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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랑 3조 빨리 하고 밥 먹자!”
“네엣!”
2조와 3조 선수들이 걸어 나간다. 먼저 킥하는 2조. 3조의 골키퍼는 역시 염동균이다. 지난 승부차기에서 마지막에 볼을 건드렸기 때문에 자신감이 서서히 충만하고 있는 염동균이었다. 2조의 첫 키커는, 수비수 박용호. 박용호는 깊게 심호흡을 하더니 서서히 달려왔다. 염동균은 그의 눈과 디딤발만 주시하고 있었다. 박용호가 도약하며 강하게 때려넣은 슛. 염동균은 재빨리 몸을 날려 오른손으로 볼을 쳐내고 만다.
“해냈다!”
“동균아, 싸랑해~.”
“브라보! 하하하하, 오늘 뷔페 가자!”
염동균의 선방에 청소년대표의 골키퍼 차기석은 긴장한 듯 굳은 얼굴로 골문 앞으로 나섰다. 3조의 첫 키커, 고창현. 수원 삼성에서 차범근 감독이 아주 작정하고 키운 유망주다. 가운데보다는 오른쪽과 왼쪽에서 윙어로서 확실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로서, 개인기와 드리블 돌파, 크로스가 아주 위협적인 선수다. 고창현은 볼을 앞에 두고 서서히 뒤로 물러난다. 차기석은 염동균과는 달리 공만 주시한다. 먼저 예측하고 몸을 날리지 않고, 공을 킥하는 순간 공의 방향을 보고 몸을 날리겠다는 심산이다. 고창현은 왼쪽 하단 구석으로 땅볼로 밀어 넣는다. 차기석은 고창현의 볼을 보고 나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골은 터졌다. 고창현의 슛이 워낙에 처음부터 옆그물로 빨려 들어가는 골이었다. 차기석은 아쉬워하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자존심 센 그로서는 염동균에게 지는 게 너무 싫었다.
2조의 다음 키커, 정조국. 정조국은 끝까지 골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왼쪽으로 차는 듯한 모션을 취했다. 어깨는 약간 왼쪽으로 떨어뜨리고, 디딤발인 왼발도 왼쪽으로 향하게 했다. 염동균은 그 모션을 보고 오른쪽으로 다이빙했다. 그러나 정조국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 볼은 땅볼로 여유있게 골키퍼와 반대편으로 굴러간다. 정조국의 여유있는 성공으로 스코어는 1:1. 그러나 3조의 키커인 조재진이 다시 성공함으로서 3조가 한 점 차로 앞서나간다. 다음 키커인 임유환과 최태욱도 강하게 발등으로 슈팅하며 골. 그리고 2조의 네 번째 키커가 들어섰다. 김정우. 김정우도 골대에 맞히고 안으로 들어가는 운 좋은 골. 스코어는 3:3. 3조의 네 번째 키커, 조병국. 조병국은 들어서자마자 도움닫기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인프런트로 슛한다. 차기석은 순간 당황했지만 그의 세포의 움직임이 공보다 더 빨랐다. 바로 슛을 감지하고 왼쪽으로 몸을 날려 볼을 잡아챘다. 조병국은 선수들을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지만 3조의 선수들은 원망하듯 그를 쳐다봤다. 아까 염동균이 선방했을 때 가장 크게 소리친 게 바로 조병국이었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이제 동점 상황. 2조의 마지막 키커, 이천수. 이천수는 공을 앞에 두고 골키퍼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염동균은 어느 쪽으로 볼이 올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좋아, 그럼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찍자! 왼쪽!’
염동균은 작정하고 왼쪽으로 다이빙했다. 그러나 이천수는 움직임을 보고 나서 중앙으로 슛. 여유있게 성공시킨다. 그리곤 2조 선수들에게 씩 웃어 보이며,
“오늘은 우리가 먹자!”
라고 외친다. 역시, 이천수 답지 않게 무게를 잡고 심각한 얼굴로 훈련에 임했지만 끼가 넘치고 활달한 성격의 그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외치고 나서도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운다.
‘저 자식, 무슨 문제 있나?’
포마스키와 차범근은 물론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그라운드에서 그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는 박지성은 잘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은 분명히 월드컵 때 저러지 않았다. 누구보다 활발하고 명랑한 놈인데. 이상했다.
