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방법은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일이다.
죽은 이가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빛의 부처님인 아미타불께 의지하여 극락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또 '지장보살'을 부르는 방법도 있다.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해탈시킨 다음 부처가 되겠다."고 맹세한
지장보살의 원력(願力)에 의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장보살은 염라대왕을 비롯한 명부의 10대왕이 심판을 할 때
심판 받는 이의 옆에 서서 해탈 법문을 설해 주고,
또 염라대왕에게 좋은 판결을 내려 줄 것을 부탁한다고 한다.
이밖에도, <지장경>, <금강경>, <아미타경> 등의 불경을 읽어주면서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방법도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역시 이 경우에도 경을 입으로만 외워서는 안된다.
스스로 뜻을 해득하여 한 구절 한 구절을 마음으로 새기면서 읽어야 한다.
경을 읽어 주는 것은 곧 설법을 하는 것인데,
읽는 사람이 뜻도 모르고 읽는다면 어떻게 죽은 이의 영혼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밖에도 다라니를 외우거나 사경(寫經)을 하거나
영가에게 보살계(菩薩戒)를 주는 등의 여러 가지 천도 방법이 있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사람들에게 일러주어 가장 빨리,
그리고 크게 효험을 본 것으로 광명진언 천도법을 꼽을 수 있다.
광명진언(光明眞言)은 29글자로 이루어진 매우 짧은 진언이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이 진언은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힘으로 새로운 태어남을 얻게 하는
신령스러운 힘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깊은 죄업과 짙은 어두움이 마음을 덮고 있을지라도
부처님의 광명 속에 들어가면 저절로 맑아지고 깨어나게 된다는 것이 이 진언을
외워 영험을 얻는 원리이다.
일찍이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元曉大師)는
그의 저서 <유심안락도 游心安樂道>에서 이 진언의 공덕을 크게 강조하였다.
만일 중생이 이 진언을 두 번이나 세 번, 또는 일곱 번을 귀로 듣기만 하여도
모든 죄업이 없어지게 된다.
또 중생이 십악(十惡)과 사역죄(四逆罪)와 사중죄(四重罪)를 지어 죽은 다음
악도에 떨어질지라도 이 진언을 외우면 능히 해탈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그릇에 흙이나 모래를 담아 놓고 이 진언을 108번 외워 그 모래를 시신 위에
흩거나 묘지 또는 묘탑(墓塔) 위에 흩어 주면 비로자나 부처님의 광명이 망인에게
이르러 모든 죄업을 소멸시켜 줄 뿐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연화대로 인도하게 된다.
..........
비록 남이 지은 공덕을 자기가 받는 이치는 없다고 하지만,
인연만 있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힘을 일으킬 수가 있다.
그러므로 진언을 외우고 모래를 뿌려보라. 곧 새로운 인연이 맺어질 것이다.
..........
모래를 묘 위에 흩는 것만으로도 극락 왕생하거늘,
하물며 진언으로 옷을 지어 입고 소리를 내어 외우면 어떠하겠는가?
모래를 흩는 공덕보다 진언을 외우는 공덕이 더 수승함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원효대사는 항상 가지고 다니던 바가지에 강변의 깨끗한 모래를 담아
광명진언을 108번 외운 다음, 그 모래를 묘지나 시신 위에 뿌려 영가를 천도했다고 한다.
우리 불자들도 성묘 또는 묘사를 지내러 갈 때 이러한 모래를 준비하여
조상들의 묘 위에 뿌려 줌이 좋으리라.
그리고 집안에 상(喪)을 당했을 때,
절에서 49재를 지냄과 동시에 그 49일 동안 집안에서 매일 광명진언을 외워주면 매우 좋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좋다.
향 한 자루가 타는 30분이면 족하다.
망인(亡人)의 사진 앞에 앉아
입으로는 광명진언을 외우고 마음으로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면 된다.
틀림없이 크나큰 영험이 있을 것이니,
상주가 된 불자들은 적극 실천해 보기를 당부 드린다
2) 영가의 장애가 있을 때도 광명진언
광명진언은 망인의 천도뿐만 아니라,
영가의 장애가 있어 원활한 삶을 이루지 못할 때 외워도 큰 효험을 볼 수가 있다.
사람들은 불행이 닥칠 때 흔히들 조상을 탓한다.
