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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차선대법회 진제대선사 법어
- 2002.10.20. 해운정사 -
〔 상당하여 주장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신 후 법상을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
오늘 우천이 돼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동체(萬物與我同体)라.
하늘과 땅은 나로 더불어 뿌리를 같이 했고,
만물은, 두두물물 형형색색은 나로 더불어 한 몸이로다.
설사 이렇다 하여도 진리의 일중(一重) 관문이 가리어 있음이로다.
여하즉시(如何卽是)아?
어떻게 해야 옳으냐?
한 관문이 가리어 있다 하니, 어떻게 해야 옳으냐?
춘생하장(春生夏長)이요, 추수동장(秋收冬藏)이로다.
봄에는 만물이 나고, 여름에는 성장하고, 가을은 거두고 겨울은 갈무리함이로다.
선(禪) 사상은 세계 정신문명의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대안사상(代案思想)으로 진지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선 문화의 토양이 동서양 문화의 종합적 자량(資糧)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세계 문화를 화해와 융합으로 포용함으로써 인류의 정신문명에 무한한 희망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바탕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지구촌의 진정한 안락과 평화는 사람마다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혜가 증장되는 선 수행을 일상생활화 함으로써 가능합니다.
그러면 우리 만 사람이 어떻게 하면 일상생활 하는 그 가운데 바른 참선을 해서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혜가 증장해서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일익(一益)을 담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다 비우고 바른 참선하는 설법을 하고자 하오니 잘 받아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 사람의 이 몸뚱이는 백 년 이내에 썩어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참사람이 아니다 그 말이여.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산승의 법문을 듣고 있는 그 주인공의 자체, 그것을 바로 아셔야 됩니다. 그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일상생활 하는 그 가운데 오매불망 챙기고 의심하고 챙기고 의심해서 모든 사량, 분별, 망념이 일어나지 않게끔 간절히 화두를 들어 챙기는 여기에 선의 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참선명상법이 가지각색입니다. 그러나 바른 참선법은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화두를 들든가, ‘만 가지 진리의 법은 하나로 돌아가고,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이 두 가지 가운데 한 화두를 택해가지고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오매불망 의심하고 챙기면 마음의 가지가지의 망상과 번뇌는 없어지고 아주 순수한 맑은 화두 한 생각만 자나 깨나 흘러갑니다.
그래서 산승은 항시 일상 중에 화두를 챙기는데 있어서, 눈앞에 항시 2미터 앞에다 화두를 딱 화두를 두고 의심하면서 챙기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항시 움직이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뭐 단전에다 둔다든가, 가슴에다 둔다든가, 머리에다 둔다든가 하는데, 항시 눈 앞에 2미터 앞에다, 항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쭉 눈 앞에 2미터 앞에다 두면 화두가 무르익기가 쉽습니다.
혼침, 망상이 달려드는 것은 간절한 화두를 챙기지 아니해서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날 때는 ‘이 생각을 안 해야지, 안 해야 되지’ 하지 마시고, 화두만 또록또록 챙기면 스스로 모든 생각은 다 없어지는 법입니다.
