ㅁ자 마루를 놓은 형태다, 명옥헌에서는 거처하면서 시를 읊으며 후학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명옥헌 원림에 있는 연못은 모두 네모난 형태로 가운데는 둥근 모양의 섬을 만들이 놓았다. 이는 조선시대 유행했던 정원으로 이를 방지원도(方池圓島)라 한다,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여긴 선조들의 우주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희도는 1602년(선조 35)에 사마시와 1614년(광해군 6)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큰 뜻이 없었다. 이는 당시 광해군 재위기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모시고자 후산마을에 정착해 산기슭에 망재(忘齋)라는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공부에 매진했다 한다,
명옥헌에 걸려 있는 삼고(三顧)라는 편액은 삼국지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서 나온 글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오희도를 중용하기 위해 멀리 찾아왔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일까? 인조는 반정 직전에 세상을 돌며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다녔는데 이때 만난 선비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