"조상도 무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 뒤에는 부모, 친척, 조상 등의 영혼이
나를 돕지 않는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바꾸어 말하면 영가의 장애로 말미암아 꼭 이루어져야 할 일이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고
더욱 꼬이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이 들어 병원을 가도 병명조차 밝히지 못하게 되면
영가의 장애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답답한 마음에 점장이를 찾아가면 제삿밥을 받아먹지 못하는 등의
죽은 조상을 들먹이면서 굿 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영가의 장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어떤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영가의 장애가 있다.
특히 꿈 가운데 영가가 자주 보이게 되면 영가 장애의 신호로 보아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어려움이나 영가의 장애가 찾아 든다고 하여
굿을 하는 등의 미신(迷信)에 빠져서는 안된다. 미신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기의 바른 마음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힘에 끌려가게 되면 그것이 미신이다.
특히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은 적절한
방법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만약 지금 '나'에게 영가의 장애가 있다면 광명진언을 외워보라.
삼칠일[21일]을 기한으로 삼고 매일 밤 향 하나를 피워 놓고 30분씩만
광명진언을 외우면 모든 장애는 저절로 풀어진다.
장애가 풀어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방해를 하던 영가가 우리를 도와주기까지 한다.
나는 40여 년 동안 영가의 장애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광명진언법을 일러주었고, 그 결과 광명진언을 외운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가피를 입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두 가지 경우만 함께 살펴보자.
내가 이 광명진언을 한 신도에게 처음 일러준 것은 나이 30세 무렵,
태백산 도솔암에서 홀로 6년 정진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볕이 따스한 5월의 어느 날,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이 백짓장처럼 핏기가 없는 한 보살이 두 여인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도솔암으로 올라와서 하소연을 하였다.
"스님,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왜 그러십니까?"
보살은 자신의 애타는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처녀 시절, 제법 어여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한 총각에 대해 연민의 정을 가졌고,
그 총각도 그녀에게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부모가 정해 주는 사람에게로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채 10년도 되지 않아서 그녀의 남편은 물론 그 남자의 부인도 죽고 말았다.
결혼하기 전부터 서로 마음을 두었던
그들은 홀아비와 과부로 새롭게 만나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결혼식을 올렸다.
새 남편이 전처 소생의 아이 둘을 데려오기는 하였지만,
자신의 아이가 없었던 그녀는 정성껏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렇게 1년 가량을 살았을 무렵,
그녀의 꿈에 남편의 전처가 나타나서 치하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낳은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
아이들의 성질이 사납고 까다로운데 네가 와서 잘 키워 주니.... 어쨌든 고맙다."
처음 이렇게 찾아온 전처는
그 후 매일 밤 꿈에 나타나서 몸을 쓰다듬으며 말을 하였다.
"네가 욕보는 줄 내가 잘 알고 있네, 욕보는 줄 알고 있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면 전처가 꿈속에서 쓰다듬었던 자리가
그렇게 아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같이 계속되자
그녀의 몸은 몽둥이 찜질을 당한 것과 같이 되고 말았다.
마침내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녀는 꿈속에서 전처에게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욕보는 줄 알면 그만이지, 왜 자꾸 찾아와서 귀찮게 구는 거야?"
"왜 신경질을 부리고 그러나? 후처로 들어온 주제에!"
이렇게 말다툼으로 시작된 것이 마침내는 매일 밤 꿈에서의 계속된 싸움으로 이어졌다.
귀신을 상대로 하여 비방하고 헛된 소리를 하며 밤마다 잠을 설치기를 1년,
마침내 그녀는 피골이 상접하여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때 마을의 이웃 아낙네들이 "태백산에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는 스님이 있으니 찾아가
보자."고 해서 부축을 받으며 30리 길을 걸어 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궁리하던 나는 원효대사의 <유심안락도>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이 나서
광명진언을 적어 주고 단단히 일렀다.
"이 광명진언을 부지런히 외우면서 마음으로
'그분에게 지혜의 광명을 주옵소서.'하고 기원하십시오.
그분은 지혜가 어두워 죽어서까지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을 놓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부디 미워하지 말고 그분에게 지혜가 생기도록 부지런히 광명진언을 외워 주십시오."
"예, 꼭 스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한달 뒤,
그녀는 제법 살도 찌고 혈색이 도는 얼굴로 촌과자 한 보따리를 싸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하였다.
"광명진언을 외우기 시작하자 죽은 전처가 문턱까지 와서는 들여다보고 가고,
문턱까지 와서 보고 가기를 며칠 동안 하더니, 이제는 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스님 덕분에 저는 살았습니다."
