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제1독서
<엘리야는 그 음식으로 힘을 얻어 하느님의 산에 이르렀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9,4-8
그 무렵 엘리야는 4 하룻길을 걸어 광야로 나갔다.
그는 싸리나무 아래로 들어가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5 그러고 나서 엘리야는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고 말하였다.
6 엘리야가 깨어 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누웠다.
7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고 말하였다.
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제2독서
<여러분도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4,30─5,2
형제 여러분, 30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41-51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42 그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트루먼 쇼와 생명의 빵
오늘 복음도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으면 하늘 나라에 도달할 것이라는 성체성사와 관련된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빵이라고 하실 때 의아해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는 것을 본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례 때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하느님 자녀로서 인정받으셨음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당신을 먹는 이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 하십니다.
나중에 이들은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에 이해하기 어렵다가 다들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그런데 열두 사도만이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왔을 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보지 못한 ‘표징’이 분명히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5천 명을 먹이신 기적과 오늘 복음 사이에 우리가 간과하는 하나의 표징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신 기적입니다. 제자들은 이 표징과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같은 것이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두울 때 제자들은 호수 중앙에서 큰 바람에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십니다. 이들은 지쳐있는 데다 겁까지 집어먹습니다. 예수님은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나다”(I am who “I AM”)라는 말은 탈출기 3,14절에 하느님께서 “나는 나다”라고 하실 때의 하느님 이름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맞아들이려 할 때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려던 곳은 어딜까요? 우리는 누구나 하늘 나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그만한 사랑의 수준을 가진 이들만 들어갑니다. 우리는 피를 빨아먹는 모기와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과 피를 내어주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 세상 것에 집착할 때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집착은 잃는 두려움 때문에 생깁니다. 이 두려움이 없어져야 부모가 자녀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듯 사랑 실천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내 안에 하느님께서 들어오셨다면 우리는 이제 이 지상 것에는 집착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성체를 영해야 합니다.
BTS나 김미경 강사 등이 세상 모든 것을 얻고도 우울증이나 번아웃에 고생하였습니다. 김미경 강사는 모든 것을 다 잃고 “괜찮다, 사랑한다!”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가장 좋은 예는 영화 ‘트루먼 쇼’(1998)입니다. 트루먼은 조작된 세상에서 연기자들과 살며 세상에 생중계되는 스타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사는 세상이 전부라 믿었고 감독은 트루먼의 아버지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연출하여 트루먼이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 준 이가 트루먼을 진정으로 사랑한 유일한 사람인 실비아입니다. 실비아는 직장을 잃을 각오로 하는 키스와 진실한 말로 자신은 피지라는 곳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이때부터 트루먼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실비아에게 갈 준비를 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버리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실비아의 진정한 희생은 트루먼이 두려움의 바다를 건너 거대한 거짓 방송 세트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저도 성체를 많이 영했지만, 신학교에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시는 말씀에 삶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체는 하느님께서 ‘다’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다 받은 사람이 세상 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아직 성체가 하느님이라고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실한 사랑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이 악해지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고 성체는 그 죄를 없애는 분이십니다. 성체 안에 계신 분이 하느님이시고 우리 부모처럼 살과 피를 나를 위해 내어주시는 분으로 믿읍시다. 그러면 이미 목적지에 닿은 것입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지난주에 인천 교구 동창 신부 서품 25주년 기념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처음에 인천 교구 동창은 모두 12명이었고 한 신부가 사고로 하늘 나라에 일찍 떠났을 뿐 11명 중에 아픈 사람도 없고, 중간에 사제 생활을 그만둔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사목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했던 이번의 성지순례를 통해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이렇게 25년을 사제로 기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각 개인의 능력보다 주님 덕분임을 잘 알기에 더 큰 감사함의 기도로 함께했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은 교만을 통해서는 불가능합니다.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하는데, 자기의 능력과 재능만을 뽐내려고 하는데 상대방에게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렸을 때, 어머니께 불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형님의 옷들을 무조건 물려 입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옷이 낡아서 구멍이 나면 그 구멍을 메워서 입게 했습니다. 친구들이 입는 새 옷이 늘 부러웠고, 헌 옷만 입어야 하니 늘 불만이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6남매를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음을 잘 알기에 이제 비로소 감사의 마음을 가집니다.
교만도 불평불만도 그 밖의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서는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없게 해서 함께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정적인 마음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면서 함께 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군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나자렛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믿음을 갖지 못하고 또 당신을 내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도 갖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주셨고, 당신을 믿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성체 성사를 통해 이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십니다. 제1독서에서 보듯이, 엘리야가 광야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제공한 음식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양식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채울 수 있습니다.
때때로 광야를 헤매며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때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서는 예수님을 통해 생명의 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빵으로 큰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이라는 책에는 결코 뒤에 정답이 나와 있지 않아! (찰리 브라운)
사진설명: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