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GE(제너럴일렉트릭)는 지난 100여 년간 세계 정상급 제조 기업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미래에 필요한 기술을 미리 파악하고 선도적으로 개발해 온 덕이다. GE는 최근 미래 기술 연구에 대한 또 하나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넥스트 리스트(Next List)’. 미래를 밝힐 6가지 기술이다. 이는 앞으로 GE가 우선적으로 진행시킬 연구개발 방향이다.
① 어디서나 에너지 만든다…전천후 에너지(Energy Everywhere)
누구나 어디서든 필요할 때 다양한 연료로부터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소규모 분산 발전(Distributed Generation)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전천후 에너지’다. 미래형 발전은 에너지 저장장치(ESS), 연료전지(Fuel Cell) 등 여러 첨단 발전기술을 활용하고 연료도 보다 다양하게 사용하게 된다. 자연재해 등 유사시에도 병원, 정부기관 등 주요 시설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중앙발전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전체적으로 전력이 끊기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쓰레기도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GE의 옌바허(jenbacher) 엔진은 다양한 폐기물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다재다능한 가스터빈이다. 가축 배설물은 물론 음식물 쓰레기, 위스키 찌꺼기, 치즈를 만든 뒤 남는 유장 등 가스를 발생시키는 폐기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복합발전 시에는 열효율이 무려 90%에 달할 만큼 효율도 뛰어나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주요 시설에 옌바허 엔진으로 에너지를 공급했고 프랑스 파리에선 쓰레기 매립지 가스를 활용해 4만여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파리 시청, 성당 등의 공공시설은 이를 통해 난방비를 92%까지 절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옌바허 엔진은 한국에도 80여 대가 설치돼 활용된다. 경남 창녕 바이오플랜트는 인근 축산 농가에서 나오는 가축 배설물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해 전기도 생산하고 골칫거리인 배설물도 처리하고 있다.
② 뇌와 이야기를 나눈다…마인드 매핑(Mapped Minds)
인간 신체에 대한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우리 몸의 모든 기능을 통제하는 컨트롤타워, 뇌만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만약 뇌가 신체를 제어하고 움직이게 할 때 사용하는 ‘뇌의 언어’를 이해한다면 뇌손상과 뇌질환 치료는 물론 이로 인해 잃어버렸던 신체 기능까지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뇌의 문제’를 겪는 환자와 가족이 감내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치러야 할 사회적·경제적 비용 역시 막대하다. 전 세계적으로 4억5000만명이 신경정신성 증상과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1400만명이 넘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미국에서만 앞으로 40년 동안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GE가 ‘마인드 매핑’을 미래의 혁신기술로 점찍고 적극 투자하고 있는 이유다. 마인드 매핑은 세포분석, 뇌회로, MRI 장비를 이용한 뇌 연구 등으로 그 기능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GE글로벌리서치 연구소는 미국 브라운대학과 협력해 뇌의 뉴런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를 연구하고 있다. GE의 마이크로 전자공학, 비침입성·웨어러블·무선 의료장비 기술 등을 활용해 극소형 임플란트를 만들어냈다. 이를 뇌나 척수 손상 및 질병으로 신체 기능을 잃어버린 환자들에게 이식한다. 임플란트는 각각의 뉴런에서 오는 전기 신호를 모두 기록한다. 현재 기술은 일단의 뉴런이 모여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며 신체 기능을 제어하는지 이해하기 직전 단계까지 와 있다.
③ 기계와 사람이 소통한다…산업인터넷(Industrial Internet)
세계 산업의 핵심 트렌드인 사물인터넷은 산업영역에도 적용되고 있다. 산업인터넷은 발전, 항공, 헬스케어 등 큰 산업영역에 사물인터넷의 개념을 적용한 차세대 기술이다. 거대한 기계들 간의 소통을 통해 정보를 수집 및 분석해 활용하는 빅데이터 기술이다. 센서를 통해 실시간 기계 상태를 모니터링 한다. 기계는 기계뿐 아니라 인간과 소통하며 산업 모든 분야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인력을 효과적으로 재배치하도록 도와준다. 공장의 기계나 발전소 장비 등은 인간 또는 다른 기계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 갑작스러운 고장으로 인한 장비 운영 중단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고, 장비와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생산성 향상을 이끌고 있다.
산업인터넷은 GE의 핵심역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제프리 이멀트 GE 회장은 최근 “지난해 산업인터넷 분야에서 매출 10억달러, 수주 잔량 180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에어아시아는 GE의 산업인터넷 솔루션 ‘항공 효율성 서비스(FES·Flight Efficiency Services)’를 적용해 2014년 초부터 현재까지 연료비 1000만달러를 절감했다. FES 솔루션은 항공기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해 최적의 항로를 제안하고 연료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다. 에어아시아는 2017년까지 연료비용만 3000만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동부 최대 철도 운영회사 노퍽 서던은 GE의 산업인터넷 솔루션 중 하나인 ‘운행 최적화 시스템(Trip Optimizer)’을 도입했다.
