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입암산 산행이야기(7월 17일)
o 장소 : 장성, 입암산(626m)
o 가는 길 : 광주→백양사나들목→남창계곡→은선골→정상→ 산성골→ 남문→은선골→남창계곡
※ 산행시간 : 4시간 35분(10Km)
o 참석자(7명) : 기주, 경문, 두열, 환기, 순태, 동진부부
o 운전 : 두열, 동진
장성 남창계곡, 입암산 산행을 위하여 08시 30분 광주시청 주차장에 서 친구들을 만났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방향으로 가다가 백양사 나들목으로 들어선 다음 백양사 방향으로 달렸다. 백양사 나들목에서 4~5km 가다보면 백양사․남창계곡 갈림길이 나오는 데, 남창계곡 방향으로 들어서면 된다.
모처럼 선희가 친구인 현랑과 함께 참여한다고 했는 데 불발에 그쳤다. 운동 중에 걷기만한 운동이 없는 데 푸른 산천을 친구들과 함께 유람하며, 바람을 벗하며 구름을 노래하는 산행을 멀리 하는 지 알 수 없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창계곡을 따라 걷는다. 맑디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데, 탁족은 물론 아이들은 물놀이도 가능하여 언제 찾아와도 쉴 만한 곳이다. 인근에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있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다.
주차장에서 곧장 길을 따라 돌길을 걷다보면 새재 갈림길이 나온다. 정읍이나 백양사를 가려면 새재쪽으로 가고, 입암산으로 가려면 왼쪽 길로 들어서야 한다. 한 참 걷다보면 은선계곡(공주의 동학산에도 은선계곡이 있다)이 있는 은선골과 산성골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우리는 은선골로 향했다. 입암산 왼쪽을 돌아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아볼 참이다. 평지를 따라 길을 걷는 데 아내가 참나리꽃처럼 생긴 주황색 꽃을 보며 ‘이게 무슨 꽃이어요?’하고 묻길래 사진을 찍으며 한참동안 바라 보았는 데 생김새는 참나리꽃보다 작고, 백합꽃 같기도 하는 데 꽃잎 크기가 작고, 색깔은 주황색이며, 검은 점이 박혀 있다. 특이하게도 대궁이의 중간 부분에 여러 개의 잎이 매달려 있다.
전체 산행 길은 왕복 10km로 은선골의 산행 길은 흙길이며, 숲속이며, 거의 평지같다. 그리고 은선계곡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간간이 삼나무숲이 있어 공기가 상큼하다. 평지가 계속되다가 약간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산 능선에 다다른다. 이 때부터 오르막길이 시작하는 데 정상까지 500m 남짓 된다.
입암산은 산 꼭대기의 바위가 갓(笠) 모양 같다고 해서 갓바위산(笠巖山)이다. 장성 입암산(626m)은 내장산국립공원 안에 있으며, 호남평야와 나주평야를 가르는 노령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으면서 생긴 산인 만큼 전라남북도를 가르고 있다. 장성 새재를 넘으면 정읍땅이다.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내장사)과 백암산(백양사) 능선 서쪽에 있으며, 방장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멋진 갓바위 모습을 사진 찍으려 했더니 나무 숲에 가려 찍을 수 없었다. 환기 친구가 바위틈에 자란 꽃을 가리키며 ‘이게 무슨 꽃이냐?’고 묻길래 바라 보았더니 이는 ‘산수국’이었다. 산수국은 꽃이 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1시간 40분만에 정상에 오르니 바람은 시원하고, 지척에 편백과 삼나무가 유명한 방장산이 버티고 있고, 부안 곰소항, 선운산, 새만금이 있는 서해바다가 희뿌옇게 보였다. 반대편에는 내장산이 보였다. 입암산의 부드러운 곡선이 마치 초록색 비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허공은 텅 비어 있다. 마음도 비우게 된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無心)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 아닐까?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채워져 있음으로써 고민이 생기게 되고, 근심, 걱정, 불안이 앞서게 된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에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온전하게 된다. 울림있는 삶! 나는 그게 부럽다.
원초적으로 세속에서는 무심하기가 어렵다. 어렵다 뿐일까? 채우기에 급급하고, 채우려고 해도 채워 지지도 않지만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강박감을 느끼게 되고, 불평 불만이 쌓이게 되고, 경쟁과 갈등속에서 소외를 느끼거나 절망을 경험하게 된다.
산에 서 보아야만 채우는 것을 그만둘 수가 있다. 산에서는 세속의 잣대가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버리고 또 버려야만 가벼워질 수가 있다. 그래서 도를 닦는 수도인들의 먹빛 옷이 산에 어울린다. 바랑 하나 메고 산 길을 훠이 훠이 걷는 수도인들이 부럽다.
