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투쟁자
화면이 바뀌어서 카슬로드Chaslode 궁내. 소윌루Sowilo 왕국의 왕, 호일
란드 11세의 사망 이후, 현재 집권을 하고 있는 태자의 거처다. 아까 전에
장군이라 불렸던 그 귀족, 아니 지금은 기사의 옷차림이니......
그 기사와 한 노인이, 그 수많은 군중들 중에서 유달리 눈에 띈다. 그 외
에도 수십 인의 기사들이 서 있었고, 모두의 얼굴에는 각양각색의 표정이
떠올라 있다. 제일 앞에는 열 여덟쯤으로 보이는 한 소년이, 심각한(?) 표
정을 지은 채로 앉아 있다.
아아, 말을 꺼내려 한다. 그럼.... 어디 들어보도록 하자.
"수, 숙부께서 반란을 일으키시다니..... 그것도 아버님 상중에! ..누구, 누
구 말 좀 해보시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까 전 그 기사가 그를 치켜 보며, 비웃는 듯이 말한다.
"랜디스의 반란은 전부터 예측되어 온 일입니다. 단지, 조금은 이르다는
것뿐이지요. 저하께선 그리 당황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너무 당황하지 마십시오. 저하께서 흔들리시게 되면
국가 전체에 그 파장이 미칩니다~!"
옆에 서 있던 푸른 옷의 소년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된
태자...... 하지만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일 뿐이다. 역시..... 아직은 어린것일
까?? 하지만, 옆에 있는 푸른 옷의 소년은 더 어려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서서 태자를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으, 으음. 알겠소. 그, 그럼..... 그러니까.... 밀려들어오는 적들을, 그, 마,
막을 준비는 되어 있소?"
한 명의 기사가 앞으로 나온다.
"걱정 마십시오, 저하! 우리에게는 수만의 장정들이 저하의 지시만을 기
다리며 대기하고 있고, 또한 서른 개가 넘는 영속국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충실히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맞습니다! 더더구나 조.짐 님의 휴먼 뮤턴트 군과 아카이아Akaia 공화
국도 협력하겠다고 전해 왔습니다. 이 정도라면, 전하께서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으셔도..."
아까 전의 그 기사가 얼굴에 비웃음을 가득 띄운 채,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의 말을 끊으며 말을 꺼낸다.
"후후후...... 랜디스란 자가 그리도 쉬운 인물로 보이시오, 가네스 경, 할
덴 경? 그 자의 별명을 잊은 거요? 그 자, 백여우라 불리는 그를 잊은 것이
오, 경들은?? 그렇게까지 불리는 자가, 과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군사를 일
으킬 만큼으로, 그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로 보이시오?"
"..무, 무슨 소리요, 에스먼트 경!? 그, 그렇다면, 우리가 겨우, 겨우 그딴
놈들에게 패배한다는 소리요? 전투 전에 쓸데없는 소리로 군의 사기를 꺾
는 행위는, 왕께 대한 반역 행위라는 사실을 잊으신 거요?"
아니? 그, 그럼.... 아까 전 그 기사가 바로 에스먼트?
"흥. ..이미 랜디스는, 우리 영속국 중 하나인 이스턴 백국과 불멸의 요새
라고 불리던 카탈랴 요새를 완벽하게 점거하였소. 또한 프레데릭 경과 에
릭 경이 백기를 펼치고 항복하였으며, 오헤르 경과 하딜랴 부관의 목이 요
새 앞에 세워진 기둥에 그들의 내장과 함께 아주 멋지게 걸려 있다더군.
이미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힘을 만 천하에 선포한 상태란 말이오! 그런
걸 생각해 보셨소?"
"그,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이오, 에스먼트!? 그들보다 우리들의 힘은 훨씬
더 강하단 말이요~~!"
에스먼트가 매우 한심하다는 듯이, 지금 입을 연 붉은 옷의 기사를 향해
입을 연다.
"후우. 할덴 경, 아직도 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시오? 후
우..... 누가 저자에게 웅장이라는 별명을 붙였을까. 갑자기 그 자에 대한 존
경심이 새록새록 이는군."
발끈하는 할덴. 하지만 에스먼트의 혀는 멈추지 않는다.