그리고, 3조의 마지막 키커인 권 집. 독일의 1부 클럽인 FC 쾰른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수원으로 돌아온 그는 오늘 효율적인 스루 패스를 엄청나게 찔러주며 4조의 수비수들을 곤혹으로 몰아넣었다. 권집은 한숨을 깊게 쉬더니 오른발 발등으로 강하게 슛한다. 차기석은 반대쪽으로 다이빙. 다시 차려고 준비하던 2조의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권집의 슛은 오른쪽 골포스트에 맞고 튕겨나와 버린 것이다.
“유후~! 역시 집이가 뭔가 안다니까!!”
“걱정하지마. 우리가 이따 쫌 싸다 줄게. 권집 저 녀석 아주 귀여워 죽겠다니까.”
권집은 울상을 썼다. 아쉬웠다. 3조 선수들에게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태욱이 형…….”
“대신 오늘 니가 저녁 쏴라.”
“네?”
“왜…….싫어?”
“돈…….없는데…….”
“그럼…….넣지 그랬어. 이따 7시 30분에 요 앞에 한정식집 앞에서 보자.”
“네…….에…….”
권집은 아까보다 더 울상을 쓰며 잔디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필드에서는 1조와 2조의 승부차기가 진행 중이다.
“포마스키...자네가 보기에 집에 다시 가야 될 것 같은 선수는 누구야?”
“글쎄요. 일단 종민이는 다른 윙어들에 비해서 조금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최태욱이나 이천수와 같이 서니까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이종민보다는 고창현 선수가 플레이가 좋아요. 음. 수비 쪽에서는 진규가 역시 조금 딸리네요. 청소년 대표에서는 확실히 좋았지만, 박용호나 조성환 같이 리틀 월드컵 대표팀에서 이미 검증받은 선수들보다는 아직입니다.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너무 좋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권집도, 김정우도, 박지성이나 김두현도 언제든지 수비형 미드필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에 들어간 이호가 좀 부족하겠네요. 아직 경험도 적고, K-리그에서도 그다지 좋은 활약을 펼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 맞아. 그건 그래. 음. 김진규. 이호. 음…….종민이도. 이래도 23명이야. 3명은 더 뽑아야 와일드카드 자리가 남을텐데.”
“새로운 월드컵의 개최로 아시안 컵이 취소될 테니 와일드카드를 3명 모두 적재적소에 뽑을 수 있겠지요.”
“그래. 그럼 3명을 더 탈락시켜야 할 텐데…….”
“제 생각엔 김동현, 오승범, 김치곤 정도가 더 탈락할 듯 합니다.”
“할 듯 하다니?”
“글쎄요. 컨디션도 그렇고, 플레이도 그렇고. 뭐 그렇다는 거죠.”
“음. 동진이도 왠지 무릎이 안 좋아 보이던데.”
“그렇습니다. 음. 스트라이커도 분명 하나는 추슬러야겠네요.”
“그래. 확실히 오늘 플레이들을 보니, 안에 들어가 있는 동현이가 제일 모자라긴 해.”
“뭐, 언제나 그랬듯이 결정은 감독님이 하십니다. 내일, 모레 훈련을 보시고 최종 결정을 하십시오.”
“응. 아, 저기 승부차기가 끝났나 보군.”
그라운드에서는 4조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김영광이 한 두어 개를 선방한 듯 했다. 차범근은 선수들을 모았다.
“그래, 4조가 이겼나?”
“네!!!”
4조 선수들만 우렁차게 대답한다.
“좋아. 오늘 요 앞에 고기뷔페로 간다. 나머지는 알아서 밥 먹고, 야간훈련은 없으니 휴식이다. 수고 했어!”
“감사합니다!!!”
그렇게 첫날의 훈련이 끝났다. 선수들은 끼리끼리 흩어져 각자 자신의 숙소로 들어간다.
박지성은 문득 앞을 보았다. 앞엔 묵묵히 들어가는 이천수가 있었다. 오늘 내내 그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물어봐야겠다. 섬광 같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야, 이천수.”
“응…….왜?”
“너, 무슨 일 있냐?”
“무슨 일은...아무 것도 아냐.”
“너 근데 하루 종일 얼굴이 왜 그래?”