화두 참선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고 앉고 눕고 목욕하고 일하고 잠자는 그 가운데 오매불망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간절한 한 생각이 흘러가게끔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참의심이 발동이 걸립니다. 참의심이 발동이 걸리면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줄도 모르고, 밤이 되어도 밤이 되는 줄 모릅니다. 이러한 참의심이 지속이 되는 과정이 올 것 같으면 모든 분별과 무심(無心)과 이러한 것을 다 잊어버립니다. 그 일념이 쭉 흐르는 과정이 오면 천사람 만사람이 다 진리의 눈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야사 일천 성인(一千聖人)의 머리 위의 일구(一句)를 투과할 수가 있습니다. 일천 성인의 머리 위의 진리의 눈을 뚫어 지나가지 못하면 죽이고, 살리고, 주고, 빼앗는 이러한 자재(自在)의 살림살이를 갖추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면 반쪼가리의 진리의 눈을 갖췄다 그 말이여. 그것은 아무 쓸 곳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 일천 성인의 머리 위의 일구를 투과하는 활구참선을 해야사 금생(今生)에 견성대오를 할 수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면 견성대오를 해야사 나고 죽는 즈음에 있어서 자유자재의 분(分)을 갖추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른 진리의 눈을 깨달은 분은 몸을 천번 만번 받더라 해도 항시 그 깨달은 진리의 눈이 밝아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선(禪)을 선(禪)이라 해도
똥을 눈 위에 뾰족함을 더함이요, 〔시상가첨(屎上加尖)〕선(禪)을 선(禪)이라 아니하여도
이십 방망이를 맞아야 옳다 그 말이여. 〔호여이십봉(好與三十棒)〕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옳으냐? 〔여하즉시(如何卽是)〕
대야(大冶)에 정금(精金)이요,
징담(澄潭)에 교월(皎月)이로다.큰 쇠를 녹이는 가마솥에 정미로운 금이 가득해 있고,
맑은 못에 밝은 달이 비쳐있음이로다.
그러면 나고 날 적마다 깨달은 그 밝은 눈은 매하지 아니한다 했는데, 옛날 스님네의 고증(考證)을 들어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옛날 당나라 때 하면 우리나라 신라, 고구려, 백제 시대입니다. 그 십 세(十歲) 미만의 동자로서 출가를 하셔가지고 조그마한 암자의 노승(老僧) 밑에 출가를 했습니다. 출가를 해서 중놀이 하는 것을 가지가지를 배우고 가르치다 보니 그 사미승(沙彌僧)이 하도 영리해서 노승이 일생토록 중놀이를 잘했다고 자부를 했는데, 아이를 가르쳐보니 당신이 도저히 그 아이의 지혜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 말이여. 그래서 하루는 그 부근에 수백 리 밖에 남전(南泉) 위대한 도인이 수백 명 대중을 거느리고 이 선법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이 많은 노스님이 사미 십 세 미만의 동자 아이를 데리고 ‘위대한 도인 상좌를 하나 만들어야 되겠다’ 그 생각을 가지셔가지고 남전 도인에게 그 어린 사미승을 데리고 갔습니다. 가가지고는 인사를 올리고,
“제가 데려 온 그 십 세 미만의 동자 사미승이 하도 영리해서 저로서는 더 가르칠 능력이 없어서 남전 도인의 위대한 법력을 빌려서 훌륭한 도인을 하나 잘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간청을 드렸습니다.
그러고 인사를 하고 나온 후에 그 조그마한 사미승을 남전 도인 계시는 방에다 들여보냈습니다.
남전 도인이 누워있는 차제에 그 십 세 미만의 동자가 인사를 삼배를 딱 올리니, 남전 도인이 누워서 받으셨습니다.
“그대가 어디서 왔는고?” 하니,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상서로운 집에서 왔습니다. 절 이름입니다.
“그대가 상서로운 집에서 왔을진댄 상서스러운 모양을 봤느냐?”그랬습니다.
“상서스러운 모양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누워 계신 부처님은 보았습니다.” 그랬습니다. 남전 도인이 누워 계시니, 그렇게 나왔습니다.
남전 도인이 벌떡 일어나서 앉으셔가지고 재차 묻기를,
“네가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했습니다. 사미는 인자 이십 세 미만의 갓 중 된 이를 사미라 합니다.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하니,
“정월달이 대단히 추우니, 귀하신 선사님의 법체 편안히 보존하옵소서.” 그리 나오거든요.
그러니 남전 도인이 집 살림하는 원주 스님을 불러서,
“이 사미승을 깨끗한 방에다 잘 모셔라.” 하셨습니다. 그대로 아이 도인이 왔다 그 말이여.
이 부처님의 견성법은 깨달으면, 누구든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깨달으면 이렇게 지혜가 밝아가지고 태에 들어가고 태에 나와도 항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항시 밝아 있다는 겁니다. 지혜의 눈이. 그런 것이 이 부처님의 견성법입니다.
그러면 남전 도인과 그 사미승의 문답처(問答處)를 아시겠습니까? 그 말이여.
