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틸리케 호의 첫 평가전들이 끝났다. 파라과이 전에서의 승리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코스타리카 전에서의 패배에 관해서도 팬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대회에서의 탈락이었다면 많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평가전에서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였고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끔 ‘냄비’라는 자조적인 별명을 붙일 정도로 경기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평가전에서의 좋은 경기력이 조금이라도 퇴보한다면, 감독과 대표팀에 쏟아질 비난이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열정적인 팬들이기에 더욱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리라. 대한민국 축구는 현재 우리 대표팀에 매우 적합한 감독을 선임했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짧은 평가전 기간 동안 미친 긍정적 영향이 가시적으로 보이고 있는 상황이고, 우리가 신중하게 선택한 감독인 이상 믿음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충분한 기회와 시간이 주어지길 바란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평가전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점들은 경기 상에 들어난 경기력이란 ‘결과’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면,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경기력의 변화를 이끌어낸 슈틸리케 감독이 지닌 장점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1. 전술에 밝고 매우 유연하다.
개인적으로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패배는 전술 상 흐름에 뒤쳐진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우리는 코스타리카가 왜 월드컵 8강팀인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조직적이고 빠른 압박은 우리 선수들을 강하게 압박했고 빠른 역습과 잘 정리된 움직임으로 공격을 해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대로 이번 대표팀이 전술상의 변화를 통해 팀의 템포를 빠르게 만들어내지 못했더라면, 훨씬 더 안 좋은 경기력으로 졸전 끝에 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세계적인 대세는 수비 시의 ‘압박’과 공격 시의 ‘속도’에 있다. 우리는 2014년에 그러한 흐름을 놓쳤고, 수비 시에는 골대 앞을 지키는 수비 방법을 택하면서 러시아와 같이 수비적인 팀과는 답답한 경기를, 알제리 전과 같이 공격적으로 나선 팀에는 공격에 시달려야만 했다. 템포가 느렸기 때문에 공격 시에는 점유율은 높이 가져가지만 위협지역에선 속도가 충분하지 못해 답답한 공격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슈틸리케가 부임한 후 짧은 기간이었지만 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전술 변화에 대한 내용은 앞서 작성한 글에 충분히 설명했다는 생각이 들고,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슈틸리케가 가진 장점이다. 독일 출신의 지도자로 생활은 스페인에서 하고 있는 슈틸리케는 축구에 있어서는 선진지역인 유럽 축구에 밝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 세계 축구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 대표팀의 근간을 이루는 유소년 세대를 지도했던 경험을 갖춘 지도자로 현재 전술적 흐름에 밝은 듯하다. 대한민국 식 축구가 만들어진다면 좋겠으나, 우리나라가 그렇게 강한 팀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도 인정해야할 일이다. 세계적 전술 흐름에 해박하여 이를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감독이라는 사실이라는 점이 하나의 강점이다.
하지만 세계적 전술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훌륭한 감독이 될 순 없다. 국내외 지도자들 중에도 전술적 흐름에 능통한 지도자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또 하나의 장점으로 인해 그 장점이 더욱 확실히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전술적 유연성이 그것이다. 선수들의 위치변화도 잦고 움직임 자체도 고정된 위치에서 정해진 역할만 수행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부여된 임무들 외에도 상당한 자유(감독이 부여한 자유)를 가지고 움직임을 취하고, 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공간을 또 적극적으로 다른 선수들이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더해 선수들의 기용과 활용에 있어서도 매우 유연하다.