그때 나는 광명진언에 대한 깊은 믿음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약 20년 전에 있었던 한 여교사의 경우는 광명진언의 큰 힘을 새삼 일깨워
주기까지 하였다.
1974년 가을, 마흔이 갓 넘은 혼자 사는 여교사가 해인사 지족암으로 나를 찾아왔다.
물론 그녀는 독신주의자도 아니었고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의 인생을 자기의 의지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 시작은 다시 20년 남짓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의 나이 스물셋,
막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8개 국어에 능통하며 서울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청년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한창 행복감에 겨워 결혼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어느 날,
신랑될 청년이 그녀의 집으로 오기 위해 대구 북비산 옆의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치어 즉사하고 말았다.
그런데 정말 묘하게도,
그 남자가 죽은 지 꼭 만 1년이 되던 날,
바로 그 장소에서 그녀의 남동생도 차에 치어 즉사하고 만 것이다.
1년 사이에 사랑하는 두 남자를 한 장소에서 잃어버린 그녀에게
이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애인과 남동생 생각만 하면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다,
마침내는 가슴이 빠개지고 쫙 벌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껴야 했다.
병원을 찾아가도 "별 이상 없다."는 말뿐이었다.
다소나마 자신의 아픔을 진정시키려면 산으로 올라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학교를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 산 저 산을 찾아가다 보니
전국에 안 가본 산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중에도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그녀였으므로 많은 남자들로부터 청혼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살면 무엇하나? 나도 결혼을 하여 안정을 찾아야지."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기로 작정을 하면 뜻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서 항상 어긋나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도 더 계속되었다.
10여 년을 이렇게 지낸 그녀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설악산을 찾았던 어느 날, 그녀는 생각하였다.
'내 전생에 무슨 몹쓸 짓을 지었기에 잘살아 보려고 해도 안되고
제멋대로 사는 것도 되지 않는 것인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차라리 죽어 버리자.'
그녀는 양폭산장 가까이에 있는 높이 수십 미터의 폭포 위로 올라가서 배낭을 맨 채
뛰어내렸다. 하지만 죽기는커녕 다친 곳 하나 없었다. 오직 엉덩이 부분만 약간 얼얼할 뿐이었다.
'아마 산에서는 죽을 팔자가 아닌가 보다. 그렇다면 내일 바다에 가서 죽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여관을 찾아가서 잠을 자는데,
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네 명이 그녀의 사지를 한쪽씩 잡고 정신없이 흔들어 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날이 밝자
곧바로 낙산사 홍련암 옆의 바위 위로 올라가서 시퍼런 동해 바닷물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는 몇 모금의 바닷물을 마시다가 완전히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극심한 요동이 느껴졌고,
억지로 눈을 떠보니 어젯밤의 꿈처럼 네 사람의 남자가 물을 토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거꾸로 들고 흔들어 대고 있었다.
인근 마을의 어부인 그들이 때마침 고기잡이배를 저어 가다가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그녀를 보고 구조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된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 약국 저 약국을 돌면서 수면제를 사 모았고,
약 2백 알이 모이자 한꺼번에 몽땅 삼킨 다음 이불 위에 반듯하게 누워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졸음은커녕 갑자기 배가 크게 뒤틀리더니 속에 있는 똥물까지 다 토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두 차례 더 자살을 기도하였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우연히 태백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나를 한 번 찾아가 보라는 말을 듣고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녀에게 영가의 세계와 영가의 장애에 대해 간략히
일러주고 두 남자를 위해 광명진언을 외울 것을 권하였다.
"죽은 두 남자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장애를 만들고 있는 것이니,
삼칠일 동안 광명진언을 외우면서 기도해 보시오.
낮 동안은 편안한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깨끗이 몸을 씻고 향 하나가 다 탈 동안만이라도
지극히 외워 보십시오.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을 되뇌이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면 두 영가 또한 더 이상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좋은 곳으로 떠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삼칠일 기도가 끝나면 손수 찬을 마련하여
이곳에 와서 두 사람을 위한 제사를 한 번 지내 주도록 하십시오.
염불은 내가 해줄 테니......."
그녀는 내가 주는 향 한 묶음을 받아 집으로 갔다가
삼칠일이 지난 다음 지족암으로 다시 찾아왔다.