〔 양구운(良久云, 조금 있다가) 〕
문재답처(問在答處)요, 답재문처(答在問處)로다.
물음은 답하는 데 있고, 답은 묻는 데 있음이로다.
남전 도인께서 칠백 명 대중을 참선 지도를 하고 계셨는데, 하루는 그 사중(寺中)에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는 동쪽 선방에서 여러 백 명 대중이 참선 정진을 했는데, 그 고양이를 두고 ‘동쪽 선방 고양이다’ 하고, 서쪽 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네는 이 고양이를 ‘서쪽 선방 고양이라’ 하셔가지고 서로 시비가 분분하더라 그 말이여. 그래서 남전 도인이 그 광경을 보시고 시자를 불러 “운집종(雲集鐘)을 치라!” 하니, 칠백 명 대중이 법당리에 다 모여들었습니다.
“고양이 잡아 오너라! 칼 가져 오너라!” 해놓고는 대중에게 고양이를 들고 하는 말이,
“동당 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네는 이 고양이를 동당 선방 고양이라 하고, 서쪽 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네는 서쪽 선방 고양이라 하니, 금일에 이 고양이에 대해서 분명히 이르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고양이를 살려 두거니와, 만약 바로 이르지 못하면 두 동강이 내리라.” 했습니다.
고양이를 들고는 세 번을 “일러라!” “일러라!” 해도 칠백 명 대중이 남전 도인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약속과 같이 바로 이르지 못할 것 같으면 두 동강이 낸다, 죽인다 했거든요. 세 번을 들고 “일러라!” “일러라!” 해도 묵묵부답이라. 한 손은 고양이를 들고 한 손은 칼을 들고 쳐서 두 동강이 내 던지고 당신 방에 돌아가서 쉬고 있는 차제에, 당신 법제자 상수제자가 시장에 사중(寺中) 볼일이 있어가지고,
“다녀왔습니다.” 남전 도인에게 인사를 올리니, 남전 도인께서,
“오전에 이러한 대중에게 고양이 법문이 있었는데, 그대가 만약 참여했던들 고양이를 들고 이르라 할 때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고?” 하니, 즉시 머리에 신짝을 이고 나갔습니다. 머리에 신을 이고 나가니 남전 도인께서,
“그대가 있었던들 고양이를 살릴 뻔 했다.” 바른 답을 했다 그 말이여.
부처님의 이 진리의 법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양이를 들고 이르라는 뜻은 어디에 있으며, 머리에 신짝을 이고 나간 뜻은 어디에 있느냐?
이 진리의 도의 눈이 열리면 이러한 것에 석화전광으로 바른 답이 나와야 견성했다고 인증을 하는 법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모이신 모든 대중께서는 남전 도인이 고양이를 들고 이르라는 뜻은 어디에 있으며, 조주 도인께서 머리에 신을 이고 나간 뜻은 어디에 있는고? 그 말입니다.
〔 양구운(良久云, 조금 있다가) 〕
태평본시장군치(太平本是將軍致)나
불허장군견태평(不許將軍見太平)이로다.〔나무 아미타불〕
태평세월은 원래로 장군을 만연해서 태평세월이 옴이나,
태평세월에 장군이 태평세월을 보고 있는 것은 허락지 아니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정해년(丁亥年)입니다. 정해년은 지금 56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정해년 당시에 문경 봉암사에서 청담 대선사, 성철 대선사, 향곡 대선사 세 분이 모이고, 그 당시에 20여 분의 발심 선객들이 모여가지고, ‘종전에 안 것은 다 덮어두고 대오견성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용맹정진을 하자’고 해가지고 전국의 발심한 스님네들이 선객이 다 모였습니다.
모여가지고 정진에 몰두하는 차제에, 하루는 마루에서 청담 선사, 성철 선사, 향곡 선사 세 분이 모여 앉으셔가지고,
“옛날 도인 스님께서 법문을 하시기를,” 성철 선사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해야사 바야흐로 산 사람을 봄이요,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해야사 바야흐로 죽은 사람을 본다〔殺盡死人 方見活人 活盡死人 方見死人〕’ 하는 이러한 옛 도인의 법문이 있는데,” 청담 스님을 보고 성철 스님께서 “네 이 뜻이 어찌 된 건고?” 물었습니다.