전술적 유연성이란 것의 중요성은 새로운 전술과 우리의 선수들을 조합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다. 개인적으로 조광래 감독의 축구를 굉장히 좋아했고, 아시안컵 당시까지만 해도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여론도 좋았다.) 하지만 이영표와 박지성의 은퇴 이후 그들의 빈 자리를 채울 선수는 없었고, 특히 풀백에서 경기를 풀어줘야 하는 조광래 식 축구에서는 이영표의 빈자리를 메우기가 쉽지 않았다. 조광래 감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재성 같은 미드필더나 패싱력이 좋은 김영권을 측면 수비수로 기용하는 등 많은 실험을 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고 역풍을 맞아야 했다. 사실 아무리 훌륭한 전술을 짜놓는다고 해도 그에 걸맞는 선수들을 보유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결과를 내기란 어려운일이다. 국가대표팀이 선수들을 외부에서 딱히 영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전술적인 유연성은 필수적이다. 새로운 전술과 우리가 보유한 선수들 모두를 고려해서 우리에게 적합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전술적 유연성을 갖췄기에 세계적으로 대세를 이루는 전술을 ‘한국화’시키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
2. 한국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적다.
일견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막 대표팀 감독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굉장한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대한민국 축구를 대하는 감독으로서, 선수들에 대해서 많은 정보가 없다는 점은 새로운 선수들의 발탁과 기용에 강점이 될 수 있다. 이번 대표팀의 면면을 보면 손흥민처럼 어린 선수들부터 이동국, 곽태휘 같은 노장 선수들까지 선수들의 분포가 다양하다. 그리고 출신 리그도 무척이나 다양했으며, 대표팀에서 중용 받지 못했던 선수들의 발탁도 있었다. 국내 지도자들이 ‘의리’나 ‘인맥’ 때문에 선수들을 폭 넓게 선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슈틸리케가 한국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적었기에 편견 없이 선수들을 대하고 선발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앞으로 선수들에 대해 파악해가면서 새로운 선수들이 등장하는 빈도가 확실히 줄어들긴 하겠지만, 아시안컵을 준비하는 몇 개월 동안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충분할 것이다.
이에 따른 부수 효과도 존재한다. 선수들의 동기 유발에도 큰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동안 크게 눈에 들지 않았던 선수들도 이번 평가전을 통해 경기에 출전하여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나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 될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이 부임할 시에 우리가 예측할 수 있었듯, 그는 엔트리에 상당 부분을 자신과 함께 좋은 성적을 올렸던 ‘2012 올림픽’ 멤버에 기반을 두고 구축했었다. 그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겐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표팀 내에서의 주전경쟁도 치열해질 것이고, 또한 대표팀에 들기 위한 선수들의 경쟁도 치열할 것이다.
또한 선수들에 대한 과감한 기용도 눈에 띈다. 전술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나, 분명히 한국 감독들이 우리 선수들에게 익숙하기에 기존에 훌륭하게 해냈던 역할을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비교하자면, 선수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는 데에는 선입견이 없는 것이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일례를 들어보자면 한국영이나 장현수가 기존에 기성용의 옆에 서서 공을 쓸어내는 수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과 달리 적극적으로 패스를 주고받는 위치에서 활약하면서, 기성용은 기존에 항상 수비진 앞선에서 공을 직접 연결 받아 공을 연결했던 것에 비해 더욱 적극적인 공격 가담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이전에 항상 공격의 시발점으로 상당한 압박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비해 압박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기성용이 대표팀에서 빌드업의 핵심에 위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영과 장현수에게 그 역할을 나눠주면서 오히려 기성용은 더욱 편하게 공격 전개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선수들의 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하나의 고정적인 역할이 아닌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또 실제 평가전에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면서 팀 차원에서도 시너지를 내기에 충분하다. 파라과이 전에서 원톱으로 기용되었던 조영철, 중앙에 위치했던 남태희도 이전의 대표팀에서의 역할과는 확연히 다른 기용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훌륭했다.
