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나라 몽골
성병조
(몽골 대초원 트레킹) 트레킹은 산길에서의 긴 도보 여행. 느리지만 힘이 드는 하이킹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이다. 히말라야의 산기슭을 걷는 '히말라야 트레킹'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몽골 역시 트레킹의 나라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남한의 14배 면적 (세계 19위), 인구 340만, 라마교 90%, 수도 울란바토르 (해발 1300m), 겨울은 혹한이지만 여름은 습기가 없어 시원하다. 머무는 동안 대충 15도를 유지하였다. 우리가 본 곳은 전체의 1/1000 에 불과하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 한가하게 풀을 뜯는 소, 말, 양의 천국 같다. 며칠간 머문 몽골에서 내 눈이 푸르게 물들어 버렸다. 그곳 얘기가 이어진다.
(게르의 나라 몽골) 게르(ger)란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짐승의 털로 만든 천을 덮어 만드는 몽골의 전통 가옥이다. 드넓은 초원지대에서 가축들을 키우며 떠돌아다녀야 하므로 이런 조립식 주택이 편리하다. 세계에서 유일한 주거 형태라고 한다. 이틀간은 게르에서 잠을 잤다. 관광객이 늘자 산간지대 경치 좋은 곳에 있는 게르가 인기를 끌고 있다. 네 개의 침대와 탁자 의자가 잘 갖추어져 있다. 겉으로는 하얀 색깔의 둥근 돔이지만 내부는 주거 요소를 골고루 갖췄다. 원주민의 집도 들러 보았다. 이게 편리한지 울란바토르 변두리에도 많이 보였다. 가이드에게 한 채 짓는 가격을 물었더니 우리 돈 2백만 원쯤 된다고 한다.
(가축들의 천국) 몽골은 푸른 초원과 가축의 천국이다. 소, 말, 양, 돼지, 낙타가 5대 가축이라고 한다. 넓게 펼쳐지는 초원에는 빠짐없이 가축들이 노닌다. 간간이 비가 내리고 초원이 넓어 풀 걱정은 않아도 된다. 워낙 가축 식구가 많고, 오래 사귄 덕분인지 싸움하는 모습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유유히 거니는 놈, 풀을 뜯어 먹는 놈, 풀 위에 누워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는 놈까지 각양각색이다. 가히 가축의 천국이다. 목이 마르면 개울에서 단체로 물을 마신다. 운전자에게는 무단 횡단하는 가축이 성가실 법도 하지만 종종 있는 일이라 별로 개의치 않는다. 가축이 큰 대접 받고 있다. 하지만 초원을 거닐 때는 소와 말똥을 조심해야 한다.
(몽골에서 새벽 조깅) 이따금 묻는 사람이 있다. 외국 여행 중에도 새벽 조깅 하느냐고. 일찍 일어나 샤워하고 나면 할 일이 별로 없다. 준비해간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지만 시간이 많이 남는다. 이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호텔 주변을 둘러보는 재미도 크다. 다른 나라의 새벽 모습도 챙겨 보고 싶은 것이다. 운동 후 들어오면 반드시 카운터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새벽이어서 가장 한가하다. 영어만 좀 하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외국인을 많이 만나는 호텔 직원일수록 영어는 능통하다. 그 나라의 여러 이야기를 듣고, 또 우리나라에 관해 소개하면 흥미로워한다. 궁금증 해소와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몽골의 교통 문화) 외국 여행을 할 때면 그 나라의 시민 의식에 관심이 높다. 그중 교통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주된 수단이 어떠하며, 차는 어디서 만든 것인지, 그리고 교통질서는 잘 지키는지 등이다.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가 흘러넘쳤다. 버스는 보이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가 이색적이었다. 몽골은 어떤가. 도시서는 오토바이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시내 버스 기다리는 모습이 우리보다 심해 보였다. 승용차는 일본산이, 버스는 우리나라 제품이 주종을 이룬다. '대우' 표시도 선명하다.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적어 도로를 넓게 할 필요도 없다. 신경 곤두서게 하는 경적 못 들었고 교통질서도 잘 지켜지는 편이었다.
(비포장도로 체험) 몽골에서 도로의 가장자리 포장은 아직도 미흡한 편이다. 고속도로라 해도 우리들의 일반 도로보다 못하다. 대충 5, 60Km 정도의 속도로 달린다. 눈길을 끄는 게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주도로에서 벗어난 길은 초원으로 이어져 차도만 겨우 드러난다. 곳곳이 깊이 파이고 고불고불 흔들림이 무척 심하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봉고로 갈아탄다. 여기서부턴 길이 아니라 돌밭이다. 길에 익숙한 기사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마구 달린다. 차 안의 사람들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심하게 요동친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제안하였다. 홍보물에 '비포장도로 체험' 란을 추가하면 관광객들이 더 큰 호기심을 가질 거라고.
(세차장이 궁금하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질문이 많이 따른다. 이런 나를 두고 아내는 항상 불만이다. 남들이 묻지 않는데 왜 자꾸 물어대느냐고. 몽골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이드가 조곤조곤 알아서 설명해 주면 좋은데 차만 타면 임무 종료이다. 다들 잠자는데 나만 홀로 깨어 바깥을 주시한다. 차들이 한결같이 지저분하다. 창문만 빤히 내놓고 달리는 차도 보인다. 비가 자주 내리고, 또 비포장도로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었다. 몽골에도 세차장이 있느냐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믿기 어려웠다. 깨끗한 차는 거의 볼 수 없고, 세차해도 금방 더러워질 것인데 세차한들 얼마나 갈지 의문이 들어서다.