청담 스님께서 거기서 분명한 답이 안 나오셨다 그 말이여.
향곡 선사 역시 거기서 확연하게 답이 안 나오거든. 그러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 후에 향곡 선사는 그 화두를 들고 여름 석 달 동안 오매불망 화두와 씨름을 했습니다. 얼마나 씨름을 했던고, 모든 사량 분별이 다 재[灰]가 되고 여름에 폭우가 쏟아져도 탑 난간에 기대가지고 있어도 폭우 쏟아지는 것을 모르고 일념에 푹 빠졌습니다. 화두일념에.
그러다가, 삼칠일 동안 자기의 몸도 다 잊어버리고,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걸어가도 걸어가는 줄 모르고 일념삼매에 들었다가, 당신 걸어가다가 당신 손을 보고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했습니다. 활연대오를 하셔가지고 오도송을 읊으시기를,
홀견양수전체활(忽見兩手全體活)하고
문득 두 손이 산 것을 보고
삼세불조안중화(三世佛祖眼中花)니라.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이 눈 가운데 꽃이로다.
천경만론시하물(千經萬論是何物)고
일천 경과 만 가지 논문이 이 무슨 물건인고
불조종차총상신(佛祖從此總喪身)이로다.
부처님과 모든 도인이 이로 좇아 생명을 잃는다.
이렇게 오도송을 읊었습니다. 오도송을 읊은 연후에 즉시 성철 선사 처소에 들어와가지고,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해야사 바야흐로 산 사람을 봄이요,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해야사 바야흐로 죽은 사람을 본다’ 하니, 너 한번 일러 보아라!” 네가 물었으니 한번 일러 보아라! 우물쭈물 하거든. 멱살을 잡고 흔들어 놓고는 다시 묻기를,
위산(潙山) 도인이라고, 천오백 대중을 참선 지도를 한 위대한 당나라 때 도인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가, 앙산(仰山), 향엄(香嚴) 제자가 매일 아침마다 위산 도인을 아침문안을 드렸습니다.
상수제자(上首弟子)인 앙산 스님이 문안을 들어오니, 누우셨다가 몸을 뒤쳐 누우면서, 돌아누우면서,
“내가 방금 꿈을 꿨는데, 그대가 해몽을 한번 해보게.” 하시거든. 그 말을 듣고는 즉시 나가가지고 그릇에 물을 잔뜩 떠다가 위산 도인 앞에다 놓고는 나가시거든요.
다음에 향엄 제자가 들어오니, 밤새 문안을 드리려고 들어오니 또 종전과 같이 몸을 한 바퀴 돌아누우면서,
“내가 방금 꿈을 꿨는데, 그대가 해몽을 한번 해보게.” 했습니다. 그러니 향엄 선사는 나가더니 차를 하나 정성껏 잘 다려가지고 앞에다 차 한 잔을 갖다 놓으시거든. 그러니 위산 도인이 일어나 앉으면서 웃으면서,
“두 분의 나의 제자가 부처님 당시의 신통제일의 목련존자가 있었습니다. 목련 도인의 신통에 지나가는구나.” 칭찬을 하셨습니다.
한 분은 해몽을 하라는데 있어서 물을 그릇에다 떠다 놓으시고, 한 분은 차를 한 잔 다려다 놓으셨거든요. 이 대문을 성철 선사에게 물으니 명확한 답을 못하시거든요. 그래서 멱살을 잡고 절 대문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끌어내면서,
“이것을 답을 못하면 절 마당을 들어올 수가 없다.” 명을 내렸습니다. 그때 두 분이 서른여섯 살 때입니다. 두 분이 십년 간 이십대부터 선객으로서 절친한 도반이었습니다. 서릿발 같은 명을 내리는데 있어서 스물여섯 살 때 그 순수한 그 명을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이 법을 구하는 자는 그러한 마음자세를 갖춰야 됩니다. 절친한 십년 도반으로서 그 서릿발 같은 명을 내리는데 있어서 순종한다는 이 뜻, 마음의 자세, 천고에 도를 구하는 귀감이 됩니다.
