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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실력이 모자라 편집이 엉성합니다. 이해해 주시길...^^;;
2006년 7월 19일 - 사전답사 출발하는 날...
장마전선으로 인한 연일 계속되는 호우 속에서, 사전답사 일정은
기약 없이 늦춰지고 있었다. 아 더이상 미룰 수는 없다. 최대한 비 적게
내리는 날을 택해서 가자! 각종 일기예보를 검색한 결과 20일에서 22일
사이에 비가 적게 온다는 정보를 입수, 하루 전날인 19일에 사전 답사를
떠나게 된다. with 민수
교수님들에게 잘 다녀온다는 인사를 남긴채 우리둘은 광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게된다. 그때만 해도 우리 둘은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했었다...
광주에 도착하니 저녁 9시. 다행히 광주에 군대시절 고참이 있어서 그 집에서
하루밤 묵게 된다. 잠도 잘 오지 않는다...
<답사 1일차 - 7월 20일>
아침 일찍 우리는 하룻밤 잘묵 었다는 인사를 남기고 보성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민수야 우리 바다나 한번 보고 갈까? 보성차밭 가는데 바로 옆에 율포해수욕장 있다"
이런 나의 꾀임에 빠진 민수와 나는 율포해수욕장에 먼저 들리게 된다.
위에 있는 놈이 바로 그 율포해수욕장이다. 남해안은 이때까지 한번도 안가봤는데...
그렇게 해수욕장이 넓지는 않았다. 바다를 한 10분 조금 넘게 봤을까?
우리는 서둘러 보성차밭으로 떠났다.
#전남 보성 - 대한 다원
<사진>
1.주차장에서 대한다원으로 가는 커다란 오솔길
2.대한다원 입구
3.차밭과 차밭 사이의 무덤
4.녹차밭
KBS 드라마 여름 향기와 각종 CF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보성의 대한다원, 언제부터인가
녹차웰빙 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녹차하면 바로 이 보성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보성에
가면 녹차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나 제품이 없을 정도이다. 녹차는 기본이고, 녹차를 먹인
녹차삼겹살(녹돈), 녹차우유, 녹차떡, 녹차팩, 녹차비누, 녹차 냉면...온통 녹차 천지이다.^^
여기 이 대한다원은 30만평이나 되는 넓은 평원을 자랑하고 있고, 바다와 가깝고, 기온이
온화하면서 습도와 온도가 차 재배에 아주 적당한 조건이라고 한다.
이때까지 그냥 집에서 마시기만 했던 녹차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니... 녹차밭이 그렇게 놀랄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한번쯤은 가보아야 할 장소라 생각한다.
감상에 빠지는 것도 이제 그만...
우리는 강진으로 떠나야 하기에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 전남 강진 -백련사
<사진>
1.백련사 - 만덕사라고도 하며 839년 신라 문성왕 때 무주 무염이 창건하였다.
2.기와불사 - 부처님에게 복전을 하고 마음을 정갈히 한 후 자신이 바라는 바가 이루어
지도록 기왓장에 자신의 이름이나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적어놓는 것이다.
부처님의 은덕으로 그 소원이 성취될 것이 라는 믿음...
3.백련사 대웅전 -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건물로 각 추녀마다
4개의 활주(活柱)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전면 2개의
주두(柱頭)에는 용두(龍頭)로 장식되어 있는데, 단청(丹靑)이 잘
되어 있는 다포(多包)집 건물이다.
4.대웅전내 불상
5.범종각 - 사찰에서 사람을 모이게 하고 때를 알리기 위하여 치는 법구인데,
단층일 경우 범종각이라고 하며, 중층일 경우에는 범종루라고 한다.
