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월 전엔 8명이었다.
'공룡'에 도전하겠다는 사람들이.
그런데 모두 바쁜 50대 중, 후반 남성들이다 보니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출발날자가 다가오자 절반은 업무가 바빠서,
2-3명은 과도한 훈련으로 인한 부상과 컨디션 난조 때문에 결국 동참하지 못했다.
달랑, 고교 4년 선배인 영안형님만 가능했다.
좋다.
까짓거 언제는 인원이 문제였던가?
나 혼자서도 여러번 탐방했던 코스였던만큼 참가인원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도 약속은 소중한 거다.
기쁜 마음으로 떠나자고 했다.
형님도 단박에 오케이하셨다.
금요일밤 11시에 집을 나섰다.
차를 몰아 김포 형님댁으로 가서 형님을 태웠다.
그리고 설악산으로 직행했다.
심야시간.
고속도로엔 차들이 없었다.
한적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소공원 주차장에 파킹하고 새벽 3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랜턴 두 개에 의지한 채 어두운 숲속 길을 호기있게 걸었다.
초장부터 땀이 흘렀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올라가는 급경사길.
거친 숨을 내뿜었다.
굵은 땀방울이 턱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오르막길 중간쯤에서 장엄한 동해의 일출을 만났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설악에서의 일출을 경험했지만 형님과 단 둘만의 해돋이는 정녕 색다른 감흥으로 다가왔다.
형님도, 나도 감탄을 연발했다.
누구라도 그 시간에, 그 길에 서보시라.
어찌 아니 그렇겠는가?
자연스런 발로였고 인지상정이었다.
비선대-마등령-공룡-무너미고개-천불동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는, 감히 자부하건대 대한민국 최고의 비경이라 믿는다.
그러나 준비된 심신이 아니면 아무나 그 길을 갈 수 없다.
높고 험하다.
그리고 어렵고 무지 길다.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가시돋친 바윗길이다.
거친 험로 20K.
준비되지 않은 자 함부로 접근해서도 안되지만 그런 자는 대자연이 먼저 도전을 불허한다.
설악의 공룡은 그런 곳이다.
종종 탈진과 골절, 관절부상으로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다.
형님과 시종일관 즐겁고 성실하게 전진했다.
총 14시간이 소요됐다.
막판 4-5킬로에서 형님은 힘겨워하셨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로 건강하게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형님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를 했는 지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느껴졌다.
산행을 마치고 한화 리조트 '쏘라노'로 이동했다.
체크인하고 샤워하고 환복했다.
땀으로 범벅되었던 몸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행복했다.
고교 선후배 모임에서 한화콘도 회원권을 2구좌나 갖고 있었기에 극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처소를 얻었고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중앙 홀에서 귀에 익은 라이브 음악이 들렸다.
감미롭고 멋진 앙상블이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합주였다.
연주자들 앞 의자에 앉아 약 30여분 정도 잔잔한 음악을 감상했다.
다감하고 멋진, 설악의 한여름밤이었다.
설악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불었고 기온이 낮아졌다.
야외 뮤직바에서 간단하게 생맥주를 마시며 형님의 공룡종주
처녀산행에 대해 이런 저런 애기꽃을 활짝 꽃피웠다.
한마디로 '감동'과 '감사'였다.
형님은 몇 번 얘기하셨다.
"예순살이 되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고.
'쉰아홉'에 동생 덕분에 이룰 수 있어 너무 행복했노라고 몇 번씩 감사를 표현하셨다.
엄밀한 의미에서 형님의 처녀 완주는 내 덕분이 아니었다.
형님의 성실한 훈련과 철저한 준비 덕분이었다.
나는 다만 형님과 동행한 것 뿐이었다.
말동무를 해드렸고, 산에서 함께 식사를 했으며, 왕복으로 운전을 해드린 것이 전부였다.
멋진 형님, 사랑하는 형님과의 속깊은 대화는, 내겐 산행보다 더 큰 축복이었고 감사였다.
모든 게 넉넉하고 흐뭇한 밤이었다.
설악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영안형님.
그런 형님과 함께 또 한 번의 멋진 추억을 엮을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세상은 아름답고 정겨운 공간이다.
대자연이 있어서 그렇지만
사실은 위대한 자연보다 더 향기로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인생길.
언제나 사람이 먼저 아니던가?
첫댓글 설악의 비경보다 더 아름다운 두 남자의 발걸음을 눈으로나마 따라가면서 참 행복합니다.
무더위기 예상되는 날씨인데 설악의 시원함이 가슴에 남아 시원함으로 보낼것 같습니다.
연주회는 종주 완주에 대한 서비스 선물이어었나요? ㅎㅎ
아름다운 풍광 보여주시고 향기 가득한 모습 들려주어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