“이걸 답을 못하면 이 절문 대문을 들어올 수 없다.” 해서 그만 대문을 닫아버렸거든요. 그래서 밖에서 삼사일 동안 밥을 안 먹고 밤낮으로 그 화두와 씨름을 해서 일념삼매가 지속이 돼서 화두가 타파가 돼가지고 밤중에 대문을 닫아놨는데 돌멩이로 대문을 치니까 그 산중이 쩡쩡 울리거든요. 밤중에 스님네들이 공비가 내려온 줄 알고 다 잠을 깼답니다. 그 당시 지금부터 56년 전에 그때는 산중에는 공비가 많이 내려올 때였습니다. 대문을 돌을 가지고 치니까 산이 쩡쩡 울리니 대중 스님네들이 큰방에서 자다가 다 일어났거든. 향곡 선사가 대문 앞에 다다라 가지고,
“일러라!” 하니 척 답이 나오시거든요. 그래서 대문을 열어 주고 둘이 춤을 추면서 그러한 한국의 선의 안목을 진일보한 그러한 위대한 두 분입니다.
지금은 두 분 다 고인(故人)이 됐지만 한국 선종사의 안목에 위대한 진일보를 안목을 나투신 그러한 위대한 대선사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 선을, 최고의 안목을 밝히는데 있어서는 이 두 분과 같은 순수한 마음자세를 갖춰야사 부처님의 최고의 살림살이를 맛볼 수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시고, 육조(六祖) 스님 회하에 남악회양(南岳懷讓) 선사,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 두 분의 법제자를 뒀습니다.
청원행사 선사 밑에 석두(石頭) 그 젊은 스님이 40년 동안 청원 도인을 모시면서 이 대도를 닦아서 진리의 눈이 열렸습니다.
하루는 그 제자를 불러가지고 편지를 써서,
“남악회양(南岳懷讓) 선사에게 다녀오면 무딘 도끼를 줘서 다른 산에 법을 줘서 머무르게 하리라.” 하고 서신을 써주면서 “남악회양 선사에게 다녀오너라.” 했습니다.
수백 리를 걸어가서 남악회양 선사 처소에 이르러가지고 예삼배를 올리고 서신은 전하지 않고 대뜸 묻기를,
“위로는 모든 성인도 사모하지 않고 자기의 영(靈)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한 때에 어떠합니까?” 이러한 고준한 일문(一問)을 던졌습니다.
그러니 회양 선사께서,
“그대는 향상(向上)의 진리만 묻고, 어찌 향하(向下)의 진리는 묻지 않는고?” 했습니다.
그러니 석두 스님이,
“억만 년을 나고 죽는 바다에 잠길지언정 모든 성인의 해탈법(解脫法)은 구하지 않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러니 남악회양 선사께서 서로 대담을 안 하고 돌아앉았습니다. 돌아앉았는데, 산승은 그 당시에 회양 선사가 되었던들 돌아앉지 않고, 그 석두 스님을 보고는,
젊은 행각승이여, 널판때기를 짊어지고 천하를 한번 두루 다녀보게.*
이렇게 한 마디를 하겠다 그 말이여.
회양 선사께서 돌아앉으니, 석두 스님은 즉시 예를 올리고는 자기 절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다녀왔습니다.” 하면서 자기의 스승, 청원 선사에게 인사를 올리니,
“서신은 잘 전했느냐?” 했습니다. 편지는 잘 전했느냐.
“서신도 전하지 못하고, 신(信)도 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거든요. 그래놓고는,
“스님께서 ‘심부름을 다녀오면 도끼를 주어서 다른 산에서 주하게끔 하신다’ 했는데, 그 도끼를 주십시오.” 그랬습니다.
그러니 청원 선사께서 한 발을 들어서 이렇게 드리웠습니다. 드리워 보였습니다. 보여드리니, 석두 젊은 스님이 큰절을 했습니다.