6.만경루
강진 터미널에서 다산 초당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 우리는 우선 백련사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런데 이게 왠걸... 백련사까지 올라가는데는 오르막 도로길을 20분 동안 걸어야 한다.ㅠㅠ
(물론 실제 답사때는 백련사 바로 근처에 까지 버스가 갈 수 있습니다.) 보성다원이나, 율포
해수욕장은 둘째치고 이 백련사가 거의 첫코스라서 소심한 마음에 지나가는 차 얻어타지
못하고 우리는 백련사 까지 걸어간다. 헥헥... 이때까지만 해도 민수는 이번 한번만 걸으면
끝이 나는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미안해ㅠㅠ 그래도 가는 길에 경치가 좋고 이상한 과일도
있어서 그거 따고 놀면서 걸어갔다^^;;
드디어 백련사에 도착! 백련사는 절이 그렇게 크지도 않고,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렸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는 후에 가게될 대흥사 보다 백련사가
더 좋았다. 짧고 굵다해야 할까...?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사진>
1.백련사의 동백림 - 백련사의 동백림은 동백나무가 집단으로 자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 선생과 관련된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2.나무뿌리 계단 - 인위적으로 만든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나무뿌리 계단
3.이정표
- 민수와 나를 첫 번째로 허탈하게 했던 곳...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려면 20분 정도 걸어야 하지만 제일 처음 동백림에서 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나오는 녹차밭, 나무 뿌리 계단 등 주변환경이 너무 아름다워 지루하지
않다.
#전남 강진 - 다산초당
<사진>
1.천일각 - 정약용이 유배되었을때, 둘째형 정약전과 강진만을 바라보며 형과 가족들을
그리워 하면서 마음을 달랬던 곳이다. 원래 이 천일각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선생의 마음을 되살리기위해 지난 1975년 강진읍에서 건설하였다.
2.다산초당과 다산선생 영정
18년간의 유배생활 중 11년을 머문 곳으로 원래 초가집이었던 것을 기와로 복원하였다.
(초당(草堂)=초가집) 이 기간동안 다산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등 5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책을 저술하였다.
3.어떤 개념을 복현장터에 팔아먹은 사람이 훼손 표지판. 이 사람 자손 대대로 벌받을 것이다.
4.다조 - 다산선생이 차를 끓여 마시던 곳이라 한다. 茶山이라는 호에도 나타나듯이 다산은 차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다산 초당이 있는 만덕산도 예전에는 다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5.정석바위 - 한문으로 丁石이라고 새겨져있는 바위. 정약용이 직접 새겨 넣었다고 한다.
6.약천 - 뒤에 보이는 냇물은 다산선생이 약수로 썼던 곳.(연지석가산)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제일 처음에 왔을때 보이는 것이 바로 사진 1의 천일각이었다.
천일각에 올라가면 진짜로 강진만의 경치가 제대로 보인다. 11년 동안의 이곳에서의 유배
생활 동안 이자리에서 부모님을 그렸을 다산 선생의 생각에 잠시 감상에 잠긴다.(거짓말^^)
다산초당을 둘러보던 중 정말 충격적인 것 하나를 발견하였다. 바로 다산초당 바로 옆에 있는
안내판에 누가 다산초딩이라고 훼손을 해 놓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다산초당에까지 찾아올 사람이 어떻게 다산선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렇게 훼손을 할 수
있는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말 잡히면 페디그리 한방 먹이고 싶다...
이건 아니잖아~!(깡닭갈비 아저씨 버전ㅠㅠ)
이제 막 떠나려는 찰나...다산유물 전시관쪽에서 올라온듯한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다산초당
으로 올라왔다. 아주머니께서 웃으시며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주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약천에서 찰칵! 안녕히 가세요~
# 다산유물 전시관
다산초당에서 길을 따라서 20여분을 가면 다산 유물전시관이 나온다. 동영상에서도 나오듯이
다산선생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정약용의 생애에서부터, 사상, 경제, 의학, 정치 등
각도에서 분석한 것,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저술까지 정말 잘 해놓았다. 그리고 전시관 입구에는
목판인쇄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도 있었다. 관리 사무소 아저씨에게 나중에 실제 답사 올때
설명듣는 사람이 필요하면 강진군청에 공문을 보내서 요청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고
해남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근데 이게 왠걸...버스가 잘 안온다...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버스가 온다. 아 그런데 이번 버스는 좀 돌아서 가기 때문에 오래걸린다고 한다...ㅠㅠ
근데 말씀드리는 순간. 뒤에서 들리는 소리. 저기 학생~ 돌아보니 아까전에 그 다산초당에서
봤던 아저씨와 아주머니였다. 두분은 백련사까지 보고, 차를 다산유물 전시관에 주차해 놓아
서 버스타고 이곳으로 다시 왔다고 한다. 우리가 불쌍한 표정을 짓자, 아저씨께서 강진 터미널
까지 태워주셨다. 앗싸~ 민수는 이때까지만 해도 차 이번 한번만 얻어타고 끝나는 것인줄 알
고 있었을 것이다. 미안해 민수야ㅠㅠ
#전남 해남 - 대흥사와 진불암
우째우째 하다보니 해남의 대흥사 버스 정류장까지 오게 되었다. 현재 시각은 17시 35분.
