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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처럼 생긴 마을, 주문진의 소돌과 아들바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 6리와 12리에 있는 마을은 마을의 형상이 소 모양으로 생겨서 ‘소돌’이라는 지명이 되었다. 소형상의 지형은 풍수지리에서 풍요와 자손의 번창을 가져다준다고 믿으며, 돌은 영원히 변치 않는 성질의 상징이다. 소돌 바닷가에 있는 아들바위는 원래 삼치바위였는데, 1990년대에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소문이 돌면서 아들바위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 6리와 12리에 있는 마을은 마을의 형상이 소 모양으로 생겨서 ‘소돌’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주문진 항구에서 양양 방면으로 가다가 보면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다. 유명한 아들바위가 있고 아들바위공원이 만들어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을에서는 매년 봄가을로 두 번에 걸쳐 해당화를 신목으로 모시는 해당화서낭당에서 서낭제를 지내고, 3년에 한 번씩 풍어굿을 올리는 전형적인 해안 마을이다. 마을은 마치 소가 옆으로 누워 있는 것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마을이 소 형상이기 때문에 마을제사를 지낼 때 소고기를 쓰지 않고 닭을 쓰고 있다. 풍수에서 소 형상의 마을은 풍요와 자손의 번창을 이뤄준다고 한다. 소돌마을 사람들이 소와 돌을 가져다가 마을의 이름을 지은 것은 마을을 이상향으로 가꾸고자 한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한자로는 소 우(牛)자에 바위 암(岩)자를 써서 우암이라 부른다.
소가 드러누워 있는 형국
해안을 끼고 육지를 따라 길게 늘어진 우암은 마을 전체의 형국이 소가 드러누워 있는 모양이다. 소의 형국을 살펴보면 마을에서 매년 제를 올리는 해당화서낭당 남쪽 건너편 바다에 있는 바위가 소뿔에 해당하고, 바다를 바라보는 능선이 소머리와 몸통이며, 산기슭 서편이 소의 젖통에 해당한다. 그래서 젖통에 있는 집은 항상 부유하게 살고 있다. 소돌항으로 쓰는 곳이 먹이통인 소구유이다. 구유에 해당하는 곳은 어부들이 고기를 잡아 항구로 들어오므로 소에게 먹이를 주는 형상이어서 무엇이든 항상 풍부하다고 한다. 소돌 포구에 있는 수산물배양장 옆 죽섬[竹島] 주변으로 물이 통해 있어 목선이 드나들 수 있는 해로가 있고 유지공장 뒤 소나무 밑으로 내려가 뚝 떨어진 곳에 아름드리 말뚝바위가 있었으나 지금은 깨뜨려져 없다. 이곳은 소를 매어두는 말뚝이다. 또 배양장을 돌아가면 조그마한 샘이 있는데 이곳은 소의 눈에 해당하는 곳이고, 소젖에 해당하는 곳에서 조금 더 돌아가면 산이 움푹하게 들어갔는데 그곳이 소의 앞다리 부분이고, 이곳에서 고개를 넘으면 쇠똥골이 있다. 이곳은 소의 뒷부분으로, 그 형상을 보면 소가 동쪽을 향해 누웠다고 한다. 옛날 소돌마을 서낭제 때 쇠똥골 우물을 가져다 쓰면 풍년 풍어가 들며 모든 질병이 없어지고 건강하게 살았다고 한다.
전쟁에 끌려간 아들을 위해 기도
신라시대 소돌 바닷가 마을에서 가난하지만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어부가 있었다. 그 어부는 3대 독자인 아들과 함께 살면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었다. 어느 날 3대 독자인 아들은 전쟁터에 끌려가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러나 어부는 아들의 전사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기에 어부 부부는 매일 용왕님께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하루는 꿈에 용왕이 나타나서 “소돌바닷가 죽도에 있는 큰 바위가 구멍이 뚫릴 때까지 소원을 빌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어부의 아내는 매일 죽도 바위 아래에서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죽도에 있는 바위에 구멍이 나면서 아들이 보여서 반가움에 아들을 맞으러 갔는데 꿈이 깼다. 그 후 어부의 아내는 임신을 하였고 아기를 낳았는데 전쟁터에 나간 아들과 너무나 닮은 사내 아이를 낳았다. 사람들은 용왕이 오직 한마음으로 극진히 기도하는 부인의 정성에 감탄하여 아들을 환생시켰다고 말했다. 아들은 커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훌륭한 일을 많이 했다. 이후 죽도의 바위에서 소원을 빌면 한 가지씩 이뤄주고, 특히 자식이 없는 사람이 자식을 기원하면 꼭 이뤄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후에 아들바위로 불렀다.
자식을 못 낳은 부부의 소망
1990년대 중반 자식을 낳지 못해 애를 태우던 부부가 어느 날 아들바위에 놀러오게 되었다. 그들은 나이가 많아 점점 아이 낳는 것에 대해 포기하게 되었는데, 그날 마침 주위에 사람도 없고, 바위 중간에 오목하게 패여 숨기 좋게 되어 있어 부부는 자식을 기원하며 그곳에서 일을 치렀다. 그 얼마 후에 이들 부부에게 태기가 있어 자식을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이 부부는 나중에 다시 아들바위에 들렀는데, 그때 탔던 택시 운전수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해서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이후로 많은 신혼부부들이 첫 아들을 낳고자 택시를 타고 이곳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택시 운전수들 사이에서 이 바위는 아들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원래 소돌마을의 아들바위는 삼치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 해서 삼치바위였는데, 아들바위로 소문이 퍼지자 강릉시에서 관광명소로 만들고자 공문을 내려 아예 아들바위라고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 1996년이고, 강릉시에서 관광지로 만들고자 아들바위로 명명한 것은 199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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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단행본
새말의 향기. 주문진읍승격60주년기념사업위원회․주문진읍, 2000.
단행본
이학주. 아들 낳은 이야기. 서울:민속원, 2004.
지방문화원
강릉문화원 GO
집필자
이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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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