3. 선수들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감독이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대로 슈틸리케는 전술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보였으며, 선수 개인의 역할에 대한 제한도 크게 두지 않는 듯하다. 좁게 보면 공격수들의 스위칭이 잦은 것이 될 수 있겠고, 크게 보면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잦은 공격 가담과 공간 침투나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다. 현대 축구에서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한 가지 뛰어난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능력들도 일정 정도의 수준을 갖췄을 때 그 진정한 진가를 드러낸다. 수비형 미드필더 중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꼽을 만한 아르헨티나의 마스체라노 같은 경우도 일정 수준의 공격 전개 능력과 슈팅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 가지에 특출한 ‘스페셜리스트’라고 해도 다른 능력들이 요구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에만 강점을 보인다면 그것에 대한 방책만 마련하면 대처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선수들에겐 자신의 최대 강점 이외의 능력에도 준수한 수준을 보유해야 한다.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서태웅이 산왕공고의 정우성을 이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그의 장기인 1on1이 아니었다. 그 해답은 바로 패스였다. 좋은 패스로 상대방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후에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개인 돌파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축구 선수들의 발전을 위해선 자신이 잘하는 것만 잘해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스페셜리스트가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강점 외에 다른 능력들을 갖췄을 때 자신의 강점이 더욱 돋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슈틸리케는 이런 식으로 선수들에게 다양한 움직임을 요구하면서 확실히 선수들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선수들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이 늘 해오던 플레이와는 다른 움직임을 배울 수 있다. 마치 서태웅이 패스를 배웠듯, 기성용은 공간 침투를 수행했고, 이청용은 중앙에서 공을 연결하는 데에도 자신이 재능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플레이는 상대편 수비에게 혼란을 줄 것이 분명하다. 공격진에 침투한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은 누가 마크해야 할지, 중원으로 들어온 윙어 이청용은 누가 막아야할지 상대편에게는 골치 아픈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혼란을 줌으로써 원래 가장 잘하는 플레이, 자신 있는 플레이들을 더욱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2014 월드컵 러시아 전에서 상대와 경합하는 한국영
이전까지 대표팀의 주장이자 핵심인 기성용이라는 선수는 공을 안전하게 잡아서 잘 지키고 좌우로 혹은 대각선으로 넘겨주면서 공격의 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선수였다. 그 위치도 대체로 수비진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다지 공격선 깊숙이 침투하는 경우도 없다. 그 말인즉슨 공격 시에 직접적인 위협은 가하지 않는 선수이므로 공격 템포만 적당히 죽인다면 그다지 어렵지않게 수비해 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만 중거리 슛이 좋은 선수이므로 그것 정도는 조심해야 하는 선수 정도였다. 특히나 요즘처럼 압박의 정도가 강하고, 블록을 형성하여 골대 앞을 단단히 지키고 있는 수비를 구사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두 번의 평가전에서 보여준 공격적인 침투들을 생각하면 아예 기성용이란 선수를 다르게 평가해야만 한다. 좌우 측면 공격수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이 만든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중앙 미드필더는 막아내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이를 몇 번 허용하고 나면 기성용의 침투가 두려워 이전과 같이 천천히 빌드업을 할 때도 강한 압박을 넣기란 쉽지가 않을 수밖에는 없다. 선수들은 이렇게 새로운 역할을 배우고 수행하면서, 새로운 장점을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강점을 더욱 잘 살릴 방법을 배울 수가 있을 것이다.
4. 감독으로서의 자세가 좋다. 그리고 필요한 팬들의 자세.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자리를 ‘독이 든 성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언론의 쏟아지는 관심과 애정은 넘치지만, 그와 동시에 받아야하는 부담감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자세를 보여주는가에 따라 팬들의 마음을 얻고 조금 더 편안한 감독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다. 본프레레 감독이 월드컵 본선에 우리 대표팀을 올려놓고도 경질되었던 것은 팬들의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팬, 언론들의 응원을 얻는 것은 감독 자리를 지키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2018년 월드컵까지 장기 계약을 맺은 슈틸리케 감독에게 있어서 어떻게 자신을 보여주느냐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슈틸리케가 지난 평가전에서 보여준 감독으로서의 자세는 굉장히 한국인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존 듀어든의 칼럼을 읽은 듯 한국 축구팬의 마음을 경기 외적으로도 사로잡으려 시도한 것처럼도 보였다. 경기 내내 일어서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이를 통해 충분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선수 발탁과 기용에 있어서도 폭 넓게 새로운 선수들을 많이 선발하고 또 기용하면서 이전에 우리나라 팬들이 가지고 있던 선수 선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가장 훌륭했던 점 중에 하나는 코스타리카와의 경기 후에 했던 인터뷰였다. 우리가 부족했던 점을 확실하게 짚어내었지만 선수 개개인을 탓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부족함을 채우고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비전을 확실히 제시했다. 경기에 패배하긴 했지만 인터뷰를 통해 패배의 부정적인 이미지도 훌륭히 지워냈다.