일단 바로 앞에 해남 관광 안내 사무소가 있길래 무슨 정보라도 얻을까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비가 와서 산이 미끄러우니 산에 올라가지 말란다...ㅠ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불암에 계신 스님에게 전화를 하였다.
"스님. 저 사전답사 나온 경북대학교 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대흥사 정류소에 도착
하였는데, 관리사에서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지 몰라서 통화드렸습니다.
(속뜻 : 스님 저희 좀 차 태워주세요ㅠㅠ)
스님께서 말씀하시길...입산통제는 무슨 통제 걸어서 쉬엄쉬엄 올라와라.
"네 알겠습니다." 찰칵 "민수야 가자. 아 우선 밥이라도 먹고 가자."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 여기 산채비빔밥 한그릇만 주세요!"
"네? 한그릇요?" "네" 아주머니는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밥을 엄청 많이 줬다.
눈물 젖은 산채비빔밥을 먹고 우리는 진불암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지나가는 차 포착! 저기요~~~~ 차 그냥 간다.
헥헥...또 지나가는 차 포착! 저기요~ 이번에는 태워주신다. 대흥사까지는 다행히 차타고
감^^ 저녁 늦게 대흥사에 도착해서 대흥사를 제대로 보지 않고, 우리는 곧바로 진불암으로
걸어 올라갔다. 한 30분쯤 걸었을때쯤 한 갈림길에서 진불암에 거의 다왔다는 표지판이 보였
다! 그런데 말씀드리는 순간...위에서 내려오는 봉고차. 스님께서 수고하셨다면서 차에 타라
고 하신다. 차에 올라타자, 스님께서는 지금 밥먹으러 밖에 나간다고 하신다. 우리는 이때까
땀흘리며 올라왔던 길을 다시 차타고 내려간다. 인생무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도착한 곳을 뜻밖에도 해남읍내에 있는 한정식 집!
저녁 먹고 왔는데...ㅠㅠ
요놈이 그 한정식이다. 이때까지 한정식 한번도 안먹어 봤는데...^^;; 아 근데 상에 내가 못먹
는 회만 잔뜩있다.ㅠㅠ 그래도 한번 먹고 죽자는 마음으로 회를 먹었다.
스님께서 우리를 보고 한마디 하신다. "너희들 진짜 먹을 복 없다. 진짜 먹을 복 없는 사람은
못먹는 사람이 아니라, 배불러서 맛있는거 앞에 두고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이다."
그러시며 스님께서는 소주한잔을 권하신다. 나는 애꿋은 소주만 들이킨다.(사실은 먹고 싶어
서...^^;;) 드디어 진불암으로 돌아왔다! 하루를 정리한다. 잠이 든다.
피곤해서 인지 잠도 안깨고 잘잤다...^^
<사전답사 2일차 - 7월 21일>
#진불암
<사진>
1.우리가 묵게 될 방 중 하나
2.암자 외경
3.맨 방이다.
4.마당
5.세면장. 차라리 안올리는게 나았던 것일까?^^:;
6.취사장안에 있는 액자.
밤에 자고 있는데 갑자기 민수가 밖으러 나가려하면서 말한다. 형 저 화장실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미친놈아 그냥 자라! 이렇게 말하고 나는 다시 잔다. 어제 민수와
다짐하기를 우리 일정 너무 빽빽하게 진행하지 말고 여유롭게 쉬엄쉬엄 진행하자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은 6시에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6시에
알람을 맞추어 놓고 잠들었는데, 잠결에 무심코 일어나보니 전화기 배터리가 다되어서
꺼져있다. 아뿔싸! 급히 배터리를 바꾸어 넣고 휴대전화기를 커니 놀랍게도 정각 06:00!
켜자마자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이런 우연이...^^;;
일어나니깐 스님은 안보이고 처사님들은 공양을 드리고 계셨다.
공양을 드리고 계셔서 어떻게 말도 못붙이겠고...방황하다가 공양이 끝나자 스님이
어디계신지 물었다.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스님 거처가 있다고 한다.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일지암을 향해서 갔다...
