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금 없는 세상은 조용하고 살아 있었다. 37년여의 긴 세월 동안 통금에 길들여진 시민들은 ‘통금 없는 밤’에 실감이 가지 않는 듯 얼마간 어색한 몸짓들이었으나 쉽게 적응하고 있었다. 통금이 풀린 5일 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주요 도시는 특별한 사고나 소란 없이 조용한 첫날을 보냈다. 상당수의 시민들은 밤 12시의 압박감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피부로 느껴 보려는 듯 자정이 넘은 밤거리를 끼리끼리 몰려다니기도 했으나 곧 귀가했고 새벽 1시가 지난 시가지는 ‘통금시대’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조용히 잠들었다. 밤 10시에서 자정 무렵까지 서울의 밤거리는 한 번의 격랑도 없이 물 흐르듯 차분했다. 시민들은 더없이 느긋한 모습이었고 택시나 버스 등 교통수단들은 시민들의 이 같은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까를 궁리하는 듯했다. 중략 경찰은 당초 중심지인 명동과 종로동, 광화문 등지 일대가 잠깐이나마 붐빌 것으로 예상했으나 자정이 넘은 거리에는 몇몇 술꾼들의 모습이 보일 뿐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평소 통금에 쫓겨 차량과 사람들이 질주하던 밤거리는 마치 TV의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임이 한결 완만해 보였다. 철야로 영업을 한 음식점이나 다방은 드물었다. 다만 살롱과 주점 등 유흥업소의 대부분이 앞으로의 영업시간을 어림잡아 보려는 듯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렸으나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문을 닫고 말았다.
- 《서울신문》1982. 1. 6.
올해 서울시가 가장 잘한 일로 ‘심야 올빼미 버스’가 뽑혔다는 기사를 보았다. 운영 시간은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그러니 이 버스가 닿는 동네에 사는 서울 시민이라면 24시간 내내 대중교통이 끊기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올빼미 버스에는 어떤 사람들이 탈까. 먼저 술꾼들이 탈 것이고, 심야에 일을 마친 사람들이 탈 것이고, 취한 승객의 차를 대신 운전해 준 대리운전 기사가 탈 것이고, 그리고…… 이렇게 가정의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내가 이 버스를 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 보지 않은 것을 모두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통금이 그렇다.
나는 통금을 겪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통금’이란 사전 속에만 존재하는 말이다. 이 정도만 들었다. 성탄절과 제야의 밤에만 통금이 해제된다는 것, 12시를 넘기면 경찰서로 끌려가 밤을 보내야 했다는 것. 위 기사를 보면 통금이 해제된 날짜를 알 수 있다. 1982년 1월 6일. 이런 것들 흥미롭다. 통금이 풀렸지만 한밤의 자유를 누려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전처럼 귀가하고 전처럼 빨리 잠들었다는 것. 경찰이 혹시 모를 소란에 대한 대비까지 했으나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 술집과 택시와 버스들만 ‘통금 해제 시대’에 대한 궁리를 했다는 것.
통금이 풀린 지 삼십 년이 조금 넘었다. 거리의 밤을 소유하게 된 지가 삼십 년이 조금 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마시기 싫을 때까지 술을 마실 자유, 집에 들어가고 싶을 때까지 배회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이런 우리를 위한 술집과 택시, 심야 올빼미 버스를 얻었다. 밤에 노는 사람이 생겼다면 밤에 일하는 사람도 생겼다.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어떤 차도 다니지 않는 밤의 고속도로에 대하여. 거리에 켜져 있을 필요가 없었을 가로등에 대하여. 아무것도 없는 밤거리를 순찰했을 경찰의 고독에 대하여. 지금은 모두 없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