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동 고양이 / 한창현
양림동 골목은
기억을 크게 말하지 않는다
붉은 벽돌에 번지는 저녁빛,
금 간 화분,
비를 먹은 계단 모서리,
펭귄마을 쪽에서 굴러온 녹슨 냄새가
하루의 끝을 먼저 모은다
고양이 한 마리
골목 끝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다
누구 집 것도 아닌 걸음,
불러도 바로 오지 않는 눈빛
아이들은 잠깐 멈춰
사진을 찍고 지나간다
화면에는 짧은 감탄만 남고
저녁은 끝내 저장되지 않는다
고양이는 담장 밑에 몸을 비비고
한 번 멈춰 선다
사람보다 먼저
낮은 떨림을 알아채는 몸으로
양림동에는
설명문이 붙은 자리가 많다
무엇이 있었는지
누가 살았는지
어떤 시간이 지나갔는지
또박또박 적혀 있다
문장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저녁마다
연표의 칸 밖으로 밀려나는 것들이 있다
급히 닫힌 대문,
불 꺼진 창문 안에서 오래 잠들지 못한 귀,
초인종 소리에도 먼저 굳던 몸,
끝내 다 적히지 못한 숨
한때 이 도시를 지나간 두려움은
연도와 명칭만으로 남지 않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침묵은
기념식 순서처럼 번듯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오월을 모른다
만주도 모르고
추모사도 모른다
다만 오래 울었던 자리에서는
발을 조금 더 천천히 디디고
한 번 버려진 모퉁이에는
쉽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설명보다 먼저
상처 난 곳을 알아본다
해마다 오월이 오면
도시는 꽃을 놓고
이름을 부르고
잠시 허리를 곧게 세운다
그 순간
꽃은 가벼워지고
이름은 자주 닳는다
담 위로 올라간 고양이가
골목 아래를 오래 내려다본다
저 작은 등은
쉽게 다가오지 말 것
그렇다고 잊지도 말 것
등뼈 하나로 버티고 있다
손을 내밀면
한 걸음 물러난다
그리고 다시 돌아본다
함부로 아는 척한 기억은 멀어지고
오래 바라본 저녁만
제 발로 가까이 온다
고양이는 오늘도 사람들 발치로 오지 않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저녁이 다 지나갈 때까지
골목을 지켜본다
잊지 않는다는 일은
끝내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일이다
[출처] 제22회 5.18 문학상 신인상 / 한창현|작성자 ksujin1977
카페 게시글
신춘문예 등 문학상 수상작
제22회 5.18 문학상 신인상 / 한창현
김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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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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