근데 아뿔싸...! 길을 잘못 들어서 북미륵암으로 갔다ㅠㅠ 온김에 북미륵암도 구경하고 헤헤^^;;
2시간 30분 동안 산행을 한 끝에 드뎌 일지암으로 도착하였다.
가는 내내 민수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런 말로 대체했다.
"민수야 군대가면 화이바 쓰고, 총 메고, 군장메고, 행군하니깐 미리 연습한다 생각해라."
민수 속으론 나를 내리막길로 밀어 버리고 싶었을지라...^^;;
#일지암
<사진>
1.일지암 대웅전 2.암자
#대흥사
<사진>
1.대흥사 산문
2.대흥사 일주문
3.천불전
4.서산대사부도
5.일주문에 있는 탱화
6.유선여관
대둔사(대흥사)는 해남읍에서 동남쪽으로 12km쯤 떨어진 두륜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 무령왕 14년에 신라 승려인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며, 그후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선조 37년(1604)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마지막 설법을 한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처영스님에게 "재난이 미치지 않고 오래도록 더렵혀지지 않을 곳" 이라며 해남
대둔사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두라고 부탁했다. 그 후로 절은 사세가 번창하 고 그의 법을 받아
근세에 이르기까지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하며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자리잡았다. 일
제 때는 대흥사라 고쳐 불리다가 1993년 대둔사라는 이름을 회복했다.
송시 (訟詩)
공리(功利)야 생각없고 불도만 닦았고나.
나라일 위급하니 산을 내려왔도다.
- 이여송이 서산대사에게 남긴 시
(판각으로 새겨져 묘향산 보현사와 밀양 표충사에 보관되고
지타 유물은 대흥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구역별 구조
▷ 북원구역 : 침계루를 지나 북원 안마당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대웅보전,
그 좌우에 명부전과 범종각, 응진전이 나란히 있다. 응진전
앞 3층석탑은 이 절의 유물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물
320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남원구역 : 법당으로 천불전과 동국선원이나 용화당 등 강원과 승방 몇채가
각각 돌담으로 구획되어 있다. 천불전의 지붕과 건물의 맵시가 매우
경쾌하며 정면3칸 분합문전체가 아름다운 꽃창살이다. 내부에는
경주에서 실어온 옥돌 불상 천개가 빽빽 하다.
▷ 표 충 사 : 절에서는 흔하지 않은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사명당 유정, 뇌묵당 처영 스님의 화상을 봉안하고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 친필 선시, 신발, 선조가
내린 교지 등 유물과 정조가 내린 금병풍 등이 보관돼 있다.
▷ 대광명전구역: 표충사 뒤편으로 300미터쯤 들어간 곳에 호젓하게 자리한
대광명전은 현재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8칸짜리
일자집인 보현각, 요사채도 있다.
(http://blog.naver.com/man1235?Redirect=Log&logNo=60013704273 내용)
대흥사로 가는 길에는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그 유명한
유선여관이 있다. 실제로 사진 6의 유선여관을 보니 실제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여관이라니 나도 모르게 현대식으로 생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안에 들어가보니
엄청 아늑하고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충격적인 소식
하나를 들었다. 이 여관에 있던 그 답사를 오면 그 답사의 리더만 쫓아 다닌다는 진도개가
언젠가 복날에 소리 소문없이 잡혀갔다는 소식이었다ㅠㅠ
#녹우당
<사진>
1.녹우당 앞 연못(연지)
2.고산 윤선도 고택 앞 비석
3.녹우당 고산사당
4.녹우당 내부
대흥사에서 내려와 우리는 녹우당으로 가기위해 또 걸었다...뒤에 차가 지나간다!
이젠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워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스님이라 했는데 머리는 기른 스님이었다. 차를 타니깐 어떻게 왔는지
물으시더니 이제 어디로 가냐고 했다. 우리는 녹우당으로 간다고 했고, 스님께서는
거기까지 태워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스님께서 너희들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천주교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스님이 막 화를 내면서 그런 사기꾼 종교를
왜 믿냐고. 어디가서 천주교 신자라고 말하지 말라고 열변을 토하신다.
솔직히 기분이 엄청 안좋았지만, 내색하지는 않고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다.