④ 공장이 스스로 생각한다…‘똑똑한’ 공장(Brilliant Factories)
‘스마트 팩토리’ 혹은 ‘브릴리언트 팩토리’는 산업인터넷을 활용해 제품 설계와 디자인, 제조, 공급망, 서비스 등 모든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지능형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전통적인 공장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여기에 3D프린팅, 신소재 사용 등의 첨단 제조기법까지 적용해 품질 및 제조 속도도 혁신적으로 높인다.
브릴리언트 팩토리는 제품 설계자, 공급업체, 엔지니어, 고객들이 공간 제약 없이 피드백을 주고받고 협업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운영된다. 어디서나 공장과 연결할 수 있어 재료나 기기를 직접 만지지 않고도 정보를 다운로드받아 제품을 설계하고 가상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디자인과 설계, 제조가 동시에 이뤄지며 제조가 진행되는 중간에도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과정과 업데이트된 정보를 바로 적용하고, 시장 요구를 개발 과정에 곧바로 반영할 수도 있다.
브릴리언트 팩토리의 또 다른 특징은 ‘첨단 제조’다. 3D프린팅, 레이저 등 첨단제조 기법에서부터 신소재 활용까지 첨단 과학 기법을 통해 제품을 제작한다.
GE항공은 차세대 단거리 항공기 에어버스 A320 네오와 보잉 737 맥스에 탑재될 LEAP엔진의 연료 노즐을 3D프린팅으로 제작했다. 기존 제품보다 5배나 오래가고 단순해진 디자인 덕에 용접 횟수도 25회에서 5회로 줄었다. GE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에 이 같은 첨단기술들을 적용한 GE 최초 브릴리언트 팩토리를 설립 중이다.
⑤ 어떤 조건에도 임무 수행…극한 기계(Extreme Machines)
위급 상황 대처, 에너지 발굴, 우주 탐사 등을 위해선 화재현장, 고산지대는 물론 심해, 우주 등 극한의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계가 필요하다. 산불이 끊이지 않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대형 화재 현장에서 고열을 견디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소방 헬기가 필수적. 헬기 제조 기업 시콜스키가 개발한 UH-60 헬기에 GE의 고성능 엔진을 장착한 파이어 호크 소방 헬기는 엔진 부품 일부를 니켈 합금으로 제작해 극단적 온도 변화나 공중의 이물질 및 고열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 또 강력한 엔진으로 3.8t에 달하는 물을 단 1분 만에 빨아들여 물탱크를 채울 수 있다.
심해 원유시추 작업의 핵심 안전장비이자 심해에서 작동하는 극한의 기계인 BOP(폭발방지기·Blowout Preventer)는 시추 장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서 장비와 인력을 보호해주는 최후 수단이다. 무게 300t, 높이 18m에 이르고 설치에만 1년 반이 소요되며 설치비용도 1600만달러에 달한다. 유지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고장이나 사고로 시추장비를 가동 못했을 때 생기는 손실은 하루 300만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필수적인 장비다. 극한의 장비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문제를 예상해 미리 해결해내는 ‘스마트함’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BOP는 예측 정비 시스템인 ‘실리틱스 BOP 솔루션(Sealytics BOP Advisor)’을 갖추고 있다.
⑥ 더 강하게 더 가볍게…슈퍼 소재(Super Materials)
슈퍼 소재는 가벼우면서도 최고 수준의 내구성, 내열성을 갖춘 소재들. 슈퍼 소재는 미래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한 축으로 각광받고 있다.
슈퍼 소재로 각광받는 대표적 소재는 탄소섬유다. 철이나 알루미늄 합금보다 가볍고 내구성이 강해 자동차, 항공기, 로켓, 미사일 동체나 부품에 사용되며 금속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GE 역시 탄소섬유 복합재를 비행기 엔진 제작, 산업용 수직 파이프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 소재로 만든 블레이드, 터보팬, 터보프롭 엔진을 복합 설계한 엔진은 기존 엔진보다 연료 효율이 30% 이상 높다. 보잉777기에 탑재된 GE90 엔진은 중량을 수 백 ㎏이나 줄였다.
GE는 제트엔진 부품 제작에 세라믹 소재도 사용한다. 세라믹 매트릭스 복합재(CMCs)는 내구성이 강하고 가벼우며 내열성이 높아 제트엔진을 보다 높은 온도에서 작동할 수 있게 해준다. GE는 최근 프랑스 항공업체 스넥마(Snecma)와 합작한 CFM 인터내셔널을 통해 차세대 항공기 엔진인 ‘LEAP’를 개발했다. LEAP 엔진은 상용 제트엔진으로는 처음으로 특수 세라믹 합성물이 소재로 사용돼 내구성이 크게 향상됐다.
신동수 GE코리아 CTO(최고기술책임자)는 “GE는 끊임없이 차세대 기술을 찾아내고 지속적으로 투자해오며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비용 절감 해법을 찾는 다른 기업들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