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먹어 본 생선구이
어릴 적부터 생선 냄새가 싫었다. 꼬꼬마 시절부터 집 안에 생선 냄새라도 날라 치면 싫다고 역겹다고 방방거리고 웩웩대며 난리 부르스를 치던 기억이 있다.
학창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생선 냄새가 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집을 나왔었다.
어른이 되어 일식집에 갈 일이 생기면 곁들임 반찬, 일명 스끼다시에 나온 꽁치 한 마리를 보고 아무 죄 없는 서버 언니에게 도로 가져 가라고 인상 쓴 기억도 생생하다.
나는 그만큼 생선이 싫었다.
나이 50이 넘으니 오메가 3를 섭취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기사를 종종 읽는다. 오메가 3가 풍부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그렇다. 등푸른 생선과 견과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두 가지 음식에 오메가 3가 풍부하단다. 그렇다고 안 먹던 걸 찾아 먹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요즘이 어떤 시대야? 영양제가 있잖아? 좋을 세상일세!! 곧바로 인터넷으로 가장 비싸다는 오메가 3를 구입했다. 구입만…했다. 60 캡슐 한 병을 다 먹는데 장장 1년이 걸렸다.(솔직히 말해 먹다 먹다 남아서 버렸음)
어느날, TV를 보다가 한국 예능도 드라마도 시시해 가장 즐겨보는 다큐멘터리를 틀었다. 생선구이 골목에 관한 내용이었다. 평소대로라면 TV 속에서 조차 보기 싫은 게 생선이었는데 그 날은 무슨 이유인지 내 두 눈과 모든 뇌 활동이 화면에 비치는 생선에 콕 박혀버렸다.
순간, 생선이 먹어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내가 미쳤나? 왜 이러지? 나이 먹어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다는데.. 나 내가 무서워, 잉잉. 평생 생선의 ㅅ자만 봐도 치를 떨던 사람이 갑자기 생선이 먹고 싶어 안절부절한다고?????
한 밤중에 보던 TV라 날이 밝고 일을 하러 가서도 온통 생선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참 웃기고 기가 찰 일이었다. 무슨 번개를 맞은 양 하루종일 과연 어느 식당을 가야 가장 맛있는 생선구이를 먹을까 하는 고민이 찰라의 인생 목표가 되어버렸다. 라스베가스 아니 미국, 한국 어느 곳에서도 생선을 먹어 본 적 없으니 알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그동안 가 본 식당 중 메뉴에 생선이 있었던가 기억해 내고자 안간힘을 썼다. 지금 생각해도 참 희한한 일이었다. 무슨 마약쟁이가 약을 찾듯이 오직 생선구이를 먹어야겠다는 생각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평소 즐겨 가던 순두부 집에 반찬으로 나오던 코딱지만한 생선이 떠올랐다. 그래, 그 정도면 도전할만 하겠다. 번개같이 차를 몰아 말 그대로 식당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자 딱 생각이 바뀌었다. 코딱지만한 크기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순간 흠칫, 약간 멈칫, 아직까지 고등어나 이면수같은 등푸른 생선은 좀 무리이고 조기구이, 너란 놈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순두부와 생선 콤보를 시키고 따로 조기구이를 추가했다. 사진에는 한 마리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마리가 나왔다. 생각보다 크기가 커서 덜컥 겁이 났다. 우씨.. 순간 잠시 쫄았다.