"할덴 경. 랜디스의 세력이 우리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고 생
각이 될 경우에, 우리 쪽 영속국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 보시고 그런 말을 하시는 거요? 전장을 제대로 좀
보란 말이오, 제대로!!"
"그, 그건 또 무슨....!?"
"..으으!! 이렇게 답답해서야!! 랜디스의 세력이 강하다면, 영속국들은 몸
을 더욱 사릴 것 아니오!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이게? 차라리 그 쪽에 안 붙
으면 우린 사는 게지!!"
모두 다 침묵한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다시 에스먼트의 혀가 돌아가
기 시작한다. 모두는 단지 듣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마엔, 송글
송글 식은땀이 맺히고 있었다.
"현재 폐하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국가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
고 있는 영주들이 수두룩한 실정이오. 이런 상황에서 랜디스가 대규모의
반란을 일으킨 것이오. 더더구나 하겔라즈와의 재 휴전 협정이 맺어진 지
도 4년이 넘어갔소! 그들로서는 더 이상, 휴전 협정에 얽매일 아무 이유도
없다는 것이오!! 더더구나 지난번 메디아에서 전하를 암살한 것도, 하겔라
즈 군이 저지른 짓이란 정보가 들리고 있소!"
순간 그는 푸른 옷의 소년을 노려본다. 소년은 그의 눈을 애써 피하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사나운 사자 에스먼트의 핏기 어린
눈빛은, 그를 향해 매섭게 쏘아지고 있었다.
"그때 프레드 전하가 쓸데없이 자리만 비키시지 않으셨더라도, 적어도 우
리는 확실한 정보를 알 수 있었을 것이오. 또 어쩌면, 국왕 전하께서도 그
렇게 돌아가시진 않으셨을 것이오.
흰 수염의 노인이 헛기침을 한다. ..에스먼트의 말은 순간 약해진다.
"..프, 프레드 전하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외다..... 그, 그리고 물론, 전하를
암살한 건 메디아 아카데미 소속의 학생 중 하나라고 전해졌지만....... 하지
만 하겔라즈가, 우리한테 적대국이란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 틈을 보이면,
그들은 즉각 제 4차 천세 전쟁을 일으킬 것이오!!"
"........"
"또 한가지 더 있소. 그의 수하에서는, 피에 굶주린 하프 뱀파이어, '저승
의 흑기사 하이데스' 가 아직까지도 건재하게 버티고 있소. 지난날 제 3차
천세 전쟁에서 그는 약관 14세의 나이로 출전하여, 자신의 아버지의 기사
단이었던 공포의 부대, '블러디 가디언Bloody Guardian' 을 이끌고서 수십
만에 달하는 하겔라즈 연합군을 무참히 짓밟고, 국왕께 에스카드 32의 직
위를 받았소. 겨우 21세의 나이로 말이오! 수백의 사람들의 목을 베어 죽
이고 그 목을 밟고 거닐면서도, 표정 하나도 변하지 않는 냉혹한 지옥의
사자..... 지금 그의 나이 26세, 한창 힘이 넘칠 만한 나이요. 도대체 우리
군중 그의 무략을 당할 만한 인물이 있기나 하오? 우리 소유 기사단 중,
흉악한 죄수들로만 조직되어 있는 피의 수호자, '블러디 가디언' 부대를 아
무 두려움 없이 상대할 만한 기사단이 있기나 하오? 공포에 질려 자빠지지
나 않는다면 다행이지....."
모두 조용할 뿐이다.
"..상대할 자가 있냐고 묻지 않소! 아마, 아마도 우리 소윌루 내에선 단
한 명! 선왕과의 말다툼 끝에 결국 잠적해 버린, '호수의 기사' 랜서로트 경
의 천상 기사단 '홀리 스키니미르Holy Sckinimir' 정도 밖에는 없을 것이오!
어쩌면 국왕 직속 근위 기사단, 천하제일이라고까지 불리는 '스피리트 플라
티나Spirit Platina' 조차도, 그들을 쉽게 이길 수는 없을 것이오. 그런 적
을, 그대들은 그렇게 얕보는 거요? 정녕 그런 거요? 그렇게 이길 자신이 있
으면, 어디 직접 나가서 블러디 가디언의 목을 한 기라도 베어와 보시지?
그럴 자신도 없으면, 설치지나 마시오!"