누군가가 이 길을 걸어갔고, 나는 오늘 이 길을 걷고 있다. 요즘처럼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가끔은 휴일 날 친구들과 아름다운 산하를 거닐며 지내는 것은 큰 복이 아닐까싶다. 누릴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 그런 행복을 많은 친구들과 나누며 지내고 싶다.
아름다운 산에도 흠이 있어 이 곳 꼭대기에 이름모를 묘지 1개가 있다. 누군가가 후손들의 발복(發福)을 위해 묘를 만들었겠지만 발복은 기대할 수 없으니 살아 생전 좋은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정상에서 내려와 쉴 만한 곳을 찾아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 복분자 술, 이과두주, 옥수수, 참외, 방울토마토, 기정떡, 찰떡, 오색찰떡, 광어회 등을 맛있게 먹었다. 중국술인 이과두주는 독하므로 얼음에 칵테일하여 마시던 데 ‘좋다’고 하더군. 식도염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의 고충을 누가 알랴?
입암산성은 정상부터 산의 능선을 따라 만들어져 있다. 산성은 삼한시대에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 데, 백제를 거쳐 고려시대에 쌓은 높이 3m, 길이 약 5km의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성안에 계곡을 포함하는 형식으로 계곡과 주변의 산세지형을 이용하여 성벽을 둘렀기 때문에 성안에 물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을 뿐 아니라 외부에 노출을 방지해 주기도 한다. 성벽은 협축식(夾築式)으로 쌓았다. 협축식은 성 외벽은 수직으로 높게 쌓고 내벽은 낮게 쌓은 것을 말한다.
이 곳에서 1256년(고려 고종 43) 송군비(宋君斐)가 원나라 군사를 물리쳤고, 임진왜란 때는 관군과 승병·의병들이 적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부대와 맞서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1593년(선조 26)에는 현감 이귀(李貴)가 포루와 군량창고를 쌓았고, 1653년(효종 4)에는 이유형이 성벽의 폭과 둘레를 늘렸다고 한다. 남문자리에 도착하니 장성군이 성곽을 복원하고 있다. 남문 계곡에서 친구들은 물에 발을 담그며 쉬었다. 남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복원하고 있는 성벽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입암산의 식생은 소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이나무, 단풍나무, 아기단풍나무, 당단풍나무, 고로쇠나무, 삼나무, 편백나무, 팽나무, 떡갈나무, 초피나무, 굴피나무, 개서어나무, 밤나무, 나도밤나무, 일본 잎갈나무(낙엽송), 산벚나무, 생강나무 등이다. 초피나무는 전라도에서는 젠피나무, 경상도에서는 제피나무라고 하는 데 전라도 동부지역과 경상도 지역에서 추어탕에 마른 젠피 잎이나 빻은 젠피열매가루를 넣어 먹는 데 향신료로서 물고기의 냄새를 없애준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초나무는 형태는 비슷하나 가시가 엇갈리게 나며, 독특한 향기가 없는 게 다르다.
남문부터는 완만한 내리막 길이다. 한 참 내려오니 평평한 곳에 다다랐다. 성내리 자리다. 30~40년 전 까지만 해도 성안(城內)에는 ‘성내리’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자리에는 ‘확독’이 놓여져 있어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이 산중에 살았던 사람들은 무얼 키우며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경문이가 낙엽송을 가리키며 ‘ 뭔 나무여?’ 묻던 데 낙엽송은 소나무과에 속한 나무로 가을에 잎이 진다해서 낙엽송이라고 하는 데, 일본 잎갈나무라고도 한다.
걸음걸이는 계속된다. 은선골, 산성골 갈림길을 거쳐 새재입구, 전남대 수련원을 거쳐 주차장에 도착하니 13시 55분이 되었다. 10km 산행 길은 4시간 35분이 걸린 셈이다. 친구들은 ‘여름엔 이 만한 산행코스가 없다’며 다음에도 이곳에 오자‘고 했다. 좋은 데가 어디 이 곳 뿐이겠는가? 좋은 곳은 도처에 널려 있다. 다만, 게을러서 가지 못할 뿐!
점심은 푸른 장성호 가장자리 ‘솔밭가든’에서 ‘빠가사리 매운탕’을 먹었다. 이젠 시골에서도 ‘빠가사리’를 구경하기가 힘든 데, 이 곳은 물이 좋아 아직도 서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모두들 맛있다고 했다. 광주로 오는 길은 담양 한재를 거쳐 돌아왔다.
2011.7.17.
첫댓글 산행기 잘 읽었네 맑은 바람, 푸른 숲길, 피어있는 곷들, 친구들과의 우정, 가끔씩 침묵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유, 그래서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