그러면 왜 도끼를 달라는데 발을 한 발을 들어서 보였느냐 그 말이여. 그러니 절을 하셨거든요. 그런 후에 도끼를 줘서 다른 산에 머물게 했습니다. 인가를 해서.
그러면 청원 선사께서 도끼를 달라 하는데 왜 발을 한 발 드리웠으며, 석두 스님께서,
〔 이 때 갑자기 한 외국인 스님이 법상으로 뛰어나와 마이크를 치고는 달아났다. 〕
“어잇! 이놈이! 저런 여우같은 놈이요! 하하하.”
석두 스님께서 어째서 절을 한 뜻이 어디 있느냐 그 말이여!
〔 양구운(良久云, 조금 있다가) 〕
향상향하자재용(向上向下自在用)하야사
천상인간무등필(天上人間無等匹)이로다. 〔나무 아미타불〕
부처님의 진리 가운데 최고의 진리가, 향상의 진리가 있고 향하의 진리가 있습니다.
천상 천하에 향상의, 향하의 진리는 아는 이가 드물다 그 말이여.
이 천상 천하 향상의 진리, 향하의 진리를 알아야사
하늘세계와 인간세계에 짝할 자가 없다, 벗할 자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 법문은 이것으로 마치고 질문자가 있으면 받겠습니다.
법 거 량
【사회자】
다음은 선문답(禪問答) 시간입니다. 선문답이란, 문답을 통하여 진리의 세계를 드러내고, 또한 스승과 제자 간에 깨달음의 경지를 점검하고 이끌어 주는 치열한 구도방식입니다. 언설(言說)로 표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참진리인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체득하게 하는 문답입니다. 큰스님 법문 가운데에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누구든지 나와서 선문답 취지에 맞게 질문하여 주십시오.
【질문자 1】
질문자 : 진제 큰스님. 내가 서서 질문합니다.
진제선사 : 네.
질문자 : 오늘 이 대법회가 무슨 법회요?
진제선사 : 허물이 만 천하에 가득합니다. 소승의 허물이.
질문자 :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다. 입을 연즉은 그르쳤다. 내려와!
진제선사 : 차 한 잔 자세요!
질문자 : 내려와!
진제선사 : 억-! 〔 일할(一喝) 하시다. 〕
질문자 : 내려와!
진제선사 : 억-! 〔 일할(一喝) 하시다. 〕
질문자 : 어! 무차선회 아니다 이거는.
진제선사 : 하하하.
질문자 : 자, 또 한 번 내가 물을게.
【사회자】
또 다른 스님 나오셔서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질문자 2】
질문자 : 예, 제가 묻겠습니다. 스님께서 급하게 대답하면 틀릴 수도 있으니까, 생각을 해서 틀리시면 자세히 다시 대답해주셔도 좋습니다. 제가 임제 사빈주(四賓主)에 대해 묻겠습니다. 어떠한 것이 임제 사빈주 가운데 주중주(主中主, 주인 가운데 주인)의 도리입니까? 한 마디 일어주시오.
진제선사 : 구중궁궐리(九中宮闕裏)에 좌(坐)하니 천불(千佛)도, 일천 부처님도 보기가 어려움이로다.
질문자 : 그러면 어떠한 것이 주중빈(主中賓, 주인 가운데 손님)입니까?
진제선사 : 하하하. 만리강상(萬里江上, 만 리나 되는 강 위)에 백구(白鷗, 흰 갈매기)가 훨훨 낢이로다.
질문자 : 빈주(賓主, 손님과 주인)의 상거(相距, 서로의 거리)는 여하(如何)닛고?
진제선사 : 뭐라 하노?
질문자 : 빈(賓)과 주(主)의 서로 거리, 상거(相距)는 여하(如何)닛고?
진제선사 : 명월(明月)이 비치니 청풍(淸風)이 붊이로다.
질문자 : 에, 그 정도 내가 묻고, 다시 한 번 스님께서 그 도리를 저에게 물으시오, 제가 스님 세 가지 대답하신 것을 두고 또 두 가지를 더 물어 보겠어요.