미친듯이 도전정신이 들어 상 앞에 앉기는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크게 심호흡 한 번 했다. 비릿한 냄새가 먼저 코끝을 찔렀다. 싫지 않았다. 조심스레 한 입 물었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 나 왜 이래?ㅠ 생선이 왜 맛있어? 생선 먹으라며 그렇게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도 꿈쩍않던 난데, (참고로 부모님이 부산 출신이라 온 식구가 생선에 미쳐있음. 반찬에 생선 없으면 죽어버림. 그래서 나랑 맨날 싸움) 나이 50 훌쩍 넘어 왜 생전 안 하던 짓을 하는거야? 스스로 하염없이 의아해 하며 우걱우걱 생선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라스베가스에서 제법 유명한 한국식당 중 하나인 Mr.Tofu는 반찬이 많기로 유명하다. 주인이 누구인지, 반찬을 누가 만드는지 알 방법은 없지만 메인 음식보다 반찬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애 식당 중 하나가 분명하다. 미국 친구들 데려가 촤르르 펼쳐진 반찬 가짓 수에 눈 똥그라지게 놀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키득대는 것도 내가 즐기는 포인트 중 하나이다. 평소라면 코딱지만한 생선은 서버 언니에게 돌려 보내거나 같이 간 사람이 있다면 그 친구에게 주기 일쑤였는데 오늘만큼은 거짓말 조금 보태 내 팔뚝만한 생선 세 마리를 앞에 놓고 뿌듯해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선이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이었던가? 김치 러버인 내가 고등어 김치찜이나 꽁치 김치찌개 같은 건 손도 못대지 않았던가 말이다. 나이가 들어 입맛이 변했던, 안 하던 짓을 해 죽기 일보 직전이던 어쨋든간에 생선은 맛있었고 오직 그 일에만 집중했다. 사진이 지저분하게 나오던 말던 후딱 찍고 먹는데 정신이 팔렸다. 창피함과 쪽팔림을 감수하고 몇 번이나 리필하던 반찬에도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
후아 잘 먹었다. 결국에는 세 마리 다 먹지 못하고 한 마리는 포장해 왔다. 냉장고 안에 차갑게 누워있던 한 마리는 결국 먹지 못하고 쓰레기 통으로 갔지만 말이다. 총 53불이 나왔다. 혼자 먹은 한 끼 치고는 비싸다. 나도 안다. 세트 메뉴에 추가 조기구이까지, 당연히 비싸지. 하지만 내 평생 한 번 먹은 푸짐한 생선구이에 절대 후회란 없다. 맨날 이렇게 먹으면 망하겠지, 거지 꼴을 못 면하겠지. 하지만 나 열심히 일하잖아, 투잡 쓰리잡 하잖아, 단지 먹고 싶은 거 먹으려고 말이야 호호호. 돈이 문제가 아니라 먹고 싶어도 근처에 한국 식당이 없어 먹을 수 없는 속상한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한편으론 또 걱정이다. 광고니, 협찬이니, 나도 협찬이든 광고든 좀 받았으면 좋겠어요. 내돈 내산 먹고 살기 힘들다구요!!!!!
그리고 몇 달이 흘렀다. 아직까지 다시 생선구이를 찾진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생선구이를 난생 처음 먹기 바로 직전 몸이 많이 아팠다. 이유도 모르고 갑자기 쓰러져 일주일 간 사경을 헤매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생각난 게 바로 평생 안 먹던 비릿한 생선구이였다. 원인도 이유도 모르겠지만 지금도 혼자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온 몸 구석구석이, 세포 하나하나가 간절히 원한다는 게 뭔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아직 죽지 말라고, 그거 하나 먹으면 살아 날 수 있다는 신의 계시였까? 종교도 없는데? 모르겠다. 그게 왜 하필 생선구이였는지도 알 방법이 없다. 다만 갑작스런 식욕에 게걸스럽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뿌듯하다. 어디 머나 먼 시골에 살아 갈 식당조차 없었다면 목 놓아 통곡했을 것 같아 고맙기 짝이 없다.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한다고 반드시 죽진 않는다는 검증을 한 시간, 내가 라스베가스 살아 행복한 이유 중 하나이다.
칼럼니스트 티나 김
tina@myfunlasveg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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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 저는 카지노에서 딜러하고 있습니다. 원래 직업은 비즈니스를 셋업하고, 운영하고, 홍보하는 마케팅 디렉터 일을 평생 했습니다. 늘 글쟁이, 작가, 칼럼니스트를 겸하면서 말이지요 ㅎㅎ
협찬 들어오면 순대국에 쏘주 한잔 사겠습니다!! (농담 아님, 진짜 쏘주 콜!!!)
mr tofu 반찬은 많지만 입에 맞는 반찬은 하나도 없더라구요 가지수만 많으면 뭐합니까 맛있는것 5개정도면 충분하지요
저는 입맛이 싸구려라 다 맛있더라구요 ㅎㅎ
저 혼자 먹겠다고 저기 있는 반찬 만들다간 밥 먹기 전에 힘들어서 굶어 죽을듯 해요. 모든 분들 입맛이 다르니 정답은 없겠지요. 저는 반찬 만드는 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