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일 2025-02-26 08:56:07 수정일 2025-02-26 08:56:07 발행일 2025-03-02 제 3431호 8면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교구장 마틴 시츠 주교가 2019년 6월 27일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미국에서 추방당한 엘살바도르 이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OSV
5년 전, 현재 미국 부통령인 J.D. 밴스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성 제르트루드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 성당을 맡고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자들은 아마도 밴스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 교리를 배우는 동안, 사랑이 우주의 기본적인 현실이며 우리가 부름을 받은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는 점을 강조했을 것이다.
밴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설교를 했던 수도자들은 지금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황이 직접 밴스에게 사랑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다시 알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밴스는 미국 주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가혹한 조치를 비판하는 이유가 이민자 지원 프로그램으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라고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
이어 밴스는 사랑의 정도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사랑의 질서’(ordo amoris)라고 제시하며, 약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정당화하려 했다. 밴스는 ‘ordo’를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등 ‘순서’라는 뜻으로 번역했지만, 아마도 통상의 영어에서는 ‘기준’이라는 번역이 더 적절할 것이다.
2월 1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 주교단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 정부가 불법 이민자들을 대규모로 추방하는 상황에서 두려움 속에 사는 이들을 대변해 줄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편지에서 밴스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밴스의 독특한 사랑에 대한 관점을 반박하며, “우리가 끊임없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5~37)를 묵상함으로써 발견하는 진정한 사랑의 질서(ordo amoris)를 실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모든 이들을 예외 없이 포용하는 형제애를 세우는 사랑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또 다른 가톨릭 인사로 ‘국경 차르’(border czar)로 불리는 톰 호먼은 교황에게 “가톨릭교회에만 집중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가톨릭 신자들이 어떻게 주교, 심지어 교황을 거리낌 없이 비난하고 비웃을 수 있는지, 또 인종차별적이고 불법적인 이민자 정책을 지지하고 실행하면서 하느님 자녀들의 권리와 이들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뭔가 매우 잘못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난 대선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과반수가 간통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와 인종차별을 조장하고 세계를 괴롭히는 것을 자랑하는 정당에게 표를 던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바로 미국 주교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편지를 보낸 바로 그 주교들 말이다.
다른 나라의 교회 지도자들이 현대 세계에서 복음을 온전히 전하려 노력하는 반면, 미국 교회 지도자들은 사실상 한 가지 문제에만 집중해 왔다. 바로 낙태다. 낙태는 확실히 그리스도인으로서 대응해야 할 불의지만, 그것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환경 위기는 모든 사람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2025년 5월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환경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반포된 지 10년이 된다. 교황은 이 회칙에서 ‘우리의 공통의 집’을 돌보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주교들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설교와 가르침에서 이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미국 주교회의와 설교자들 사이에서는 이 회칙이나 환경의 도전에 대해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물론, 성직자 성추행과 이를 부추긴 성직주의, 그리고 그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신자들의 주교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게 된 것도 한 원인이다. 개별 주교나 설교자들은 때때로 미국의 인종차별, 폭력, 원주민에 대한 대우, 성적 착취, 이민자 학대, 군사주의, 경제적 불평등, 환경 오염, 의료 접근 불가능, 교육 시스템 실패, 자살, 중독, 국제적 불의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교들의 집단적 목소리는 ‘낙태’에 대해서만 집중되어 있고, 다른 문제들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복음의 전면적 선포에 대한 책임 회피는 교회가 사회에서 예언자 역할을 하기를 원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미국 주교들이 마침내 이민자 문제에 대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들을 비난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주교들은 하나의 이슈에 집착한 결과로 얻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만약 주교들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강조하고, 태아뿐만 아니라 모든 하느님 백성의 권리를 위해 더 강력히 목소리를 내며, 신자들이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었다면, 밴스가 다닌 교회에서의 세례 준비와 설교가 그의 정치적 접근 방식에 영향을 미쳤을까?
미국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은 복음의 전면적 선포를 소홀히 하고, 한 가지 문제에만 집중하며 그 목소리를 좁혔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잃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들이 어떻게 다시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일부 답을 제시했다. 이 실패가 성품을 받고 교회를 단순히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이끌어야 하는 미국의 주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지도자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할 뿐이다.
글 _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