저승의 흑기사 하이데스..... 이 이름에, 모든 이들은 점점 움츠려든다. 그
리도 두려운 존재인가, 그는??
한 기사가 마지막 오기를 부리는 듯 말을 꺼낸다.
"그러면 어쩌라는 거요? 그냥 이렇게 당하고 말란 소리요? 도대체 어떻
게, 우리가 어떻게 하란 말이오! 에스먼트. 당신은 도대체 뭘 바라는 것이
오!! 도대체 뭘, 어떻게!!"
에스먼트의 얼굴이 다시 가라앉으면서, 회의장은 다시 고요한 적막에 휩
싸여 버린다.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던 노인이 말을 꺼낸다.
"..일단은 현신, 아란 장로님께 여쭤 보는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안 그
렇습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 도대체 그 괴팍한 분께서, 지금 어디 계실 줄이나
알고 찾아간단 말이오?"
다시 그 노인이 입을 연다.
"제가 그분이 지금 계신 곳을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조용해지는 주변...... 기사들의 표정은 잠시 얼어붙는다. 그리고
더없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외치는 기사들의 모습.....
"..아니, 메슬린 경! 그걸 이제야 말하시오? 아예, 아예 전쟁이 끝나서 우
리가 모두 항복한 후에나 말씀을 하시지요?"
"그걸 알고 계시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날 것을, 왜 아직까지 말하지 않으
신 거요!? 도대체 왜...!?"
그럼 이 실실 웃어대는 노친네가..... 공식적으로는 전 세계 제 2의 대마
법사라고 일컫어지고 있는 이, 흑마법 9서클의 엑스퍼트Expert, 소윌루 왕
궁 수석 마법사 메슬린 므엘사보란 말인가?
메슬린은 씩 웃으며 말을 한다.
"..아무도 물어 보지 않지 않았잖소?"
이젠 황당하다 못해서 험악해진 분위기..... 더 이상 분위기는 제어될 생
각도 하지 않는다.
"..지, 지금 그걸 농이라고 하시는 거요, 메슬린 경?!"
"..그럼 만약에, 만약에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만약 그랬으
면 어떻게 하시려고 하셨던 거요!?"
"..참 나, 지금 내가 꺼냈잖소? 이제 됐소이까?"
"....메슬린 겨어어엉~~!"
수많은 기사들의 호통에도, 기사들이 검무를 추겠다고 설치는 것에도 전
혀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은 만면에 가득히 웃음을 지으면서, 소년을 향해
입을 연다.
"뭐...... 지금이라고 해도, 그렇게 늦지까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하. 어서
가실 채비를 차리도록 하시지요."
"아, 알겠소, 메슬린 경. 그...... 그럼, 일단 이번 회의는 해산하겠소. 짐이
서둘러서 아란 경을 뵙고 온 후에, 모두를 재 소집할 터이니...... 그, 그럼
그리 아시오!"
"........"
기사들의 고요한 침묵에 당황한 태자,
"왜, 왜들 말이 없소? 무슨 할말이 있는 것이오?"
에스먼트는 한심하단 눈빛으로 태자를 쳐다본다.
"저, 저하... 나가시기 전에 먼저, 병사 소집령 등의 명령은 내려 주고 가
셔야 하지 않습니까? 일단 준비는 하고 가셔야....."
"에스먼트 경 말이 맞습니다, 저하. 영을 내려 주십시오~!"
태자의 당혹스러운 모습이 너무도 안쓰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태자다. 이제 부왕이 승하한 이 때..... 그는 이 땅의 주인이고, 이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조, 좋소. 그럼, 루트 경과 마호니 부관은 각 지방의 철들을 모으고 가
공하시오. 그리고 가스터 경은 전 무기 제작진들을 감독하고, 데론 경은 각
지방에 명을 내려, 전국의 병사를 소집하시오. 그리고 파슬란 경은, 왕궁
마법사들에게 비상령 제 3급을 내리고 대기하시오. 에스먼트 경과 메슬린
경, 그리고 프레드는 나와 함께 아란 경께로 갈 것이오. 그럼, 이 걸로써
일단은 회의를 마치겠소."
어떤 것일까. 정세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아직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정녕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직
까진. 이 국가를 이끌어갈 태자가, 너무도 유약해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