(말에게 미안하다) 몽골 여행 중 승마 체험이 있다. 우리처럼 승마장을 빙빙 도는 게 아니라 넓은 초원을 누빈다. 현지인으로 구성된 마부가 양옆으로 두 마리 말을 유도하면 그 말 위에 관광객이 오르게 된다. 보통 속도지만 스릴 넘친다. 2시간 동안 약 6km를 운행하여 말타기 진수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말 60여 마리가 광활한 초원을 누비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긴 시간 동안 타기 때문에 주변 경치 관람도, 초원의 수많은 가축도 만난다. 어떤 마부는 함께 어우러져 우리 노래를 합창한다. 아내의 말에 비해 내 말이 좀 힘들어한다. 몸이 무거운 사람을 만난 재수 없는 날처럼 느껴져 좀 미안하였다.
(초원과 삼림) 몽골에서는 이 두 가지가 뚜렷이 구분된다. 광활한 초원이 계속되는 곳에는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와 비교하면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한두 그루쯤은 자랄 것 같은데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광활한 초원이 이어지다가 국립공원에 이르면 삼림이 무성한 곳이 있다. 나무도 곧게 뻗은 전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예전 우리나라의 전나무 전봇대는 지금 몽골에서 유행하고 있다. 차츰 시멘트 기둥으로 교체되는 경우를 보았지만 거의 허술한 나무 전봇대들이다. 궁금하면 못 참는 내가 물었다. 가이드 왈, 초원에서는 땅을 조금만 파도 나무가 자라기 힘든 자갈돌이라고 한다. 들어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실망스런 가이드) 몽골서 소량의 비가 자주 내렸다. 해가 나왔다가 금방 비가 내리기도 한다. 체체궁산 트레킹 때는 무려 7차례나 비를 만났다. 정상에선 비만 내리는 게 아니라 강풍이 불고 기온이 급강하, 얼음 얼기 직전이다. 트레킹 후 버스가 달리고 있는데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 성에로 뒤덮여 완전 먹통이다. 다들 휴지로 창문을 닦지만 금방 뿌예진다. 참다못해 가이드에게 부탁하였다. 대답이 걸작이다. 처음에는 버스 안팎의 습도 차이로 제거 불가, 또 요청하니 바람구멍을 창문 쪽으로 돌리란다. 그래도 전혀 개선되지 않아 요청했더니 기사가 찬바람을 높여 간단히 개선하였다. 이래 놓고도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인지 의문이 들었다.
(소변이 문제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면 광활한 초원지대를 달리게 된다. 왕복 2차선이 고작이다. 인구가 적으니 넓은 도로도 필요 없다. 그런 몽골에 요즘 많은 관광객 (1위 중국, 2위 한국, 3위 러시아 정도)이 몰리자 화장실이 문제이다. 휴게소가 없으니 더욱 그렇다. 두어 시간 달리다 보면 화장실 찾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도로변에 정차 후 각자 해결토록 한다. 남자들이야 돌아서면 되지만 여성들이 문제다. 생리 현상 앞에 체면을 생각할 여지는 없다. 비가 잦은 나라인지라 다들 우산은 잘 챙겨 다닌다. 이걸 동료 여성이 펼치면 그 속에 들어가 해결하는 게 이곳의 화장실 문화다. 모든 일은 자연과 더불어 서다.
(웃기는 몽골 이야기) 몽골 여행 중 재미있는 우화를 소개한다. 그곳의 군 복무 실태가 궁금하였다.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대 가는데 기간은 1년이다. 복무 중 6개월은 두들겨 맞고, 6개월은 복수하고 나온다는 가이드 설명이 걸작이다. 구타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도로 주행 중 가이드가 운전기사 옆에 앉아 뭔가 크게 외치고 있다. 가이드의 본분이 아니라 딴전을 펴고 있는 거다. 뭘 하는지 물었더니 기사의 졸음을 쫓기 위해 스마트 폰을 읽어준다. 이게 끝이 아니다. 다음엔 관광객에게 봉지 커피가 있는지 묻는다. 기사의 졸음 퇴치를 위해 커피를 타주기 위함이란다. 아마추어 버스 기사의 진수를 생생히 체험하고 돌아왔다.
(국산 별, 몽골 별) 몽골을 다녀왔다고 하니 모두가 묻는다. 초원이 얼마나 넓고, 가축이 얼마나 많은지를 묻는 게 아니라 다들 별을 보았느냐고 질문한다. 몽골 별과 한국 별에 무슨 차이가 있다더냐? 굳이 말하면 몽골에는 초원이 넓고, 공장이 없어 공기가 맑다는 점이다. 몽골은 아직도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한다. 관광객들이 머무는 그들의 전통 가옥인 게르는 주로 경관 수려한 산간 지방에 위치한다. 그런 곳에서 바라보는 별은 이색 정취를 안겨주기에 족하다. 하지만 외제를 선호할 필요는 없다. 겨울 새벽에 뜬 국산별이 훨씬 영롱함을 어찌 알겠는가. 문제는 새벽 일찍 일어나기가 외국 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