차타고 가는동안 스님께서 여러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에 요즘 대학생들 중에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 어디 있냐는 말이 너무 가슴에 못으로 박히고 부끄러웠다.
입으로 훅 불어버리면 날아가버릴 것 같은 지식가지고 공부한다고... 이런 말을 들으니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드디어 도착한 녹우당. 녹우당은 듣던 바와는 좀 달랐다. 최근 8개월여 동안 해남군민
들과 분쟁이 있어서 녹우당이 그동안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에 무슨 수리 같은 것도 하고 있었고, 문이 잠겨져 있어서 들어가 볼 수 없었던
곳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녹우당을 떠났다.
이제 남쪽 밑에 지방은 끝이났다! 이제 남쪽 위에 지방으로 올라가자!
# 전남 담양 - 소쇄원
<사진>
1.소쇄원 들어가는 길 - 바람이 소쇄~소쇄~ 분다고 해서 소쇄원이라고 한다^^;;
2.소당
소쇄원에는 입구와 봉사 사이에 네모진 못 두개가 만들어져 있다. 최근에 보수한 못의 크기는
상지(대봉대 아래)가 2.8×2.8m이며, 하지는 5.5×4.0m의 넓이다. 이 못의 특징은 중앙에 조그마한
섬이 없는 네모난 못이라는 것이다. 같은 시대에 만든 환벽당의 못이나 1556년에 만든 경북 안동
도산서원의 정우당淨友塘도 모두 중앙에 섬이 없는 네모난 못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3.광풍각
광풍각은 소쇄원의 하단에 있는 별당으로 건축된 정면 3칸, 측면 1칸 전후퇴의 팔작지붕 한식기와
건물이다. 중안 1칸은 온돌방으로 뒷면에는 90cm 높이의 함실 아궁이가 있다. 방의 문턱에는 머름대를
구성하였으며, 문은 삼분합의 들어열개문으로 되어 있다. 막돌허튼층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방주를 세웠으며, 주두와 소로, 장혀, 굴도리로 결구된 평5량가구이다. 천장은 연등천장과 우물천장을
혼합하였는데 서까래가 모이는 부분은 눈썹천장으로 되어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서까래는 선자서까래이다.
4.대봉대
대봉대는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대를 쌓고 정자(소정)를 지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대봉대는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봉황새를 기다리는 동대桐臺‘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그 곁에는 봉황새가 둥지를 틀고
산다는 벽오동나무와 열매를 먹이로 한다는 대나무를 심었다. 또한 입구 쪽으로는 상지와 하지가 있고 바람을
막기 위해 애양단이 바로 앞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상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쇄원48영」중 많은 구절이
적용되는 장소 가운데 한 곳이며, 제 37영 ’동대하음桐臺夏陰’에서 동대 주변의 분위기를 노래하였다. 이러한
주변의 상황으로 보아 ‘동대’란 대봉대를 가리킨다. 이 대봉대의 넓이는 4m×2.5m이다. 현재 대봉대의 초정
옆에 심어진 오동나무는「소쇄원도」에 근거해서 15대손 양재영씨가 최근에 심어 가꾸고 있다. 중국에는
봉황새가 모여 살았다는 봉황새와 봉황산이 많다
(http://www.soswaewon.org/subFrame.asp?book=2&part=5&chapter=3 내용)
소쇄원은 양산보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능주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이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때에는 하나의 후원
이며, 공간 구성과 기능면에서 볼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으로 되어있다.
#가사문학관
<사진>
1.가사문학관
2.가사문학관 앞 연못 - 안에 물고기 엄청 많습니다^^
3.가사 문학관 내 전시자료 - 송순<면앙정가>, 정철<속미인곡>
4.가사 문학관 내 전시자료 - 병풍
솔직히 처음에는 가사문학관을 코스에 넣지도 않고, 방문도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우리가 무슨 국문과나 한문과도 아닌데... 이런 생각에...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볼 수 도
있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나는 철학자요! 너는 국문학자요! 너는 역사학자요!