“내가 뭘. 피곤하다. 뷔페 좀 싸오는 거 잊지 말고.”
이천수는 애써 웃어 보인다. 하지만 뭔가 어색한 웃음이라는 것을 박지성이 모를 리 없었다. 박지성은 ‘그래’하고 돌아섰지만 그의 심각한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이천수가 부진하면 한국 대표팀의 큰 축이 하나 부진하다는 뜻이다. 박지성은 이유를 반드시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4조 선수들을 모아 차범근을 따라 뷔페로 내려갔다.
사흘 뒤인 7월 9일. 차범근은 11:11 연습 게임을 마치고 숨을 헐떡이는 선수들을 앞에 두고 말했다.
“비록 사흘 동안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너희 같은 훌륭한 선수들과 같이 훈련해서 기뻤다. 하지만 우리 중 여섯 명은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를 노려야만 한다. 그래. 나도 미안하다. 첫 월드컵, 첫 개최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데 여기서 탈락해야만 하는 여섯 명.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
차범근은 애써 태연하려고 해보지만, 목소리는 계속 떨린다. 포마스키도 그걸 눈치챘는지 차범근에게 조언한다.
“감독님, 여기서 발표하지 말고 선수를 따로 부르시죠.”
“음...음? 어…….그래. 그게 좋겠군. 좋아.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해라. 내가, 따로 부르겠다.”
“예.”
선수들은 평소와 다르게 조금 쳐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불안감. 그 불안감이 선수 하나하나를 거칠게 짓누르는 듯 했다.
차범근은 숙소로 돌아가 팀에서 낙오할 선수를 하나하나씩 부르기 시작했다. 그 선수들은……. 전남 드래곤즈 소속의 수비수 김진규, 울산 현대 호랑이의 수비형 미드필더 이 호, 서울 FC의 수비형 미드필더 김동진, 수원 삼성 블루윙스의 윙어 이종민과 스트라이커 김동현, 성남 일화 천마의 오승범.
김동진은 크로스&슛 연습에서 왼쪽 정강이를 다쳐 대표팀 탈락이 기정사실화 되었지만, 그 외의 선수들이 탈락했다는 말을 듣고는 상당히 실망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차범근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대표팀에서 탈락한다는 것, 축구선수로서는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냉정한 세계. 선수들은 그 냉정함 앞에 굴복하고, 다음 날 짐을 싸 소속팀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차범근은 선수 명단을 확정했다.
골키퍼 - 김영광(전남), 차기석(서울체고), 염동균(상무).
수비수 - 김치곤, 박용호(이상 서울), 조성환, 조병국(이상 수원), 임유환(전북), 이영표(와일드카드, PSV), 송종국(와일드카드, 페예노르트)
미드필더 - 박지성(PSV), 이천수(레알 소시에다드), 김두현, 고창현, 권 집(이상 수원), 최원권(서울), 김정우(울산)
공격수 - 최성국(울산), 조재진(수원), 최태욱(인천), 정조국(서울), 양동현(바야돌리드), 설기현(안더레흐트).
차범근은 와일드카드로 이영표, 송종국, 설기현을 선택했다. 모든 이들에게 취약점이라 불리고 있는 중앙수비수를 왜 뽑지 않았냐는 질문이 쇄도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차범근은 차분히 대답했다.
“임유환과 조성환, 박용호와 김치곤과 조병국의 능력이 모두 급상승했습니다.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실력입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하지만 이 말로는 모든 언론의 비판을 이겨내기엔 조금 부족했다. 그러나 차범근과 선수들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23인의 태극전사들. 새로운 월드컵을 위한 전사들의 대장정이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하는데, 그깟 비판 따위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적이다. 지금 대한민국 리틀 월드컵 대표팀은, 차범근을 중심으로 모든 스태프와 선수들이 한데 모여 있다. 그리고, 22일. 아시아 예선 첫 상대인 베트남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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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부터 본격적으로 경기에 들어갑니다. 총 40부 정도로 구상하고 있구요^^;
으....꼬리말 꼭 달아주세요^^ 반응이 없으면 소설 쓸맛 뚝 버리는거 아시죠?
부탁드릴게요^^
첫댓글 재밌네요. 다음편 기대되요 ㅎㅎ
빨리좀 써주세요^^..
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