"스님, 삼칠일 기도가 끝나는 날,
저는 식은땀을 비오듯 흘리며 꿈을 꾸었습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큰 뱀 두 마리가 나의 팔을 하나씩 칭칭 감고 양쪽으로
잡아당기는데 닭 가슴이 벌어지듯 저의 가슴이 '쩍' 하고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제 가슴이 그토록 아팠던 까닭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뱀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두려운 생각에 끊임없이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그때 머리를 박박 깍은 양복 차림의 사람이 나타나더니 정육점에서 고기를 찍을 때
사용하는 갈고리로 뱀의 머리를 콕콕 찍어 밖으로 내던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마리는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리고
한 마리를 조그마한 새끼 뱀으로 변하여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깨어나자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가슴의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와 나는 준비해 온 음식으로 두 남자를 위한 제사를 지내 주었고,
그녀는 그 뒤 훌륭한 불자요 훌륭한 선생님으로 열심히 살고 있으며,
지금도 가끔씩 나를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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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가도 중생이다.
이상의 두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듯이
광명진언의 묘한 힘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진언의 위력 못지 않게 우리의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다.
곧 어떠한 경우라도 영가를 쫓아내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서양의 종교나 무속에서는 영가의 장애가 생기면
이를 악마의 장난 또는 삿된 영혼으로 인정하고 무조건 쫓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불교에서는 다르다.
영가는 추방당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구제를 해주어야 할 또 하나의 중생이다.
도리어 장애를 일으키는 영가일수록 제가 안착해야 할 세계로 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중생인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귀신을 추방하겠다는 자세로 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천도(薦度)는 말 그대로 피안[度]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과 쫓아내는 것은 그 의미가 너무나 다른 것이다.
영가를 추방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제도는커녕 싸움만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영가의 세계를 달리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과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인정을 나누듯이 영가에게도 정을 쏟고 마음을 주면
되는 것이다.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자비심으로 대하면 그릇된 일이 어찌 일어나겠는가?
더욱이 광명진언과 같은 불가사의한 힘이 함께 하고 있으니......
만약 선대 조상이나 가족, 친족, 친구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이가 있다면
삼칠일의 기간을 정하여 광명진언을 외우며 기도해 주도록 하자.
그리고 유산, 낙태 등으로 마음에 걸리는 부모가 있다면
'나'와 인연이 닿지 않은 그 영(靈)을 위하여 삼칠일 기도를 해주는 것이 좋다.
부디 명심하라.
귀신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 모두가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고 정으로 통할 수 있기 때문에
광명진언이나 부처님의 경전을 읽어 주고 망인의 이름으로 공덕을 쌓도록 해주고
축원을 해주면 반드시 천도, 곧 피안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참된 불자답게 천도를 할 일이 있으면 법에 맞게 천도를 하자.
그렇게 할 때 이 세상은 맑아지고 밝아진다. 법다운 천도야말로 영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피안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글을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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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우리는 여러 가지 기도법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그 방법과 원리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다.
하지만 기도는 긍정적인 면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 때때로 뜻하지 않게 장애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게으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새로운 경계가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
앞일이 보이기도 하고 남의 운명이 그대로 비치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없었던 능력이 자기도 모르게 생겨나면 한편으로는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흥미롭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경계에 빨려 들어가는
수가 많다.
이때가 문제이다.
이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곧 번뇌 때문에 일렁거리던 자기의 마음이 맑어져서
이제까지 비치지 않았던 무엇인가가 비치는 것일 뿐,
아직은 완전히 맑아지고 밝아진 경지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 스스로의 자세를 더욱 가다듬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불가에는 '금강수보살'을 열심히 외우면
금강수보살이 친히 나타나서 견성을 시켜 준다는 말이 전하여지고 있다.
현재 생존하고 계신 스님은 그 말을 듣고 '금강수보살'을 부를 것을 작정하였다.
스님은 밤잠도 마다하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열심히 '금강수보살'을 불렀다.
그런데 50일이 지나자 금강수보살이 나타나 법문을 들려준 다음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계행을 잘 지키고 있느냐?"
"예, 잘 지키고 있습니다."
"몸으로 계행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 계행을 잘 지켜야지!"
"예?"
"이놈아, 아직 도를 이루기에는 멀었구나. 속에 여자 생각이 꽉 차 있는데 어떻게 도를
이루겠느냐?"
실로 어려서 출가한 그 스님은 여자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가끔씩은 '여자와 함께 살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매혹적인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홀로 있을 때 은근히 그리워지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나타난 금강수보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도를 이룰 수 있습니까?"
"너의 성기를 끊어 버려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그 스님은 칼로 자신의 성기를 끊어 버렸다.