이렇게 칼로 두부자르듯이 구분이 되어이었던 것이아니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모든
학문의 근원인 것과 마찬가지로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예전에는 문사철이 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따지고 보면 철학자이자, 문인이자, 의학자이자,
과학자이자, 경제학자이자, 정치학자이자...따지고 보면 끝이 없다. 다른건 제쳐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사문학관은 정말 꼭한번 가봐야 할 곳이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그냥 가사문학 그 작품 자체만 배웠지만, 이곳에는 제 1전시실에서 3전시실까지 여러가지
자료들이 있고, 영상물에는 그와 관련된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에 대해서 잘 설명해 놓았다.
# 그 외
담양에 가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담양은 대부분의 문화유적들이 버스정류장 한두정거장
차이로 가까이 서로 뭉쳐져 있습니다. 환벽당, 식영정, 취가정, 독수정...나머지 정자들을
또 행군으로 갔습니다. 미안해 민수야...ㅠㅠ
이제 실제 답사때 점심해결을 해야할 시간...주변에 있는 식당에를 다 돌아다녀봤다.
근데 다들 5천원 아래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들린 가사문학관 옆의 생선구이 백반집.
간판을 보니 원래 6천원짜리 백반을 단체로 오면 5천원으로 해준다고 적혀있었다.
아...이렇게 끝나는 건가...ㅠㅠ 이렇게 생각하고 일단 식당으로 가보았는데...
역시나 5000원 아래로는 해주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게 마지막 집이기에 나는 사력을
다해서 돈을 깍으려고 노력했다. 여기에 사용한 도구가 바로 "행군" 저희 둘이 오늘
하루 종일 걸어다녔습니다. 점심 꼭 여기에서 먹어야 되거든요...ㅠㅠ
이렇게 통사정을 하니 아주머니께서 주인 아저씨에게 "우리도 대학생 아들 있으니깐
그냥 4000원에 해줍시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정말 대한민국에 안되는게 없었다.
한껀 해냈다는 기쁜 마음에 우리는 광주로 돌아간다. 광주에 돌아가니 어두컴컴하다...
잠을 자러 우리는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사전 답사 3일차 -7월 22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장성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오늘이 드디어 마지막 날!
솔직히 말해서 답사준비하는 과정에서 짜증나는 것도 있었고, 힘든것도 있었지만, 막상
사전답사를 가게되니 좀 힘들긴 해도 재미있는 것도 있고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민수야 우리 오늘만 걸으면 집에간다~!^^"
방장산 자연휴양림인 전남 장성의 방장산에 있는 휴양림이다. 백양사 IC에서 고창 IC로
가는 길 6KM 지점에 휴양림이 있다. "민수야 가자. 택시 왕복으로 왔다갔다하면 15000원은
넘게 나온단다...걷다가 지나가는 차 얻어타자..." 한 2KM 걸었을 무렵 우리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한 1KM 전진하였다^^. 차에서 내려 다시 행군...휴양림에 전화를 해본다.
괜히 알면서 질문을 해본다. 거기 휴양림 도로 왼쪽에 있나요 오른쪽에 있나요? 지금 거기로
걸어가고 있거든요. 아저씨 깜짝 놀란다. 사실 이건 나중을 위한 나의 계략이었다.
4KM 지점을 막 통과할 무렵 극적으로 또 차한대를 얻어탔다. 덕분에 휴양림 앞에까지 도착!
짜자안~ 여기가 방장산 자연휴양림~!
# 방장산 자연 휴양림
<사진>
1.휴양림 입구
2.수영장
3.숲속 수련관
4.화장실
휴양림으로 들어가니깐 아저씨가 우리들을 보고 깜짝 놀란다. 나는 매표소 앞으로 가서 말한다.
저 이 휴양림 꼭 예약해야 되거든요. 어떻게 사정 좀 봐주시면 안될까요?(휴양림을 예약하려면
한달전 1일 09시부터 인터넷으로 선착순 예약을 해야 한다. 혹시 그때 손가락 클릭 부족으로
신청 못할 가능성이 있기에...) 아저씨에게 사정을 하니 알았다면서 그럼 1일날 아침 8시 30분에
전화로 예약하면 받아준다고 한다. 앗싸~! 역시 대한민국에 안되는게 없어~!
작년에 나는 답사를 안가서 자연휴양림이라는데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에 오니깐
참 좋은곳 같다. 분위기도 아늑하고, 계곡과 수영장도 있고...^^
우리가 묵게 될 곳은 숲속 수련관이라고, 2층 건물 한동인데. 21평형 방 1개, 6평형 1개,
그리고 8평형 3개, 공동 취사장, 식당, 화장실 뭐 이렇게 있다.