사실 첫 대표팀 소집이었고 선수들 파악이 끝나지 않았던만큼 선수 선발에 있어서도 코칭 스태프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그가 코치들에게 한국 축구 문화에 대해 잘 전달 받았기에 그렇게 멋있는 감독의 모습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한국적’인 감독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인지, 혹은 원래부터 그런 성격을 지닌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우리의 문화에 비교적 잘 맞는 처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슈틸리케가 대표팀에 부임하면서 가족과 함께 우리나라로 들어온 점들이나(판 마르바이크 감독 때문에 그것이 유난히 부각되기도 했지만.), 부임 직후부터 부지런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점들은 우리나라 팬들에게는 ‘예쁘게’만 보였을 것이다. 사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있는 능력이다. 오대영 감독이라는 별명으로 조롱도 받았지만 끝내는 영웅이 된 거스 히딩크도, 우리에게 가장 사랑받던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홍명보가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결국은 성적에 따른 일이었다. 하지만 적절한 처신을 통해 주위로부터 긍정적인 시선을 받을 수 있다면,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한결 덜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슈틸리케는 첫 발을 잘 내딛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비록 그가 대한민국의 감독으로서 막 시작한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그가 첫 두 경기에서 보여준 감독으로서의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경기력 자체도 만족스러운 면이 있었고, 감독으로서의 자세도 매우 좋았다. 그렇다면 우리 팬들이 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다. 이제 슈틸리케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을 가졌을 뿐이고 실제로 선수들을 만나본 것은 불과 1주일에 지나지 않는다. 새 학기가 되어서 같은 반이 된 학교 친구들과도 친해지는 데는 1주일보다는 더 걸린다. 속속들이 알고 장단점이나 성격을 파악하는 데는 그것보다 훨씬 더 긴 기간이 걸린다. 개인적으로 선수들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팀’ 차원까지 더 큰 그림을 그려야하는 감독에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우리 팬들이 조금 더 느긋하게 그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슈틸리케는 그를 지원해 줄 ‘인맥’이 없다. 어느 순간에라도 성적이 부진해지면 잘릴 수밖에 없는 위치라는 것이다. 그런 그를 팬들이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대영 감독에서 2002년의 영웅이 되었던 히딩크처럼 훌륭한 감독이 될지도 모르는 슈틸리케를 잃고 말 것이다. 무작정 지원하고 응원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한 경기, 한 경기를 가지고 감독을 흔들지는 말자는 이야기이다.
△무리뉴가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면? 아마 언론과 다투고 여론에 시달리다 사임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나 자신이 슈틸리케에 대해서 너무 긍정적인 시선을 갖게 된 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모습들은 신선한 반응을 일으켰다. 경기력 측면에서도 확실한 변화를 만들어냈고, 그 변화는 앞으로 이어질 것이며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언론과 팬에게 보이는 모습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면 끝도 없는 비난을 퍼붓긴 하지만, 한번 믿고 챙기면 또 끝까지 응원하고 힘을 싣기도 하는 게 우리의 축구팬들이기에, 열정을 보일 수 있고 인터뷰도 잘하는 감독은 안정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하기에 나쁘진 않을 것이다. 슈틸리케 호의 결과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파라과이 전처럼 신나는 승리, 그리고 코스타리카 전처럼 긍정적인 패배를 반복하면서 대표팀이 꾸준히 발전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