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사랑의 물리학>이라는 글은 제가 서울주보의 '이삭'난에 실었던 글입니다. 이 중 '사랑의 무게' 부분은 예수회 류해욱 신부님이 아래에 올려놓으신 <사랑의 무게>라는 글에서 빌려온 것임을 밝힙니다. 늦게나마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의 물리학>
영국의 한 광고회사에 큰 상을 내걸고 전국민 대상으로 퀴즈를 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런던까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올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문제였습니다. 워낙 상품이 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응모하였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방법이 제일 빠르다, 아니 그보다 더 빠른 것은 기차를 타고 오다가 어느 시점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방법이다, 아니 새벽에 승용차를 이런저런 지름길로 몰고 오면 더 빠르다--사람들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실제로 시간을 재어보고, 서로 자기네 방법이 제일 빠른 방법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상을 탄 사람의 답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먼길이라도 너무나 가깝게 느껴지는 것, 그것이 사랑의 거리계산법입니다.
미국의 오마하라는 도시에는 '보이스타운'이라는 유명한 고아원이 있습니다. 그 입구에는 커다란 동상이 있는데, 한 소년이 조금 작은 다른 소년을 업고 있는 모습의 동상입니다. 꽤 오래 전의 일화입니다. 한 소년이 자기 동생을 업고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신부님이 소년을 보고 "얘야, 무겁지 않니? 내려놓으려무나"라고 하자, 그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무겁지 않아요. 얘는 내 동생이니까요." 물리적으로 계산한다면, 동생이라고 해서 무게가 달라질리 없고 무겁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소년으로 하여금 동생이 무겁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것입니다. 소년의 말에 크게 감동을 받은 신부님이 이 말을 '보이스 타운'의 정신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무거워도 메고 다녀도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무게 계산법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부피 계산법은 무엇일까요? 욕심이 너무 많은 우리들은 항상 크고 큰 사랑을 원합니다. 왜 나는 요렇게 작은 사랑 주시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큰 사랑 주시느냐고 하느님께 투정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차지하는 사랑을 크게 만들까 궁리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그 답을 말씀해 주십니다.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
이냐시오 성인은 '사랑은 행(行), 행은 나눔'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누면 나눌수록 오히려 더 커지는 것--그것이 바로 사랑의 부피계산법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의 힘을 아드님이신 예수님께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기적의 힘을 주셨습니다. 천리길을 눈깜짝할 새 오고, 억만근을 깃털처럼 들고, 아무리 작은 것도 함께 나누어서 크게 만들 수 있는 사랑의 힘--'사랑의 물리학'이야말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