돌아오는 길에도 기적적으로 차를 타고 돌아오다...앗싸~ 만오천원 굳혔다~!
# 필암서원
<사진>
1.확연루
2.숭의제
3.KBS에서 선비 문화와 관련해서 촬영 나온 모습
4.필암서원 탁본 체험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위치한 필암서원은 1590년 하서 김인후의 후학과 호남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되었으며, 1786년 하서의 사위이자 문인인 고암 양자징을
추배하였다. 특히 필암서원은 1659년 필암으로 사액을 받았으며, 하서 김인후 선생은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점에서도 이 지역의 선비 문화를 대표하는 서원이다.
그리 높지 않은 유민산이 뒤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평지에 자링잡은 필암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사 공간과 교육 및 학문 수련의 공간, 휴식공간 그 밖에 장서 보관 기타시설 등
조선시대 서원의 기본구조를 잘 갖추고 있다. 특히 확연루의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직접 쓴 글이다. 필암서원은 옛 규모를 잘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물 제 587호로
지정된 고문서(노비보,원장선생안, 집강안, 원적, 봉심록, 서원성책 등)와 인종이 하서
선생에게 하사했다는 목죽도, 하서유묵 등 60여건의 자료가 여전히 남아있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페령으로 958개 서원 중 47개소만 남게 되었는데 그 중 철폐되지 않은
서원이며, 일제시대나 6.25 사변때도에도 피해를 면한 서원이다.
필암서원에 우리 말고도 어르신 분들이 관광버스로 장성지역으로 관광을 나오셨다.
우리는 결국 그 관광버스에 같이 올라타게 된다...^^;; 관광버스를 타고 홍길동 생가,
백비, 하서 김인후 묘비, 동학 유적지인 화룡전적지, 요월동 원림 등을 돌았다.
이제 광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니깐... 거기 인솔자셔던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님이 밥 시켜놓았으니 먹고 가라고 하신다...ㅠㅠ 밥 까지 얻어먹으면 너무 죄송
스러운데...ㅠㅠ 계속 사양하다가 결국은 밥을 먹으러 따라간다... 밥 먹으면서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 좋은 말씀을 해 주신다... 우리를 언제 보았다고 그렇게 잘 대해주실까...
정말 좋은 분 같았다...
#홍길동 생가
<사진>
1.홍길동 관련자료
2.홍길동 어린이 휴게실
3.홍길동 전
4.홍길동 모형
5.홍길동은 실존인물?
6.홍길동생가모형
#기타지역
<사진>
1.백비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밀양박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30cm, 폭 45cm, 두께 15cm이며, 청백리(淸白吏)로
유명한 박수량이 죽은 뒤 나라에서 내린 것이다. 박수량의 묘 앞에 서 있으며,
직사각형의 대석 위에 호패형의 비신을 올리고 비문의 내용을 새기지 않아 백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2.황룡전적지 하단부
이곳은 1894년 4월 반봉건·반외세를 내건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격파하고 전주에
무혈 입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 황룡전투의 전적지이다.
#5.18자유공원
첫댓글 횽아 넘 고생하셨어용 ,.ㅋㅋ 스크롤의 압박이 조금 있긴 하지만,. 사진 짤리는거 없어서 다행이에용 ㅋㅋ !!! 앞으로갈 답사가 기대 되네용 ㅋㅋ
넘흐 길어염;;ㅠㅠ 무지 잼나고 고생도 씨게 했겠네요;;ㅋㅋ 답사 꼭 갈께요
이번에는 학술답사를 개강하는 그주 목금토에 갑니다. 그래서 좀 바쁠 것 같습니다. 빨리 인원모집하고, 조짜고, 조장정하고, 자료집 만들고, 예약하고...학우분들의 많은 관심과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이 줄여 넘 길다 바보네?
선배;;ㅋㅋ 고생 하셧네요 ㅠㅠ 아 죄송해요 같이 가기루 해노쿠선 ㅠㅠ 죄송해요 ㅠㅠ흑흑...반성중입니다..ㅠㅋ
다들 길다고 ㅋㅋ 암튼 경덕형의 엄청난 사전 답사로 무척이나 기대되네요 ㅋㅋ
요기도 좀 관심가져 주시지^^;;