질문자 : 스님 수중(手中) 주장자는 종심마처득래(從什麽處得來), 어디서 가져 왔소? 어디로 좇아 왔소?
진제선사 : 하하하. 불시(不是, 옳지 못함), 불시(不是)로다.
질문자 : 그러면 또 하나 더 묻겠어요. 필경 그 주장자는 항심마처(恒什麽處) 안신입명(安身立命)하꼬?
진제선사 : 구구는 삼십육이로다.
질문자 : 그 도리를, 스님이 했는 대답을 이 대중이 다 들었으니까, 내가 물었던 말을 스님이 한 번 해요. 나는 스님의 답을 인정할 수 없어요. 나에게 물으시오. 내가 답을 한번 할 테니. 물어봐요.
진제선사 : 그거는 놔두고 들어가 인자.
질문자 : 아니, 물어보란 말이요.
진제선사 : 들어가, 들어가, 들어가. 다른 사람 또 하지.
【사회자】
다음 사람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자 3】
질문자 : 선사님께 한 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만약 당시에 선사님께서 조주 스님을 대신하셨다면 남전 스님께서 “상서스러운 상(像)을 봤느냐?” 라고 물으실 때 뭐라고 한 마디 이르시겠습니까?
진제선사 : 산승이 그 조주 도인 사미가 되었던들 종동가사하고, 종동가사라, 동쪽에서 몇 걸음 걸어서 서쪽에 섰다가, 다시 서쪽에서 몇 걸음 걸어 동쪽에서 서겠다 그 말이여.
질문자 :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어떠한 것이 향상(向上)의 진리입니까?
진제선사 : 만 리(萬里)에 기골퇴(起骨堆)라. 만 리나 되는 데 백골(白骨)이 즐비함이로다.
질문자 : 그러시다면 향하(向下)의 진리는 어떤 것입니까?
진제선사 : 대지(大地)의 산과 물이로다.
【사회자】
다음 질문자 한 분만 더 받겠습니다.
【질문자 4】
질문자 : 스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의 소리는 어디에 담았습니까?
진제선사 : 한 마디도 담은 바가 없소.
질문자 : 그 소리가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진제선사 : 한 바가 없는데 온 바가 있겠소?
질문자 : 지금 오고 있는 그 소리는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진제선사 : 억-! 〔 일할(一喝) 하시다. 〕
질문자 : 끝도 없고 가애도 없는 무오광야에, 시간세월 또한 무량광(無量廣)에 흔적도 없는 나는 무(無)입니다. 소리가 없는 자리에서 소리가 오는데 그 소리를 만들어 쓰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만들어서 써버리는데, 그 본 소리를 말씀해 주십시오.
진제선사 : 하하하. 쿵-! 〔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다. 〕
【사회자】
자, 됐습니다. 다음 재가자께서 질문하실 분 있으면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자 5】
질문자 : 부처와 중생과 마음, 이 셋이 차별이 없다 했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증명을 하시겠습니까?
진제선사 : 차별이 없다 해도 삼십 방을 맞아야 돼.
질문자 : 예?
진제선사 : 차별이 없다 해도 삼십 방을 맞아야 돼.
질문 : 스님께서 저에게 질문을 한번 해 주십시오. 같은 질문을.
진제선사 : 아까 조주 선사께서 머리에 신짝 이고 나간 그 뜻을 한번 일러 보지.
질문자 : 〔 선사님께 큰절로써 예삼배를 올리다. 〕
진제선사 : 옳지 못하고, 옳지 못해!
【사회자】
그러면 질문하실 분들이 많이 계신 걸로 알겠습니다만, 다음 기회에 별도로 큰스님께 직접 참예(參詣)해 주시기 바랍니다.
〔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
* 널판때기를 등에 지면 한 쪽 면 밖에 못 보게 됨. 담판한이라고 경책하는 말.
** 신(信)도 통하지 못 했습니다 : 문답이 상통하지 못하였음을 뜻함.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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