순간 금강수보살은 눈앞에서 사라졌고,
도를 깨치기는커녕 불구에 정신마저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금강수보살이 아니라 마(魔)의 유혹에 빠져든 것이다.
그 뒤 그 스님의 은사(恩師)가 찾아가 참선을 지도하자 마의 장애에서 깨어났고,
다행히 지금까지 중노릇을 잘하고 있다.
우리 불자들은 기도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아서 꼭 필요한 기도를 해야지
허황된 기도를 하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기도를 하다가 나타나는 경계에 사로잡히면 안된다.
앞일을 알기 위해 한 기도가 아닌데 앞일이 보인다고 현혹될 것이 무엇인가?
남의 운명을 보기 위해 한 기도가 아닌데 남의 운명이 보인다고 떠들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마장(魔障)이다.
이 마장을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이때 더 힘을 기울여 유혹 당함이 없이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가 맑아지고 있고 업이 녹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다.
다 녹았다는 것이 아니다. 다 맑아졌다는 것이 아니다.
그때 더욱 열심히 자기의 소원으로 들어가 기도하면 좋은 결실을 이룰 수가 있다.
곧 새로운 경계가 나타나면 '내가 분기점에 와 있다.'는 것을 자각하여야 한다.
실로 기도를 하다가 마음이 딴 데로 팔리고
톱니바퀴가 헛돌아 신기(神氣)가 드는 사람도 많다.
내 나이 40세 무렵, 여행을 하다가 조그마한 무당 절을 잠시 지나치게 되었는데
마침 안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네 아들은 지금 부산의 어느 식당에서 일을 보아주고 있구나."
'허, 관세음보살 귀신이 단단히 붙었구먼.'
이렇게 생각하며 모른 척하고 소리쳐 불렀다.
"주인 계십니까?"
방문을 연 점쟁이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넙죽 엎드렸다.
"아이구, 큰 관세음보살님! 큰 관세음보살님!"
나는 자리에 앉으며 계속 점을 보라고 하였다.
"더 계속하십시오."
"저는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인가?
어찌 관세음보살에 큰 관세음보살이 있고 작은 관세음보살이 있을 것인가?
오로지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소원을 축으로 삼아 기도의 대상인 불보살과
기도하는 자기의 톱니바퀴를 잘 맞추면서 기도를 해야만 한다.
순수한 마음, 간절한 마음,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면 가피가 저절로 따르고,
허황한 욕심과 잘못된 믿음으로 기도를 하면 그릇된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기도하는 틈틈이 자기의 마음을 돌아보면서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삼매에 이르게 되면 반드시 불보살의 가피가
찾아들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기도에 임하기를 당부 드리면서
한 편의 이야기로 끝맺음을 하고자 한다.
옛날,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세계에 가기를 원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극락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그 방법만 일러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했다.
마친 땡추중이 이 말을 듣고 그 어리석은 사람을 불렀다.
"10년 동안 내가 시키는 일을 하면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극락에 보내 주마."
그 사람은 땡추중의 지시라면 입안의 혀처럼 극진히 행하면서 틈틈이 염불을 하였다.
10년이 지나자 땡추중은 부자가 되었고, 그 사람은 이제 극락을 보내 달라고 하였다.
땡추중은 그 사람을 데리고 산 위의 절벽 꼭대기로 갔다.
그리고 소나무 위로 올라가 두 손으로 가지를 잡고 매달리게 했다.
"이제 한 손을 놓아라."
"한 쪽 손도 마저 놓아라."
"나무아미타불을 외워라."
그 사람은 수천 길 낭떠러지 속으로 떨어지면서 크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바로 그 순간, 사방에서 오색 구름이 나타나더니 떨어지는 그 사람을 태우고 가
버리는 것이었다.
땡추중은 기가 막혔다.
자기의 능력이 탄로 나서 10년동안 벌어 준 재산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
죽이려 한 것인데 극락으로 가 버리다니......
땡추중은 자신의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착각과 함께 자신도 극락으로 가고자
소나무 위로 올라갔다.
"한쪽 손을 놓아라."
"다시 한쪽 손을 놓아라."
"나무아미타불."
땡추중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매우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이것이 바로 일심기도법이다.
실로 일심기도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다.
지극한 마음으로 법답게 기도하면 반드시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부디 우리 불자들이 참된 기도법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기도 정진함으로써
마음을 맑히고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남김없이 소원을 성취하게 되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지금까지 일타 큰 스님의 생활속의 기도법을 올렸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시다보면 일념이 되고 일념으로 하는
기도는 반듯이 성취 되시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